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가 바둑판을 들고 공원에 가기 시작한 것은 지난주부터였다.
그는 이전에도 가끔 공원에 들러긴 했지만 그땐 그저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하릴없이 배회하는 정도였는데 불현듯 생각이 나서 바둑판을 갖고 나온 것이었다. 바둑을 사람들에게 각인시켜보자는 것과 자신의 바둑 실력을 은연중 드러내 보고 싶은 마음이 작용하였다. 또한 공원이 아니면 특별히 갈 데가 없는 탓도 있었다.
그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모 기원의 사범 행세까지 하면서 기원을 들락거렸는데 상식밖의 기이한 돌발적인 행동으로 기원 주인이 밀어내다시피 하여 쫓겨 났었다. 내기 바둑으로 손님과의 언쟁이 심한 것, 술이 조금이라도 들어가면 주취가 발동하여 주위를 언잖게 하는 것, 옷차림에 별 신경을 안 썼을 뿐아니라 야릇한 냄새를 풍기기까지 하여 상대편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는 것 등이 그 이유였다. 기원 주인은 그럼에도 적지 않은 기간 동안 그를 기원에 나오게 한 것은 세미프로급의 바둑 실력때문이었는데 그것도 점차 하수와의 잦은 대국으로 실력이 무디어졌고 꼼수나 속임수를 난발하여 그와의 대국을 피하는 사람이 많아 더 이상 필요치 않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바둑으로 맺은 인연을 끊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기원 분위기를 쇄신하기 위해서 어쩔수 없이 내린 결단이었다.
Y는 다른 기원을 기웃거렸으나 소문으로 익히 알고 있는 타 기원들도 받아 주지 않았다. Y는 차츰 생활이 궁핍해져 갔다. 기원을 출입할 때는 내기 바둑으로 용돈을 충당하였고 주인의 배려하에 숙식 정도는 할 수 있었는데 당장 먹고 자는 일이 문제였다. 그가 시의 변두리 판자촌에 얻은 월세방은 방값이 몇 달치 밀린 상태여서 방에만 틀어 박혀 있을 처지도 못되었다.
그는 가족과도 인연을 끊은지 오래였다. 젊은 시절, 이십대 초반 그는 서울의 모 명문대에 다닐 정도로 머리가 좋았지만 바둑을 알게 된 뒤 그에 심취해 공부를 등한시 하여 학교를 중퇴하였고 기원 주변을 돌며 생활하기에 이르자 가족들이 등을 돌리고 말았다. 그는 한때 프로의 문을 두드려 보려 했으나 자신의 실력을 스스로 과대평가하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그 꿈도 접었었다. 건강도 좋지 않았다. 기원에서 내뿜는 담배 연기를 수없이 맡아 온 탓도 있었고 운동부족, 영양결핍 등으로 몸이 많이 야윈 상태였다. 이빨도 성한 게 별로 없어 오십대 초반이었지만 늙은 노인의 합죽이를 연상시켰다. 그는 지금껏 병원이라곤 거의 가보지 않았다. 몸살 감기와 가벼운 통증 따위는 약국에서 약을 사먹는 것으로 해결하였고 될 수 있으면 병원 가는 것을 피했다. 경제적인 문제도 그랬고 병원에 가면 무슨 큰 병명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기도 했다. 모르는 게 약이라고 했던가. 그는 자신의 병에 대해서는 철저히 외면하고 있었다.
Y가 공원에 나가기 시작하면서 신경을 쓴 것은 옷차림이었다. 행색이 초라해 보이면 아무래도 사람들과의 접촉이 어려워질 것이므로 궁핍한 처지이지만 될 수 있으면 사람들에게 불쾌감을 주는 행색은 삼가하기로 했다.
Y가 공원에 바둑판을 갖고 나가자 처음엔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장기 두는 사람은 있어도 바둑 두는 사람은 없었다. 장기판 뒷면에 바둑판이 그려져 있는데도 이 공원에선 바둑돌은 아예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를 간파한 Y가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싶은 맘이 근질거려 휴대용 접이식 바둑판을 하나 사서 나가게 된 것이었다.
공원에 간 둘째날. Y는 외따로 떨어진 정자에 앉아 책을 보며 바둑돌을 놓았다. 시간이 좀 지나자 웬 사내가 다가와 구경을 했다. 뒤이어 또다른 사람이 옆에 앉아 관심을 보였다. 마치 호기심을 갖고 미끼에 다가서는 물고기처럼 사람들이 한둘씩 Y 주변으로 몰려들었다. Y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잠시 뒤 구경하던 한 사내가 말을 걸었다.
- 바둑을 잘 두시는가 보죠?
- 아, 네. 조금요.
- 몇급 두시지요?
- 한 일급됩니다.
- 일급이요?
사내는 놀라는 눈치였다. 주위의 다른 사람들도 같은 표정이었다. 사내는 좀 망설이는 듯 하더니 한판 둘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Y는 흔쾌히 좋다고 하였다. 사내는 백돌을 한웅큼 쥔 채 돌을 가리자고 나왔다. 자기도 일급이라는 뜻이었다. Y는 내심 불쾌했지만 첫 대면이라 흑돌을 한 개 올려 놓았다. 돌을 가린 결과 사내가 백, Y가 흑이었다. Y는 당황하였다. 실력의 유무를 떠나 기원에서 사범 행세를 한 자신이 처음 만난 사내에게 흑을 쥐고 둔다는 것이 몹시 언잖았다. 자존심이 상하였다. 허나 돌을 가린 이상 바둑을 두지 않을 수 없었다.
Y는 화점에 첫 착점을 하고 속기로 두어 나갔다. 사내의 돌 놓는 모양이 어설펐고 포석도 기본기가 없어 보였다. 처음 돌 놓는 것을 보면 바둑 실력을 대충 알아본다고 하지 않은가. 자신보다 한수 아래임이 분명했다. 사내의 손목이 약간 떨리는 것 같았다. 일급이라는 강자를 만나 내심 일종의 두려움을 갖고 있으렸다. Y는 자신감에 차서 속력 행마를 냈다. 마치 경마장에서 출발선을 떠난 경주마가 선두를 질주하는 것처럼 Y의 돌은 시원시원하게 판을 짜나갔다. 사내는 허급지급 뒤처져 따라오는 형국이었다. Y의 속도감과 힘차게 두드리는 돌소리에 실력이 확연히 드러나는 상황임을 관전자들도 짐작하는 것 같았다.
관전객은 발빠르게 움직이는 쪽에 후한 점수를 주게 마련이다. 느리게 대응하는 백에게 답답함을 느끼고 착점하는 모습이 왠지 실력이 모자라는 듯한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Y의 승리는 굳어져 가는 듯 했다. 네 귀를 선점하여 실리로 크게 앞서 나가고 있었다. 중반을 넘기고 종반을 향해 가는 시점에 중앙 전투가 시작되었는데 Y의 손놀림은 싸움에도 얼마든지 자신이 있다는 듯 바쁘게 움직여 나갔다.
그러다가 어느 한순간 대마의 생사가 불분명하게 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Y의 손길이 멈칫하였다. 관전객들도 이 광경을 놓치지 않았다. 쉬임없이 재빠르게 움직이던 Y의 손길이 멈추자 흑대마에 뭔가 이상한 조짐이 생겼을 것으로 판단하고 두 대국자의 표정을 살폈다. Y는 홍조를 띠며 머리를 바둑판 앞으로 바싹 기울였다. 반면 사내는 입가에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담배를 한 대 물었다. 공원이 금연구역이라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내는 여유롭게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관전객들은 사내를 언잖게 보기 보다는 바둑판에서 전개되는 상황에 더 관심을 쏟고 있었다. Y의 흑대마는 살 길이 없어 보였다. 어떻게 이 지경이 되었단 말인가. Y는 자탄하였다. 잘 나가던 흑대마는 좌우를 분별하지 아니하고 앞만 보고 달리다가 예상치 못한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꼴이었다. 자신이 한수 위라고 생각한 자만심이 빚은 당연한 결과인지도 몰랐다. 어떤 프로 기사가 와도, 그리고 옛날 유행했던 ‘조남철 국수가 와도’ 풀 길이 없는 상황이었다. Y는 몇수 더 두다가 힘없이 돌을 거두었다. 어이없는 참패였다.
두 번째 판. 첫판의 영향때문인지 Y는 정신적으로 다소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나 계가 바둑으로 간 끝에 두 번째는 Y의 승리였다. 백을 쥐고 두집 반을 이겼다. 겨우 이긴 셈이었다. Y는 세 번째 판으로 승부를 가릴 것을 원했지만 사내는 다른 약속이 있다며 자리를 떴다. 패할 것을 미리 짐작하고 무승부로 남기를 바란 것은 아니었을까. Y의 생각이었지만 아쉬움이 가시지 않았다. 사내가 떠나고 난 뒤 관전객들 중 누구도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아마도 Y의 실력을 확인하고 대적하기를 꺼리는 것 같았다. 아무튼 그 날 Y는 무승부를 기록한 채 돌아왔다.
Y는 다음날도 회사에 출근하듯이 공원에 갔다. 그리고 그 다음날도. 거의 매일 빠지지 않고 공원으로 향했다. 사실 그는 바둑 손님을 끌어들여 내기바둑으로 용돈이라도 챙길 요량이었다. 그래야 끼니를 해결할 수 있으니까. 그러나 첫 손님이었던 사내 외에 그와 대국하자고 나서는 이가 없었고 사내도 그 뒤로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도 Y는 공원에 갔다. 아니 가야 했다. 가서 혼자라도 바둑을 두고 자신을 되볼아 볼 필요가 있었다. 여태껏 자신의 삶이 바둑과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였는데 자신의 불찰과 불성실한 언행으로 사람들에게 마음의 상처를 준 것이 후회되었다. 바둑을 오직 생계수단으로만 생각하지 않았던가. 바둑의 고매한 정신은 뒤로 한 채 내기만을 목적으로 일관하지 않았던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어쩔수 없었다고 해도 바둑을 노예처럼 너무 혹사시킨 것 같기도 했다. 바둑을, 내 손아귀에 쥐어져 있는 이 바둑판을 이제 자유롭게 놓아 줄 때가 된 것이 아닌가. 내 소유물이 아니라 바둑 그 자체로 놓여져 있어야 하지 않는가. 머리가 지끈거렸다.
어느날부터 Y는 바둑판 주변으로 모여드는 사람들에게 바둑을 설파하기 시작했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공원을 찾는 이들에게 바둑의 유용성을 얘기하였다. 그들에게 먼저 다가가 바둑에 대한 것을 하나씩 일깨워 주었다. 처음엔 낯설어 하던 사람들도 그의 적극적인 접근과 알기 쉬운 설명으로 그를 이해하고 받아 들였다. Y는 점차 자신감이 생겼다. 공원에 오는 어떤 보람같은 걸 느꼈다. 댓가를 바라고 생계수단으로 살아온 자신이 부끄러웠다. 바둑을 알고 있는 사람도, 모르는 사람도 그의 진정성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진지하고 열정적인 모습에 응원까지 해주었다. 밥을 사주는 사람도 생겼다.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그는 용기가 났다. 끼니를 굶어도 별로 배고프다는 느낌이 없었다. 하루 한끼로 버티기도 했으나 공허하지는 않았다. 월세방에서도 얼마전 쫓겨났다. 주인이 더 이상 관용을 베풀어주지 않았다. 하지만 공원이 그의 보금자리가 되었다. 그에겐 가족도 없고 친구도 없지만 바둑이 그의 가족이요 친구였다. 그는 자신의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공원을 찾는 사람들에게 바둑을 전파하기로 하였다.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같이 배운다는 입장에서 바둑판을 앞에 놓고 수담을 하는 것이다.
오늘도 P공원에 가면 Y가 바둑을 두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아니 바둑을 두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논하고 있다. 그의 주변에는 몇몇 사람이 둘러서서 바둑판을 내려다 본다. 천변만화하는 바둑판 속에 금세 빠져든다. 능숙한 Y의 달변에 관전객은 눈길을 떼지 못한다. 바둑판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작은 숲을 이룬다. 사람들은 바둑판을 떠날 줄 모른다. Y가 평생 바둑을 떠나지 못했듯이 사람들도 바둑판 주위에서 맴돈다. 둥근 돌탑 같다. 원심력으로 돌아가는 결코 떠나갈 수 없는 팽이추 같다. 영원히 떠도는 행성처럼.
그렇다. 우리 모두는 바둑 주변을 맴도는 노숙자이다. 바둑이 쉼터이고 안식처다. 너나 할 것 없이 바둑의 광야에서 노숙을 하며 오늘도 하루를 보낸다. 내일은 또 어떡할 것인가. 역시 바둑 옆에서 노숙을 시작할 것이다. 바둑이 주는 온기를 느끼며 좀 더 다가설 것이다. 바둑이 내뿜는 표현하기 힘든 오묘한 향기와 마력, 그 풋풋한 원시림같은 숲을 떠날 수가 없다. 산소가 없으면 단 한순간도 살 수 없듯이 바둑이 없으면 존재가치가 없다. 바둑이 있으므로 인간이 존재하고 인간이 존재하므로 바둑이 있다.
Y는 자신이 바둑 옆에 노니는 영원한 노숙자임을 자처하고 죽는 날까지 바둑을 두리라고 다짐한다. 그가 임종을 맞이할 곳도 당연히 바둑판 옆이 될 것이다.
Y는 바둑을 두기 위해, 바둑판 위에 수를 놓기 위해, 아니 공원을 찾는 사람들과 수담을 나누기 위해 변함없이 공원을 나갈 것이다.
내일도. 모레도. 그리고 또 그 다음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