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가 죽었다는 말에 나는 충격을 받았다.
며칠전에 죽었는데 원인은 간암이었으며 독신으로 살아 온 터라 찾는 이도 거의 없어 주위의 도움으로 화장을 하였다고 한다.
K를 본지가 달포 전이었으니까 그의 죽음이 믿기지 않았다. 그때 시내 모 기원에서 바둑을 한수 배웠는데 석점을 접고도 그의 빠른 속기와 자유 분방한 수순에 휘말려 이기기가 쉽지 않았다. 그게 그와 마지막 대면이 된 셈이었다.
K는 H시에서는 최고수로 알려져 있었다. 아니 H시만이 아니라 전국에서도
알아주는 고수였다. 언젠가 그와 소주를 한잔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K의 내력을 조금 알 수 있었다.
K의 가정은 꽤 부유한 편에 속했다. 아버지가 중앙부처의 고위공무원이었고 집안의 외아들로 서울에서 성장한 그는 가족의 큰 희망이었다. 그런 그가 아버지와 등을 돌리는 일이 생겼다. 그것은 중학교때였는데 그가 우연히 바둑을 배우게 되면서부터였다. 그는 학교에서 전학년의 수위를 다투었는데 바둑을 알게 되면서 성적이 조금씩 떨어져갔다. 부모가 그 연유를 알고는 바둑을 끊을 것을 종용하였다.
하지만 그는 이미 내심 바둑의 길로 가겠다는 마음을 굳혔다. 바둑을 배운지 일년도 안되어 강1급으로 성장하였고 그는 중학생의 신분으로 입단대회에 참가하였다. 그러나 입단의 문턱에서 그는 번번히 좌절되었다. 학교 성적은 말할 것도 없이 추락하였고 그의 부모는 그를 자식으로 여기지 않았다.
K는 가출 소년처럼 떠돌아다녔다. 그는 바둑만으로 먹고 살 수 없음을 깨닫고 다른 도박류를 배웠다. 마작, 화투 등. 그는 그쪽 방면에서도 수준급으로 발
전하여 숙식을 해결하였다. 그러나 바둑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그 뒤에도
여러차례 입단대회에 참가하였으나 결국 입단에 성공하지 못하였다. 바둑의 주
변에서, 먼저 입단한 사람들을 먼발치에서 바라보며 세월은 흘러갔다.
그는 그의 후발 주자들이 추격해 오는 상황에서 더 이상 진전이 없음을 깨닫고 입단의 꿈을 포기하고 말았다. 그것은 마치 프로 야구선수의 꿈을 안고 시작한 학창시절의 야구선수가 프로에 입단하지 못하고 변방으로 전락한 것과 흡사한 것이었다. 모든 것을 바둑에 쏟아 부은 열정이 쓸모없게 된 것을 알았을때 그는 말못할 허탈감에 빠졌다. 그는 그 허탈감을 기원을 들락거리며 그 주변에서 생을 이어왔던 것이다. 사범 노릇도 하고 하수들과 내기바둑으로 밥값을 충당하기도 하였다.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다른 도박으로 보충하였다.
K의 나이는 40년전 입단의 꿈을 꾸었다고 하였으니 60대 초반쯤 되겠다. 육십 평생을 바둑의 한을 안고 그렇게 간 것이다. 입단의 언저리에서 머물다가 술로 그 한을 풀면서 생을 마감하였다.
그런데, 세상에는 각 분야의 전문직 종사자가 있지만, 그들도 자기 나름대로의 열정을 불태우는 삶을 영위하다가 가지만, 유독 바둑 고수들의 죽음이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웬일일까. 정신적인 생각하는 치열한 삶이 타 전문직보다도 더한 때문은 아닐까. 타 직업군보다 숫자가 적은 희소성때문은 아닌지. 간혹 프로기사들의 부음이 전해질 때 그런 생각이 든다.
K의 죽음도 그렇다. K의 죽음이 더욱 애절한 것은 바둑때문에 부모와 결별하고 평생을 혼잣몸으로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기원의 변두리에서, 바둑의 노숙자가 되어 바둑의 어두운 그림자를 안고 갔기 때문이다. 그의 머릿속에 든 프로와 맞먹는 바둑 고수의 향기를 더 이상 맡을 수 없는 안타까움 때문이기도 하다.
부디, 천상에서 바둑의 원점인 천원을 관조하며 바둑 왕국의 제왕이 될 것을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