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 이×발놈아!
B공원으로 산책 겸 운동을 하러 가는 도중, 뒤쪽에서 귓가를 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난데없는 소리에 나는 머리가 섬찟하면서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발걸음이 일순 정지되었다. 목소리는 분명 여자의 음성이었다. 순간적으로 고개를 돌려 뒤쪽을 훔쳐보았다.
시야에 잡힌 것은 저녁 어스름에 하천 방둑을 걸어오는 몇 명의 학생들이었다. 오륙명은 되어 보였다. 내가 뒤돌아 본 것은 갑작스런 욕설이 밤공기를 흐트러놓은 것도 있었지만 꼭 나를 향해 지르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나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학생들은 무리를 지어 나를 스치고 지나갔다. 중학교 3학년 아니면 고등학교 1학년 쯤으로 보이는 그들이 학생복을 입고 쌍욕을 한다는 것이 도대체 어울리지가 않았다. 듣기에 민망하고 거북하기 짝이 없었다. 칼날같은 욕설의 잔해가 머릿속까지 파고 들어와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들이 내 곁을 스쳐 지날 때 그들의 모습은 남학생 복장이었다. 그럼 좀전의 여자의 음성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들은 가면서 잡담을 하였지만 좀전에 욕설이 튀어 나온 뒤로는 잠잠하였다. 가운데 있는 학생만이 혼자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 …이 ×발놈들이 내 말이 말같잖나? 너거들 한번 죽어볼래?
낮게 깔린 음성은 좀전에 욕을 한 학생이 틀림없었다. 확실한 여자의 음성이었다. 머리 모양도 조금 달랐고 다만 복장만 남학생이었다. 남장을 한 여학생. 키와 체구도 그들 무리중에서 제일 작은 편이었다.
나머지 학생들은 그를 둘러싸듯이 호위하며 욕설에 순응하고 있었다. 욕을 얻어먹을만한 무슨 죄를 지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런 쌍욕을 하는데도 군말없이 있는 것 또한 의아스러웠다. 남녀평등을 넘어 여성상위시대에 접어들었다고는 하지만 어쩌면 옛날 모계사회로 되돌아가는 것은 아닐까.
나는 그들의 행동을 예의 주시하였다. 가는 방향이 같았으므로 공원 끝까지 추적해보기로 하였다. 가로등 불빛이 어둠을 밝히고 있었지만 공원의 구석진 어둠까진 미치지 못하였다.
공원이 끝난 지점, 하천변 어둠속 빈터에 그들은 멈추었다. 어둠속에서 남학생들이 키작은 여학생 앞에 도열해 서있었다. 여학생이 차례로 남학생의 무르팍을 걷어찼다.
- 야, 이 ×새끼들아. 내 말이 말같지 않나? 앞으로 잘 할수 있겠어?
걷어 차인 남학생들은 무릎을 꿇고 앉았다. 이 기묘한 광경을 본 사람은 나 말고도 몇몇이 더 있었으나 먼발치서 호기심과 두려운 시선으로 엿보고 있었다.
여학생의 군기잡는 모습은 오래가지 않았다. 여학생은 공원에 나온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했는지 남학생들을 데리고 저쪽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그들은 마치 잘 조직된 군대의 분대원처럼 움직이며 또다른 목적지로 가는 모양이었다. 사실 여학생의 욕설은 공원의 분위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여학생의 입에서 왜 그런 욕설이 나왔을까? 남학생들은 왜 순순히 여학생에게 순종하고 있는 것일까? 마치 요즘 언론매체에서 떠드는 아내에게 매맞는 남편들을 연상시켰다. 오늘날 교육 현실의 난맥상을 보는 것 같았다. 학생과 학생, 선생과 제자 사이에 난무하는 폭력의 언어. 깨어지는 학교의 평화. 학교 울타리를 흘러나와 가정의 폭력과 연계되어 사회의 밑바닥을 잠식한다. 우리의 젊은 세대들은 어느새 어둠의 자식으로 변해간다.
말은 생각대로 나오는 것이다. 좋은 생각을 하면 좋은 말이 나올 것이고 나쁜 생각을 하면 나쁜 말과 욕설이 튀어나올 것이다. 시민의 휴식과 건강을 위해 조성된 공원에서의 욕설은 자제되어야 하고 거친 말들은 순화되어야 마땅하다. 그러자면 먼저 사람들의 정신이 건강해야 한다. 시민 누구나 찾는 공원에서 그들의 정신을 건강하고 맑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미 잘 가꾸어진 숲과 나무들, 체력단련기구, 건전한 음악방송, 콘서트 등이 있지만 그것 말고 덧붙여서 할 수 있는 것은 없을까?
나는 궁리 끝에 의자나 정자 옆에 시집꽂이 혹은 간이 책꽂이를 비치하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시집은 시가 담긴 책이다. 시는 무엇인가. 시는 생활속의 산소같은 것이다. 온갖 말들이 난무하는 속에서 시인들이 머리를 쥐어짜는 고통속에서 생산해 낸 신선한 산소같은 언어들이다. 그런 언어들이 한권의 시집에 보통 50편 내외의 시가 담겨있다. 산소를 따로 담아 판매하는 세상이 되었는데, 시집을 한권 읽으면 그보다 몇배 더 좋은 정신적인 산소를 마시는 것과 같다. 시집꽂이에 시집이 아니라도 좋겠다. 아이들을 위해서 동화책도 좋고 교양서적도 좋을 것이다. 간이 책꽂이엔 많은 책이 필요치 않을 것이다. 한권에서 서너권 정도.
책꽂이 옆엔 <이 책을 읽으면 산소를 마시는 것입니다. 읽고 나서 다른 사람이 마실수 있도록 제자리에 놓아주십시오> 라는 문구를 적어 놓으면 책을 분실할 염려가 줄어들 것이다. 혹여 책을 가져간다 하더라도 집에서 시를 읽고 산소를 마시는 격이니 크게 비난할 일은 아닐 것이다. 또 혹여 길거리에 집어 던진다고 해도 찢겨진 책갈피 사이로 산소같은 시어들이 흩어져 공기중에 산화되면 사람들은 그것을 들여마실 것이다. 적어도 아무도 보지 않는 책장에 숨막힐 듯이 처박혀 있는 것보다는 백배 나을 것이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앞의 학생들이 심한 산소 결핍증에 걸린 것으로 밖에 여기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내 생각을 구체화해야 되겠다는 일념으로 K시청에 민원을 내었다.
며칠 뒤에 답변이 왔다.
- 평소 우리 시정발전에 많은 관심을 가져 주셔서 깊이 감사드립니다. 귀하의 의견은 개인적으로는 좋은 의견이라 할 수 있으나 일반적인 여론에 부합할 것인지 검토를 해서 결정할 것이오니 그리 아시기 바랍니다.
검토를 해본다고 했으니 기대는 할 수는 있겠지만 시행하기엔 어려울 것 같았다. 요즘 책이 잘 안팔리고, 시집도 잘 안팔린다는데 공원에 시집을 비치한들 읽어볼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 것인가. 우리나라 독서 인구가 세계적으로도 하위권에 머무는데, 1년에 책을 한권 읽을까 말까 하는 사람이 태반인데 B공원에 책꽂이를 비치한들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많을 것이었다. 아무도 없는 황량한 사막에 도서관을 짓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공원에서 시를 읽고, 책을 읽고 그리고 그래 그것은 꿈같은 이야기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아 그렇다면.
그때 그 학생들의 모습이 시야에 아른거렸다.
그들은 오늘도 공원 주위를 맴돌면서 술에 만취되어 속물을 토해내듯 더럽고 악취나는, 듣기에도 섬찍한 썩은 배설물같은 욕지거리를 마구 뱉어낼 것이었다.
- …야 이×발놈아. ×새끼야. 시가 뭐 말라 비틀어진 것이냐. 시시한 세상, 시건방 떨지 말고, 시래기같이 살다가 가는 기야. 시? 오줌 누는 쉬이? 나이 들면 쉬도 잘 안되고 시도 잘 안써지더라. 아니면 K시? 모든 시는 죽었다 이기야. 개×같은 우리 인생, 희망도 없는 우리 인생 시들시들 살다가 시름시름 가는 기야. 아, 우욱
공원의 한켠에서 술취한 인생이 토해낸 썩은 언어들이 한겨울의 추위에 꽁꽁 얼어붙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