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선군 무옥리 입구에서 남서쪽으로 2km 떨어진 야산 밑에 세계바둑협회 한국지부가 있다. 본부는 연전에 중국 쪽에 빼앗기다시피 했다. 그 이유는 몇가지 있었다. 고대 바둑의 발상지라는 것, 바둑 인구 규모, 그리고 현재의 실력으로 보아 세계 최강임을 내세워 바둑의 종주국임을 자처하며 본부 설치를 중국 쪽으로 몰아갔던 것이다.
아쉬운 점은 있었지만 대세의 흐름을 한국은 막지 못했다. 하지만 다른 부문에서 그것을 극복해 보자는 의견이 대두되었다. 바둑 실력 자체는 조금 부족하다 해도 바둑 주변의 콘텐츠는 개발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중국을 능가할 수 있을 것이었다. 우선 바둑에 관심을 유도하기 위해서 그에 관련된 글(문학)을 개발해보자는 거였다. 지금까지의 바둑에 관한 상은 승패에 관련된 프로 기사 위주로 주어진 것이 사실이었다. 물론 바둑 보급과 공로상 등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난 가을, 뜻을 같이한 몇사람이 사무실에 모였다. 바둑 실력은 들쭉날쭉이었으나 바둑에 대한 이야기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았고 나름대로의 문필력도 갖추고 있었다. 장시간의 얘기가 오고 간 끝에 바둑문학상을 창설하기로 하였다. 홍보와 후원자 섭외를 위한 계획도 아울러 마련하였다.
다음은 바둑문학상 모집에 대한 요강이다.
1. 모집부문 : 시, 시조, 소설, 수필, 평론, 저서 등
시는 어린이들을 위한 동시를 포함하고, 소설은 콩트·단편·중편·장편을 포함하 되 부문별로 상금의 차액을 두기로 한다.
각 응모 부문의 내용은 바둑과 관련된 것이어야 하고 저서는 모집 공고일 기준으 로 1년 이내에 출판한 것
2. 모집기간 : 2013년 12월 5일까지
3. 발표 : 2014년 1월 1일
4. 보낼곳 : 세계바둑협회 한국지부(영선군 무악리 무악삼거리길 21)
대충 위와 같은 내용을 공지하였다.
연말이라 각 신문사의 신춘문예와 겹쳤고 상금도 구체적인 액수는 밝히지 않고 소정의 상금을 줄 것이라고만 덧붙였기때문에 과연 어느 정도의 호응이 있을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예상외로 적지 않은 응모편수가 접수되었다.
시가 오백여편, 소설이 칠십여편, 평론 십여편, 저서 여덟편 등. 시는 동시를 포함한 것이고 소설도 콩트와 단편소설이 대부분이었다. 중편소설이 두편 장편소설은 없었다. 평론은 기성 평론가가 보내온 것도 있었는데 바둑계가 전반적으로 역동성을 잃고 있어 창조적 개혁운동이 필요하다고 역설하고 있었다. 저서는 실무적인 바둑이론에 관련된 것이었고 바둑과 실제 생활의 연관성을 부각시키는 책이 없는 것은 아쉬운 점이었다.
각 부문별로 위촉한 전문가들이 심사에 들어갔다. 십여일 안에 당선작을 가려내기에는 시간이 촉박한 듯 했다. 후원자 섭외팀에서는 더욱 그랬다. 왜냐하면 아직까지 확실하게 후원을 해주겠다고 나서는 곳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중앙본부에서 내려오는 쥐꼬리만한 예산은 자체 운영비는 커녕 한사람 인건비도 제대로 못줄 금액이었다. 지금껏 자비를 내어 사무실을 지탱해 왔는데 어쩌면 무모한 도전을 한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젊은 객기로 일부터 저지르고 나서 뒷수습을 하는 형국이었다. 마치 집없는 사람이 빚을 내어 집을 사자마자 허겁지겁 빚갚느라 허우적거리는 것과 같았다.
우려가 현실이 되어 나타났다.
결국 행사를 치룰만한 후원금을 확보하지 못한 것이었다. 만나는 사람마다 완곡히 거절하였다. 경기가 어렵다는 것, 바둑이 밥 먹여주느냐, 바둑이나 한판 두고 가라, 바둑에 무슨 문학을 갖다 붙이느냐, 바둑판만 들여다 봐도 골치 아픈데 거기에다 뭘 글을 갖다 붙인다고 그러느냐, 그러면 더 정신만 어수선해지지 않느냐 등등. 솔직히 그들은 오로지 바둑판과 바둑알만 있으면 된다는 식이었다. 더 이상 그들을 설득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당초 예상한 금액은 최소한도의 경비가 이천만원은 넘어야 하는 데 목표액의 삼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하였다. 일부 바둑 애호가로 자처하는 자영업자 한사람이 백만원을 선뜻 기부한 것이 제일 많은 것이었다. 나머지는 십만원 안팎의 단위로 후원을 받았지만 심사위원들의 수고비를 주기에도 빠듯했다.
결국 당선작 발표를 하지 않기로 하였다. 심사위원들의 심사비만 지불하고
행사는 사정으로 인해 취소하는 것으로 정했다. 심사위원들도 아쉬워 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바둑의 미래를 밝힐 등불같은 글들이 적지 않았는데 그런 것을 그대로 묻어 두기에는 너무 안타깝다는 거였다.
다음은 세계바둑협회 한국지부에서 최초로 시도한 바둑문학상 모집과 관련한 행사를 취소한다는 내용이다.
◇ 머리 숙여 사죄드립니다.
먼저 바둑문학에 관심을 가져주신 응모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불가피한 사정으로 인해 약속을 지켜드리지 못한 점 어떤 질책도 마다 하지 않겠습니다. 마음껏 욕하십시오. 실컷 때리십시오. 발로 차고 내쳐도 할말이 없습니다. 모든 것 달게 받겠습니다.
그리고 용서를 구합니다. 바둑에 문학이라는 거추장스런 이름을 달고 바둑인들의 마음을 얻어보려고 한 저희들의 불찰을 용서하십시오.
저희들의 계획성 없는 막무가내식으로 일을 추진했던 점 깊이 반성합니다. 그리고 바둑과 문학, 경제 이 세가지가 조화롭게 어우러질 수 있는 날이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저희들의 의지가 여기서 한번 꺾였지만 다시 언제 한번 일어설 날이 있을 것을 기대해 봅니다.
이번 행사에 관심을 가져 주신 모든들께 거듭 머리 숙여 사죄드립니다.
2014년 1월 1일 새해 벽두에
세계바둑협회 한국지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