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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메기 바둑점방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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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혼의 별
2022-04-12 오전 9:04 조회 562추천 9   프린트스크랩
  

  공무원 퇴직 후의 준비를 별로 하지 않은 채 정년을 맞이했던 것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벌써 십년이 넘었다. 처음엔 출퇴근 없는 생활이 갑자기 사라져 허전하기도 했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차츰 적응하게 되었다. 퇴직자 동기 모임에 가면 누구는 농사를 지으며 짭잘한 재미를 본다는 사람도 있고, 말이 농사지 고생이 여간 아니라며 될 수 있으면 편하게 노년을 보내겠다는 사람도 있다. 농사 지을 땅 한평 없는 나는 꿀 먹은 벙어리처럼 그저 듣기만 할 뿐이다. 농사를 지어본 적이 없어 농사일을 모르기도 하거니와 수십년간 공무원 생활을 했는데 이젠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생각때문이었다. 시골 농촌 출신인 아내는 ‘자투리 텃밭이라도 있으면 마트에 가서 채소류를 사먹지 않아도 될텐데’ 하며 못내 아쉬워 한다.

  어쨌거나 퇴직 후,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서는 적당한 취미가 있어야 했다. 탁구도 쳐보고 아내와 같이 등산을 다니기도 했다. 기타도 배워 보았다. 사실 모두 괜찮은 것이었는데 등산은 아내의 무릎 관절이 좋지 않아 같이 다닐 수가 없었다. 탁구는 동호회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흐지부지되었고 기타는 학원에 나가 좀 배우다가 생각보다 어렵기도 하여 몇 달만에 그만두었다. 끈기가 없는 탓일까? 공무원 생활 삼십여년을 지난하게 견뎌왔으므로 그건 아닐 것이었다. 그런데 끈질기게 나를 지배한 취미가 있는데 그것은 바둑이다. 바둑을 배운지는 오래되었지만 공직생활동안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가 퇴직후에 다시 가까이 하게 되었다. 앞서 얘기한 취미는 뒤로 물러나고 바둑이 내 일상의 중심이 되었다. 

  바둑을 흔히 인생에 비유한다. 반상 위의 첫 착점이 미지의 땅에 발을 내딛는 인간의 출생을 의미하는 거라면 한수 두수 돌을 놓아 갈 때 아기의 걸음마를 연상한다. 한판의 바둑이 끝나기까지 온갖 희로애락이 담긴다. 일찍 끝나기도 하고 늦게 끝나기도 한다. 사람이 태어날 땐 순서가 있지만 죽을 땐 순서가 없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지금 한판의 바둑에 비한다면 나는 인생의 어디쯤 와 있는 걸까? 정년 퇴직한 지 십년이 넘었으니 인생의 종반에 해당될 것이다.  

  바둑의 큰 장점은 재미가 있다는 것이다. 스포츠를 포함한 게임의 종류가 수없이 많지만 재미의 종합 점수를 매긴다면 바둑이 으뜸일 것이다. 또 하나 좋은 점은 밑천이 거의 들지 않는다는 거다. 돈이 들어가지 않고 재미가 있으니 이보다 더 경제적인 취미가 있을까 싶다. 만원 안팎의 접이식 바둑판이면 어디서든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다. TV 보기가 지루하면 바둑판을 앞에 놓고 혼자서 공부할 수 있다. 집사람의 잔소리가 듣기 싫으면 인근 공원에 나가 바둑판을 펼치면 된다. 그럼 자연히 관심있는 사람들이 모여든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수담을 나눌 수 있다. 가로 세로 40센티미터 안팎의 좁은 판 위에서 세대를 아우르는 마음이 소통한다. 공원엔 노인들이 유난히 많다. 나도 노인 축에 들어 그들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마치 황혼의 들녘에서 갈 길을 잃고 헤매는 미아 같다. 시간만 죽이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초고령화 시대에 노인을 위한 여가 선용 방법의 하나로 바둑을 적극 권한다. 

  바둑에는 인생의 교훈이 들어있다. 욕심을 내면 화가 미치게 되고 참고 견디면 기회가 온다. 복잡한 머리를 식히려면 바둑이 제격이다. 바둑의 숲에는 정신을 맑게 하는 에너지가 있다. 삶의 고통을 이기지 못해 자살하는 사람들. 그들이 바둑을 알았다면 극단적인 선택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왜냐하면 바둑엔 자살이 없기 때문이다. 자충이라는 말은 있지만 자살과는 확연히 다르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삶의 마지막 지점. 바둑엔 그곳에 발을 디딜 수가 없다. 바둑의 규칙상 스스로 옥죄이는 곳에 돌을 놓을 수 없는 것이다. 

  요즘 정년 연장 문제가 사회의 이슈가 되고 있다. 노인과 청년 일자리가 얽힌 것이어서 어렵기만 한데 수담을 나누면서 해법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바둑은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우리 인생의 삶의 해답을 얻을 수 있는 보물 창고인지 모른다. 어린이의 교육적인 효과는 물론 치매 예방에도 탁월한 효과가 있다는 것이 학자들에 의해 입증된 바 있다.  
  바둑에 몰입하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 황혼의 나이에 죽음의 경계선이 가까워오지만 죽음도 두렵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바둑 두는 즐거움이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나의 묘 앞에 돌 바둑판을 하나 놓을까나. 죽어서도 바둑을 둘 수 있다면 못할 것도 없겠다. 달밤에 혼령이 나와 두는 바둑, 괴이함을 넘은 달빛 환상이라고나 할까. 죽어도 죽지 않는 바둑의 숲 속에 그렇게 잠들고 싶다. 
  이처럼 죽음이 끝이 아니라 또다른 시작이라는 걸 바둑이 가르쳐 준다. 바둑돌을 쓸어 담으면 반상은 무로 돌아간다. 그러나 다시 돌을 놓으면 새로운 판이 시작된다. 유한한 인간의 삶의 저 너머 세상과 연결되는 길목에 바둑이 있다. 맹인이 어둠 속에서 빛을 찾듯 바둑의 미로를 거닐며 영원으로 가는 길을 찾으련다. 
  바둑판 한가운데의 점을 천원(天元)이라고 한다. 하늘문이 열리는 곳. 별칭으로 태극(太極)이라고도 한다. 모든 존재의 근원, 궁극적인 실체라는 뜻이다. 얼마나 심오하고 가슴 떨리는 말인가. 생명이 다하는 날 바둑의 중심을 통해 저 세상으로 갈 수 있다면 그보다 더 바랄 것이 있겠는가.  

  오늘도 나는 바둑을 둔다. 반상 위의 흑백이 조화를 이루며 바닷가의 조약돌처럼 반들거린다. 검은돌 흰돌이 교차하며 수를 놓는다. 청아한 바둑돌 소리가 사방을 울린다. 정신을 집중하며 반상을 응시한다. 차츰 무아지경에 빠진다. 어느새 바둑과 하나가 된다. 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진다. 공중부양된 나는 작은 점이 되어 어디론가 사라진다. 그리고 마침내 창공의 별이 된다. 아, 나는 이미 벌써 밤하늘을 밝히는 등불이 되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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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 |  2022-04-12 오전 10:51:54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이만한 바둑 예찬을 찾기도 쉽지않을듯 합니다.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삼나무길 |  2022-04-12 오후 10:39:31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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