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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메기 바둑점방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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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눈물
2014-05-09 오후 1:43 조회 8377추천 12   프린트|스크랩



  장날마다 나는 시장에 빠짐없이 나간다.

평일에도 갈 수 있지만 장날에 가야 사람들이 많고 한푼이라도 더 벌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요즘 장날은 예전 같지 않아 상인들은 장사가 안된다고 푸념이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옛날 같으면 사람들의 인심이 좋아  소쿠리에 들어오는 돈이 적지 않았는데 지금은 조마조마하게 바라보아야 할 형편이다. 소쿠리는 내 밥주머니이다. 소쿠리에 한푼이라도 들어오지 않으면 굶어야 한다.

   내가 장날에만 시장에 가는 이유는 거동이 자유롭지 못해서다. 어릴 때 철로가에서 놀다가 기차에 치어 하반신이 잘려 나가는 바람에 평생을 누워서 엎드려 살게 되었다. 몇 번의 자살도 시도해 보았으나 뜻대로 되지 않아 그냥 명대로 살기로 하였다.

   집에서 인근 시장까지는 기어가면 30분은 족히 걸린다. 발통이 달린 나무 널판에 몸을 싣고 팔로 땅을 짚으며 다닌다. 땅집고 헤엄치는 것 같이 보이지만 두 팔에 의지하며 기어다니는 것이 여간 힘든 게 아니다.

   하루종일 시장 바닥을 기어다니면 팔뚝이 저리고 온몸이 주눅이 든다. 기어가다가 잠시 멈추어 소쿠리에 눈길을 주고 다시 기어간다. 마치 고개를 쳐들고 힘겹게 기어가는 거북이라고나 할까.

   힘들긴 하지만 카세트용 테이프를 틀어 사람들에게 노래를 들려준다. 노래는 교회 성가인데 내가 좋아하는 유행가를 틀고 싶지만 얻어 먹는 주제에 유행가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사람들의 마음에 호소를 하기 위해서는 나의 처지에 맞게 울려 나오는 거룩한 성가가 제격일 것이었다.

   그런데 그 성가도 한두번도 아니고 하루종일 들으면 내 귀에도 거룩한 노래인지 아닌지 구분이 안된다. 남들이 들으면 더욱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이것을 대체할 마땅한 방법이 없다. 현재로선 이것이 최선의 구호 수단이다.

   고개를 들고 소쿠리에 눈길을 주었다. 동전 몇 개가 달랑 들어 있었다. 그것도 오백원짜리가 아닌 백원짜리였다. 시장에 나온지 몇시간이 지났지만 오늘따라 소쿠리에 담기는 것은 허허로운 바람 뿐이었다.

   성가는 계속 이어져 나왔다. 복잡한 시장 바닥에서 성가가 어울리지는 않겠지만 간혹 교회 다니는 사람들의 심중을 움직일 수 있기를 기대할 따름이었다. 그러나 나는 교회를 거의 나가지 않는다. 과거 한때 교회를 열심히 다닌 적은 있었지만 불편한 몸으로 교회를 다니는 것도 힘든 일이었고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이 나를 더 고통스럽게 하였다. 마음 속에도 믿음에 대한 희망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성가를 트는 것은 하루의 생계 수단으로 하는 것이지 믿음으로 구원을 얻겠다는 생각은 포기한 지 오래되었다.

   소쿠리에 돈이 많이 들어오면 힘이 생기고 기분이 좋아지지만 돈이 별로 보이지 않으면 힘이 빠진다. 소쿠리 속의 돈이 바로 나의 믿음이었다. 그런데 그 믿음조차 소쿠리의 뚫린 망처럼 구멍이 뻥뻥 나고 있었다.

   요즘 경제가 어렵다지만 사람들의 인심도 더욱 차갑고 인색해졌다. 이 복닥거리는 시장 바닥에서 소쿠리에 던지는 인정의 손길은 가뭄에 콩나듯 보기가 어렵다. 오늘도 몇푼 되지 않은 동전만이 시장에 드리워진 천막의 그늘처럼 어둡게 보였다.


   나는 바닥을 기어가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다리를 본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신발을 신은 발과 무릎을 보는 셈이다. 모양새가 각기 다른 옷을 입고 움직이는 다리를 보느라면 정신이 어지러울 지경이다. 마치 숲속의 나무들이 갑자기 일제히 움직이는 것처럼 혼란스럽다. 그 사이를 빠져 나가는 나는 묘기 대행진을 하는 주인공 같다. 어쩌면 서커스단에서 신체적 장애를 극복하고 기이한 묘기를 펼치는 단원일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어설픈 삐에로에 지나지 않는다. 관객의 감동을 이끌어내기는커녕 시장 바닥의 통행을 방해하는 귀찮은 존재로 보인다.

   사람들은 나를 무슨 징그러운 벌레를 보듯 피해 간다. 좁은 시장 길목은 서로 부대끼며 지나간다. 나는 거센 물살을 허우저거리듯 사람의 물결 속을 헤쳐 나간다. 더운 날씨에 몸은 땀으로 찌들고 마음은 지쳐갔다.

   맘 편한 날이 어디 있었을까만 오늘따라 심사가 편치 않았다. 사람들이 다른 장날보다 많아서인지 툭툭 치듯이 스치고 지나갔다. 평소보다 사람들은 많았지만 소쿠리에 들어오는 돈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비례의 법칙은 여기에서는 적용되지 않는 것 같다. 사람들이 많다고 소쿠리에 들어오는 돈이 많아지지 않는다.

   짜증이 났다. 욕을 하고 싶었다. 울부짖고 싶었다. 뭔가 터뜨리지 않으면 속에서 폭발할 것 같았다. 나는 사람들의 인색함에 화가 났다. 울화통이 치밀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소리쳤다.

   - …야, 이 새끼들아! 소쿠리에 돈 좀 넣어 봐라. 하루 종일 기다니는 내가 불쌍하지도 않나? 너거들은 우예 운이 좋아가 성한 다리로 다니는지는 몰라도 언제 빙신이 될지도 모르는 기라. 오늘 살다가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 인생인기라. 죽으마 돈 싸갖고 갈끼라? 살았을 때 있을 때 좀 베풀고 살아보라꼬. 나같은 놈 한테 베풀어 보라꼬. 내가 오죽하마 이런 소리하겠어? 죽지 못해 살아가는 놈에게 이래 무정하게 대할끼라? 울화통이 터진다 정말. 당신들 발냄새 맡아가며 종일토록 시장 바닥을 헤매도 눈도 깜짝 안하이 사람 환장할 노릇 아이가. 아, 미치겠네 진짜…

   갑자기 터져버린 나의 울대가 후끈거렸다. 나의 울부짖음은 사람들 사이를 가르며 시장 바닥을 흔들기에 충분하였다. 별안간 터져 나온 내 목소리에 지나가던 사람들이 흠칫 놀라는 눈치였다.

   나는 그렇게 충동적으로 소리쳐 후련하긴 했지만 한편으로 미안한 생각도 들었다. 얻어 먹는 처지에 주제 넘게 행동한 것은 아닐까. 나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숙이고 기어갔다. 그날은 내 행동에 사람들이 반기를 든 것인지 그날 운이었는지 소쿠리에 담긴 것은 천원짜리 지폐 두장과 동전 몇닢에 불과하였다.

   해가 져 어둑해질 무렵 집으로 돌아왔다. 눈이 잘 안보이는 팔십이 넘은 노모가 밥상을 챙겼다. 어머니를 볼때마다 눈물이 나온다. 평생을 이 병신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쳐온 엄마. 무엇으로 그 은혜를 보답할 수 있으리. 단지 자식이라는 이유만으로 어머니의 사랑을 받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요즘 어머니의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것 같다. 치매 증세가 아닌지 걱정스럽다. 만약 그렇다면 내 인생도 끝장이다. 내 한 몸도 가누지 못하는 주제에 어머니의 병수발은 생각할 수도 없다. 엄마는 내 걱정만 한다. 나 보다 더 오래 살거라고. 나보다 더 오래 살아야 내가 고생하지 않는다고. 멀쩡한 젊은 자식보다 더 오래 살아 날 밥이라도 챙겨 주겠다니 어찌 눈물이 나지 않겠는가.

   어머니는 내가 벌어온 돈으로 시장에 가 찬거리를 사온다. 찬거리라야 별 것 아니지만 자식을 먹이려고 불편한 걸음을 마다하지 않는다. 시장에 가면 국거리용 시래기와 채소는 그냥 주워올 수 있다. 쓰레기 더미를 뒤져 쓸만한 것을 추려와 국을 끓여 먹는데 엄마의 손맛이 그대로 들어 있어 여느 식당에서도 맛볼 수 없는 귀한 맛이다.

   오늘따라 어머니의 손이 더 거칠게 보인다. 손등과 얼굴 여기저기에 검버섯이 피어있다. 저승꽃이라 했던가. 장터 바닥 가판대 위의 이름모를 버섯같다. 장터에선 한웅큼씩의 버섯이 수시로 팔려 나간다. 어머니의 검버섯은 얼마의 값어치가 있을까. 아마도 돈으로는 계산할 수 없을 것이다. 평생을 이 못난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바쳐 온 어머니인데 어머니의 피눈물이 고인 응어리인데 그것을 어찌 감히 돈으로 환산할 수 있으랴.

   밥이 잘 넘어가지 않는다. 목이 메여 꺽꺽 숨이 막힌다. 어머니는 나의 그런 모습이 안스러운지 걱정스럽게 바라본다. 어머니는 자신의 몸 걱정은 안중에도 없고 오직 자식의 안전만을 생각한다. 부모 사랑이 아무리 내리 사랑이라고 해도 어머니의 눈길을 더 이상 쳐다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 어머니가 이 세상에 남아 있을 시간은 많지 않다. 그동안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병신이라고 자학만 하고 어머니가 해 주는 밥만 축낼 것인가.

   밥상을 물리고 생각에 잠겼다. 나는 어머니의 분신이다. 어머니의 자궁 속에서 생명을 받아 열달동안 키워져 태어난 어머니의 또다른 생명체이다. 태어날 때 어머니에게 참기 어려운 고통을 주었는데 아직까지 어머니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 그 고통마저도 어머니는 사랑으로 감싸고 있지 않은가. 이 아이러니를 어떡할 것인가. 이제 멈출 때도 되지 않았는가. 더 이상 흘릴 눈물은 남아 있지 않다. 어머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머니의 자궁 속에 생명의 씨앗을 뿌리고 간 아버지에 대한 원망도 사라진지 오래이다.

   어머니가 피곤에 지쳤는지 팔을 베개 삼아 잠들었다. 베개를 찾아 받쳐 주었지만 곤히 잠든 기색이다. 저승의 문턱까지 다가간 어머니의 그림자를 보는 듯 하다. 잔주름이 굵은 산맥을 이루어 얼굴을 뒤덮고 있다. 어머니의 지나온 험난한 인생 여정이 그대로 담겨 있다. 코끝이 찡해 온다. 못난 병신 자식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온 어머니. 엄마. 우리 엄마. 울엄마. 내 어머니.

   뜨거운 물기가 눈에 고인다. 눈물은 금세 방울이 되어 흘러내린다. 어머니의 얼굴에도 떨어진다. 처음엔 반응이 없던 어머니가 물기가 얼굴을 적시자 눈을 떴다. 아들을 멀뚱히 바라본다. 손으로 아들의 눈물을 닦아 준다.

   - 이놈아, 울긴 왜 울어. 내가 이렇게 새파랗게 살아 있는데. 내 걱정말고 네 몸 간수나 잘해라이. 아유 다 큰 자식이 무슨 짝으로 닭똥같은 눈물을 그렇게 흘려. 눈물도 귀한 영양분인데. 아예 그만 그쳐라. 몸 상한다.

   어머니의 그 말에 눈물이 더욱 더 쏟아진다. 나는 이윽고 소리내어 울어버린다. 서럽게, 서럽게. 어머니의 끝없는 사랑에 감정이 용솟음치듯 복받친다. 어머니를 끌어안고 한없이 운다. 울음은 밤의 정적을 깨뜨린다. 슬픈 여운을 남기며 어디론가 사라진다.

   밖의 어둠이 점점 더 짙어지고 두 모자의 그림자가 희미한 창문에 드리워져 하염없이 흔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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難得糊塗 |  2014-05-09 오후 3:33:11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감사 합니다. 어머님 산소에 가서 온종일 울고 싶네요.작가님 고맙습니다.  
팔공선달 |  2014-05-09 오후 5:55:3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울 엄니는 내가 잘해드릴 때까지 기다려 주실려나...  
곰소가는길 |  2014-05-09 오후 9:32:36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땅바닥에서 본, 세상그림 잘 보았습니다.
근데여.....카셋트를 성가로 한 것이 큰 실수라고 봅니다.
더더구나 요새는 성가니 찬송가니 복음성가니 하면 적선은 커녕 모가지쭐때에서 가래침 끓어오르는 사람들 많을거니깐여.....거...애꿎은 예수팔아 재벌된넘들 때문에 말이요!  
유호덕 |  2014-05-09 오후 11:55:42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목이 멍멍하네요,
 
江湖千秋 |  2014-05-10 오전 1:10:11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사는 게 무엇인지..아니 산다는 게 무엇인지....
장애인을 간간 접하긴 해도 그들의 세계..삶의 의미를 아직도 상상 못합니다.
일반인과 별반 다르지는 않겠지만..운명..업...
하요간 세상 모든 엄마는 자식을 죄인으로 만들기만 하는...
나쁜..힘든..사람입니다..ㅠ  
번개불 |  2014-05-10 오전 7:38:09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아!....  
우리뭉치 |  2014-05-10 오후 10:12:43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엄마 점점 기억이 희미해지고 어린애처럼 변해가는 엄마, 내몸 아프다고 짜증만 내는 나몰래 성치않은 몸으로 설겆이도 해놓고, 바닥먼지도 닦고... 엄마 아프지말고 오래사세요.
이 글을 읽으면서 세상 참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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