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어스름에 눈을 뜨자 옆자리가 허전하였다. 남편이 보이지 않았다. 벌써 세번째였다.
어디로 갔을까?
짚이는 데가 없었다. 간밤에 술을 먹고 고주망태가 되어 들어왔다면 술국을 먹으러 갔을 법도 한데 어제는 다소곳이 들어와 나와 같이 TV 드라마까지 보았다. 방안에서 드라마를 같이 본다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 작은 방에 가서 하릴없이 잡지를 보던가 일찌감치 잠을 자는 것이었다.
남편은 이십년동안 다니던 회사를 구조조정 바람으로 작년 여름에 나와 별다른 직업없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수입도 없이 밥을 축내는 것을 미안해 하는 눈치였지만, 머잖아 적당한 일자리가 나올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남편은 아침이면 회사에 출근하듯이 어디론가 나가서 저녁이면 들어왔다. 내게 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의도인 것 같았다. 나는 남편의 마음을 헤아려 약점을 건드리지 않았다. 막내가 대학교를 마칠때까진 나도 무슨 일인가 해야 했다.
신문광고를 보고 선택한 것이 흔한 전자부품 공장이었는데, 일당은 적어도 고정적으로 일을 할 수 있어서 몇달째 다니고 있지만, 그게 그리 쉬운 것이 아니었다. 허리 통증에 관절염, 손마디까지 아팠다. 일터에서 돌아오면 만사가 귀찮았다. 남편은 스스로 저녁을 챙겨먹는 일이 없어 짜증나는 일이 다반사였다. 좀 뒤늦게 들어오는 남편을 보느라면 측은한 생각도 들었지만 도무지 집안 일은 관심 밖이었다.
최근에는 집에 들어오는 시간이 전보다 더 늦었다. 바깥의 일은 물어보지 않았다. 그냥 무사히 들어온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그런데 얼마전부터, 용돈을 좀 올려달라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매일 5천원이었는데 1만원정도는 되야 되겠다는 것이었다. 남편의 속을 알 수 없었으나 너무 통제를 하면 좋지 않을 것 같아서 일단 올려주기로 하였다. 그런데 용돈을 올려준 뒤 며칠도 안되어 급하게 쓸일이 있으니 십만원만 달라는 것이었다.
- 여보, 어디 쓰려고 그러는데?
- 전에 회사 다닐적 직원 집에 초상이 나서 말이야. 부조도 해야 되고 해서…
남편의 말이 미심쩍었지만 속는 셈치고 주었다.
남편이 새벽에 없어진 것은 십만원을 준 뒤 이틀만이었다.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공장과 집안 일로 힘에 겨워 새벽 잠마저 설치니 신경이 곤두세워졌다. 몽유병이라도 걸린 것일까?
그날은 새벽에 나간 남편이 내가 출근할 때까지, 아니 아예 저녁 늦게서야 돌아왔다. 아내의 고충을 조금이라도 헤아려준다면, 잠이라도 편하게 자도록 나둬야 될 게 아닌가. 수면방해만큼 싫은 것은 좀처럼 없을 것이다.
남편의 새벽 외도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무슨 까닭인지 알아야 했다. 남편의 뒤를 밟기로 했다.
토요일 새벽, 남편의 거동이 시작되었다. 나의 곤한 잠을 확인하는 듯 하더니 남편은 소리없이 옷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갔다. 시계의 시침이 3을 향해 가고 있었다. 나는 형사처럼 뒤를 쫓았다. 가로등 불빛이 남편의 뒷모습을 쓰다듬고 있었다. 골목의 곳곳에 어둠이 잠복하여 남편을 수시로 삼켰다가 뱉었다. 남편의 눈에 띄지 않게 미행하는 것이 무슨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새벽의 찬 공기가 살갗을 파고들었다.
남편과 숨바꼭질하며 십분정도 따라갔을까. 남편은 역전 골목 뒷쪽으로 숨어들었다.
그곳은 사창가가 더러 있는 으슥한 곳이었다. 남편이 사창가를? 그것도 이 새벽에?
나는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남편을 바싹 뒤쫓았다. 남편이 들어간 곳은 골목을 빠져나가 큰도로변 왼편 맞은쪽에 있는 S목욕탕 건물이었다. 돌출간판에 「24시간 영업」이라는 글귀가 붙어있었다. 목욕탕도 24시간 영업하는 곳이 있는가라는 의아심보다 남편이 왜 이시간에 목욕탕으로 들어가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물론 들어갈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왜 숨듯이 사라져버리는가. 나는 목욕탕 입구에서 잠시 서성거렸다. 어떻게 할 것인가. 들어갈 것인가, 말 것인가.
잠시후 매표구 창문을 두드렸다. 엎드려 잠을 잔 모양인지 중년 사내가 눈꺼풀을 내리 깜박이며 얼굴을 내보였다.
- 여기, 여탕에 사람이 있습니까?
- 여탕에는 없어요.
- 남탕은요?
- 남탕요?
사내는 눈을 치뜨며,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 남탕에 사람들이 있긴 한데. 여자분이 남탕은 왜 찾아요?
나는 대답하기가 민망하여 이 시간에 영업이 되는가 어쩐가 궁금해서 그렇다고 하면서 얼버무렸다. 그러나 남편이 목욕탕으로 들어간 것을 확인한 이상 그냥 돌아갈 수가 없었다. 남편은 목욕을 하러 갈 행색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목욕탕 안에서 무언가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직감하였다. 일단 목욕탕 밖으로 나왔다. 매표구 안의 사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졸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나는 허리를 굽혀 매표구를 지나쳐 윗층으로 올라갔다.
2층 출입구 유리문을 통해 비춰진 모습.
출입구 왼쪽은 목욕탕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고, 오른쪽은 별도 칸막이로 막아 대여섯명이 앉아 바둑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닌가. 웃통을 드러내고 팬티 차림으로 있는 사람도 있고, 평상복을 입고 있는 사람도 있었다. 넥타이에 양복을 입은 사람도 있었다. 몇개의 바둑판이 그들 앞에서 바둑돌과 장단을 맞추고 있었다. 각 바둑판 옆에는 만원짜리 지폐가 재떨이 밑에 여러장 꽂여있었다. 그 옆에는 소주병과 술잔, 먹다 만 안주거리도 있었다.
남편의 모습도 보였다. 심각한 얼굴이었다. 무언가 상황이 좋지 않은 모양이었다. 담배 연기가 남편의 얼굴을 부옇게 감싸고 있었다. 남편의 바둑판 옆에도 만원짜리 몇장이 놓여져있었다. 저 돈이, 초상집에 간다고 빌려간 돈이 여기서 담배연기에 질식당하고 있지 않은가. 새벽같이 사라져 찾아온 것이 겨우 이곳이었던가. 나는 뼈빠지게 한푼이라도 벌어보려고 온몸이 부서져라 일하는데 이곳에서 이런 꼬락서니라니. 울화가 치밀었다. 뒷골이 뻐근하게 저려왔다. 성질이 급한 나는 더 이상 이 광경을 묵과할 수 없었다.
문을 밀치고 들어가 남편 앞에 우뚝 섰다. 난데없는 침입자를 보고, 모두가 화들짝 놀랐다. 남편의 얼굴이 노랗게 변했다.
- 다, 당신이 어떻게?
- 그래, 여기가 초상집이야? 사나 새끼가 낯짝이 있지, 여기서 이 무슨 지랄이야? 그래 오늘 초상나게 해주까? 이 바둑인지 뭔지 이 지랄할라꼬 날 속였나?
화가 났을때 돌변하는 내 입에서 욕이 저절로 나왔다.
나는 남편 앞에 놓인 바둑판을 엎어버렸다. 돌들이 자지러지는 소리를 내며 흩어졌다. 만원짜리 지폐가 허공을 날았다.
- 어, 아지매 내돈, 내돈이야. 와 이라요? 여자가 남탕에는 우예 들어와가지고…
- 그래, 당신들 꼴보러 왔수다. 앞에 ×만 차만 다가? 값을 해야지, 값을. 모두들 하나같이 이게 무신 꼴이라? 놀음도 분수가 있지. 여긴 완전히 도박판이네. 담배 연기에 술냄새하며. 잠도 안자고 이 무슨 꼴이라. 전부들 보이 똑같네 똑같아. 집에서 식구들이 얼마나 기다리겠노. 당신 빨리 안일어날끼라? 안일어나마 내 이거 확 던지뿐다?
내가 재떨이를 들고 설치자 남편은 어쩔수없이 엉거주춤 일어났다. 남편이 돈을 챙기지 않자 내가 돈을 챙겼다. 상대방 남자가 당황하였다.
- 이 바둑은 내가 이긴 거라요. 그 돈 내끼라요, 아지매.
- 아저씨, 중간에 끝난거잖아요. 반반씩 가리마 되잖아요. 안그라마 경찰에 신고하까예?
- 아, 아이라예. 돈 만원 상간에 신고는 무슨…
나는 남편을 앞장세워 목욕탕을 빠져나왔다. 매표소 중년 사내가 무슨 일인가 하고 뛰어올라와 멀뚱거렸다. 사내들의 볼멘소리가 귓가에 맴돌았다.
…아따, 그 아지매 대단하네. 이런 난장판은 생전 처음이네 처음이라. 아휴 그자석 마누라한테 꼼짝도 못하는구마. 어이 니 돈 좀 땄나? 술값도 못견졌제? 오늘 기분 확 잡쳤다 아이가 씨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