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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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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망備忘의 기록記錄 - 1
2021-03-18 오후 3:41 조회 1266추천 11   프린트스크랩

 

아버지는 눈밭에 누워계셨다.

팔순의 아버지는 이제 막 동 터오는 새벽의 눈 쌓인 길 위에 크게 누워계셨다.

이른 아침이라서 오가는 차는 없었고 길에는 한 뼘 넘게 눈이 쌓여있었다.

아버지는 웃고 계셨다.

웃풍이 센 집이라서 늘 트레이닝복을 다섯 겹도 넘게 입고 주무시던 아버지는

주무시던 그 차림 그대로 눈 내리는 새벽의 길가에 누워

눈 처음 맞는 어린아이처럼 그렇게 환히 웃고 계셨다.

아버지는 치매를 앓고 계셨다.



제주도 해안에 눈 오는 날은 겨울이라도 많지 않다.

그러나 그 설날은 축복이라도 하듯이 그 많던 바람도 없이 눈이 내려 쌓여있었다.

한 뼘이 넘게 소복이 눈이 내려 쌓여있었다.

설 명절을 지내러 아버님이 계신 고향에 내려와

밤늦도록 형제들과 이야기 나누고 늦게야 잠이 들었는데 새벽처럼 눈을 떴다.

아버님이 홀로 기거하시는 안채의 대청마루에 불이 환히 켜져 있고 안방의 문이 활짝 열려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안방을 살펴보니 아버님이 안 계시는 것이었다.

화장실에 가셨나 살펴보았지만, 화장실에도 안 계시는 것이었다.

집사람을 깨우고 동생들을 깨웠다.

모두 나서서 집 주위부터 살폈다.

다행히 아버님은 먼 곳까지는 안 가시고

집에서 오십 미터쯤 떨어진 곳의 길가에, 눈 쌓인 길가에 누워 웃고 계셨다.

아버지의 치매는 점차 더 심해지고 있었다.



대학교 1학년 겨울,

크리스마스의 이브에 어머님이 중풍으로 쓰러지시자 아버님은 하시던 사업을 비롯하여 모든 사회활동을 접으시고 온전히 어머님의 병구완에 집중하셨다.

대소변의 수발도 우리에게는 손도 대지 못하게 하시고 당신이 손수 다 하셨다.

평생을 나를 위해 고생했는데 이제 내가 갚아야 할 차례라 하시며

웃으시며

어머니와 농담까지 주고받으시며

대 소변의 수발과 목욕시키시는 일까지 손수 다 하셨다.

십오 년, 짧지 않은 시간을

아버님의 극진한 간호를 받으시던 어머님은 우리의 곁을 떠나셨다.

아버님의 곁을 떠나셨다.

아버지의 치매는 그때부터 시작되고

서서히 진행되었는데 우리는 모르고 있었다.



어머님이 가시고 아버님은 많이 힘들어하셨다.

새벽에 잠에서 깨어나면

방의 윗목에서 어머님이 앉아계시는 모습이 보인다고 하셨다.

홀로 기거하시는 안채가 무섭다고 하셨다.

네 엄마가 정을 떼려고 무섬증을 주나 보다 하셨다.

 

칠순이 넘으신 연세에 처음 교회를 찾으신 아버지는 글씨 큰 성경책을 사 오셨고

새벽의 시간과 오후의 시간에 성경책을 읽으셨다.

매일 열 시간도 넘게 성경책 읽고 기도를 하셨다.

완독을 하실 때마다 바를 정자로 표기를 하셨고

치매가 심해져 성경책 읽기를 못 하실 때까지 아버님의 성경책의 뒤페이지 안쪽에는
正 正 正 正 正 正 正 正 正 正 正 正 正 丁이 쓰였다.

아버님은 십 년에 걸쳐 67회의 성경 완독을 해내셨고

뒷장에 비뚤거리는 아버지의 필채로 바를 정자 쓰인 아버님의 성경책은 아버님이 남기신 가장 귀한 유산이 되어 장남인 나의 몫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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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 |  2021-03-18 오후 4:12:08  [동감1]  이 의견에 한마디
'시 삼백이면 의자현'이라죠.
그 많은 양의 성경을 수십회나 읽으셨다니,,,,
생의 고뇌를 견뎌내시려는 의지가 무척 강하고 간절하셨나봅니다!
저도 가끔씩 제 아버지께서 읽으시던 성경을 들춰봅니다.
거기에 쓰인 삐툴빼툴한 부친의 글씨들이 무척 반가웠었죠!  
영포인트 말년 아버님 기도의 첫 제목은
결혼하여 십년이나 아이를 갖지 못한 셋째에게 후사를 주시라는 것이었습니다.
몇 번이고 같은 기도를 반복하시며 간절하게 기도하셨습니다.
셋째 네는 인공수정을 몇 번이나 하여도 실패했는데
아버님이 가시고 난 후 기적처럼 자연임신으로 아들을 얻었습니다.

우리 형제들은 언제나 좋은 일이 있을 때면
교회에 나가지 않은 형제들조차도 아버님의 기도 덕이라 믿습니다.
아버님의 기도는 교회에서 말하는 하나님에게 드리는 기도 뿐 아니라 자식들 잘되기
를 바라는 절절한 소망이 담긴, 우리 알지 못하는 누군가를 향한 간절한 염원이고 그
간절함은 반드시 이루어지는 것이라 믿는 때문입니다.
킹포석짱 |  2021-03-18 오후 6:53:11  [동감1]  이 의견에 한마디
감사 합니다 ,잊고 있던 내 부모님 옛모든 분들께 감사드릴 수 있게하여 주신 영님께 다시한번 더 감사^^.  
영포인트 아마...
우리는 대부분 살아온 모습이 유사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곤합니다.
좁은 방에서 서로 부딪히고 싸우고 그래서 더 정이 많이 든 형제들
그래서 지금의 아이들보다는 더 우애하고
조금은 더 효도하며 살아왔을 것입니다.
네 명의 형제가 한 방에서 우글거리던(?)
그 방을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 내 방을 갖고 싶었는데
이제 와 그 시절 돌아보면 절로 미소가 지어지네요.
소판돈이다 |  2021-03-25 오전 8:26:44  [동감1]  이 의견에 한마디
다른 건 몰라도 치매만은.....요샌 요양원으로 모셔 버리니 세태가 달라졋지요?
 
영포인트 장남의 며느리자리로 들어온 죄로 집사람이 그 긴 세월을 많이 고생했습니다.
제가 대학 1학년이던 겨울에 어머님이 중풍으로 쓰러지시고
어머님 가시고 아버님의 치매가 시작되시고...
아버님이 돌아가신 것은 아들놈이 대학 1학년 때였으니
집사람은 한 세대를 온전히 시부모님들의 병간호로 보낸 셈이지요.
아들인 저는 임지를 따라 외지로 떠돌았으니
저는 집사람에게 평생을 헌신하여도 다 갚을 수 없는 큰 빚을 졌습니다.
아버님 가시고 너무 서럽게 울던 집사람은
지금은, 아니 그 시절에도 찾기 힘든 효자, 아니 효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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