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이 스포츠에 편입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S탁구 강건우 원장은 내심 쾌재의미소를 띄웠다.
몇년 전부터 우여곡절을 겪는 과정에서 누구보다도 초조하게 바라보며 응원의 눈길을 보내었다. 강원장에게는 탁구와 바둑은 뗄레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였다. 개인적인 취미로 깊은 조예를 갖고 있기도 하지만 두 종목이 생각의 스피드 부문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요즈음 우리는 하루가 다르게 아니 시시각각 격변하고 있는 초스피드 시대에 살고 있다. 빠른 시대의 흐름에 적응하자면 그에 걸맞는 스포츠를 즐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라켓으로 주고 받아 치는 탁구공의 속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런데 바둑은 어떤가. 얼핏 보면 바둑은 가장 느린 스포츠로 생각하기 쉽다. 두 사람이 마주 앉아 바둑돌을 놓는 모양새가 스포츠로 받아 들이기엔 웬지 낯설 수도 있다. 그러나 이미 중국에서는 오래전부터 바둑을 두뇌 스포츠로 인식하여 국가적인 차원에서 육성하고 있다.
바둑은 어쩌면 느림의 미학이라고 볼 수 있다. 아니 그 느림속에 엄청난 두뇌 싸움이 펼쳐지고 있다. 그 싸움의 속도는 프로의 세계에서는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이다. 변화무쌍한 경우의 수가 순간에 이루어지면서 한판의 바둑이 짜여져 간다. 외부의 객관적인 제재가 가해지면 속도감은 더욱 치열해진다.
이를테면 바둑의 제한시간이다. 타종목도 제한시간의 룰이 있지만 그것은 거의 일정하게 정해져 있는 반면, 바둑의 제한시간은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대회마다 다양한 제한시간이 적용되는데 10초 이내로 두어지는 초스피드의 경우도 많다. 가로 세로 361로에서 일어나는, 수치로 환산할 수 없는 무궁무진한 바둑의 변화를 10초 이내로 계산하며 두어간다는 것은 어쩌면 다른 어떤 스포츠보다 비교할 수 없는 생각의 속도를 요구한다. 생각이라는 세탁기 안에 순발력과 감각이 한데 어우러진 카오스의 세계에서 한판의 바둑을 탄생시켜야 한다.
이처럼 바둑과 탁구는 빠르게 변모하는 요즘 세태에 걸맞는 스포츠다.
강건우 원장이 기뻐한 것은 이 두 종목을 잘 조화시킨 스포츠센터를 운영해 보고자 한 때문이었다.
탁구는 육체적인 율동을 위주로 한다면, 바둑은 정신적인 율동을 위주로 한다. 이 둘을 조합하면 육체와 정신을 융합시킨 참다운 건강지킴이로 발전시킬수 있다는데 착안하였다.
강원장은 즉시 행동에 옮겼다.
탁구장 한쪽에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바둑판을 비치하였다. 벽면에는 적절한 방음 장치를 하여 탁구장의 소음을 방지하였다. 바둑관련 도서와 집기류, 인터넷 바둑을 위한 컴퓨터도 준비하였다. 숨가쁘게 움직이며 격렬하게 운동한 탁구 뒤에 정숙한 분위기에서 바둑으로 정신을 가다듬으면 더 할 수 없이 좋을 것이었다. 극장으로 치면 표를 한 장 끊어 두편의 영화를 보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이 곳은 어른들만의 공간이 아니라 아이들을 비롯한 모든 이들의 공간이다. 탁구도 마찬가지다. 아잇적부터 배우고 가르쳐야 재목감이 형성된다. 아이와 어른들이 한데 어우러져 탁구와 바둑을 공유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강원장은 광고전단을 만들었다.
광고에는 탁구와 바둑의 유래, 월 이용료와 이용시간, 유아 두뇌교육 발달 최상의 스포츠 등의 홍보내용이 담겨있었다.
다음은 광고 전단내용이다.
탁구와 바둑!
그 열락(悅樂)의 세계로 들어오세요!
피로에 지친 직장인들이여. 이곳 탁구장에 와서 몸과 마음을 맡겨 보십시오.
하얀 탁구공이 당신의 시야를 넘나들며 마술을 펼쳐 보일 것입니다.
굳었던 심신은 푸른 탁구대 앞에서 바다의 청량감을 맛보게 할 것입니다. 올 여름 긴 장마에 미처 피서를 가지 못한 분은 더욱 좋습니다. 이곳에 오셔서 못다 한 피서를 만끽하십시오. 당신의 피로를 확 가시게 해드립니다.
한번 와서 맛보고 계산하셔도 됩니다.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습니다.
머리가 아프십니까? 골치 아픈 분도 이곳으로 오세요. 다른 병원에 갈 필요가 없습니다.
저희 스포츠센터에서 바둑으로 머리 아픈 것을 낫게 해드리고 아이들 두뇌개발도 해드립니다. 바둑이 아이들 두뇌개발에 효과적이라는 것은 이미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입니다.
아이들 성적을 올리고 싶습니까? 바둑을 가르치세요.
아이들 비만이 걱정되십니까? 탁구를 가르치세요.
한방에서 침과 뜸으로 환자의 병을 치유하듯이 저희 센터에서는 탁구와 바둑으로 정신과 육체의 건강을 지켜드립니다.
그리고 저희 센터는 교과목 이외의 스포츠로 교육시키는 현장교육의 산실입니다.
비싼 과외비 안들이고 단기간에 변화를 맛볼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교육입니다. 월 이용료 단돈 몇만원이면 해결됩니다.
더 늦기전에, 아니 지금 늦었다고 생각할때가 가장 빠릅니다.
지금 당장 연락주세요.
광고지 이면에는 탁구와 바둑의 유래에 대해 적고 있다.
- 탁구 [卓球, table tennis]
탁구는 그 역사나 기원이 정확하지 않은데, 중세 이탈리아의 ‘루식 필라리스’라는 유희에서 변한 것이라 하기도 하고 15∼16세기 무렵 프랑스 궁전에서 행해진 폼 이란 놀이가 변하여 탁구가 되었다고도 한다. 그 명칭도 일정하지 않아서 고시마, 프림프림, 와프와프 등 여러가지로 불리어졌다.
남아프리카·인도 등 영국 식민지에 살던 영국인들이 더위를 피하여 실내에서 테니스를 할 수 있도록 유희로 변형시킨 놀이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측하기도 한다.
한편, 19세기 말경 로열 테니스에서 힌트를 얻어 영국에서 창안한 것이라고 한다. 당시에는 테이블에 네트를 치고 메리야스로 둘러싼 공을 나무판으로 번갈아 쳤다고 하는데, 그래서 영어로는 '테이블 테니스'(table tennis)라 한다. 이후 1898년 영국인 제임스 기브스가 셀룰로이드로 만든 공을 사용하면서 널리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셀룰로이드 공을 라켓으로 치면 '핑' 소리가 나고 탁구대에 맞으면서 '퐁' 소리가 나기 때문에 핑퐁(ping-pong)이라고도 한다.
라켓에 고무판을 붙인 것은 1902년 영국의 굿이라는 사람이 물건을 팔 때 동전을 받아 넣는 접시 밑바닥에 고무를 깐 것을 보고 힌트를 얻어 나무판으로 사용하던 라켓에 고무판을 단 라켓을 고안해냈다.
- 바둑
바둑의 어원은 바닥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한다. 마당이나 판, 바닥은 모두 같은 뜻이다. 바닥판은 우주의 한 판이고, 한 마당이다.
바닥에는 천지자연의 이치가 살아 숨쉰다.
천원은 본래 ‘하늘의 근원’ 또는 ‘천지를 운행하는 중심’이라는 의미이다. 천원을 ‘태극(太極:만물이 생성되는 근원)’이라고도 한다. 바둑의 눈금은 361개인데 천원을 빼면 360이 되며, 30일 1개월을 12개월로 곱한 수인 360일(음력)과 일치하고, 4귀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상징하며, 화점이 제4선 의 교차점에 있는 것은 4계절에 비유하여 설정한 것이다. 4귀의 화점은 춘분 ·하지 ·추분 ·동지를 뜻한다.
바둑의 아홉 개의 화점은 주역의 구궁(九宮:아홉 방위의 자리)과 같고, 천원을 제외한 여덟 개의 화점은 주역의 팔괘, 또한 우리 조상의 삼재(三才)사상인 천지인(天地人)의 의미가 있다.
바닥돌(바둑돌)은 흰돌과 검은돌이며 양과 음으로 낮과 밤을 뜻한다. 대국자가 번갈아 돌을 놓을 때마다 낮과 밤이 교차하며 하루가 지나는 것을 의미한다.
해방전까지는 '바독' 또는 '바돌'이라 불리어졌다. '독'이나 '돌'자는 한자의 돌석(石)의 뜻을 표현한다. '밭(田)'과 '돌'의 결합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돌(石)을 '독' 이라고 한다. '밭독'으로부터 ㅌ 받침이 떨어져나가 '바독'이 되고 다시 '독'이 '둑'으로 변하여 오늘날의 바둑이 되었다고 한다. 이 '밭독'설에 의하면, '밭'은 넓은 바둑판임을 짐작할 수 있다. 우리 순장바둑에서는 17개의 지점에 바둑돌을 미리 배치하고 시작하였고 이를 배자(排子)라는 글자로 나타냈는데 이것을 바둑의 어원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 ‘배자’는 화점 포석을 뜻하는데 이것은 중국이나 일본과는 달리 우리 고유의 포석 방법을 나타내는 말이었다. 이 화점상의 배자(排子), 즉 '백돌→배돌→배독→바돌→바독→바둑'으로 변음과정을 거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의 ‘子’는 ‘돌’ 또는 ‘독’의 뜻을 가졌고 거기에 ‘排’를 합치면 ‘배돌’·‘배독’이 되는 것인데, 세월이 흐르는 사이에 "배돌→바돌→바독→바둑"같이 되어간 것으로 해석한다.
또다른 일설의 바둑의 음운 변화 과정은 ‘밝돐→박돌→바돌→바독→바둑’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이것은 바둑을 천부경(天符經:하느님께서 환웅을 통해 백두산에 내려와 천하만민에게 천지인 삼극의 원리를 가르친 것) 풀이를 돕기 위한 놀이 도구로 보는 관점에서 바둑의 어원을 ‘밝+돌’로 보는 것이다. 여기서 ‘밝’은 우리 겨레의 ‘한철학’인 ‘밝사상’을 의미하며, 또한 ‘밝히다’는 뜻의 ‘밝’이다. 그리고 ‘돐’은 천부경의 핵심이며, 우주의 보편적 운행법칙인 ‘순환’을 뜻한다. 따라서 바둑이란 뜻은 ‘우주의 보편적 운행법칙을 밝히는 놀이’ 라고 한다.
육당 최남선 선생은 인도네시아어인 '바투(Batu)'를 바둑의 원말로 보기도 하였고, 바둑서지학자 안영이는 우리의 순장바둑이 티벳에서 전래된 것으로 보고 바둑을 뜻하는 초기 산스크트어 'Badh(바드)'가 '바독-바둑'으로 변화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바둑을 한자로는 기(棋),기(碁),혁(弈,奕),위기(圍棋)로 표현하기도 한다. 나무판에 초점을 맞추면 기(棋)라 하고 돌알에 초점을 두면 기(碁)라 한다.
‘혁(弈)'이라는 글자는 옛 중국 고서에 '혁(弈)'자와 '기(棋)'자가 나오는데, 혁의 뜻은 '바둑 두는 것', 즉 위기와 같은 뜻으로 해석되고, '圍棋(중국발음;웨이치)'는 '바둑을 둔다'는 행위를 뜻하는 중국용어이다.
또다른 바둑의 어원은 '밧돝'으로 흔히 알록달록한 강아지를 '바둑이'라 이름짓듯 반상에 흑과 백이 섞여 전개되기 때문에 바둑이라 명명하였다고도 한다.
광고지를 다 돌리고 난 후 강건우 원장은 그동안 쌓인 피로 때문에 몸을 제대로 가눌 길이 없었다.
며칠 후였다. 오후 늦게 강원장을 찾는 전화가 걸려 왔다. 술이 좀 된 목소리였다.
- 당신이 원장이야? 나 탁명수라는 사람인데. 당신 우리 탁씨에 대해서 얼마나 안다고 캐사? 모르면 가만히 있기나 하지. 나 탁구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말이야. 탁씨가 얼마나 양반인데, 얌마, 그래 박씨는 길다랗게 소개해 주고 탁씨에 대해서는 말이야, 병아리 눈물만큼 조금밖에 안써놨다 이말이야. 이게 말이 돼? 탁씨에 대해 어디서 뭘 보고 썼는지 말해봐. 근거를 대봐 임마. 장사해묵을라마 똑바로 하라 이기야! 응?
이쪽 대답은 듣지도 않고 전화가 끊어졌다.
강원장은 머리가 멍하였다. 사내는 분명 자신의 가문에 대해서 불만을 토로하고 있었다. 사내가 박씨라고 한 것은 바둑을 얘기한 것 같은데 그럼 바둑이 박씨 가문과 연관이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바둑의 또다른 어원을 찾은 셈이었다. 사내의 주장대로 탁구에 대한 설명은 상대적으로 적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강원장은 속이 쓰리고 아팠지만 탁구와 탁씨의 가문에 대해서 보완하여 추가로 광고를 내었다.
- 탁구(卓球)는 탁씨 가문과 아무런 관련이 없음
- 탁씨(卓氏)의 본관(本貫)은 조선씨족통보(朝鮮氏族統譜)에 의하면 광산(光山)을 비롯하여 32본까지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모두 광산탁씨(光山卓氏)의 세거지명(世居地名)에 불과하고 현존하는 관향(貫鄕)은 광산 단본(單本)으로 알려저 있다. 광산탁씨(光山卓氏)의 시조 탁지엽(卓之葉)은 고려 선종(宣宗)때 학행(學行)으로 천거되어 한림학사(翰林學士)가 되고 뒤에 태사(太師)에 이르러 광산군(光山君)으로 봉해졌으며, 문성(文成)이란 시호를 제수받았다. 후손들은 본관을 광산(光山)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이어오면서 특히 고려조에서 훌륭한 인물을 많이 배출시켰다. 역사상 대표적 인물은 이하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