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명품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 가짜 명품까지 활개를 치고 있다.
진짜 명품이라면 가격을 불문하고 남의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사버린다. 가진자의 권리이긴 하나, 절제되지 않은 생활습관은 분명 문제가 있는 것이다.
바둑알에도 명품이 있을 것이다. 조개로 만든 것이 비싸다고 하고, 옛날에는 마노와 비취로 만든 것이 고급 명품에 속했던 것 같다.
그러나 내가 알기에는 그것보다 더 귀하고 가치있는, 참으로 희귀한 바둑알이 있었다.
H시에서 동남쪽으로 20킬로미터 쯤 가면 경북 성주경계 지점에 요수골이라는 깊은 골짝 마을이 있다. 그 마을에서도 더 깊고 외진 곳에 통나무 집을 짓고 살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하도 골짜기가 깊어 마을 이장도 와보지 않은 곳이었다. 내가 이곳을 찾게 된 것은 농지전용 신고가 들어와 어쩔 수 없이 현지 확인차 들어오게 되었는데, 거기서 통나무집을 지어 혼자 사는 홍현철이라는 기인을 만나게 되었다.
홍현철은 개량 한복을 입고 흰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머리는 산발에 가까웠고 나이는 서류상으로는 사십여덟인데 얼핏보면 칠십 노인으로 착각할 수도 있었다. 거실에는 벼루, 한지, 도자기, 서예, 서각 작품들이 어지럽게 늘려져있었다. 그는 나에게 한방차를 권하면서 서류를 잘 처리해 주었으면 좋겠노라고 하였다. 농지전용신고 처리도 안된 상태에서 제멋대로 집을 지은 것에 어이가 없었으나, 거실 한쪽 구석에 자리잡고 있는 바둑판을 발견하고는 마음을 누그러뜨렸다.
홍현철이 자칭 1급이라는 말에 나의 오기가 발동하여 즉석에서 바둑을 청하였다. 그러나 홍현철은 응하지 않았다. 나도 1급정도는 된다고 말하여도 다음 기회에 겨루자며 응하지를 않아 나를 조급하게 만들었다.
그 연유는 이러하였다.
홍현철은 자기가 보관하고 있는 바둑은 보통 것과는 다르다고 하였다. 바둑판이야 큰 차이는 없지만 바둑알은 그렇지않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보관용으로 혹은 장식용으로 간직하고 싶을 뿐이지, 특별한 일이 아니면 바둑을 두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내가 본 바로는 일반 바둑알과는 별반 다를 것이 없는데 무엇이 특별하다는 것일까.
홍현철의 얘기가 이어졌다.
그는 사실 이 골짜기에 들어오기 전, 유망한 중소기업의 사장이었다. 일년 매출액이 2백억이 넘는 튼실한 기업이었는데 갑작스럽게 수출길이 막혀 졸지에 회사가 부도가 나 도피하는 신세가 되었다. 몇 달간의 도피생활뒤 붙잡혔는데 악덕 기업주로 오인받아 2년간 옥살이를 하게 되었다. 그곳에서 귀하게 얻은 것이 이 바둑알이라는 것이었다.
그가 Y교도소에 들어간 것은 IMF가 시작되기 직전이었다. 당시 나라의 경제가 휘청거릴 징후가 곳곳에서 나타났었는데 그는 오히려 맘 편하게 감방에 갇혀있었다. 미결수에서 기결수로 바뀌면서 감방을 옮겼는데 운이 좋았던지 거기에서 바둑을 좋아하는 김영성이라는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김영성은 술자리에서 다투다가 사람을 죽게한 혐의로 상해치사죄를 적용받아 3년의 실형을 선고받아 잔여 형기가 1년 반이 남아있었다. 김영성의 바둑실력은 5급정도였고 허약한 1급이라고 소개한 홍현철을 바둑 사범격으로 극진하게 대우해 주었다. 바둑 덕분에 홍현철은 감방생활을 비교적 편하게 할 수 있었다.
김영성은 홍현철을 스스로 바둑사범으로 인정하고, 스승을 위해서 무엇인가를 해드리고 싶다고 하였다. 그리고는 자기가 지금까지 가장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비밀스런 것을 보여주었다. 그가 보여준 것은 놀랍게도 감방 바닥 한쪽 구석 밑에 감추어 놓은 바둑알이었다.
얼핏 보면 그냥 바닥일 뿐인데, 김현성의 손끝이 닿자 마술처럼 바닥이 열리고, 새알같은 흑백의 바둑알이 마치 암수를 연상하듯이 둥지를 틀고 있었다. 어떻게 바둑알을 모았을까? 매일 한번씩 검방을 하는데 어떻게 깜쪽같이 지나쳐왔을까? 궁금증이 구름처럼 일었다.
감방안에서는 종이로 만든 꼰바둑같은 것이 고작인데 정말 신기하였다. 김영성은 바둑알을 바둑 스승인 홍현철에게 선물로 주고 싶다고 하였다. 홍현철은 감읍하였다. 김현성은 그러나 아직 지금은 바둑알수가 모자라 자기의 출소직전까지는 모두 채워 놓겠다고 하였다. 덧붙여서 이 바둑알은 보통 바둑알과는 달리 사람의 정기가 서린 것이라고 하였다. 사람의 정기가 서리다니? 그건 또 무슨 얘기인가? 홍현철의 의문은 꼬리를 물었다.
김영성은 모범수로 분류되어 아침 출역시간이 되면 직원 식당에 배치되어 주방일을 보조하였다. 식당 옆에는 직원 휴게실이 있는데 거기에는 장기, 바둑 등이 있어 김영성은 이따금 옆에서 구경도 하고 청소를 해주면서 바둑알을 한두알씩 몰래 빼내왔던 것이다.
저녁 입방시에는 검신을 하기 때문에 그냥 가져 들어올 수가 없었다. 검신에서 적발이 되면 모범수가 취소될 뿐 아니라 끔찍한 독방에 갇힐 수도 있었다. 생각 끝에 바둑알을 뱃속에 넣기로 하였다. 처음 삼키기가 거북하였으나 숙달이 되니 괜찮아졌다. 삼킨 바둑알은 하루정도 지나면 항문으로 빠져나왔다. 지저분한 얘기일지 모르나, 김영성은 진지하게 말했다.
사실 감방에 갇힌 극한상황에서의 생활은 교도소 밖에서의 평범한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많이 있다.
김영성의 말에 의하면, 항문에서 바둑알을 뽑을때 그는 일종의 성취감을 느낀다고 하였다. 오장육부의 정기를 받아 그의 몸속을 통과해 나온 바둑알은 마치 산모가 아기를 순산하듯 참으로 귀한 존재임이 틀림없었다.
그는 화장실에서 거의 매일 저녁 한두개씩 바둑알을 낳았다. 김영성은 그렇게 일년여동안 2백개가 훨씬 넘는 바둑알을 재탄생시킨 것이었다. 상식을 뛰어넘는 김영성의 행동에 홍현철은 감탄할 따름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홍현철이 성탄절 특사를 받아 먼저 출감하게 되었는데, 바둑알을 어떻게 가져 나올 것인가였다. 홍현철은 고민에 빠졌다. 제자의 선물을 그냥 두고 가기에는 너무나 애석하였다.
스승의 마음을 읽은 김영성은 홍현철에게 돈이 좀 있는가 하고 물었다. 홍현철은 교도소에 들어올때 밖에서 쓰다 남은 돈과 면회왔던 친구들이 영치시켜 놓은 돈이 수십만원은 족히 될 것이라고 말하자, 김영성은 그만하면 충분하다고 하면서 이 Y교도소 안에서는 돈이면 거의 다 해결된다고 웃음을 띄었다.
며칠뒤 그는 모범수 반장을 통해 직원에게 손을 써놓았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그리고 소내 목공장에 부탁해서 만든 바둑판 한 개도 가져갈 수 있도록 해놓았다고 하였다. 홍현철은 또다시 감읍하였다. 바둑을 잘 둔 덕분에, 아니 제자를 잘 만난 까닭에 홍현철은 세상에서 그 어느 것보다 귀한 것을 가질 수 있었다. 수백개의 바둑알을 낳은 김영성은 산기어린 푸석한 얼굴로 스승과의 작별을 못내 아쉬워하였다. 자기가 출소하면 꼭 한번 찾아가 감방 안에서 닦은 실력을 검증받아 보겠다고 다짐하였다.
홍현철의 얘기를 끝까지 더 들을 수가 없었다. 퇴근 시간이 넘어가고 있었다. 산골짝의 해는 더욱 짧아 이미 어둠의 옷자락이 창밖에서 기웃거렸다. 나는 바둑알을 다시 한번 만져보았다. 느낌이 뭔가 다른 것도 같았다. 손끝에서 예사롭지 않은 감촉이 전달되어 왔다. 사람의 몸안을 거쳐 나온 이 수백개의 알이 이 세상의 바둑세계를 새롭게 관조하는 것은 아닐까. 부처님의 사리를 숭배하듯이 이 바둑알이 세상에 널리 알려진다면 사람들의 발길이 모여들지도 모른다. 다소 흥분되기 시작한 마음을 추스렸다.
저녁을 먹고 가라는 홍현철을 뒤로 하고 어둠에 잠기기 시작하는 산길을 나는 서둘러서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