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커뮤니티 > 영포인트
영포인트 Quaternion

작가의 말


 이 글의 저작권은 작가에게 있습니다. 저작권자와 협의하지 않은 무단전재는 금합니다.
幼年의 追憶 ㆍ 2
2020-10-16 오전 1:19 조회 1636추천 6   프린트스크랩

幼年追憶 ㆍ 2



아버지는
壯士
라 믿었고
어머니는 美人이라 믿었다
.
네 개의 방에
열 네 식구가 잠들던 우리 집은 富者
라 믿었고
감자 술에 개어 만든 보리개떡보다
더 맛있는 것은 세상에 없을 거라 생각했고
가장 큰 별은 저만치에 보이는 오름만큼은 클거라 생각했다
.


< 윗세오름 >

집 위에 있던 고아원의 인자하신 원장님에게
미제 깡통하나 얻어들고
하늘만큼 입 벌려 웃노라면
슬며시 사진 찍혀 바다건너로 딸라 벌이 가던 無垢한 미소여.

┃꼬릿글 쓰기
가는길에 |  2020-10-16 오전 10:40:42  [동감1]  이 의견에 한마디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 그래도 그때가 좋왔어 " 라고 합니다.
그땐 그때 나름의 삶이 있었는가 봅니다.  
영포인트 삐비...
배추꼬랑지...
보리개떡...
개구리뒷다리...
메뚜기구이...
이제는 찾을 수 없는 그 시절 우리에겐 최고의 먹거리였습니다.

저 먹거리들
요즘 아이들에게 주면
한 입 먹고 뱉어버릴 겁니다.
그 시절 우리에겐 너무 소중한 먹거리였는데...

부탄은 우리 소득의 십분의 일도 되지 않지만
주어진 삶을 행복해 하는 국민의 비율은 우리의 두 배가 넘는답니다.
물질의 양과 행복의 양은 그래서 반비례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작은 것에서 행복한 사람과
많은 것을 갖고도 더 가진 사람과 나를 비교하며
행복하지 못한 사람.

저는 전자이고 싶습니다.
⊙신인 |  2020-10-16 오후 8:23:22  [동감1]  이 의견에 한마디
우리 세대의 시간이 흐른뒤, 자식 세대는 또다시 그들의 유년을 반추하겠지요!
그때는 이랬노라고,,,,,
그때는 사람이 운전을 했고, 바이러스 때문에 학교도 못가기도 했다며~^^
어느 세대에게나 유년의 추억들은 아련하기만 한듯합니다.ㅠ  
영포인트 아빠 어렸을 때는...
이렇게 두 아들에게 한번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살아온 시간이 다르고
먹거리가 다르고
잠자리의 푸근함조차 다른데
내 살아온 이야기가 두 아들에게는 생경할 수 밖에 없을 것이고
공감될 수 없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幼年의 追憶]을 연작해 가는 것은
어쩌면 같은 세월 살아온 한분쯤에게는 시계의 바늘을 한없이 돌려
우리... 그 때는... 그랬었지...
하면서 손이라도 덥석 잡고 싶어지는 공감의 큰 울림일 수 있겠지... 싶기도 하고
설령 그런 분이 한 분도 없어 나만의 회상으로 끝난다해도
내 쓰고 싶었던 備忘의 記錄일수는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노년층은
한 분 한 분이 살아있는 도서관이라는 이야기 들은 적이 있습니다.
삶의 굽이굽이에 맺힌 한과 이야기가 많은 세대라는 말이겠지요.

나도 그 중의 하나일테고
그 도서관의 한 켠을 담아내는 중입니다. ㅎ~ㅎ~ㅎ~
⊙신인 네,,,맞습니다.
저를 포함한 모든 이들의 삶이 다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선배님 말씀처럼 특히 한국에서 일생을 살아낸 이들이라면~~~
선배님의 풍성한 도서관을 잘 엿보겠습니다!🧡💛💚💙💜












* 띄어쓰기 포함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000 / 400바이트)
대국실입장하기
다운로드 이용안내 고객센터
정회원가입
오로볼구매
가장 많이 본 기사
스폰서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