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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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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
2020-08-23 오후 2:05 조회 1564추천 8   프린트스크랩

죽으면 어떻게 될까.
  
그걸로 끝이다. 아무런 흔적도 없이 이 세계에서 깨끗이 사라진다. 영혼이나 정신적 그 어떤 것도 그렇다. 좀 더 살다보면, 좀 더 지혜가 있게 된다면 혹여 바뀔지 몰라도 적어도 지금은 그렇게 생각한다. 해서 나는 집사람에게 가끔씩 농담삼아 말한다. 죽으면 화장해서 허공에 날려버리라고, 그 어떤 자취도 하나 없이 없애버리라고.

거제도 고향 마을에 문중의 평장(平葬) 공원묘지가 있다. 조부모님을 합장이장하기 전까지는 찾을 일이 없다가, 이장 후 그리고 작년에 아버지를 그곳에 모시고 부터는 가끔씩 찾게 되었다
   아버지를 나는 좋아하지 않았다. 나의 유년 시절, 아버지가 술 드신 날은 온 가족이 폭력의 두려움에 떨어야 했다. 가족을 사랑하셨지만 그 방식은 가부장적이어서 오히려 그만큼 거리감만 늘어났다. 부자지간의 아름다운 추억 하나 없이 세월이 가다 아버지도 어느듯 힘이 없어졌다. 그런 아버지를 내가 안아드리자고 했으나 그건 연민이었지 애틋한 사랑은 아니었던 듯하다. 그러다 어쩌다보니 사랑한다, 존경한다 한마디도 끝내 못한 채 아버지를 보내 드리게 되었다. 
   아버지를 화장하여 문중 산소에 도착하니 6월의 따가운 햇살 아래 인부들이 기다리는 중이었다. 유골함을 안치할 곳은 적당하게 파여져 있었고 카톡으로 미리 봐 두었던 검은 표석도 옆에 놓여져 있었다.
   장례지도사가 일러주는 순서에 따라 이런저런 의식을 간단히 치르고 유골함을 안치한 후 흙을 덮게 되었다. 정말로 이별인가, 이젠 영영 아버지의 육체적 흔적을 볼 수 없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자 가슴이 먹먹하였다. 목젖이 아려 왔다. 흐느끼는 여동생의 잔 울음이 그나마 아버지를 다신 못 본다는 현실을 더욱 더 확인시키는 양 애잔하게 들렸다. 
살아생전 고생만 하신 아버지, 좋은 곳으로 잘 가십시오 라는 말 밖에 달리 떠오르는 말도 없이 절을 하였고 그렇게 산에서 내려왔다. 
  
명절이나 기일 날 산소에서 절을 할 때도 달리 감회랄 게 없었다. 그저 한 생명이 태어나 할 일을 마치고, 때 되니 연이 다 되었구나정도였다. 존재의 부재가 가져오는 빈 공간이 없진 않았지만 홀가분한 기분 역시 전혀 없는 건 아니었다그 뒤로도 몇 번 찾아가 절을 하였으나 으레 하는 인사 정도였다. 아버지와 정이 없어서인지, 달리 추억할 만한 기억이 없어서인지 담담하였다산소는 가신 이를 모시거나 잠시나마 추모하는 장소였다.

매년 8월 15일은 문중 소종계에서 단체 벌초하는 날이다. 힘든 날이다. 가장 더운 시기의 고생도 고생이려니와 아는 사람도 없는 틈에 있어야 하는 시간이 영 어색해서이다. 그나마 아버지가 계셨을 때의 안면으로 인사 정도 할 수 있는 분이 몇이 있어 조금 나았다.
 
벌초를 끝내고 조부모님께 절을 한 다음, 아버지께 엎드려 절을 하였다. 그런데 그 순간, 알 수 없는 울컥함이 밀려왔다. 아버지.
 
분명 아버지가 그립거나 보고 싶다 그런 것은 아니었는데 그냥 눈물이 왈칵 나오려 했다. 뜨거움이었다. 아버지께 이런 감정이, 느낌이 언제 들었나 싶었다.
 
엎드려 있는 짧은 동안 속으로 이러이러한 일들이 있었습니다 말하는데 좋아하시거나 같이 공감해 주실 모습이 떠올랐다. 그런 모습이 그리웠던 걸까. 아무튼 아버지 가신 후로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흔적도 없이 지워버려라, 허공에 흩뿌려라 하는 게 온당할까 의문이 얼핏 들었다. 아버지께 절하며 든 감정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주 작은 묘소일망정 그곳은 단순히 장소적 의미만 있는 게 아니었다. 그곳은 그리울 때 언제든지 찾을 수 있는 아버지가 있는 곳이며, 좋은 일이든 궂은 일이든 힘을 얻거나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곳이기도 하겠다는 것을 느꼈다. 살아가면서 자식이 때로는 의지하고 기댈 수 있는, 그래서 또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겠음을 알았다. 묘소나 납골당이 남아있는 이들에게 그런 역할을 제공하는 곳이 될 수 있음도 느꼈다.
  
한 번 눈길에 스쳐 지나가는 추모공원의 수많은 사진인물들이 어느 누군가에겐 누구보다 소중한 존재이다. 그 존재들이 흩뿌려져 흔적조차 없다면 남아있는 이들은 그들이 그리울 때 어떻게 찾을 것이며 어떻게 삶의 뿌리를 둘 수 있을까.
  
죽음 이후는 없다 라고 나는 여전히 여긴다. 다시없는 생이므로 이번 생을 아낌없이, 후회없이 잘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삶에서 비록 사라진 존재이긴 하나 망자의 흔적이 살아있는 이들에게 약간의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런대로 묘소나 납골당을 무시할 건 아니지 않을까.

어머니께 그 감정을 글로 적어 보냈다. 정이 있든 없든 천륜이라는 끈이 있기에, 절을 할 때 들었던 마음이 바로 천륜이 아닌가 싶다며, 아들도 나이 들어가는구나 하고 하셨다. 철들었음을 그렇게 말씀하시는 듯 했다. 집사람도 공감하였다. 6여년 전에 돌아가신 장모님의 경우를 들더라도 그렇다면서, 해가 갈수록 더 애틋해지더란다. 추모공원에서 집사람이 눈물보일 때 멀뚱멀뚱해 있더니, 이제야 정녕 그 심정을 조금 아는 것일까.
  
흔적도 없이 뿌려라-는 말은 다시 생각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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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포인트 |  2020-08-23 오후 2:42:23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너무 좋은 말씀
감사하며 읽고 또 한 번 읽었습니다.
같은 생각하시는 분 계심에 위로 받았습니다.
고맙습니다. 꾸벅  
⊙신인 |  2020-08-23 오후 4:09:12  [동감1]  이 의견에 한마디
나 죽어 없음에도 세상은 아무런 변화없이 여전할 것임을 잘 압니다.
그 여전한 세상은 공룡들이 멸종했을 때도 그랬고, 인류가 멸종해도 그럴것이며, 설령 우
주에서 지구가 사라져도 그럴것입니다.
우주는 별이 사라져도 다시 다른 별을 만들어 내니까요.
한 때 우주 시간의 끝이 궁금한적 있었습니다.
우울증이 심하던 시절이었죠.
저는 제 삶이 시간의 흐름에 미세하나마 흔적으로 있기를 소망합니다.
님의 글을 읽으며 여러생각을 다시 해봤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짜베 |  2020-08-24 오후 12:35:58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죽으면 어떻게 될까? 참 궁금합니다. 그렇다고 빨리 죽어서 알아보고 싶은 마음은 없고
단지 죽는 순간에 " 아, 이제 궁금하던 세상을 볼 수 있겠구나." 하는 짜릿한 기대감은 갖고 있습니다.  
nhsong |  2020-08-25 오전 9:40:37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존재가 모두 완전히 없어진다 믿는 죽음에 대한 준비를 못했기에 저에겐 두려움의 대상 입니다. 슬기롭게 준비해야 겠지요..
글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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