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와서 관광버스 운전을 하게 된 것은 내겐 큰 행운이었다.
베트남에서 배운 운전 기술이 도움이 되긴 했지만 한국의 운전면허는 생각보다 쉬운 것이 아니었다. 천신만고 끝에 대형운전면허를 손에 쥐는 순간 나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행운이 겹친 것은 교회 선교사의 알선으로 관광버스 운전
을 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물론 아직 정식으로 채용된 것은 아니었지만 잘만
하면 정식 직원으로 일할 수도 있다고 하였다.
내가 처음 차를 몰게 된 것은 지난 봄이었다.
차를 몰기 전 버스 경유지를 사전 점검하고 안전수칙 등을 교육을 받고 버스에 올랐다. 나의 한국어 실력은 베트남에서 익힌 것과 한국 현지에서 익힌 경험으로 의사 소통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버스는 K역 앞에서 오전 8시에 출발하였다. 탑승 인원은 41명, 운전수인 나까지 42명이었다. 사오십대 중년들로 여자들이 대부분이었다. 남자들은 열사람이 채 못되어 여자들 속에서 양념꼴로 가는 모양이었다.
남자 한사람이 마이크를 잡고 인사를 하였다.
- 반갑습니다. 천국회 회장 정만덕입니다. 오늘 모처럼 야유회를 가는데 기분이 상당히 좋습니다.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를 확 푸시고 마음껏 즐기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디까지나 예수님을 믿고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여행도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의 수난과 고행을 생각하며 나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준비된 음식을 드시면서 맘 편하게 여행을 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이어서 회장의 주도하에 주기도문을 외우고 묵상하는 시간을 가졌다.
날씨도 화창하고 도로변 곳곳에는 개나리와 벚꽃이 만개되어 화려한 꽃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바깥의 이런 좋은 풍경을 아는지 모르는지 버스 안은 정숙한 분위기였다. 간간이 대화를 나누면서 웃는 소리가 들리기도 하였지만 대체
로 조용한 편이었다.
버스는 남해안의 H시에 도착하여 배를 타고 해안가 절경지와 무인도를 유람하고 와서 바닷가 시장에서 단체로 회를 먹었다. 소주를 곁들여 먹는 모습들이 마치 며칠 굶은 사람처럼 잘도 넘어갔다. 모처럼 나들이 나온 김에 본전을 빼
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는 것 같았다.
점심 후, 가까운 곳의 옛 순교 성인들의 발자취가 담긴 성지를 둘러 본 뒤 귀향길에 올랐다.
그런데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회장이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 오늘 정말 날을 잘 받았습니다. 날도 좋고 바다도 좋고요. 회맛도 좋습디다. 소주 맛도 오늘 따라 너무 달아요. 오늘 음료수는 많이 안팔리네요. 이제 가시는 동안 즐겁게 노세요. 운전수 아저씨이. 노래 틀어주세요옹…
회장은 술이 좀 된 것 같았다.
나는 운전대 앞의 노래가 담긴 CD를 틀었다. 흥겨운 메들리 음악이 흘러나왔다. 베트남에서도 많이 들어본 노래였다. 음악이 나오자 좌석에 앉아있던 사
람들이 하나둘씩 버스 중간 통로로 나왔다. 그리고는 몸을 흔들기 시작했다.
잠시후 앉아있는 사람은 별로 없고 거의 다 중간에서 몸을 흔들었다. 통로가 좁아 사람들은 서로 부딪히면서 춤을 추었다. 남자들은 중간 중간에 끼어 흔들었는데 여자들 등쌀에 잘 움직이지도 못하는 모양이었다.
음악과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져 버스안은 춤의 열기로 가득하였다. 버스 바
닥이 쿵쾅거릴정도로 발을 굴리며 노래를 불렀다.
갑작스럽게 변한 버스 안의 광경을 보고 나는 당혹하였다.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전방을 보랴, 백미러로 노는 모습을 보랴 혼란스러웠다.
나는 40여명의 안전을 책임진 운전사였다. 긴장한 나머지 땀까지 흘렸다. 그런데 앞좌석 바로 옆에 한사람이 그냥 앉아 있었다. 그는 거의 표정없는 얼굴
로 앞쪽만을 응시하였다. 그에게 저 사람들이 왜 저러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약간 미소를 머금은 듯이 손가락을 머리에 갖다 대며 한바퀴 돌리는 것이었다.
- 저 사람들 갑자기 발작이 일어나 정신병 치료하러 갈 사람들이야.
나는 깜짝 놀랐다. 그가 너무 정색으로 말했기 때문에 믿지 않을 수 없었다.
난 40여명의 안전을 책임진 사람이다. 저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순간 음악을 껐다. 그러자 왜 음악을 껐느냐고 대들며 소리질렀다. 다시 음악을 틀어
주었다. 그들은 다시 광란속으로 빠져들었다. 이마에 진땀이 배어나왔다. 이들을 어떻게 할 것인가. 불화로를 짊어지고 사정없이 내달리는 폭탄과 같았다. 방법을 찾아야 했다.
운전대 옆에 달린 네비게이션을 검색해보았다. ‘정신병원’을 입력하자 마침
가까운 인근에 ○○정신병원이 나타났다. 나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차를 그쪽
방향으로 틀었다. 버스 안은 여전히 음악과 흔드는 춤으로 요란하였다. 버스
바닥이 꺼질 지경이었다. 그들은 버스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체 노래의 향연
에 빠지고 있었다.
이윽고, 버스는 병원 앞 마당에 도착하였다. 아직도 버스 안은 쿵쾅거리고
있었다. 병원에서는 웬 난데없는 버스의 진입에 대형 손님이 온 것으로 알고
의사들이 마중 나와있었다. 환자복을 입은 사람들도 기웃거렸다.
병원 마당이 넓어, 버스 안 사람들은 무슨 휴게소에 온 것처럼 여기고 한사
람씩 내렸다. 그들은 그 곳 마당에서도 춤추는 것을 멈출줄을 몰랐다. 환자복
을 입은 몇사람이 들어와 같이 뒤섞여 신나는 듯이 춤을 추었다. 나는 정말 잘
데려왔다고 생각하였다.
회장이 나에게 다가왔다.
-운전사 양반. 볼 면목이 없습니다. 그래, 우린 어쩌면 정신병자일지 모르지. 버스 바닥이 제대로 남아났는지 모르겠네. 미안하게 됐소이다.
사람들이 차츰 술이 깨는 모양이었다. 그들의 천국이 조금씩 걷혀가고 있었다.
병원을 뒤로 하고 돌아오는 길에 그들은 조용해졌다.
그들은 눈을 감고 주기도문을 외우고 있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