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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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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석 종교
2014-05-16 오전 11:28 조회 8318추천 9   프린트|스크랩



   종교는 한마디로 요약하면 초인간적인 절대자(신)를 숭배하고 인간의 불안과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여 행복을 얻고자 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종교의 종류는 하도 다양하고 많아 그 수를 가늠하기 힘들다. 영생을 바탕으로 사후세계의 존재를 교리로 내세워 사람들을 이끌어 들이는 것이 대부분이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인간의 심리를 교묘히 이용한 측면도 없잖아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대개 죽고 난 뒤의 문제보다 눈 앞의 현실에 맘이 간다. 현실은 현금, 사후는 어음과 같은 것이니까. 이런 세태를 반영한 것인지 발빠른 상혼인지 몰라도 어느 날 우연히 흥미를 자극하는 색다른 문구를 목격하였다.


   K역의 길목에 사주 팔자 등을 봐주는 곳이 포장마차처럼 늘어서 있는데 광고 글귀 중에 유달리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글씨가 지그재그로 섞여 있어 유심히 관찰하지 않으면 그냥 무심코 지나쳐 모를 정도였다. 허나 내 눈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이름하여 <즉석 종교>였다. 사주 팔자 등 역술인들이 모인 곳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기엔 좀 특이한 문구임에 틀림없었다. 하긴 역술도 따지고 보면 하나의 학문이요 종교라고 칭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흥미로운 생각이 들어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 보았다. 반투명막으로 가리워진 천막 안에는 사람의 그림자가 기웃거렸다. 나는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그곳을 찾아 들어갔다.

   입구에 사십대로 보이는 아줌마 한 사람이 앉아 있고 등을 진 남자가 주인인 듯한 사내와 마주 보고 상담을 하고 있었다. 내가 들어서자 주인 사내가 눈 인사를 하고 입구쪽 의자에 앉을 것을 권하였다. 주인 사내는 흰 머리카락과 턱수염이 돋보였으나 그것을 제외하면 사십대 중반으로 보이는 꽤 젊은 축의 역술인인 듯 싶었다. 실내 모습을 훑어 보았다. 사주 팔자, 토정비결, 철학과 관련된 글귀가 이름표를 달 듯 천막 비닐 벽에 부착되어 있었다. 천장에도 꼬리표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 사주는 미신이 아니다. 운명의 나침반이다.

   - 팔자라고 체념하지 말라. 팔자를 옆으로 눞히면 무한대로 뻗어 나가는 미래의 열쇠 고리가 된다.

   - 토정비결은 한국 철학의 결정판!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 운명은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것이다. 운수대통이라는 큰 배는 내가 운전하는대로 따라 간다.….

   어떻게 보면 개발새발 낙서를 해 놓은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한쪽에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조그만 책상 크기의 가판대였는데 가판대 위에는 <즉석 종교>라는 글귀가 붙어 있었다. 그리고 그 밑에는 뜻밖에도 복권이 꽂혀 있었다. 자세히 보니 로또나 연금복권이 아니라 거의 다 즉석 복권이었다. 운명을 상담하는 곳에 복권이라니. 그것도 <즉석 종교>라고 써 놓다니 의아해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밖에서 보면 안에서 복권을 팔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안팎 주변 어디에도 복권을 판매한다는 내용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럼 복권은 왜 갖다 놓은 것일까. 복권이 팔리기를 기대하는 것인지 그냥 장식용으로 비치해 놓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상담을 끝낸 사람 중에 복권을 사가는 사람이 더러 있었다. 묘한 일이었다.

   내 차례가 되어 주인 사내 앞에 앉았다. 사내가 물을 한잔 들이키고 잠시 뜸을 들인 뒤 생년월일을 묻고 상담을 시작하려 할 즈음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 사실 전 즉석 종교라는 말 때문에 들어왔는데…. 즉석 복권을 갖다 놓은 걸 보니 좀 실망스럽네요.

   사내는 싱긋 웃음을 띠며 별 대수롭잖다는 표정을 지었다.

   - 그렇겠죠.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건 사실이니까요.

   - 사실이라니요?

   - 종교란 다른 말로 믿음과 같은 거요. 교회나 절에 가는 사람 치고 믿음 없이 가는 사람 있을까요? 물론 그냥 건성으로 가는 사람도 있겠지요. 하지만 대부분 어떤 믿음을 갖고 가지요. 복권도 마찬가지예요. 믿음을 갖고 복권을 사는 겁니다. 거액의 당첨을 기대하며 믿음의 표를 사는 겁니다.

   - 그건 일종의 요행을 바라는 거 아니요?

   - 종교라고 뭐가 달라요? 천국 또는 극락을 바라는 거 죽어봐야 알 수 있는 거, 살아 생전에는 결코 손에 쥘 수 없는 거 아닙니까? 내가 죽어야 그 답을 알 수 있단 말이죠. 내가 죽은 뒤에 답을 알면 뭣합니까? 살았을때, 내가 숨쉬고 있을때 그걸 직접 느껴야 되는 거 아닌가요? 그렇잖다면 별 의미가 없지요. 하지만 즉석 복권은 즉석에서 그 결과를 알 수 있지요. 그게 묘미라면 묘미지요. 순간의 짜릿한 기대감, 죽고 난 뒤의 허황된 믿음보다 차라리 이게 더 나을지도 모르지요. 일주일 단위로 나오는 로또나 연금복권도 시간이 너무 길다고 봐요. 일주일동안 사람들을 애타게 목마르게 하고 결과를 발표하는 것 전 개인적으로 좀 잔인하다고 봐요. 고작 몇사람의 당첨을 위해 수십, 수백만명의 기대는 물거품이 되고 말지요. 목마른 사람에게 즉석에서 시원한 물을 마시게 하는 즉석 복권이야말로 갈증을 해소시켜주는 가장 좋은 음료수지요.

   - 하지만 논리의 비약이 좀 심한 것 아닌가요? 복권을 종교에다가 비유한다는 것이 좀….

   - 생각하기 나름이지요. 고객을 위해 상담을 하고 있지만 나 자신도 즉석 복권에 더 맘이 가는 때가 있어요. 손님들 기다리기가 무료해지면 즉석 복권을 한 장 슬쩍 긁어보지요. 그것도 그냥 슬쩍 긁어 보면 묘미가 없어요. 마음 가짐을 제대로 하고 일순간이나마 맑은 정신으로 뇌를 충전시키고 동전으로 복권의 표면에 부드럽게 밀착시켜요. 살짝, 사알짝. 코팅된 표면이 서서히 벗겨져 나갈때 행운의 여신을 만날 기대감에 가슴이 뛰기 시작하죠. 행운의 숫자와 그림이 하나둘씩 나타나면 얼굴에 열기까지 오르면서 말이죠.

   - 그 다음엔요? 안되면 어떡하나요?

   - 되고 안되고가 문제가 아니지요. 몸에 올랐던 순간적인 열기가 사그라지는 그 희열을 느끼는 거지요. 안되면 또 즉석에서 사보면 되니까요. 우리의 삶이란 그런거 아닌가요? 순간 순간, 연속되는 것이 우리 인생이요 역사가 아니던가요? 지금 우리 시대의 모든 현상이 그렇게 변한 겁니다. 즉석 식품에서부터 즉석 조립식 주택까지. 손님들에게 설명하면 대부분 수긍하고 복권을 한 장씩 사가지요. 뭐 또다른 설명이 필요한가요?

   나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사내에게 반박할 뾰족한 답을 찾지 못했다. 사내는 복권 판매 수입이 상담 수입보다 오히려 더 낫다고 하였다. 그것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고도 했다. 고리타분한 인생철학 상담이나 뜬구름 잡는 식의 종교보다 복권에 내재된 현실적인 당첨금에 대한 믿음이 더 우세한 것이라고.

   내 뒤에 사람들이 대기하고 있어 더 이상 오래 얘기를 나눌 수가 없었다. 나는 다음을 기약하고 나왔다. 나오면서 나는 나도 모르게 즉석 복권 한장을 샀다. 주인 사내의 말을 인정해서가 아니라 내 안의 사행심이 발동한 탓이었다. 복권을 사는 순간, 이상하게도 맘이 편해지는 느낌이었다. 그 알 수 없는 위력에 나 자신도 놀랐다.

   즉석 복권이었지만 즉석에서 긁어 보지 않기로 했다. 집에 와서도 한동안 긁어 보지 않았다. 아니 아직도 나는 그때 산 즉석 복권 한장을 갖고 있다. 왜 여지껏 갖고 있느냐고, 왜 긁어 보지 않느냐고 당연히 물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어떤 설레임과 두려움을 잃고 싶지 않다. 그 안엔 거액에 당첨될 확률이 있다. 긁어서 안된 실망을 맛보기보다 긁어 보지 않고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갖고 있기 싶기 때문이다.

   앞으로 남은 나의 삶은 어떠할 것인가. 현실적인 복권에 희망을 걸 것인가, 아니면 죽은 뒤 사후세계를 이야기하는 종교를 선택할 것인가. 종교도 일종의 복권이라면? 그러나 그건 사람들을 너무 지치게 만드는 장기복권이다. 복권을 옹호하기 위해서 종교를 복권으로 둔갑시키는 것은 아닌지. 종교도 복권처럼 즉석 메뉴를 개발하면 어떨까. 종교복권같은 것이 나올 법도 하다. 복권과 종교. 종교와 복권. 반복해 읖조려보니 종교와 복권이 같은 의미인 듯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혼란스럽다. 판단력이 흐릿해지려 한다. 아니, 아니다. 그렇잖다. 종교와 복권은 엄연히 다르다. 결국 내가 선택할 것은 복권과 종교 둘 중 하나일 뿐이다. 어느 것을 택할 것인가. 믿음의 무게의 추가 중심을 잡지 못하고 자꾸만 좌우로 흔들린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멈출 것인지 알 수 없다. 영원히 멈출지 않을지도 모른다.


   두 갈래 갈림길에서 나는 오늘도 소주 한잔을 들이킨다. 소주 몇잔에 금방 취기가 돈다. 그래 그렇지. 이거야. 이게 바로 즉석 종교다. 즉석 복권이다. 즉석 취권이다. 복권, 취권, 종교라는 낱말이 뒤섞이며 부침개처럼 입속에서 맴돈다. 술 안주 삼아 질겅질겅 씹어 삼킨다.

  빈잔에 소주가 또 채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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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자세로 |  2014-05-16 오후 1:58:55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한잔 넘기고 다시한번 긁어볼까요??  
난빈삼각 |  2014-05-17 오후 7:02:05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이런 글 올리려면 나름, 깊은 사유의 시간도 상상할 수 있고요....곰소대신 추천드립니당.  
팔공선달 |  2014-05-18 오후 6:10:21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결과를 너무 일찍 보는 것. 확인하려는 것 그 모든 게 오해를 부르는 것이라 생각하네요.^^  
철권미나 |  2014-05-18 오후 6:55:48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알흠다운 사상이요^^*  
철권미나 즉석 떡복이 보내드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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