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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담 즐기는 일본문학 전문 번역가 양억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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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담 즐기는 일본문학 전문 번역가 양억관
2007-09-05     프린트스크랩

흑백의 뚜렷한 상징, 그 안에 모든 게 있죠

 

쌍꺼풀진 두 눈이 부리부리하다. 부드럽게 접히는 눈매의 주름이 아니라면 조금쯤 무섭게 느껴질까. 그렇진 않을 것 같다. 가수 케니 로저스가 면도를 하면 저렇게 되지 않을까 싶은 하얀 잔디 같은 구레나룻과 수염, 부드럽게 각진 턱을 가진 큰 바위 얼굴이다(어린시절 교과서에서 본 큰 바위 얼굴은 좋은 사람이었다).

 

사실, 처음 그를 봤을 때 조금 놀랐다. 내가 잘 아는 누군가를 몹시 닮았다는 생각 때문이었는데 실은, 내가 잘 아는 누군가가 아니고 직접 대면한 적은 없지만 워낙 유명한, 나도 좋아하는 만화가를 닮은 것이었다. 일본문학 전문번역가 양억관 씨. 그는 어디를 가나 똑 같은 하나의 질문과 하나의 감탄을 듣는다.

 

반갑습니다. 이현세 씨 맞죠?

 

아닌데요. 전 양억관이라고 합니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근데 이야, 정말 많이 닮으셨네요.

 

, 네···.

 

머리 숱이 많다는 게 결정적으로 다르긴 하지만 이현세 씨를 정말 많이 닮아서 다른 사람들이 그런 것처럼 나도 꼭 같이 감탄했다. 두 사람 모두 1956년에 영남(양억관 씨는 경남 울산, 이현세 씨는 경북 울진)에서 태어나기는 했지만 친인척 같은 유전적 관계도 없이 이렇게 닮을 수 있다니 신기하다.

 

, 아무려면 어떤가. 이현세 씨와 아무런 관계도 없이 꽤 많이 닮은 그도 최고로 꼽히는 전문가인데! 1956년 울산에서 태어나 경희대학교 국문학과,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7년의 일본유학을 거쳐 국내 최고의 일본문학 전문번역가로 자리잡았으니 앞으로는 양억관을 닮은 이현세라고 해야겠다(혜성과 엄지의 팬들은 섭섭해 마시라. 양억관 씨는 열렬한 바둑 애호가이며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니까).

 

사실, 그는 약간 불운하다. 일본문학과 그 번역작품에 아주 일천한 사람과 인터뷰를 했기 때문이다. 나는 번역에 대하여 외국어를 한국어로 옮기는 작업이라는 아주 기초적인 상식만 가지고 있을 뿐이다. 왜 이런 말을 늘어놓느냐? 뭐, 간단하다. 얼른 자수하고 해당 전문가들의 고상한 표현을 차용하고 싶어서다. 우선, 하나.

 

고려대 불문과 김화영 교수는 번역가를 박식한 학자와 기술자(언어학자)와 영감 넘치는 예술가(작가)의 중간쯤에 위치한 수공업자라고 표현했다. 번역은 단순히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옮기는 작업이 아닌, 새로운 언어를 창작하는 까다로운 작업이다.

- 주간조선 박란희 기자

 

글쎄, 나는 어떤가. 그가 내게 준 처음의 이미지는 박식한 학자와 기술자(언어학자)와 영감 넘치는 예술가(작가)의 중간쯤에 위치한 수공업자라기보다 어쩐지 초현실주의 화가나 재즈연주가 같은 장르 예술가에 가까웠고 그가 준 처음의 정서는 사람냄새 물씬 풍기는 솔직함이었다. 그는 일본유학 7년을 이렇게 말하며 껄껄 웃었다.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일본유학을 떠난 게 아니었어요. 20대 청년기의 방황이랄까. 뭐, 그런 거 있잖아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빈둥빈둥 보냈어요. NHK였나? TV에서 중계하는 프로바둑을 보고 혼자 복기도 많이 해봤죠. 아마 일본유학 7년 동안 박사학위를 받지 못한 사람은 나밖에 없을 거예요. 번역도 그래요. 지금은 확실한 직업이고 자부심도 있지만 그때는 번역가라는 생각은 전혀 없었으니까요.

 

이제 알겠다. 초현실주의 화가나 재즈연주가 같은 장르 예술가에 가까워 보였던 그의 이미지는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빈둥빈둥하면서 몸에 배인,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으려는 자유로움이라는 것을. 사실, 한 사람의 첫인상에서 드러나는 건 그 사람의 직업이 아니라 그 사람이 살아왔고 또 살면서 자연스럽게 몸에 배는 기질이다.

 

바둑이야기까지 하는 걸 보니 그래도 하고 싶은 건 다 했나 보다. 어디 바둑뿐인가. 감성이 풍부한(충분히 그럴 것으로 추측되는) 여자와 연애도 하고 결혼도 했다. 누가 봐도 성공적인 결혼이다. 왜냐? 국내 출판사에서 일본문학 전문번역가로 첫손가락을 꼽아주는 김난주 씨가 바로 그 시절의 연인이요, 지금의 부인이기 때문이다.

 

아내가 진짜 전문가죠. 나는 국문학을 전공하고 일본어를 구사하는 정도지만 아내는 국문학과 일본문학을 다 전공했어요. 작업하다가 막히는 부분이 있으면 서로 의견을 교환하기도 하는데 주로 내가 묻는 편이죠. 일본역사, 문화사 쪽 고어(古語)나 전문용어가 나오면 거의 아내에게 물어 해결합니다.

 

마누라자랑, 자식자랑은 팔불출이라는데 전혀 거리낌이 없다. 결혼 20년쯤 되는 중년의 남자라고 해서 다 이런 느끼함에 면역력이 강한 건 아닐 텐데? 특이한 건 그런 모습이 그다지 보기 싫지 않다는 거다. 문득, 컴퓨터 앞에 앉아 담배를 빼어 무는 테디 베어 아저씨.

 

얼마 전까지 집에서 함께 번역작업을 했었는데 다람쥐 쳇바퀴 돌듯 단조롭고 답답한 생활이 싫어서 따로 작업실을 마련했어요. 밖에 나가서 일하고 싶다고 했더니 아내도 좋아라 하더군요.

 

기호지세(騎虎之勢)다. 어차피 팔불출소리까지 했는데 다 소개하지 뭐. 김난주 씨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일각수의 꿈(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으로 독자들에게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는데 이 작품은 기존의 가벼운 연애소설과는 다른, 마음을 상실한 삶에 관한 장편으로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고 하루키를 향한 대중의 진지한 접근을 끌어냈다는 평가를 받았다.

 

<노르웨이의 숲>,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렉싱턴의 유령>, <1973년의 핀볼>,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등 하루키의 작품 이외에도 요시모토 바나나의 <키친>, <암리타>, <하치의 마지막 연인>, 유미리 씨의 <가족시네마>, <가족스케치> 등을 번역했는데 각각 다른 소설의 분위기와 문체의 맛을 살려내는 독특한 스타일로 팬들을 매료시킨 최고의 일본문학 전령사가 바로 김난주 씨다. 인터넷검색 MBC 뉴스 참조

 

부인에게 한발 양보하고 물러섰지만 일본문학 전문번역가로서 양억관이라는 이름도 결코 작지 않다. 무라카미 류의 <공생충>, <코인 라커 베이비즈>, <낯선 나날들>,  <69>, <달콤한 악마가 내 안에 들어왔다> 등을 번역했고 무라카미 하루키, 오에 겐자부로, 시바 료타로 등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작품을 100여권 이상 번역한 베테랑이다.

 

얼마나 모국어를 잘 구사할 수 있느냐가 좋은 번역의 관건이다. 저자의 의도를 그대로 전달하면서 우리 정서에 맞는 어휘나 문장을 가려 써야 한다. 끊임없는 공부가 필요하다.(양억관)

 

모국어를 완벽하게 이해한 상태에서 상대 언어와 문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번역하기에 더없이 좋은 조건이 됐다. 번역은 창작이 아니다. 창작은 없는 말을 표현하는 것이지만 번역은 수많은 단어와 문맥을 선별하는 작업이다.(김난주)

 

두 사람의 인터뷰에서 발췌한 말이다. 직접 비교해본 적은 없지만 두 사람은 거의 비슷한 작업의 관(觀)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하긴, 그게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부부는 살면서 닮는다고 하지 않던가. 게다가 두 사람은 오랜 시간 같은 길을 함께 걸어왔으니까.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을 꼽아달라니까 잠시 생각하더니 시바 료타로의 <항우와 유방>을 떠올린다. 예전의 인터뷰에선 애착이 가는 작품으로 단번에 무라카미 류의 <코인 라커 베이비즈>를 꼽던데? 출생 직후 지하철 물품 보관함에 버려진 두 아이가 기적적으로 살아나 사회를 향해 복수한다는 스토리다.

 

아하, 그렇군. <항우와 유방>은 이 정도면 내 생각에도 괜찮은 번역이야라는 것이고 <코인 라커 베이비즈>는 정말 마음에 드는 내용이었는데 번역이 찜찜했어. 꼭 다시 해보고 싶어. 뭐, 그런 거 아닐까.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는 특이하게도 다니구치 지로의 만화 <14살>을 꼽았다. 우연히 고향에 들렀다가 어머니 무덤 앞에서 잠이든 중년남자가 깨어보니 14살 시절로 돌아와 있었다는 타임슬립 작품이다.

 

과연, 나의 삶은 만족할 만한 것이었나. 내게 진정으로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 40~50대의 중년 남자들에게 자신의 삶을 객관적으로 되돌아보게 해주는, 성인을 위한 동화다.

 

최근 번역작품으로는 뭐가 있을까. 그는 책장 옆의 화이트보드를 힐끗, 쳐다보고는 <배터리> 시리즈(전6권)를 막 끝냈다고 한다. 배터리는 야구에서 투수와 포수를 한 묶음으로 지칭하는 용어인데?

 

맞다. 천재 투수 하라다 다쿠미와 포수 나가쿠라 고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중학교 소년들의 우정을 다룬 성장소설로 800만부 이상 판매된 아사노 아츠코의 베스트셀러다. 일본에서는 이미 영화로 제작, 상영되었고 만화화도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야구만화? 순간, 이현세의 <공포의 외인구단>, 이상무의 <내 이름은 독고탁>이 뇌리를 스친다. 그런데 슬프게도 가장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다시 보고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이현세도, 이상무도 아닌 아다치 미츠루의 <H2>. 일본작가, 일본만화다. 이유는 구차하게 설명하고 싶지 않다. 작가들에 대한 예우, 출판환경, 시장구조···. 설명할수록 기분이 나빠질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H2>는 청소년들의 심리묘사가 뛰어난 아다치 미츠루의 작품으로 센카와고교의 히로, 메이와고교의 히데오와 히카리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청소년 야구만화다. 섬세한 터치는 기본이고 첫사랑의 설레임,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고민하는 청소년들의 순수한 마음을 세련되게 그린 수작인데 소장판이 최근 출간돼 지갑을 유혹하고 있다.

 

너무 길었나? 직업이야기는 이쯤에서 접자. 우리가 귀를 기울이고 싶은 건 일본문학 전문번역가 양억관의 이야기보다 못 말리는 바둑 애호가 양억관의 이야기니까.

 

그의 바둑은 어렸을 때 동네 사람들이 두는 걸 구경하다가 어깨너머로 배운 '동네바둑'이었다대학에 다닐 때는 하숙집을 드나드는 친구들과 많이 어울렸는데 바둑책을 본 적도 없고 제대로 지도 받은 일도 없이 아마 2~3단을 오르내리는 기력에 이르렀으니 기재가 뛰어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기재가 뛰어나갔다, 창을 열고(바둑평론가 L씨가 내게 한 말. 자세히 듣지도 않고 꽤 오랫동안 칭찬인줄 알았다)라는 말은 듣지 않아도 되겠다.

 

바둑에 관한한 그의 개성은 매우 독특하다. 그 흔한 인터넷바둑을 단 한판도 둬본 적이 없으며 내기가 아니면 바둑을 두지 않는다. 그것도 판 내기가 아닌 방 내기라야 한다. 물론, 확실한 이유가 있다.

 

인터넷바둑을 두지 않는 이유는 이 없어서다. 바둑은 모름지기 사람과 직접 마주 앉아 그 사람의 숨소리를 들으며 나무 바둑판 위에 돌을 놓는 촉감까지 섬세하게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럼, 내기바둑을 둬야 하는 이유는? 바둑은 승부다. 승자는 무엇인가를 얻어야 하고 패자는 그것을 잃는 게임이다. 아무 것도 걸지 않은 승부는 승부가 아니라는 얘기다(무욕의 도인처럼 살다간 바둑계의 디오게네스 민병산 선생도 하다못해 자장면 한 그릇이라도 걸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으니 믿어도 된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방 내기일까. 이 주장에도 확고한 이유가 있다. 판 내기를 하면 형세가 불리한 쪽에서 반드시 온갖 잡수를 다 두기 때문에 내용이 저열한 바둑이 된다는 게 그 이유다. 방 내기는 불리해도 최소한의 피해로 줄여야 하는 목표가 있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최선의 정수를 둘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는 한걸음 더 나아가 이렇게 말한다.

 

나는, 기원이나 또 다른 장소에서 크든 작든 자기 돈을 걸고 바둑을 두는 사람들이 진짜 프로라고 생각합니다. 바둑대회에 출전하는 사람들은 이기면 상금을 획득하고 져도 자기의 것을 잃는 건 아니잖아요?

 

재미있는 생각이지만 이 말이 다 옳은 건 아니다. 바둑을 직업으로 하는 프로들은 승부에 패해서 상금을 획득하지 못하는 것이 곧 내 것을 잃는 것과 같다. 승패가 생활과 직결되는 그 상실의 아픔을 어찌 대부분 유희에 머무는 아마추어들의 내기와 비교하랴. 그의 말 중에서 그럴 듯한 것만 정리하면 대충 이렇다.

 

프로바둑에도 승부의 패널티 즉, 승자와 패자의 집 차이에 대한 가중치를 부과하면 훨씬 재미있지 않을까? 반 집을 지나 큰 차이로 지나 대국자들이 받아들여야 하는 결과가 똑같다는 건 불공정하다. 현재의 룰은 어떻게 져도 상관 없으니 불리한 쪽에서 당연히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한다.

 

물론, 수준 높은 프로바둑에서 그런 저급한 수단은 자주 나오지 않겠지만(TV 속기에선 터무니 없는 승부수로 종반에 뒤집히는 장면이 이따금씩 등장한다) 바둑도 기록의 게임이니까 집의 차이, 즉 스코어에 따라 가중치를 부과하는 제도를 도입한다면 팬들에게도 훨씬 다양한 관전의 재미도 서비스할 수 있을 거다.

 

특이하게도 그는 자기보다 기력이 약한 하수와 거의 둬본 적이 없다. 상수에게는 곧잘 버티지만 비슷한 기력의 상대가 접는 하수를 똑같이 접어주면 100전 100패하는 만만한 상수가 그다. 작업실 근처에 있는 대성선비기원이 그의 놀이터인데 하루 4~5시간쯤 빡세게 몰입했다가 심신이 노곤해질 때면 자리에서 일어나 놀이터로 향한다. 거기에는 화정시절부터 10여년 이상 어울려온 살가운(?) 기적(棋敵)들이 모여있다.

 

재미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지금은 좀 나아졌지만 처음엔 누구나 좋아하는 이었죠. 원장 소개로 어떤 사람과 선으로 내기바둑을 뒀는데 이겼어요. 당연히 기분이 좋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게 작전이었더군요. 뭐, 4점 상수를 하수라고 생각했으니···.

 

처음 작은 내기 몇 판을 이긴 뒤로 내기가 커지면서 계속 지기 시작했고 슬금슬금 치수가 올라가면서 1년 이상 거금을 갖다 바쳤다. 뭐, 동정의 눈초리를 보낼 건 없다. 그건 자신이 택한 승부운명의 비애니까. 내기바둑에 입문하는 하수들은 다 이런 과정을 거친다.

 

그나마 거기서 소설가 조세래 씨를 만난 건 행운이다. 짱짱한 아마6단으로 문인대회 우승 경력을 가진 조세래 씨에게 4~5마리(양억관 씨만의 재미있는 치수 표현)를 접히고 두는데 그는 치수를 속이지 않는 정직한(?) 상수다.

 

 같은 기원에 출입하는 관록의 아마강자 문미열 7단에게 '5~6마리로 버티는 요즘은 스스로 생각해도 많이 영특해져서 노회한 상수들에게 잘 속지도 않고 비슷한 기력의 상대에게는 거의 밀리지 않는다고 하니 그야말로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이다.

 

2점 상수와의 대국이 가장 흥미롭다는 그에게 바둑은 무엇일까. 바둑의 어떤 점이, 단조로운 일과의 반복은 잠시도 견디지 못하는 그로 하여금 수십 년을 매달리게 만들었을까.

 

바둑은 흑백의 상징이 뚜렷하잖아요. 그 안에 세상의 모든 이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음양의 우주관으로부터 밤과 낮, 남자와 여자 심지어는 정치적 찬반의 논리까지 인간의 모든 관념이 그렇게 갈라지지 않나요? 난 그게 재미있습니다.

 

, 거창하게 바둑에서 심오한 철학적 의미를 찾겠다는 뜻은 아니다. 그저 단순한 일상의 비유와 묘사의 재미가 쏠쏠하다는 얘기. 나도 그렇다. 동양철학에 기반을 두고 음과 양, 사계절, 24절기, 72절후를 담아 바둑판을 만들었다거나 바둑판이 점을 치는 도구였다는 은 믿지 않는다. 물론, 그런 들이 의미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그건 철학의 일맥상통이 아니라 구조의 유사성일 뿐이라는 얘기다. 그런 의 허구를 깨뜨릴 반대논리는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다. 다만, 언제 어디서 누가 왜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하다. 바둑도 인간 행위의 산물이기 때문에 시대를 반영한다는 것. 그 시대를 산 사람들의 생각과 이해를 닮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중요한 건 누가 언제 어디서 왜 바둑을 만들었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즐겨왔고 또 즐기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천 년을 이어내려 오면서 바둑 그 위에 덧칠된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이해도 모두 나름대로의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 아닐까.

 

나는 바둑을 둘 때 마라톤을 상상합니다. 에너지가 고갈됐을 때 비로소 터져 나오는 힘 같은 것. 부스터라고 해야 할까요. 일을 할 때도 비슷해요. 홀로 깊이 몰입했을 때 기본적인 인간 내면의 힘을 느낍니다. 바둑에서는 뚜렷한 흑백의 상징적 힘의 공존, 생명의 발단에 접하는 듯한 희열을 맛봅니다. 난, 그런 바둑이 좋습니다.

 

이야기는 가까운 사람들과 어울려 자주 찾는 오오마 참치로 옮겨졌는데 이 자리에서 양억관 씨는 바둑은 관객과 플레이어를 완벽하게 겸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게임이라며 1급 비밀 하나를 털어놓았다.

 

바로 이틀 전 내 인생의 최고의 방 내기가 있었죠. 오랫동안 나를 괴롭혔던 2점 상수 L씨의 대마를 잡고 대승을 거뒀어요. 33만원의 거금을 챙겨야 했지만 상대의 사정으로 적당히 봐줬습니다.

 

인생훈수까지 곁들였다며 파안대소한다. 절제를 아는 승부는 즐겁다. 내기바둑, 그것도 방 내기를 둔다면 담배연기 자욱한 기원 한구석의 음침한 얼굴들이 연상되는데 그의 웃음은 마냥 청정하다.

 

잠시 생각해보니 이유를 알겠다. 그는 늘 좋은 책들과 함께 사는 사람이다. 좋은 책은 사람의 정신을 고양시킨다. 고전(古典)은 세상을 헤아리는 지혜를 주고 이 시대를 사는 다양한 작가들의 영감은 책을 가까이 하는 사람들의 인생을 다양하고 풍요롭게 가꿔준다.

 

그의 방 내기 대박을 축하하며 잔을 부딪쳤다. 갑자기 쏟아진 웃음소리에 막 문을 열던 종업원이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란다. 우리는 다시 한번 웃으며 잔을 부딪쳤다.

 

 

오오마 참치는 아는 사람만 조심조심 찾는 참치의 명소. 원래 좋은 곳은 아껴두고 좋은 사람들끼리만 찾아가는 은밀한 재미가 있어야 한다. 혼마구로(참다랑어)로 불리는 최고의 참치를 부위별로 여유 있게 음미할 수 있는 저렴한 가격과 넉넉한 서비스가 일품. 특히, 주방장이 내주는 주도(酒盜)는 아무 곳에서나 먹을 수 없는 시크릿 서비스.

 

주도는 참치 내장을 청주에 삭힌 젓갈의 일종인데 이것을 참치에 생 와사비(고추냉이)와 함께 바르고 날치 알과 무순을 함께 곁들여 간장을 살짝 찍어 입에 넣으면 소설가 성석제의 온몸이 혀요, 혀가 삶이다라는 그 표현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사진- 월간바둑 이주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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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끄거지 |  2007-09-05 오후 5:21: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잘 읽었습니다. 감사~~~  
오분굳 |  2007-09-05 오후 6:38: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프로의 바둑에도 집차이에 대한 가중치를 부과한다...재미있는 발상 이십니다..=3=3=3  
소라네 |  2007-09-05 오후 8:21: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제가 평소 느껴오던 방내기 필요성을 정연하게 갈파하시네요^^ 감사합니다.  
민준명인 |  2007-09-05 오후 9:47: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징말 맛있겠당...ㅋㅋ  
체리통 |  2007-09-06 오전 2:03: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그러면 이창호 사봄은 맨날 반집으로 이기니까 랭킹이 뚝 떨어지겠네..  
술익는향기 |  2007-09-06 오전 2:20: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꼴까닥... 역시 난 바둑보다 먹는데 더 관심이 많은가보다...
주도 를 바른 참치를 꼭한번 먹어봐야지...
요번엔 식단 가격을 않써주셨네요 ^^  
협객行 |  2007-09-06 오후 4:58: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번역이라는것이 결코 단순하게 생각할것이 아니죠. 주옥같은 명작도 번역과정을 소홀히하면 스토리 전개가 오리무중이 되고 독자에게는 크나 큰 실망감을 안겨주게 됩니다. 위에 소개된 책들 중에서 노르웨이의숲(상실의 시대)는 참으로 훌륭한 작가와 훌륭한 번역가분이 만들어낸 명작같습니다. 꼭들 읽어보세요. ^^
 
협객行 |  2007-09-06 오후 5:04: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그런데 이건 제 오랜 궁금증이라서 누군가에게 꼭 여쭤보고 싶었던 건데요. 상실의시대(노르웨이의 숲)-무라카미 하루키- 는 DJ샐린져의 호밀밭의 파수꾼이란 책과 너무..
닮은 구석이 많지않은가요?감히 표절?이라는 말은 삼가야겠지만 책내용중에 호밀밭의 파수꾼이 종종 언급되는건 그렇다해도 방황하는 주인공의 이미지나 주인공이 학교기숙사에서 돌격대라는 이상한 룸메이트 회고하는 장면이라든지..  
청계천별곡 |  2007-09-06 오후 5:49: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저도 양억관 선생님의 번역 작품을 <코인 라커 베이비즈>를 비롯해 여러 작품을 보았습니다. 근데 바둑을 이렇게 좋아하고 잘 두시는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그것도 방내기를 ...
양 억관 선생님. 늘 좋은 책 기다리겠습니다.  
박민수화백 |  2007-09-07 오후 10:26: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방수를 줄이기 위해 불리한 바둑도 끝까지 성실하게 둘 수밖에 없다는 말씀과 승부사가 모름지기 승부를 할 때는 뭐라도 걸어야 되지 않겠냐는 것은 거의 진리에 가까운 지론이라 생각됩니다. 33만원짜리 대마를 죽이고 돈을 다 지불하지 못한 그 상대는 방내기를 둘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 여겨집니다. 양억관 선생님의 건투를 빕니다.  
touch! |  2007-09-08 오후 6:55: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기사에 소개된대로, 손꼽히는 일본 문학 번역가이신 김난주씨와 양억관씨가 부부셨군요. 신기하고 재미있네요. 좋은 책들 많이 기대하겠습니다.  
econ |  2007-09-09 오전 1:06: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번역가에도 최고가 있다면 나는 시오노 나나미의 소설"로마인 이야기"를 번역한 김석희 씨를 꼽고싶다.  
斯文亂賊 아하~! 그게 소설이었군요... (어쩐지...) 감사!
야동순대 난적님 옴칭 무식하군효. 다시 바써효-_- 함 보세효. 술술 넘어 갈거에효 ^^;;
치우2세 일본소설로는 다자이 오사무의 사양을 추천하고 싶군요. 절망적이고 슬프고 웬지 아련하기도 하구. 허무하고.
야동순대 |  2007-09-10 오전 10:31: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두분이 부부시고 양억관씨가 기원 푸로라니... 방갑네요
시바 료타로의 대표작이랄 수 있는 "언덕위의 구름"을 구할 수가 없네요
70년대에 출판된 걸로 아는데.. 독도땜에 그런가...????  
공갈마왕 |  2007-09-17 오전 2:11: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위에 야동순대님...인터넷서점에 "대망"이란 책을 검색해보세요...24~26권까지인가가 언덕위의 구름입니다. 예전에 나왔을때는 10권짜리 였는데, 이번에 나온건 책이 두껍고 글이 촘촘해서인지 3권짜리로 나왔더군요...  
승연패희 |  2007-10-11 오전 11:20: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대학교수들의 번역- 이거 볼만 합니다 한권의 외국서적을 여러 토막으로 쪼개설랑
꼬붕들 여러놈에게 번역을 맡깁니다,
그리고 그걸 그대로 합쳐서 책을 만들죠 번역자는 자기(교수) 이고요
실은 자기가 시간이 없어서보다 실력이 딸리는 경우에 그러합니다

결과는 물으나 마나 입니다 같은 어휘가 앞뒤가 따로 따로 입니다
값싼 번역료의 졸속출판사의 번역도 같은 형편 이지요
외국어 무지보다 내국어 무지로 인한 결과 임  
치우2세 |  2007-10-15 오후 2:00: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모티브나 영감을 얻었겠죠. 호밀밭의 파수꾼은 세계적 명작이니까 당연히 읽었을 것이고요.
하루끼가 뛰어난건 독특한 문체와 정서로 대중을 사로잡은 것이겠죠.  
갈구han |  2007-12-23 오후 11:36:36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햐~~~여기 젬나는 글이 만네요.. 오로 5년6년 정도 되었는데 오늘 첨 와봅니다. 방내기??? 저하구는 좀 틀리는 견해를..전 바둑을 공부하는게 재미있서서 어릴적 부터 혼자서 독학한 사람입니다.물론 나이가 좀 들면서 기원에두 갔섯구요. 한참 물오를때 바둑판을 두고서 바라보면서. 사람의 삶에 비유하면서 두었습니다......짧게..한판의 바둑은 혼신으로 두다보면 심취하게 되던데요, 한수한수의 성취감에 바둑을 두었죠.  
갈구han 이리가나 저리 가나 가는길은 틀려도 도달하는 곳은 같은곳 이겟죠.
갈구han 말이 만다보니 두서업이 ^^* 잘보구 갑니다. 조은글 담에도 자주 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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