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장인물
현균(顯均)
불우한 가정환경을 견디다 못하고 세상에 겉돌던 그는 골프장 캐디 일을 권유받는다. 캐디 교육을 받으며 그는 세상에서 가장 완벽하게 평등한 곳을 발견한 기쁨에 들뜬다. 골퍼들은 외부 세상에서의 명성과 관계없이 골프장에 들어서면 값비싼 자동차와 기사는 두고 동등하게 카트에 몸을 실어야 한다는 것과 공평하게 골프룰을 따라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코스관리팀의 용역사 사장이 그는 부러웠다. 열심히 일해서 돈을 모아 용역회사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동등하고 공평한 곳에서 직원들과 상생하며 기업을 운영한다는 상상만으로 그는 기운이 솟고 행복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믿음은 점차 퇴색하고 만다. 카트도로를 이용하는 모든 이들에게 불평등이 존재함을 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곳에는 자신과 같이 손님들에게 시달리는 동료들과 골프장을 유지하기 위해 이른 새벽부터 일을 시작하는 노동자들, 골프장 고객들의 배설물을 청소해야 하는 노동자들이 있는 반면, 자동차와 기사를 주차장에 두고 왔음에도 엄연하게 존재하는 좁은 카트 안의 정치적, 경제적 계급이 눈에 들어오고 있어서였다. 갈등과 번민에 휩싸인 그는 어느 날, 골프장 27홀의 모든 그린에 휘발유를 부어버린다.
각 그린의 노랗게 죽어버린 부분은 이런 글자들을 한 글자씩 나타내고 있었다.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꿈꾸며 살아내려던 청년 이제 삶을 포기한다.’
정애(情愛)
중산층의 가정에서 태어난 그녀는 세상이 자신만만했다. 대학시절 엄마의 권유로 시작한 골프를 배우던 중 그곳에서 만난 티칭프로의 삶에 대한 하소연을 듣고, 자신이 그를 일으켜 세워 프로 골퍼로 이끌어줄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그와 결혼하여 딸 민지를 낳는다. 그러나 그 허망한 자신감이 무너지고 이혼까지 하게 된 그녀는 학창시절 자신을 짝사랑하던 중견기업가의 아들 윤철과 밀회를 즐긴다. 어느덧 그녀는 그에게서 진심어린 사랑과 채워지는 욕망을 발견한다. 그러나 가정을 가진 그는 그녀를 음지에서 소유하기를 원한다. 아이가 자라고, 그의 본심을 확인 한 그녀가 자신을 키워준 부모님에게 돌아가려 하지만, 가족은 그녀를 받아들이지 않고 경제적인 도움마저 거절한다. 혼자 힘으로 아이를 키워야 하는 그녀는 수입이 좋고 자투리 시간이 많은 캐디 일을 시작한다. 삶을 즐기기로 작정한 그녀는 틈틈이 골프를 즐기며 고객들의 은밀한 접근에도 가끔 응한다. 그들은 그녀의 미모와 그녀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마성을 알아채고 있었다. 그녀는 그들 중 가장 매력과 재력이 넘치는 마성과 사실혼 관계에 들어서 몸의 섹스와 마음의 섹스를 함께 즐긴다.
마성(魔性)
그가 전처와 갈라선 이유는 단 한가지였다.
‘당신은 진정한 부부관계의 묘미를 부정하고 더럽게 여기는 것이 문제야.’
그가 전처와 헤어지면서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그만큼 그는 섹스에 진심이었다. 그리고 그 행위에서 진리를 구하고자 하였다. 정애를 만난 그는 그녀에게서 가능성을 알아보았다. 그는 그녀 자신에게 잠재된 마녀의 본능을 일깨우고 함께 즐길 자신이 있었다.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지만, 일찍이 인터넷의 위력을 알아 챈 그는 사이버공간을 현실과 연결시키는 사업모델로 탄탄한 경제적인 기반을 가지고 있었기에 나머지 삶의 목표는 마성이 깃든 섹스를 하며 사는 것이었다. 부모의 반응에 민감한 정애가 정식적인 결합에 반대하고 있지만 그는 사회적인 제도에 별 의미를 두지 않았다. ‘마성이 깃든 섹스’를 하며 살게 되었다는 만족감은 모든 제약을 상쇄시키고도 남는 것이었다.
윤철(胤掇)
정애를 사랑하지만 아버지를 거역 할 자신이 없다. 아니 아버지의 자산을 거부하지 못한다는 것이 더 옳았다. 전남편의 아이를 가진 정애는 현처와 헤어지고 자신과 결혼해줄 것을 원했지만, 그는 그녀를 그렇게까지 사랑하지는 않았다. 현실이 훨씬 중요한 것이었다.
아버지의 자산을 물려받으면 그때 모든 것을 보상해주겠다는 자신을 못 믿어 하는 그녀가 야속하기만 한 이기적인 남자. 분명히 동거남이 있다는 사실을 알지만 정기적으로 자신의 품을 찾는 정애를 거부하지는 않는다. 손해 볼 것이 없기 때문이다. ‘가슴으로 하는 섹스’를 하고 싶어 자신을 찾는다는 그녀가 그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연지(戀知)
현균의 허탈하고 깊은 슬픔에 잠긴 눈빛을 사랑하게 된 그녀는 그를 향한 고독하고 외로운 사랑을 한다. 하루의 삶이 만족하면 그만인 그녀에게 세상의 모든 부조리에 괴로워하는 현균은 차라리 외계인이다. 자신의 단순한 점을 마치 보상이라도 받으려는 듯이 그녀는 한없이 그에게 빠져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