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99년 8월 15일.
이 날은 뜻깊은 날이다. 과거 일본 제국주의의 압박에서 벗어난 광복절이기
도 하지만 김천이 시로 승격된지 150주년이 되는 날이다.
100주년 기념식을 한 것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벌써 50년이 더 지나 150 주
년이 되다니. 한해가 더 지나면 22세기로 접어든다. 세월은 유수같이 흐르고
시간은 아직도 인간의 힘으로는 붙잡을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다.
한반도가 통일된지도 60년이 지났으니까 김천같은 작은 도시의 시승격을 논
하는 것은 어쩌면 별 의미가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과거의 토대 위에
우리가 존재하는 것이다. 과거를 부정하면 오늘날의 나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것과 같다.
이 날, 옛 김천시청 청사 한 모퉁이에서 조촐한 기념 행사가 있었다. 옛 청사
는 박물관과 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행사장에는 김천을 관할하는 경북광역시장을 비롯한 관계 기관단체장과 시
민들이 다수 참석하였다.
오늘 행사의 내용은 김천시 승격 60주년을 기념해서 땅속에 묻어두었던 타
임캡슐을 꺼내는 작업이었다. 90년이 지나 100년을 바라보는 시점에 당시의
과거를 되돌아보고 새로운 미래 사회를 열어가는 데 도움이 될 역사를 점검하
는 것이었다.
광역시장의 인사말이 있었다.
- 안녕하십니까? 오늘 날씨도 무덥고 공사간 바쁘실텐데 이렇게 참석해 주셔
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이제 우리나라가 4계절이 거의 퇴색되어 아열대 기후
로 변모되어 가고 있습니다만 다시 옛날의 뚜렷한 4계절 복원작업을 국제적인
협조하에 진행하고 있으니까 조만간 좋은 결과가 나올 것으로 기대합니다.
오늘은 아시다시피 참으로 뜻깊은 날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전에 김
천시가 이 경북 중부에서 혁신의 깃발 아래 도시발전의 기치를 높이 내걸었던
기상을 담고 당시 김천의 사회상을 담은 타임 캡슐을 묻었던 것을 다시금 꺼내
어 보는 가슴 설레이는 순간입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고 그동안 놀랄만한 변화가 있었습니다만, 당시의 진지하
고 힘차게 나아갔던 모습을 되돌아보고 싶은 것은 저만의 심정은 아닐 것입니
다. 오늘날 우리는 너무 편한 시대에 살면서 게으른 타성에 젖어있는 것은 아
닌지 한번 되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아마 오늘 타지에서 오신 분들은 행사에 참석하려고 경전철이나 KTX를 타
고 오신 분도 있을 것이나 얼마전 보급되기 시작한 팩스 송신기로 오신 분도 있
을 것입니다. 극히 일부인 팩스의 부작용도 극복한 만큼 요금이 비싸지만 빠르
다는 측면에선 타의 추종을 불허할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가상세계와 접속하면서 현실을 오가고 있으며 외계인과의 교류
도 점차 확대되는 추세에 있습니다. 또 인공지능이 상품화되어 먹고 움직일 필
요도 없이 자신의 수명을 조절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 고유의 정신, 영혼을 등한시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오늘날 최첨단 과학의 결정적인 이 맹점을 아직 극복하지 못하고 있습
니다. 아마도 영원히 극복하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어쩌면 신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어서 인간의 도전이 용납되지 않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인간은 어
디까지나 인간답게 살아야지 자신의 권한 밖인 신권에 도전하는 무모한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신의 노여움을 사서 우리 인간의 삶 자체에 불
행을 가져와서는 안되겠습니다.
그래서 이런 안타까운 점에 착안하여 과거 우리 선조들의 삶은 어떠했는가,
참으로 인간답게 사는 모습은 어떠했는가 하는 것을 되돌아보는 기회를 갖고자
오늘 이 시간을 마련했습니다.
과거의 역사속으로 여행하는 차분한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칠십이 넘은 나이였지만 삼십대의 피부를 자랑하는 광역시장의 인사말은 청
중에게는 다소 형식적으로 들렸다. 시장 자신도 자신의 수명을 스스로 조절하
는 그룹에 속해 있었던 탓이었다.
다른 사람의 축사는 생략되었다. 참석자들은 축사보다는 박물관에 마련된
가상세계실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가상세계에 접속하면 또다른 세계에 진입하
여 자신이 세계의 주인 노릇을 할 수 있는 기막힌 체험을 하게 되는데 일정한
행사때에 특별히 초청된 사람에 한해서 허용해 주는 시스템이었다.
시스템의 작동 원리를 비유해서 간단하게 말하면, 텔레비전을 보다가 어떤
장면이 나왔을때 그 장면 속으로 들어가고 싶다면 스위치를 작동하여 그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가 화면 속의 세계에서 잠시 노닐다가 다시 나올 수 있는 시스
템이었다.
거액을 들여 만든 이런 시스템이 전국에서 몇군데 밖에 설치되지 않았는데
그 중 한 곳이 이곳 김천 박물관에 얼마전에 설치되었던 것이다.
광역시장도 그들의 관심은 오로지 그것임을 알고 있기에 타임 캡슐을 꺼내는
작업을 서두르도록 하였다. 오늘의 주목적은 과거 옛 김천시의 삶의 모습을 들
추어보는 것이므로.
행사장 바로 옆 잔디밭 한켠에 캡슐을 묻은 것을 기념한 자연석으로 만든 표
지판이 있었다.
- 김천시 승격 60주년을 기념하여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김천의 모습을 담은
타임 캡슐을 여기 이 자리에 묻는다.
후대의 시민들은 적당한 시기에 이것을 펼쳐 보아 내세의 귀감으로 삼으라.
2009년 8월 15일
김천시민 일동
표지판 앞 2m미터 지점의 덮개가 벗겨지고 땅속 깊이 들어가 있던 캡슐이 올
라와 바깥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주변에서 박수가 터져나왔다. 보관 상태
는 매우 양호한 편이었다.
작업 인부의 손을 거쳐 캡슐은 박물관에 미리 마련된 장소로 운반되었다. 캡
슐은 며칠간의 분류작업을 한 뒤에 부문별로 적시하여 사람들이 열람할 수 있
게 하였다.
그 중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모은 것은 문화예술 부문의 ‘김천아리랑’이라는
노래였다. 지금은 아리랑이라는 말이 생소하게 들리지만 당시까지는 우리 민족
의 한이 서려있는 타령조의 민요풍의 노래였다.
아리랑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아리랑이 고개의 이름이자 고개를 넘어갈 때의 고단함이나, 산모가 아기를
낳을 때의 산고의 표현이라고도 한다. 또 아리랑이란 말은 아라리(‘누가 내 마
음을 알리’에서 ‘알리’의 변형)에서 유래되었다고도 한다.
가장 오래된 기록으로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나타난 전설을 근거로 한 것
으로 알영정(閼英井)과 알영천(閼英川)에서 유래된 박혁거세의 비(妃) ‘알영’의
덕을 찬미한 것으로 ‘알영’이 ‘아리랑’으로 변했다고 한다. 또 조선말기 대원군
이 경복궁을 중수할 때 부역꾼들이 고향을 떠난 외로움과 사랑하는 님과 가족
을 그리워하는 애틋함에 ‘나는 님을 이별하네’ 라고 부른 아이랑(我離娘)에서
비롯되었다는 설도 있다. 그 외에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확실치는 않다.
어쨌든 우리 민족 고유의 한이 서린 노래를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자
료의 설명에 의하면 김천아리랑은 당시 시민들을 대상으로 공모를 하였는데 익
명의 한사람이 응모한 것이 선정되었고 그는 노래의 악보까지 첨부하였다.
그러나 악보는 음악성은 있으나 전문가의 수준에서는 미흡한 것으로 보고 채
택되지 않았다. 곡을 붙이기 위해서 국악풍으로 할 것이냐 일반 대중가요 형식
으로 할 것이냐 많은 논란이 있었는데 결국 곡을 붙이지 못하고 가사만 기록으
로 남기기로 하였다. 노래의 작사가 이름은 익명의 응모자의 요청에 따라 ‘김시
민’으로 하였다고 한다. ‘김시민’은 ‘김천시민 여러분’의 줄인 말이다.
‘김천아리랑’의 노랫말은 다음과 같다.
김천아리랑
지은이 : 김시민
1
고향떠난 길나그네 직지감천 돌아드니
소꿉동무 순이엄마 수줍은 듯 숨어앉네
그리운 친구들아 강변에 모여앉아
님발자국 향기위에 희망의 꽃 피워보자
아- 내사랑 김천, 김천아리랑
2
수도암 목탁소리 어린중생 일깨우고
과하주 한잔술에 세상사가 녹아드네
황악산의 메아리여 고성산이 여기있다
옛터전의 뿌리위에 천년만년 살고지고
아- 내고향 김천, 김천아리랑
3
기찻길옆 오막살이 세월속에 간데없고
KTX 꽃열차가 하늘땅을 열었구나
얼싸좋아 혁신도시 새김천이 두리둥실
다시못올 우리인생 함께모여 즐겨보세
아- 내사랑 김천, 김천아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