|
|
| Home > 뉴스
|
|
속기는 독이다!
|
속기는 독이다!
한국바둑이 중국에 밀리는 가장 큰 요인은 속기
| 배태일 2013-09-27 오전 09:57 [프린트｜스크랩] |
|
|
|
|
 |
| ▲ 올 1월13일, '합천군 초청 영재-정상 대결' 이세돌 9단 : 변상일 2단의 대국. 이9단의 반집승으로 끝났지만 승부결과는 중요치 않다. 나이어린 영재와 최정상급 기사가 이렇게 머리를 맞대고 바둑을 두는 기회, 회수가 중요하다. 일찍 입단하여 경험을 쌓는다는 것은 곧 한국바둑의 경쟁력을 쌓는다는 걸 뜻하기 때문이다. 비록 이벤트 대국이긴 했으나 신민준, 신진서도 이창호와 최철한에게 이겼다. 영재입단제도가 없었다면 '양신'은 좀더, 어쩌면 연구생 퇴출시기가 차도록 입단지망생으로 '입단을 위한 바둑'에만 매진해야 했을 것이고, 이처럼 이른 시기에 정상급에게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결코 얻지 못했을 것이다. |
한국기원의 바둑농사의 실패
지난 9월초에 삼성화재배 32강전이 끝났다. 한국기사 5명과 중국기사 11명이 16강에 올랐다. 몽백합배와 LG배에 이어서 한국이 중국에게 국제기전에서 계속 밀리고 있다. 이미 2012년부터 시작된 일이고 이제는 큰 뉴스거리도 안 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혹시나’했더니, ‘역시나’였다.
어떤 사람들은 중국에는 인구도 많고 바둑 열기도 높거니와 정부에서 바둑을 지원하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 아니냐고 말한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두 가지 면에서 잘못 되었다. 첫째로, 개인이나 집단을 막론하고 최선을 다해서 정정당당히 싸우는 것이 스포츠 정신이다. 그러므로 한국바둑계가 이런 패배주의적 생각을 가지는 것은 잘못이다. 둘째로, 중국과 비교할 것이 없이 우리 한국바둑계 안에서 비교 분석해 보아도 한국기원이 90년 이후 출생한 ‘90후 세대’ 기사들에 대한 바둑농사에 실패했다는 걸 알 수 있다.
 한국 신예기사들의 실력이, 몇 명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입단 후에 거의 실력이 늘지 않는다는 것을 필자가 두 번에 걸쳐서 사이버오로에 발표한 바 있다. 첫번째 글은 2012년 6월에 발표했고, 두번째 글은 금년 7월에 발표했다.
실력이 늘지 않은 증거를 다른 각도에서 한번 더 살펴보았다. 10여년 전의 상황과 오늘의 상황-랭킹을 비교해 보았다.
아래 <표1>은 만10년 전인 2003년 9월과 그보다 앞선 2002년 1월의 바둑랭킹을 조사한 결과다. 2002년 1월의 상위 랭킹을 보면 이미 ‘80후(80년대 출생 기사들)’가 상위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10위 이내에 5명이 들었고, 11~20위에도 4명이 올라 있다. 그로부터 1년8개월 후인 2003년 9월 랭킹에서는 상위 10위 안에 6명과 11~20위에 5명이 80후 기사로 채워졌다. (랭킹 순서대로 적으면, 이창호, 이세돌, 조훈현, 유창혁, 최철한, 목진석, 송태곤, 조한승, 안조영, 박영훈, 윤성현, 원성진, 김주호, 김승준, 허영호, 윤준상, 최명훈, 홍민표, 루이, 이상훈(大)이다.)
▲ <표1> 10여년 전의 기사 랭킹과 출생시기
이제 <표1>에 분석한 시간보다 만10년이 지난 오늘날의 상황을 <표2>에서 보자. 현재는 ‘90후’ 중에서 박정환만이 홀로 10위 이내에 들었을 뿐이고 11~20위에도 90후 기사는 5명밖에 없다.
지금보다 1년 8개월 전인 2012년 1월에도 90후의 상위 점거 비율은 같았다. 즉 1년8개월 사이에 90후 기사들이 전혀 발전하지 못하였다. 75년 생인 이창호가 10위 이하로 내려온 자리를 80후 기사가 채워서 현재 10위 안에 80후 9명이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오히려 80후는 발전했는데 90후는 1년8개월 동안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었다는 얘기로 받아들일 수 있다.
▲ <표2> 오늘날의 기사 랭킹과 출생시기
한국바둑 랭킹을 분석해서 알 수 있는 위의 결과는 중국바둑의 발전과 상관 없이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중국기원이 90후 바둑농사를 잘 지어서 한국기원의 바둑농사가 비교적으로 잘못 된 것처럼 보이는 것이 아니라, 한국기원이 90후 바둑농사에 절대적으로 실패했다는 사실. 이것은 한국기원의 정책적 실패에 기인하였으므로 이를 시정하지 않고는 중국바둑에 맞설 수 없다.
이런 현상의 주 원인이 무엇인가를 이 글에서 살펴 보고자 한다. 새로운 분석을 더해서 가장 큰 원인이 바로 속기라는 사실을 밝히고, 그 증거와 이런 것을 시정할 방안을 제안하고자 한다.
2006~11년 입단자의 바둑리그 참여와 실력증가 관계
지난 7월의 글에서 한국바둑리그에 본선멤버로 참여한 것과 랭킹점수 증가와의 관계를 조사해 바둑리그 활동이 점수 증가에 장애요인이라는 것을 밝힌 바 있다. 이 분석에서 점수가 낮은 기사들까지 다 포함하였는데, 어찌 보면 점수가 낮은 기사들은 (실력이 낮다 보니) 늘 여지가 더 많기에 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대부분의 기간 동안 9200점 이상을 유지한, 점수가 높은 기사들만 뽑아서 <표3>에 다시 정리해 본다.
▲ <표3> 한국바둑리그 참가 여부와 점수 증가의 상관관계
이 표에서 한국바둑리그에 본선멤버로 활동한 해를 동그라미로 표시했다. 이 표에 따르면 입단 다음해부터 연속해서 2년 이상 한국바둑리그에 참여한 기사가 20명인데, 그 중에서 김승재, 안성준 두 명만 점수가 제법 증가했고 나현과 이지현(남)은 약간씩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나머지 16명은 점수가 늘지 않거나 줄었다.
이에 비해서 그렇지 않은 8명의 기사 중에서는 7명이 점수가 제법 증가했음을 알 수 있다. 즉 한국바둑리그에 일찍부터 참여하는 것은 랭킹점수 상승에 장애요소로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2004년과 2005년 입단자들
한국바둑리그가 2004년부터 시작하였으므로, 분석의 범위를 더 확대해서 2004년과 2005년에 입단한 기사들의 점수변화를 살펴보자. 2004~05년에는 기사들의 점수가 전반적으로 낮았으므로 대부분의 기간 동안에 9000점 이상의 점수를 가진 기사들을 고점자로 분류하여 분석한다.
2004년 입단자 중에서는 온소진, 김기용, 진시영, 홍기표가 고점자이고, 2005년 입단자 중에서는 김형우, 배준희, 전영규가 고점자로 분류된다.
▲ [그림1] 2004년에 입단한 고점자들의 점수변화. 화살표는 만20세가 되는 시점을 표시한다.
[그림1]에서 2004년에 입단한 고점자들의 점수변화를 살펴보자. 온소진은 입단 이후에 점수가 별로 늘지 않았고 2011년에 잠시 9200점을 넘은 적을 빼고는 항상 9200점 미만에 머물렀다. 김기용은 만26세가 될 때까지 점수가 올라가서 2006년도의 점수보다 현재 400점 가량 높다. 진시영도 2001년 초까지 계속 늘어서 500점 가량 는 후에는 정체상태에 있다. 홍기표도 약 500점 가량 늘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온소진은 2004년에 입단한 후에 2006, 07, 08년에 바둑리거로 활동했고, 김기용은 2007, 08년에 바둑리거로 활동했으며, 진시영과 홍기표는 2009년까지 바둑리거로 활동하지 않았다.
일찍부터 바둑리거로 활동한 온소진은 점수가 늘지 않고 정체 상태에 빠져있지만 그 외 기사는 얼마 동안 점수가 는 것을 볼 수 있다. 입단 바로 후에는 온소진이 점수가 가장 높았다. 그렇지만 김기용과 진시영은 온소진보다 점수가 높아졌고, 홍기표는 온소진과 비슷한 점수를 가지고 있다.
이번엔 아래 [그림2]에서 2005년에 입단한 기사들 중에서 고점자들의 점수변화를 살펴보자. 이 그림에서 화살표는 해당 기사가 만20세가 되는 시점을 가리킨다.
▲ [그림2] 2005년에 입단한 고점자들의 점수변화
김형우는 21세까지 향상하다가 그 후에 정체상태에 빠졌다. 배준희는 입단 이후에 꾸준히 점수가 내려가고 있다. 이들 둘이 입단 다음 다음해인 2007년과 2008년에 한국바둑리그의 본선 멤버로 뛰었다. 입단 이후에 꾸준히 점수가 준 경우가 배준희 말고도 류동완이 있는데, 류동완도 입단 다음해인 2009년과 2010년에 한국바둑리그의 멤버로 뛰었다.
바둑리거가 된 적이 없는 전영규는 23세까지 실력이 늘었고 그 후에 정체되었다.
아래 <표4>에 2004년과 2005년에 입단한 기사들의 한국바둑리그 참여 여부를 밝혔다. 한국바둑리그에 참여한 해에는 동그라미를 쳐서 표시했다. 마지막 종렬에 기사들의 점수증감을 표시했다.
▲ <표4> 한국바둑리그 참가 여부와 점수증감
이것을 보면, 같은 해에 입단한 기사 중에서도 한국바둑리그에 일찍부터 참가한 기사들이 실력이 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2004년 입단한 기사 중에서 일찍부터 바둑리그에 참가한 온소진의 실력은 늘지 않았고 반면에 김기용, 홍기표, 진시영의 실력은 늘었다. 2005년에 입단한 기사 중에서 일찍부터 바둑리그에 참여한 김형우의 점수는 잠깐 늘다가 멈췄고, 배준희는 점수가 계속 줄었다. 반면에 전영규의 점수는 한참 동안 늘었다. 이와 같은 현상을 <표3>에서 2006년 이후에 입단한 기사들에게서도 볼 수 있다.
2003년 이전 입단자들의 점수변화
지난번에 발표한 2006년 이후에 입단한 새내기들의 점수변화와 위에서 분석한 2005년과 2004년에 입단한 기사들의 점수변화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하나의 중요한 패턴을 발견하게 된다. 입단 연도가 늦을수록 바둑이 느는 기간이 짧아진다는 것이다. 2006년 이후에 입단한 기사들은 입단 직후부터 점수가 거의 늘지 않고 있다. 2004년에 입단한 기사들은 2011년 초까지 점수가 늘다가 정체되었는데, 2005년에 입단한 기사들은 김형우의 경우에는 2009년 초까지, 전영규의 경우에는 2012년 초까지 점수가 늘었다.
위에서 한국바둑리그에 프로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부터 참여하는 것이 실력 향상에 지장을 준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이들보다 더 일찍 입단하여서 프로 활동을 시작할 때에 한국바둑리그가 없던 시절 기사들의 점수증가를 살펴보자.
▲ [그림3] 2000년 이전에 입단한 고점자들의 점수변화
[그림3]에서 2000년 이전에 입단한 조한승(1996년 입단), 최철한(1997년 입단), 원성진(1998년 입단)의 나이에 따른 점수 변화를 살펴보자. 이제 막 30세가 넘은 조한승은 지금까지 꾸준히 점수가 늘어왔다. 20대 후반인 원성진도 지금까지 점수가 늘었다. 최철한은 극심한 슬럼프 기간을 겪었지만 25세가 넘었을 때의 점수가 가장 높다.
▲ [그림4] 2001년과 2002년에 입단한 고점자들의 점수변화
[그림4]에서 2001년에 입단한 윤준상, 이영구, 홍성지와 2002년에 입단한 강동윤의 점수변화를 살펴보자.
강동윤은 만20세 무렵에 최고점에 이른 다음에 거의 늘지 않고 점수가 오르락내리락할 뿐이다. 윤준상과 이영구는 19세 이후에는 아주 천천히 점수가 느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홍성지는 입단 직후에 점수가 낮았고, 따라서 바둑리거로 활동하기 시작한 것도 입단 후 5년이 지나서 2006년부터였다. 그래서 그는 늦게까지 점수가 늘어서 20세가 지난 후에는 윤준상과 이영구를 따라잡았다. 그는 21세 후에 약간의 슬럼프 조짐을 보이며 점수가 천천히 내려갔다가 천천히 회복했다.
▲ [그림5] 김지석과 백홍석의 점수변화
[그림5]에서 2001년에 입단한 백홍석과 2003년에 입단한 김지석의 점수변화를 살펴보자.
김지석은 18세가 될 때까지 빨리 늘다가 18, 19세 때에 주춤하였고, 20세가 되자 점수가 껑충 뛰었다. 그 후로는 느리지만 꾸준히 늘어서 현재 랭킹2위에 올라 있다.
백홍석은 김지석에 비해서 늦은 나이에 발동이 걸려서 18세부터 21세가 될 때까지 빨리 늘었고 그 후로 4년 동안 점수가 조금씩 내려갔었다. 그러다 25세에 가까워질 무렵에 다시 발동이 걸려서 실력이 빨리 늘었고 세계대회 타이틀도 따면서 랭킹5위까지 올라간 적이 있다. 백홍석도 [그림4]에 포함된 윤준상, 이영구, 홍성지와 비슷한 패턴을 보여서 21세쯤에서부터 성적이 늘지 않았는데, 그들과 달리 늦게라도 다시 점수가 올라갔다.
2006년 이후 입단자들의 점수변화
이제 2006년 이후에 입단한 새내기들의 나이에 따른 점수변화를 [그림6]에서 살펴보자. 점수가 눈에 뜨이게 는 안성준과 김세동 그리고 점수가 천천히 늘고 있는 나현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점수가 늘지 않거나 줄고 있다.
▲ [그림6] 2006년 이후에 입단한 고점자들의 점수변화
강유택의 점수는 19세까지 늘었는데 그 후에 감소하고 있다. 안국현의 점수는 정체되어 있다. 한웅규의 점수는 줄다가 최근에 회복했다. 안형준의 점수도 정규 점수를 처음 받았을 때보다 내려갔다. 류동완의 점수는 많이 내려갔다. 이처럼 몇 명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새내기들이 아직 나이가 젊은데도 실력이 늘지 않고 있다. 이것은 2000년 이전에 입단한 선배들과 큰 대조를 이룬다.
여기서 강유택, 한웅규, 안형준, 류동완, 안국현은 입단 다음해부터 바둑리거가 되었고, 그 다음해에도 바둑리거로 활동하였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실력이 늘지 않거나 줄었다.
실력이 는 안성준은 입단 다음해부터 바둑리거가 되었지만 예외적으로 실력이 늘었다. 김세동은 작년에 락스타 멤버로서 감독에게 발탁되어서 한국바둑리그의 대국을 한 적이 여러 번 있지만 2013년에야 정식으로 바둑리거가 되었다. 즉 바둑리그에 참여하느냐 않느냐가 실력이 느느냐 않느냐와 직결된 것을 볼 수 있다.
[그림3, 4, 5, 6]에서 본 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2000년 이전에 입단한 기사들은 이미 전문기사 생활을 오래 한 다음에 한국바둑리그가 생겼고 속기전이 많아졌으므로 속기의 나쁜 영향을 적게 받아서 20대 후반까지 실력이 늘어왔다. 그러나 한국바둑리그가 생긴 다음인 2006년 이후에 입단하여(특히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바둑리거로 활동하게 된 새내기들은 속기의 나쁜 영향을 많이 받아서 20세도 채 되기 전에 바둑 실력의 성장이 멈추어 버렸다.
아래 <표5>에 의하면, 2001,02년에 입단한 이영구, 윤준상, 홍성지, 강동윤 등은 프로 생활을 2, 3년 한 다음에 한국바둑리그가 생겼고 속기의 나쁜 영향을 중간쯤 받아서 20세쯤까지 실력이 늘긴 했다. 하지만 그 다음에는 더 이상 늘지 않는다. 그러나 백홍석과 김지석은 ‘장고형’ 기사이기 때문에 속기의 악영향을 물리치고 늦은 나이까지 실력이 늘었다.
▲ <표5> 2001년과 2002년 입단자들의 바둑리그 참가 여부
한국바둑리그의 멤버가 되어서 속기 14판쯤 더 두는 것이 그렇게 나쁜 영향을 미칠까? 단순히 속기 14판이 아니다. 한국바둑리그의 멤버가 되면 거기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수많은 속기 연습대국을 두게 되는데, 그것이 독이 되어서 장기적 바둑 발전을 막는다고 볼 수 있다.
▲ 한국프로바둑의 새로운 장을 연 바둑리그는 바둑의 흥행과 규모를 키웠다는 점에서 한국바둑의 발전적 요소로 작용했지만 흥미와 시청자 편의 위주의 속기전에 치우쳐 프로들의 실력저하를 초래한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사진은 2004년 5월 성대히 벌어진 한국바둑리그 출범 개막식.
왜 속기가 독인지 몰랐나?
지난번 글과 이번 글에서 확연히 들어난 바는 바로 속기는 바둑이 늘지 못하게 하는 독소란 점이다. 그런데 왜 속기가 독인지 여태껏 몰랐을까?
한 이유는 일본 영향 탓이다. 화려한 바둑으로 유명한 후지사와 슈코 9단은 속기가 바둑 감각을 발달시킨다고 주장했다. 그는 린하이펑, 오다케, 구토, 조훈현 등의 젊은 기사들과 속기 지도대국을 많이 가졌는데, 이들에게 빨리빨리 두라고 권장하고 빨리 두지 않을 경우에는 야단까지 쳤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후지사와는 당대의 절정 고수였고 그의 지도를 받은 제자들이 모두 고수로 성장했으므로 속기에 대한 그의 견해가 의심 없이 금과옥조로 받아들여진 면이 있다.
그러나 속기의 빈도가 문제이다. 당시에 후지사와의 지도를 받던 기사들이 속기를 두었어도 일주일에 불과 몇 판 정도였고, 인터넷 속기가 범람하는 오늘날과는 큰 차이가 있다.
둘째로 속기의 범람이 바둑실력 증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아무도 철저히 분석하지 않았기 때문에 속기가 독인 것을 몰랐던 것이다. 한국에 몇 해 전부터 속기가 만연해져서 이러한 분석을 할 자료가 이제야 충분히 쌓였고, 처음으로 필자가 이 자료를 조직적으로 분석하였기 때문에 이런 중요한 것을 발견한 것이다.
한국의 90년대 출생 기사들은 많은 속기 기전에 참여했고, 인터넷을 통해서 선배들보다 훨씬 자주 속기를 두며 자랐는데, 바로 그들이 20세가 되기 전부터 바둑이 늘지 않는 것은 속기가 실력 증진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증명한다. 속기는 도움이 안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독이다.
속기전을 줄이자
작년부터 중국바둑에 한국바둑이 철저히 밀리는 것을 깨달았는데 우리가 바둑 최강국의 지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한국바둑 실력의 발전을 막는 요인들을 제거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이미 속기의 폐해가 확연히 드러났으므로 속기전을 대폭 줄여야 한다.
 속기 기전은 흥밋거리로 두 개 정도 있으면 충분하다. 특히 프로기사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는 한국바둑리그를 장고바둑으로 전환해야 한다. 지루하게 진행되는 장고바둑을 시청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면 장고대국을 편집해서 방영하면 될 것이다. 물론 장고바둑을 편집하는 것은 속기를 실시간으로 방영하는 것보다 경비가 많이 들 것이다. 그러나 그런 노력도 없으면 한국바둑의 국제경쟁력이 저절로 회복되지 않을 것이다.
한국바둑이 이대로 가다가는 국제기전에서 8강전이나 4강전에 얼굴조차 내밀지 못하고 다 떨어져 나가고 한명도 없는 경우가 자주 생길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속기를 방영해도 바둑TV의 시청률은 급격히 떨어질 것이고 바둑TV가 쇠퇴할 것은 뻔하다. 그러므로 바둑TV의 영업을 위해서도 한국바둑리그를 지금처럼 속기로 계속하는 것은 좋지 않다.
속기를 두지 말자
속기를 줄이는 것은 지금까지의 한국바둑계의 움직임으로 보면 시간이 한참 걸릴 것이다. 시대의 흐름이나 관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사들이 개인적으로 자구책을 구하는 것이 좋다. 속기는 기력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기력 향상을 막는 독일 수 있으니 되도록 속기를 줄이거나 아예 두지 않을 것을 권한다.
좀 과격한 제안일 수 있으나 젊은 기사들, 새내기들-특별히 영재입단을 한 새내기들은 지금부터 2년쯤 속기 기전에 참여하지 말아라. 인터넷 속기도 두지 말아라. 그리고서 2년 후에 속기를 계속해서 두고 있는 동료들과 비교해서 누가 더 바둑이 늘었는가 비교해 보라.
바둑도장에서도 학생들이 속기를 두지 않도록 권장하는 것이 좋다. 이것을 어느 바둑도장의 한 간부 사범에게 제안하였더니 학생들이 전혀 따라오지 않을 것이라고 대답하였다. 그러나 속기가 독이라는 것이 밝혀졌으므로 그것을 홍보하여 속기를 두지 않을 지원자를 모집해서 그들과 속기를 계속 두는 학생들이 일년 후에 누가 더 실력이 늘었는가를 비교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일을 위해서 필요하다면 필자가 학생들과 사범들과 학부형들을 상대로 세미나를 열어 설명할 용의가 있다.
▲ 지난해 첫 영재입단대회를 통해 프로가 된 신민준, 신진서는 바둑계의 주목을 끄는 기대주다. 신진서는 2000년 생으로 첫 프로기사가 되었으며 한국바둑이 15년 만에 배출한 초등학생 프로기사이다. 영재입단제도가 도입되지 않았다면 어쩌면 더 오랜 기간 볼 수 없었던 '초딩' 입단자였을 것이다.
입단제도를 바꿔라
한국바둑이 지난 10여년 동안 바둑 최강국의 위치를 누릴 수 있었던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는 1984년에 입단제도를 개혁하여 한국기원 원생들에게만 입단 기회를 주어서 어린 나이의 지망생들을 입단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런데 그 후에 상황이 크게 변했어도 근본적인 입단제도의 개선이 없이 지지부진 끌고오다가, 작년부터 영재입단 제도를 도입해서 만14세 이하의 영재를 매년 2명씩 입단시키고 있다. 그렇지만 입단문호를 좀더 넓히면서 반면에 20대 후반에서도 입단한 사람이 나왔다.
입단제도를 어떻게 개선해야 하는가? 영재입단의 숫자를 매년 늘리고 일반 입단자 숫자는 거기에 맞추어 줄여서 종당에는 모두가 15세 이전에 입단하도록 해야 좋다. 이렇게 하면 여러 가지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첫째, 기재가 있는 어린이들을 바둑지망생으로 끌 수 있다. 현재는 18세가 넘을 때까지 장기간 바둑공부에 학생들의 시간과 학부모의 돈을 투자하는 구조여서 입단에 실패할 경우 바둑지망생들은 다른 진로를 찾기가 어렵다. 그렇기에 바둑의 길을 택하는 것은 투자에 비해 돌아오는 이득이 적고 위험부담이 커서 매력이 없다. 당연히 기재가 있는 아이들이나 그들의 부모들이 바둑의 길을 찾지 않을 것이다.
.jpg)
입단 연령의 상한선을 15세로 낮추면 우선 투자 비용이 줄어든다. 설령 입단에 실패해도 바둑공부를 하면서 훈련한 집중력을 이용하여 열심히 공부하면 좋은 대학에 진학할 수 있고, 자연히 그런 사람들이 사회 각계각층에 포진하게 되어 바둑보급과 발전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투자비용이 현저히 줄어들고 이윤은 커지고 위험부담은 적어져서 자연히 기재가 있는 어린이들이 바둑의 길을 도전해 볼 것이다.
현재의 입단제도를 계속하는 것은 바둑계를 쇠퇴시키는 지름길이다. 그러므로 과감하게 고쳐야 한다.
입단 상한 연령이 지금처럼 높아서 바둑지망생들을 도장의 학생으로 오래 붙잡고 있으면 바둑도장에 이익이 될 것 같지만, 그것은 단기적인 안목이다. 멀리 보아서 한국바둑이 국제경쟁력을 잃으면 프로기사의 직업이 매력이 없어지므로 덩달아 바둑도장도 쇠퇴할 것이다.
셋째, 입단 연령을 낮추면 창의력과 상상력을 십분 살릴 수 있게 된다. 현재와 같이 바둑지망생들의 창의력을 떨어지게 만드는 도장의 ‘이기기 위한’ 훈련에서 빨리 해방시켜주어야 한다. 이것은 그들이 창의력이 있을 때에 고수들과 대국하면서 배우는 기회를 준다. 이 장점은 80년대와 90년대에 빠른 나이에 입단한 기사들을 통해서 이미 증명되었고 중국의 예를 통해서도 이미 증명되었다.
모내기할 때가 되었는데도 모내기하지 않고 모를 모판에 계속 내버려 두면 벼농사를 망치듯이 프로기사로 활동할 준비가 된 지망생들을 도장에 오래 붙잡고 있으면 바둑농사를 망치게 된다.
한국바둑이 점차 쇠락해가는 조짐을 보며 바둑을 좋아하는 애호가로서 안타까운 마음이 앞서다 보니 다소 과격한 주장을 펼친 듯하다. 하지만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한 학자의 터무니없는 목소리라 무시하지만 말고 한번쯤 귀기울여 주길 당부한다. 내 랭킹칼럼을 연재해 주고 있는 사이버오로는 물론이고 바둑TV는 애정 있는 바둑매체인데 속기를 거론하면서 본의 아니게 불편해 할 수 있는 내용을 펼치게 되었다. 큰 맥락에서 이해를 구한다. 당연히 이 칼럼의 내용은 사이버오로의 뜻이 아닌 한 개인의 주장이다. [글/배태일]
○● 필자 소개 랭킹칼럼을 쓰고 있는 배태일 박사는?
 필자는 1972년에 매릴랜드 대학교에 도미, 유학해 1977년에 동 대학에서 물리학박사를 취득하였다. 그 후에 NASA(미우주항공국) 산하의 Goddard Space Flight Center에서 연구 활동을 하다가 1978년에 University of California, San Diego에서 연구 조교수로 연구 활동을 계속했다. 1982년에 Stanford University로 옮겨서 Senior Scientist로 연구 활동을 하다가 작년에 은퇴하였다.
연구 활동 분야는 태양의 활동과 중성자성과 블랙홀 주위에서 발생하는 엑스광선 분야이다.
한국기원의 랭킹 전문위원으로 2009년 1월부터 시행되고 있는 통계적 랭킹 제도를 창안했고, 2010년 1월부터 3개월에 한번씩 세계랭킹을 계산해서 발표하고 있다. 한국기원 공인 아마5단이고, 미국바둑협회 6단 기력이다.
배태일의 랭킹칼럼 보기
○● 속기가 한국바둑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가? ☜
○● 속기에 강한 기사가 장고바둑도 잘두는가? ☜
○● '장고바둑'에 강한 기사가 '국제기전'에서도 강하다 ☜
○● 청년기사여, 장고바둑을 많이 둬라 ☜
○● 왜 장고바둑을 두어야 하나 ☜
○● 배태일의 랭킹칼럼/ '반짝 초단'은 '반짝 스타'? ☜
○● 한국의 영재들 "다 어디 갔어?" ☜
○● 진정 누구의 실력이 늘었나? ☜
○● 성장을 멈춘 한국의 신예기사들 ☜
|
|
|
|
|
|
|
|
|
|
|
|
|
|
|
|
|
|
|
|
|
|
.gif){kind=log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