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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지럼 증세가 시작된 것은 사흘전부터였다.
처음에는 별 대수롭잖게 생각하였으나, 오늘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려고 머리를 트는 순간 머리가 어찔하였다. 몸을 일으켜 앉자 머릿속이 비잉 빙 돌면서 정신이 아뜩하였다. 그대로 쓰러질 것 같았다.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서자 현기증 때문에 곧바로 다시 주저앉았다. 아내가 불안한 표정으로 병원에 갖다오라고 하였다.
나는 아침밥을 먹는둥 마는둥 하고 K병원을 찾았다. 젊은 의사는 영양이 부족하다던가, 귀에 이상이 있다던가 하면 어지러울 수 있으며 3일치 약을 처방해 주면서 그후에도 어지러우면 뇌사진을 한번 찍어보자고 하였다.
3일이 지나도 별로 달라진 점이 없어 뇌사진을 찍어 보았다. 의사는 의아해하면서 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뇌하수체 공간에 작은 종양이 생겼다고 하였다. 일종의 암으로 불리울수도 있지만 그대로 놔두면 위험할 수도 있다, 좀 더 큰 병원으로 가서 정밀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좋겠다, 소견서를 써 줄터이니 갖고 가보라고 하였다. 충격을 받았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아내에게 별다른 일은 아니라고 말하고 대도시에 있는 M병원으로 갔다. M병원에서도 비슷한 진단이 나왔다. 고난도의 수술이 요구되며, 수술 비용이 수천만원대라고 하여 나는 그냥 물러나오고 말았다. 돈도 돈이지만 약간의 어지럼증 때문에 수천만원을 써야 한다는 것이 내게는 큰 부담이었다. 약물 치료 처방만 받고 일주일후에 다시 가보기로 하였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우연히 어느 골목 입구에서 바둑 광고를 보게 되었다.
- 바둑의 신비. 당신의 아픈 곳을 치유해 드립니다. 가슴이 두근거립니까? 고요한 평화를 드립니다. 머리가 아프십니까? 당신의 뇌를 맑게 해드립니다. 복잡한 스트레스로 응어리진 당신의 두뇌. 바둑으로 치료해보세요. 바둑의 새로운 접근법. 그 비법을 체험해보세요.
눈이 번쩍 띠는 광고 문구였다. 뇌를 맑게 하고 치료까지 해준다니. 솔깃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바둑을 잘 둘 줄 모른다. 거의 초보 수준에 속한다. 하지만 광고문구대로라면 바둑을 배우고 싶은 욕망이 솟구쳤다. 속는 셈치고 광고문에 적힌 주소지를 찾아갔다.
‘S바둑도장’은 시내 변두리 지역에 위치해 있었다. 5층 건물의 4층에 있었는데 내부장식을 건물 입구부터 산속의 절간을 연상하듯이 꾸며 놓았다. 출입구를 열고 들어가니 바깥의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고 고요한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기분이었다.
바둑두는 방은 여러개로 나누어져 있었고 칸마다 방음벽을 설치해 다른 곳으로 소리가 전달되는 것을 방지하고 있었다. 담배는 일체 금하였고, 혼자 좌선을 하면서 바둑을 연구하는 사람도 있었고 2명 또는 서너명씩 들어앉아 있는 곳도 있었다. 안내석에는 각방의 배치도와 방별 용도와 사용중인 방을 수시로 확인하는 내부 시스템이 작동되고 있었다. 초보반, 중급반, 고급반, 참선반 등으로 구분되어 한달 수강료는 20만원이었다. 그렇게 비싼편은 아니어서 나는 참선반에 등록을 하였다.
원장과 마주앉아 잠시 상담을 하였다. 사실 바둑에는 거의 문외한이며, 머리 어지럼증이 있어 그것을 치유해 보고 싶은 마음에 들렀다고 하였다. 흰턱수염을 곱게 다듬은 도사같이 생긴 사십대 중반의 원장은 정말 잘 오셨다고 하면서, 이곳은 현대 도시인들의 복잡한 생각들을 맑게 다듬어주며 정신적인 활력을 공급해주는 곳이라고 하였다. 또한 바둑으로 머릿속의 나쁜 종양까지도 치유 가능한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본인의 의지 여하에 달려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우선 뇌사진을 한번 찍어보자고 하였다. 나는 병원도 아닌데 무슨 뇌사진을 찍느냐고 하자, 여기 자체에서 구비한 타병원에 뒤지지 않는 첨단 기기가 있다고 하였다. 원장의 안내로 간 곳은 과연 뇌사진을 찍는 뇌영상실이 있었다. 입구에는 컴퓨터 화면이 있고 나는 영상실안에 앉았다. 머리에 촬영장치를 장착하고 원장이 잠시만 그대로 있으라고 하면서 문을 닫고 밖으로 나갔다. 곧이어 머리에 장착한 기구가 회전하면서 녹음된 여자의 안내말이 들려왔다.
-안녕하십니까? 저희 바둑도장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바둑도장에서는 손님의 머리를 식혀드리고 머릿속에 잔재된 이물질까지 제거해드리는 최첨단기법으로 손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손님의 뇌사진 촬영을 방금 마쳤사오니 편한 마음으로 대기석으로 가 계십시오.
원장이 문을 열고 들어와 머리에 장착된 기구를 풀었다. 원장은 사진을 확인하면서 좀 특별한 치료를 요한다고 말하였다. 나는 참선반으로 안내되어 원장의 지도를 받았다. 바둑의 기본원리와 바둑의 행마법, 삶과 죽음, 그리고 바둑의 역사에 관한 것도 배웠다. 하루에 2시간씩 집중적인 배움의 시작이었다. 단전호흡과 심리요법도 곁들였다. 바둑도장에서 특별히 권하는 식이요법까지 실천하였다.
한달이 지난뒤, M병원을 찾았다. 담당 의사는 왜 제 날짜에 오지 않았느냐고 질책하였다. 사진을 다시 찍어보자고 하였다. 그런데 사진을 본 의사는 고개를 갸웃둥하였다. 이상하다는 표정이었다.
- 상태가 상당히 호전되었어요. 전보다 완연히 달라졌는데요. 놀라운 일이로군요. 믿을수가 없는데요?
나는 멀뚱거렸다. 전에는 수천만원대의 수술비용으로 걱정을 했는데, 이제 와서 괜찮을정도라니 나 자신이 믿기지 않았다. 바둑수업을 받고 있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의사들은 그런 것을 아예 싫어할 것이니까. 순수한 과학적인 접근법으로만 대화가 가능할 것이니까.
나는 내심 우쭐해하면서 병원을 나와 S바둑도장으로 향했다. 바둑 원장은 내 말을 전해듣고 자기 일처럼 기뻐하였다. 자기는 전문 의학도는 아니지만 바둑의 신비를 오래전부터 알고 체험한 것을 널리 전파할 뿐이라면서 머지 않아 나의 병세가 완전히 나아질 것임을 믿는다고 하였다.
나의 어지럼증은 거의 없어졌는데, 다만 뇌속의 종양은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하다고 하여 지금도 계속 바둑도장에 나가고 있다.
내가 바둑에 대해 얻은 결론은 다음과 같다.
바둑은 생각하는 힘이며, 삶과 죽음의 경계선상을 넘나드는 상상의 신이며, 삶의 장애가 되는 그 어떤 것도 치유할 수 있는 불가사의한 능력을 갖고 있다. 따라서 현대과학이 특히 뇌의학 분야에서 풀어야 할 새로운 연구과제이며 국가적인 프로젝트를 갖고 집중적인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바둑은 오늘도 내 시야를 통과하여 나의 뇌속으로 침잠해 들어온다. 내 머릿속을 감돌며 세척해주고 흑백의 조명으로 명쾌한 결론을 내려준다. 결론은 개운하며 승패를 떠나 새로운 미지의 땅에 도달케 한다. 거기에서 나는 또다른 삶을, 새로운 억겁의 시간속으로 여행을 떠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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