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幼年의 追憶 ㆍ 3
2020-10-18 오전 12:09 조회 1374추천 6   프린트스크랩

幼年追憶 ㆍ 3

동네 한가운데 뿌리내린 고목은
가난한 잎 다 떨궈 내고도
우리네의 숙명이었다.


흙속에 뒹굴다 돌아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매 맞고
눈물 콧물 뒤엉킨 얼굴과
손발 씻긴 대야에는
찌든 가난이 뿌옇게 풀려나곤 했다.

가슴 두 개로 여섯 식구 먹이던 동네 젖어미의 눈에는
가난이 한이 되어 서리고
보리만 삶아놓은 솥단지 도둑맞고
주린 배 맞대고 잠드는
어린 아이들 가슴 언저리에도 가난은 서려 있었다.



허기진 배 움켜쥐고
한 덩이 꽁보리밥만이 해결해야 할 課題로 남던 시간들
허리 잘린 形而下學이 아랫도리만으로 남아
가쁜 숨 헐떡이며 헤쳐 나온 時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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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포석짱 |  2020-10-18 오후 12:29:40  [동감1]  이 의견에 한마디
....................^^,  
영포인트 ~ ♥ ~
가는길에 |  2020-10-18 오후 7:20:04  [동감1]  이 의견에 한마디
그때를 아십니까...
배꺼질라 뛰지마라 시던...  
영포인트 배꺼질라... 뛰지마라...
많이 들으며 자랐습니다. 할머니에게...
쌀 한톨 섞이지 꽁보리밥이지만 소화는 왜 또 그리 잘되던지.....
밥먹고 한바탕 뛰고 나면 다시 배고파지던 날들이었습니다.
그래도 문득 문득... 그리워집니다.
⊙신인 |  2020-10-18 오후 8:33:14  [동감1]  이 의견에 한마디
시골에서 도시로 고등학교를 다니며 자취를 했습니다.
버스로 쌀과 김치를 실어 날랐죠!
속없는 친구들은 너는 왜 맨날 큰 가방을 들고다니냐며 놀렸었습니다.
저는 그 시절을 다시 살고 싶지 않습니다,,,,ㅜ  
영포인트 사라호태풍은 큰 비를 동반했습니다.
한라산에는 거의 1미터의 폭우가 쏟아졌고
제주시의 모든 지천은 넘쳐흘렀습니다.
그 지천의 물에 빠졌더랬습니다.
그 때 나를 건져준 것은 초등학교 5학년이던 둘째 누님이셨습니다.

서른 세 살 쯤에 무릎에 큰 수술을 했습니다.
병원에서 수술을 하고 재활을 하고 목발을 짚고 퇴원하였습니다.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신호가 바뀌고 버스가 달려왔습니다.
그 때 둘 째 누님이 양손을 벌리고 버스를 막아서셨습니다.
그 때 누님의 결연한 표정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내가 온몸으로 내 동생을 지키리라는 단호한 표정이셨습니다.
어렵게... 몸으로 서로를 감싸며 커운 형제들이라서 가능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힘들고 어려웠던 시절이긴 했지만
아련한 그리움으로 남은 것인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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