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앞 교회 입구에 ‘참된 신앙은 회개와 믿음으로’ 라는 현수막이 붙 어 있다. 유명한 목사 한분이 와서 설교를 한다는 홍보를 대대적으로 하고 있었다.
오늘 아침 외출을 하려고 대문을 여는 순간, 교회 홍보용 전단지가 문틈 에 끼여 있었다. 얼핏 보니 ‘님은 먼 곳에 있지 않습니다, 바로 당신 곁에 있습니다. 늦기전에, 더 늦기전에 찾아보세요, 라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문구가 내가 외출하려는 목적과 맞는 것이었다. 왜 냐하면 ‘님은 먼곳에’라는 영화를 보러 가는 참이었으므로.
어쨌건 나는 영화를 보았다. 시골에 시집 온 처녀가 집안의 대를 하루 빨 리 이어야 한다는 시어머니의 성화에 못이겨 군대간 남편을 면회하러 갔는 데 실패하고, 다시 베트남 전쟁터까지 남편을 만나기 위해 목숨의 위험을 감내하며 온갖 어려운 과정을 거쳐 찾아가 결국 남편을 만난다는 이야기이 다. 김추자의 ‘님은 먼곳에’ 라는 노래를 극화한 것으로 보이는데 여주인공 의 연기가 일품이었다.
남편의 홀대를 극복하며 전쟁터까지 찾아가는 여주인공의 지아비를 향한 일 편단심이 가슴 뭉클한 감동을 주었다.
교회에서의 님은 주님, 하느님, 예수님을 의미한다. 표현은 다르지만 똑같 은 뜻이다. 모든 결혼한 남녀의 님은 자신의 배우자이다. 그리고 생활속에서 도움을 주고 받은 사람들의 님은 그 혜택을 서로 나눈 상대방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를 보고 온 뒤 나는 또다른 나의 님을 만난다. 나의 또다른 님은 인터넷 바둑이다. 나는 인터넷 바둑을 두다가 문득 집 앞 교회가 생각났다. 아까 들어올때에 교회 입구에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서울의 유명한 목사가 온다는 소식에 타처에서 사람들이 몰려든 모양이었다. 님은 먼곳에 있지
않다는 홍보용 전단지의 문구를 한번 음미하고 구경삼아 교회를 가보았다.
사람들이 입추의 여지도 없이 교회 안을 채우고 있었다. 평소에는 별반 다름
없는 교회로 보았는데 어디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온 것일까. 신앙의 열기가 느껴졌다. 목사의 설교는 엉뚱하게도 게임이야기를 하였다. 우리 주님, 나의 주님은 세상의 그 어떤 게임보다도 재미있어 주님에게 빠져들면 기쁨을 누리며 영원히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하였다. 살아서 죽지 아니할 것이요, 죽어서도 다시 살 수 있는 희망과 부활의 게임 법칙을 마련해 놓고 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인터넷 게임보다도 주님과 함께 하는 게임을 늘 해야 할 것이며 거기에서 죽음을 초월하는 능력을 볼 것이며 영생복락하는 행운을 잡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목사의 설교는 아마도 사람들에게 알기 쉽게 자신의 뜻을 전달하려는 것 같았
다. 목사의 진지한 설교는 듣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 힘이 있었다. 사람들은 중간 중간에 아멘을 수시로 부르짖으며 목사의 말에 동조하고 있었다.
나는 집회가 끝나기 전에 미리 빠져나왔다. 목사의 말에 의하면 나도 영원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다. 인터넷 바둑은 세상의 그 어떤 게임보다도 재미있고
흥미진진하며 사람을 빠져들게 하는 마력을 갖고 있다. 종교가 부처님이나 예
수님이 게임을 주도하는 것이라면, 바둑은 누구나 자신이 주도하며 상대방과 숨가쁜 대화를 나누며 긴장의 도를 매순간 놓지 않고 있다. 그 긴장의 연속성이 바로 영원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거기에 탐닉하면 자신의 몸의 어떤 고통도, 죽음의 병마도 잊고 그것을 뛰어 넘는다. 비록 그 순간만은 해탈의 경지에 이르며 환희와 희열을 맛본다. 돈을 걸지 않아도, 마약을 복용하지 않아도 그와 같은 맛을 만끽할 수 있다. 이보다 더 좋은 마약이 있을까. 이보다 더 좋은 종교가 있을까.
교회의 목사는 바둑을 알고 하는 얘기일까. 아마도 바둑을 알았다면 게임의
왕은 주님이 아니라 바로 바둑을 두는 모든 사람들일 것이라고 했을 것이다. 종교는 부처님이나 예수님을 찾아가서 구원을 하지만, 바둑은 누구나 쉽게 접하
며, 스스로 구원자가 된다. 스스로 바둑판을 관조하며 그 깊고 드넓은 우주 속으
로 침잠하면서 우주를 관장하는 주인공이 된다. 그리고 마침내 삶과 죽음을 초
월하며 영혼의 환희만이 가득 찬 기쁨으로 시공을 넘나든다. 거기에서 태초에
천지가 창조되는 광경을 목격하게 되며 끝도 없는 저 바둑의 지평선으로 달려간
다.
맨처음 바둑의 침묵에서 시작된 한점 흑백의 바둑알이 천지의 명암을 이루며
끝이 안보이는 시간의 철로위로 찰나보다 빠른 속도로 사라진다.
그 이후 나의 존재는 없어지며 보이지 않게 된다. 나는 나의 님인 바둑과 함께
그렇게 사라져버린다. 아니 다시 나는 금새 나라는 존재가 나타나며 님도 함께
보이게 된다. 그것은 인터넷 바둑 나가기를 클릭하고 다시 내 앉은 자리를 확인
할 때이다. 바둑의 우주선이 내 눈 앞에서 어른거리며 뜨거웠던 엔진을 식히고
있다. 끝도 없는 우주를 유영하고 돌아온 나는 좀전의 패배를 아쉬워하며 출출
한 배를 채우기 위해 냉장고 문을 열었다.
그렇다, 앞으로의 과제는 먹지 않고도 바둑을 둘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는 것
이다. 그래야 바둑을 주관하는 진정한 주인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