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는 옛날 서양에서 중죄인을 못박아 죽인 형틀의 하나에 속하였다.
또한 예수가 모든 사람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간 후 로는 희생, 속죄의 표상으로 인식되어 왔다.
오늘날 모든 교회의 첨탑위에는 십자가 표시가 되어 있다. 십자가를 통해 예수의 삶을 본받고 구원의 길로 들어서는 상징으로 여긴다. 십자가 앞에서는 그 어떤 오만함도 허용되지 않으며 오직 겸손만이 통한다. 악은 범접치 못하며 선이 장악하고 있다.
말하자면 선과 악의 교차점이라고나 할까. 십자가의 어두운 그림자 뒤에는 악령이 항상 대기하고 있어 인간의 조그마한 허점이라도 보이면 침투해 들어오려 하고 있다. 잠시라도 긴장의 끈을 늦추면 악령의 유혹에 점령당해 버린다.
십자가의 길은 그만큼 어렵고 힘든 일이다.
그런 십자가가 이미 바둑에는 존재하고 있었다. 서양의 십자가가 나타나기 훨씬 이전부터 십자가가 있었던 것이다.
바둑판 자체가 십자가이다.
바둑판을 보자.
19줄의 선의 교차점이 전부 십자의 교차점이다. 바둑돌을 네모진 공간에 두는 것이 아니라 선의 교차점에 두고 그것을 집으로 환산한다. 네모진 공간은 허하다. 그러나 선의 교차점은 두선이 만나므로 허하지 않고 꽉찬 밀집형이며 어
떤 빈틈도 허용되지 않는다. 선의 교차점은 완벽하다. 한점 한점이 십자가의 길
목이다. 한걸음씩 움직일때마다 고행의 숲속으로 들어간다. 고난의 어려움을
알면서도 과감히 들어간다. 북한의 ‘고난의 행군’과 비교하면 난센스일지 모른다.
바둑의 숲속은 십자가의 수풀로 뒤덮여 있다. 한번 발을 내디디면 한없는 미
로를 헤매인다. 두려움과 기대를 안고 뛰어 들지만 매번 그곳은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늪속이다.
사람의 정신을 롤러코스터처럼 휘둘리고 혼을 빼간다. 생각의 고통으로 상처
를 받고 피를 흘린다. 온몸이 긁히면서도 정신없이 그 길을 찾아나선다. 전신이
땀에 젖고 피로에 지쳐 드디어 생각의 끝에 다다르면 겨우 바둑의 숲을 빠져나
온다.
그 끝에 참으로 시원한 바람이 맞이하고 드디어 자유의 몸이 된다. 바둑의 숲
속에서 정화되어 한단계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간다. 다른 찜질방에서는 맛볼수
없는 고도의 수준높은 정신의 찜질방이다.
바둑은 이처럼 모든 사람을 십자가가 있는 숲속, 그 뜨거운 찜질방으로 담금
질한다. 그 속을 거쳐 나온 사람은 모두가 새롭게 태어난다.
예수가 바둑을 배웠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굳이 자신이 스스로 십자가를 짊어질 필요성을 느꼈을까.
아니, 서양에는 그때 바둑의 존재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동양에는 이미 오래
전부터 바둑속에서 십자가의 정신을 온몸으로 체득하고 있었는데 서양에는 없
었다.
예수가 서양쪽에 등장한 것도 그 때문이 아닐까.
서양 사람이 복잡한 것은 싫어하고, 단순하고 편리한 것을 선호하는 것 때문
에 십자가를 지고 죽음을 택한 것은 아닐까. 그리고 부활한 것이 아닐까.
그들 앞에서 눈으로 보고 믿으라고 했을 것이다. 자신이 못박힌 곳을 보고, 피
흘린 자국을 보고, 숨이 끊어져 죽는 것을 보고 그리고 사흘뒤에 살아난 것을
보고 믿으라고 했을 것이다.
현장에서 직접 본 사람들은 믿었다. 그러나 전해들은 사람들은 의심하고 믿
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상하다. 자기가 직접 만져보고 느껴야만 믿는 습성이 있
다. 예수의 십자가를, 예수의 부활을 2천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직접 보아야
만 믿겠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렇게하자면 과학의 기술이 고도로 발달되
어 타임머신을 타고 갈 날을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타임머신을 대신하는 것이 바로 바둑이다.
바둑을 두면 2천년이 아니라 그 이전까지 아니 영원을 넘나들 수 있다.
바둑판 위의 십자로에서, 361점의 그 어떤 곳에서부터 시작해도 된다. 바깥에 비가 오든 말든, 전쟁의 포화 소리가 들리든 말든 시작하면 된다.
예수는 모든 사람을 평등하다고 가르쳤다. 그리고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쳤다.
바둑이 그렇다.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고, 자신에게 상처를 준 패배를 안긴 상대방을 사랑하도록 만든다. 처음엔 분하고 미워하지만 잠시 뒤면 또다시 그를
사랑하게 되고 바둑판 앞에 마주 앉는다.
바둑이여. 오늘도 서로 사랑하자.
상대가 누구이든 남여노소 할것없이 설레는 맘으로 바둑판 앞에 마주 앉자.
세상의 모든 상처를 보듬고, 바둑의 숲속에서 맑고 건강한 새로운 세계와 만나자.
예수의 그 지극한 사랑과 희생의 흔적이 무수히 널려있는 바둑의 십자가를 응시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