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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메기 바둑점방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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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의 십자가
2008-10-26 오전 5:27 조회 7464추천 6   프린트|스크랩

 

        십자가는 옛날 서양에서 중죄인을 못박아 죽인 형틀의 하나에 속하였다.

    또한 예수가 모든 사람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간 후      로는 희생, 속죄의 표상으로 인식되어 왔다.

 

      오늘날 모든 교회의 첨탑위에는 십자가 표시가 되어 있다. 십자가를 통해      예수의 삶을 본받고 구원의 길로 들어서는 상징으로 여긴다. 십자가 앞에서는 그 어떤 오만함도 허용되지 않으며 오직 겸손만이 통한다. 악은 범접치 못하며 선이 장악하고 있다.

 

       말하자면 선과 악의 교차점이라고나 할까. 십자가의 어두운 그림자 뒤에는 악령이 항상 대기하고 있어 인간의 조그마한 허점이라도 보이면 침투해 들어오려 하고 있다. 잠시라도 긴장의 끈을 늦추면 악령의 유혹에 점령당해 버린다.

    십자가의 길은 그만큼 어렵고 힘든 일이다.

 

       그런 십자가가 이미 바둑에는 존재하고 있었다. 서양의 십자가가 나타나기 훨씬 이전부터 십자가가 있었던 것이다.

 

       바둑판 자체가 십자가이다.

       바둑판을 보자.

      19줄의 선의 교차점이 전부 십자의 교차점이다. 바둑돌을 네모진 공간에 두는 것이 아니라 선의 교차점에 두고 그것을 집으로 환산한다. 네모진 공간은 허하다. 그러나 선의 교차점은 두선이 만나므로 허하지 않고 꽉찬 밀집형이며 어

떤 빈틈도 허용되지 않는다. 선의 교차점은 완벽하다. 한점 한점이 십자가의 길

목이다. 한걸음씩 움직일때마다 고행의 숲속으로 들어간다. 고난의 어려움을

    알면서도 과감히 들어간다. 북한의 ‘고난의 행군’과 비교하면 난센스일지 모른다.

 

    바둑의 숲속은 십자가의 수풀로 뒤덮여 있다. 한번 발을 내디디면 한없는 미

로를 헤매인다. 두려움과 기대를 안고 뛰어 들지만 매번 그곳은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늪속이다.

   사람의 정신을 롤러코스터처럼 휘둘리고 혼을 빼간다. 생각의 고통으로 상처

를 받고 피를 흘린다. 온몸이 긁히면서도 정신없이 그 길을 찾아나선다. 전신이

 땀에 젖고 피로에 지쳐 드디어 생각의 끝에 다다르면 겨우 바둑의 숲을 빠져나

온다.

   그 끝에 참으로 시원한 바람이 맞이하고 드디어 자유의 몸이 된다. 바둑의 숲

속에서 정화되어 한단계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간다. 다른 찜질방에서는 맛볼수

없는 고도의 수준높은 정신의 찜질방이다.

   바둑은 이처럼 모든 사람을 십자가가 있는 숲속, 그 뜨거운 찜질방으로 담금

질한다. 그 속을 거쳐 나온 사람은 모두가 새롭게 태어난다.

 

   예수가 바둑을 배웠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굳이 자신이 스스로 십자가를 짊어질 필요성을 느꼈을까.

   아니, 서양에는 그때 바둑의 존재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동양에는 이미 오래

전부터 바둑속에서 십자가의 정신을 온몸으로 체득하고 있었는데 서양에는 없

었다.

   예수가 서양쪽에 등장한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서양 사람이 복잡한 것은 싫어하고, 단순하고 편리한 것을 선호하는 것 때문

에 십자가를 지고 죽음을 택한 것은 아닐까. 그리고 부활한 것이 아닐까.

   그들 앞에서 눈으로 보고 믿으라고 했을 것이다. 자신이 못박힌 곳을 보고, 피

흘린 자국을 보고, 숨이 끊어져 죽는 것을 보고 그리고 사흘뒤에 살아난 것을

보고 믿으라고 했을 것이다.

   현장에서 직접 본 사람들은 믿었다. 그러나 전해들은 사람들은 의심하고 믿

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상하다. 자기가 직접 만져보고 느껴야만 믿는 습성이 있

다. 예수의 십자가를, 예수의 부활을 2천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직접 보아야

만 믿겠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렇게하자면 과학의 기술이 고도로 발달되

어 타임머신을 타고 갈 날을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타임머신을 대신하는 것이 바로 바둑이다.

       바둑을 두면 2천년이 아니라 그 이전까지 아니 영원을 넘나들 수 있다.

       바둑판 위의 십자로에서, 361점의 그 어떤 곳에서부터 시작해도 된다. 바깥에 비가 오든 말든, 전쟁의 포화 소리가 들리든 말든 시작하면 된다. 

      예수는 모든 사람을 평등하다고 가르쳤다. 그리고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쳤다.

     바둑이 그렇다.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고, 자신에게 상처를 준 패배를 안긴 상대방을 사랑하도록 만든다. 처음엔 분하고 미워하지만 잠시 뒤면 또다시 그를

사랑하게 되고 바둑판 앞에 마주 앉는다.

     바둑이여. 오늘도 서로 사랑하자.

     상대가 누구이든 남여노소 할것없이 설레는 맘으로 바둑판 앞에 마주 앉자.

    세상의 모든 상처를 보듬고, 바둑의 숲속에서 맑고 건강한 새로운 세계와 만나자.

    예수의 그 지극한 사랑과 희생의 흔적이 무수히 널려있는 바둑의 십자가를 응시하며.

 

 

 


┃꼬릿글 쓰기
팔공선달 |  2008-10-26 오전 6:25:03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진짜 사랑하는 방법을 아는 사람은 무엇이든 이해하려하고 강요를 않습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방법을 모르는 사람은 좋아하는것이 사랑하는것으로
착각을 합니다. 상대도 그러길 바라고요. 종교든 바둑이든 인생이든
나아닌것을 인정하고 이해할수 있어야
진정 사랑한다고 할수 있지 않을까요.우리는 사랑하는법을 잊어가고 있읍니다.

잘읽고 갑니다 계속 좋은글 기다립니다 꿉벅 ^^+  
과메기 고맙습니다.
고기뀐지 |  2008-10-26 오전 8:43:3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과선생이 탄력 붙엇넹 ㅊㅋㅊㅋ  
과메기 고맙습니다.
태평역 |  2008-10-26 오전 11:29:38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과메기님의 바둑에대한 지극한사랑과 통찰력, 상상력이 대단하십니다.
그런데 글중에 ㅡ 예수가 바둑을 배웠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굳이 자신이 스스로 십자가를 짊어질 필요성을 느꼈을까. 서양사람이 복잡한것은 싫어하고 단순하고 편리한것응 선호하는것때문에 십자가를 지고 죽음을 택한것은 아닐까. 그리고 부활한것은 아닐까. ㅡ 라는 말이 나오는데,
 
태평역 |  2008-10-26 오전 11:40:32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기전 감람산에서 기도하실때 ㅡ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잔을 내게서 옮기옵소서. 그러나 내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ㅡ 라 성경에 기록되어있고, 님도 아시듯이 인류가 하나님께 나아가기위해서는 즉 구원받기위해서는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이 필요했고, 그렇기때문 십자가에달려 순종했다고 알고있습니다.
과메기님의 창작이라고  
태평역 |  2008-10-26 오전 11:46:33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가볍게 지나갈수있지만, 기독교에 대해 잘 모르는 독자들에게 왜곡 될수도있다는 노파심에 한마디했습니다.
나 같은 독자도 있다는걸 염두에 두시고요.
건필바랍니다. ^*^  
과메기 좋은 충고 고맙습니다. 늘 건강하세요.
당근돼지 |  2008-10-26 오후 1:23:27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잘 보고 갑니다....계속해서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과메기 고맙습니다.
youngpan |  2008-10-27 오전 11:49:14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태평역님과 비슷한 감을 느끼고요. 조금은 이상한 비약? 으로 보입니다만 바둑이 기우간의 가교 역활을 한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바둑으로 다 되는 것은 아니지만 좋은 수단으로서 활용할 수 있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흑백이전의 한 수 를 일러라~ 도 있죠.  
과메기 고맙습니다
선비만석 |  2008-10-27 오후 9:31:35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음....바둑의 십가가라......예수님은 유대인이고...그 시절에 헤롯왕의 정치력에 위해를 가할 수 있는 적으로 여긴 헤롯왕이 그를 십자가에 못박아 매달도록 했죠....헤롯이 없었다면 예수는 과영 우리에게 어떠 ㄴ영향력을 행사 했을까요? 난 그게 궁금합니다......  
태평역 만서기 아우야 ! 씰데없는데 신경쓰지말고 소설이나 부지런이 써. ㅡ 감질나게 하지말고.
태평역 역사에 있어 가정법은 의없는것이지만, 헤롯왕이 아니고 빌라도 로마총독에의해 십자가에 달리는 형을받았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함으로 유대인들의 지도자인 대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들에의해 신성모독죄로 질시를받아 십자가에 달릴수밖에 없는 환경이었고,
태평역 그보다 하나님의 구속사역을 이루시기위해 이땅에 보내심을 받았기에 십자가에 달리실수밖에 없다네. 지금 근무중 일텐데 괜한것 올려갖고 나 신경 쓰게 만드네. 만서기 병장 ㅡ 원산폭격 실시 !!! ^*^ 가정법은 의미없고로 바로잡음.
과메기 고맙습니다.
태평역 보정: 빌라도는 본디오 빌라도이며, 로마제국에서 파견한 유다 제5대 총독임. 과메기님,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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