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친절해야 이긴다

신문의 기보(棋譜) 기사 제목이 이랬다. ‘불친절한 자가 승리하는 게임’.

제목이 흥미로웠다. 불친절해야 이기다니…. 게임이든 승부든 페어 플레이지 거기에 무슨 친절 불친절이야, 더군다나 바둑에.

그런데 해설 기사를 읽어보니 충분히 수긍이 가면서 그렇게 제목을 뽑아내는 여(女)기자의 안목이 재미있었다.

‘커제 9단이 안국현의 의도를 곱게 받아 줄 리가 없다. 상대의 입맛대로 두지 않겠다는 강경한 표현이다.’ 그러면서 풀어 쓴 글은 ‘이렇듯 상대를 거스르기 위해 애쓰는 것을 보면, 바둑이 불친절한 사람이 승리하는 싸움인 게 분명하다. 바둑을 둘 때는 상대가 원하는 대로 친절하게 응수하다가는 절대로 이길 수 없다’며 나름 결론지었다.

대국에서 어려운 부분 중 하나가 이 대목이다. 받아달라고, 당연히 받아 주리라고 ‘친절하게’ 예상한 수에 상대방이 ‘불친절하게’ 엉뚱한 곳에 돌을 놓으면 순간 확 열도 나거니와 나의 오판에 대해 자책감이 찐하게 밀려온다.

기자는 덧붙인다. ‘최대한 상대방의 의도를 거스르고, 나만의 방식으로 판을 짜나가야 한다’고.

허주(虛舟)와의 대국 예를 보면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는 나의 의도를 대부분 뛰어넘는다. 선공(先攻)이라 여기고 들여다보는데, 그래서 당연히 받아야 한다고 자신하는데 그는 물끄러미 판을 들여다보고 있는다. 그 모습을 보노라면 그의 호(號)처럼 ‘빈 배’ 마냥 무심해 보인다. 그 시간이 길수록 ‘아, 내가 또 착각했나’라는 고문과 고통 역시 가슴 속에서 길어진다.

‘불친절’하게 그는 받지도 않거니와 오히려 역으로 여기저기를 놓는다. 그럴 때면 하릴없이 본의 아닌 ‘친절’로 그의 수를 받아주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러다 나중에사 나의 그 선공을 받아주는 것이다. 이리저리 홰를 쳐 넣는(?) 그의 줄인형 놀음에 부지런히 움직이다 보면 어느 새 집 차이가 커져 버린다.

엊그제 연기(連棋) 바둑을 두었다. 연기 바둑은 사실 별로 선호하진 않는다. 잘못 두지 않을까 라는 위축감으로 내 구상대로, 방식대로 펼쳐 나갈 수 없기 때문이다. 하수의 비애(?)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연기가 공부에는 많은 도움이 된다. 고수의 착점 감각을 실전으로 배울 수 있기 기회라서 내 예상과 다를 땐 그 의도와 구상을 읽어내는 것 또한 쏠쏠한 재미와 공부 거리가 되는 셈이다.

기사는 ‘결국 나의 방식을 관철한 자가 승자가 되는 게임이다’라고 마무리 된다. 인생도 그러할까. 역발상의 삶, 자기주도적 수처작주(隨處作主)의 휘둘리지 않는 삶을 살라고, 살아 보라고 바둑은 말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