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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메기 바둑점방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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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서도 바둑두는 사나이
2013-12-05 오후 11:23 조회 8264추천 5   프린트|스크랩


  어떤 생명체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는 것은 흔치 않은, 극히 드문 일이다. 예수가 죽음에서 부활했다는 것도 상식적으로는 믿기 어려운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어쩔수 없이 죽음의 경계선을 향하여 알게 모르게 시시각각 다가가고 누구나 그 문턱을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운명에 처해 있다. 가기 싫다고 아무리 발버둥쳐봐도 소용없다. 어차피 가야할 길이라면 차라리 당당하게 죽음의 문턱을 넘어갈 수는 없을까.


 

  죽음을 앞둔 사형수의 모습은 어떠할 것인가. 흥미로운 생각이 든다. 들은 바에 의하면 사형 집행은 어느날 갑자기 이루어지는데 감방문이 열리면 사형수는 극도의 긴장감에 휩싸인다고 한다. 결국 가는 방향이 낯선 곳(집행장)으로 향하면 도살장에 끌려가지 않으려는 소처럼 격렬하게 저항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모든 것을 포기한 심정으로 가는 사람, 집행장소에서 교도관과 입회한 사람들에게 절을 하고 가는 사람, 담배 한가치만 피우고 가겠다는 사람, 자신은 절대 잘못한 것이 없다고 끝까지 우기고 가는 사람 등등. 교수대의 목줄은 불과 5분 안팎이면 인간의 생사를 결정짓는다.

 

  죽음의 형식이야 어떠하든 죽음의 경계선을 넘어간 모든 사람은 다시는 이승으로 건너올 수 없다. 다시 살아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바둑은, 바둑의 세계에서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올 수 있는 현상이 존재한다. 멀쩡하게 살아있는 돌이 갑작스럽게 죽는가 하면 이제는 영 가망이 없다고 삶을 포기한 돌이 생기가 돌아 살아나는 일이 흔치 않게 일어난다. 아니 죽었다고 사망 선고한 돌까지, 바둑을 전문으로 하는 프로기사까지 죽었다고 확인한 돌들이 살아난다면 어떻게 봐야할 것인가. 프로의 자질을 의심해야 할 것인지 아니면 바둑의 신비한 현상을 믿음으로 극복해야 할 것인지.

 

  누구나 죽음을 원치 않고 두려워 한다. 바둑도 예외는 아니다. 인간은 죽음을 극복하려고 온갖 노력을 다한다. 그래도 아직은 그 해답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 그 해답을 바둑에서 찾아볼 수는 없을까. 바둑이라는 사각의 링 안에서 치고 받고 쓰러지고 죽어가면서 죽었다고 내팽겨쳐진 돌들이 다시 살아나 돌아다니는 것을 의학자들은 어떻게 볼 것인가. 해부에 능한 법의학자들에게 그 내부의 세계를 연구해 볼 것을 권하고 싶다. 요즘 창조경제라는 말이 유행하는데 의학과 바둑을 접목한 창조적인 학문도 나올 법 하지 않은가. 바둑과 인간의 사활관계를 연구하고 인간도 바둑처럼 죽었다가 다시 살 수 있는 날을 기약할 수 있지 않을지. 눈부시게 발전하는 의학의 속도를 보면 꿈같은 얘기만은 아닐지 모른다.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을 지도.

 

  그래,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다면 그보다 더 바랄 것이 어디에 있으랴. 그렇다. 아무리 이 세상이 고통스럽더라도 숨쉬고 살아있다는 것만으로 감사하게 생각하자 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극도의 열악한 환경에 처한 사람들에게는 동의를 얻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궁극적인 결론은 거기에 도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우리의 염원처럼 실제로 그렇게 행하는 사람이 있다는 소문이 들렸다. 어떤 사람이 몇 달 전에 죽었는데 그 사람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행세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처음엔 나도 그게 무슨 소린가 잘 못 들은 것이 아닌가, 누가 지어낸 얘기가 아닌가 하고 생각하였다. 한데 한두사람의 얘기가 아니라 여러사람의 입에서 나도는 것을 보고 확인해 보지 않을 수 없어서 소문의 전말을 추적해 보았다.


 

  소문의 주인공은 K라는 사람이었다. 그의 신분에 관한 것은 구체적으로 정확히 알려진 게 없고 그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살아 있을 때 그는 바둑의 고수였는데 입단대회에도 들락거릴만큼 그 실력이 프로에 육박하였다고 한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어린시절 남부럽지 않게 지내던 차에 우연히 바둑의 세계에 빠져들어 바둑의 길을 택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는 집안의 완강한 반대에 부닥쳐 가출을 하였고 전국을 떠돌며 바둑을 무기삼아 숙식을 해결하였다. 기원에 기거하며 바둑 공부를 하고 손님들의 대국 상대가 되어 주기도 하였다. 틈틈이 익힌 바둑 실력은 일취월장하여 입단의 관문을 통과하려고 애를 썼으나 번번히 좌절되었다.

  세월은 흘러 젊은 세대들의 벽을 넘지 못한 채 결국 프로의 꿈을 접어야 했다. 기원 주변을 맴돌면서 마작, 포커 등 게임을 하며 생활비를 충당하였는데 하지만 그는 오로지 바둑만을 생의 중심으로 여겼다. 이 세상의 모든 게임(혹은 스포츠)을 통합하여 종합적으로 성적 순위를 매긴다면 바둑이 단연 1위라고 그는 단언하였다. 다른 게임은 돈을 걸지 않으면 재미가 없고 돈을 걸면 도박성이 농후하기 때문에 질적으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바둑만큼은 돈을 걸지 않아도 별다른 밑천없이 얼마든지 재미와 희열을 만끽할 수 있으니 다른 게임과 확연히 구별된다는 것이었다. 그 외에도 바둑이 사람에게 유용한 점을 다양한 경험을 통하여 설파하였다.

  그는 한마디로 온몸으로 바둑을 사랑한 바둑 예찬론자였다. 그런 그가 갑자기 건강이 나빠져 말기 간암이라는 판정을 받았다. 몸이 망가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독신 생활을 하면서 하루도 술을 먹지 않은 날이 없었으니까. 그는 담담하게 의사의 선고를 받아 들였다. 마치 재판관 앞에 선 죄인이 형의 선고를 다소곳이 받아 들이듯이. 그는 몇 달 남지 않은 이승의 시간을 나름대로 정리하기로 하였다. 자신의 병을 혼자만 인지하고 사람들에겐 전혀 내색을 하지 않았다.

 

  그는 먼저 자신이 묻힐 보금자리를 알아보았다. 자신은 가족과도 인연이 끊어져 아무런 연고도 없었지만 왠지 화장만은 하기 싫었다. 형편에 맞는 곳을 알아보니 시에서 운영하는 시립공원 묘지에 큰돈 들이지 않고 묻힐 수 있다고 하였다. 그는 공원 관리사무소를 찾아가 자신의 죽음에 대한 준비를 문의하였다. 직원은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일정한 금액을 내면 사후관리를 해주며 연고없는 무덤도 예외는 아니라고 하였다. 직원에게 그는 좀 특이한 주문을 하였는데 묘비 앞에 돌바둑판을 앉혀 달라고 하였다. 일생 바둑을 좋아했기 때문에 기념으로 묘지 앞에 놓고 싶다고 하였다. 직원은 갸웃거리더니 비용만 지불하면 그거야 어렵지 않다고 했다.

 

  그가 사후 장례절차를 준비하고 난 뒤 한달이 채 안되어 생을 마감하였다. 의사의 예상보다 빨리 죽음을 맞이한 셈이었다. 아마도 다른 합병증으로 인하여 생명을 단축시킨 것으로 보였다. 연고가 없어 그는 하루만에 자신이 원했던 묘지에 묻혔다. 그가 생전에 바둑으로 연을 맺었던 몇몇 지인만이 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였다. 묘 앞에는 대리석으로 만든 바둑판과 바둑알이 가지런히 놓여졌다. 그것은 그가 바둑을 얼마나 사랑했다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 주고 있었다. 그런데 여기까지는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다. 이상한 소문은 그 후부터였다.

 

  며칠뒤 공원관리사무소에서 관내 공원을 점검차 순찰하던 직원 한사람이 참으로 이상한 광경을 목격한 것이었다. 그날은 구름이 잔뜩 낀 탓인지 어둠이 일찍 찾아왔다. 도시의 외곽지대에 위치한 산골이라 더더욱 그랬다. K의 묘는 관리사무소 뒤편 북서쪽의 약간 가파른 경사지 위에 있었다. 주위는 이미 어둠이 장악하고 있었다. 관내를 한바퀴 돌고 내려오는데 플래시 불빛에 무언가 슬쩍 스쳐가는 것이 있었다. 플래시를 좀전의 순간으로 되돌려보니 놀랍게도 K의 묘 앞에 누군가가 앉아 있는 것이었다. 그뿐만 아니었다. 바둑돌을 놓으며 묵묵히 바둑판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직원은 너무나 놀란 나머지 무어라 말을 걸 수가 없었다. 이 어두운 야밤에 앞을 가늠할 수 없는 묘 앞에서 바둑을 두고 있다니 이 무슨 기괴한 일인가. 직원은 말도 붙이지 못하고 혼비백산하여 사무실로 허급지급 내려왔다. 퇴근을 준비하고 있던 사무실의 동료 직원이 무슨 일인가 싶어 놀란듯이 쳐다보았다. 순찰 직원의 말을 들은 동료 직원은 어이가 없다는 듯이 뭘 잘 못 본게 아니냐고, 헛 것을 본 모양이라고 했다. 그러나 순찰 직원은 분명히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고 말했다. 동료 직원과의 말다툼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잠시 뒤 두 사람이 같이 가 보기로 하고 현장에 가보았는데 사람의 흔적은 없었다. 한데 이상한 것은 바둑판 위에 돌이 놓여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사람은 없고 돌은 놓여져 있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묘를 설치할 때 바둑돌은 바둑판 옆 돌통에 분명히 들어있던 것이었다. 그런 돌이 이 칠흑같은 밤중에 바둑판 위에 가지런히 놓여져 있다니 실로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죽은 K가 되살아 나와 그랬는지, 아니면 누군가 깜짝쇼를 벌이려고 그랬는지 알 수 없었다.

 

  어쨌거나 순찰 직원의 목격담은 사람의 입을 통하여 빠르게 전파되어 갔다. 소문은 사람의 입을 빌려 조금씩 부풀러져 갔다. 죽은 사람이 살아났다는 것, 야밤중에 무덤에서 나와 바둑을 두고 들어간다는 것, 어떤 사람이 그와 직접 바둑을 두기도 했다는 것, 입단대회를 통과하지 못한 바둑의 고수가 한이 되어 죽어서도 묘 앞에서 바둑을 둔다는 것 등등. 바둑에 관심이 있고 없고를 떠나 이야기는 사실처럼 전해졌다. 급기야 모 방송국에서 이 이야기의 진위를 밝히기 위해 나섰다.

 

  방송국 PD가 순찰 직원을 인터뷰하였다.

  - 한밤중에 묘 앞에서 바둑을 두는 사람을 봤다고 하는데 사실인가요?

  - 네, 제 눈으로 확실히 봤습니다.

  - 허상을 봤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날이 어둡고해서요.

  - 아니요. 플래시로 비추인 불빛에 분명히 드러나 있었습니다. 제가 안경을 끼고 있습니다만 교정 시력이 1.0 이상이에요. 제 눈에는 이상이 없습니다. 그날 밤 광경이 또렷하게 제 뇌리에 남아 있습니다.

  - 그럼 바둑을 둔 사람이 누구라고 생각하나요?

  - 제 개인적으로는 무덤 속의 영혼이 나와 바둑을 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단정할 수는 없겠지요.

  - 누군가가 미리 묘 옆에 숨어있다가 관리소 직원이 지나가기를 기다리다 깜짝 놀릴 목적으로 한 것은 아닐까요?

  - 글쎄요. 그렇게 할 이유가 없다고 봅니다. 그날 그 시각 공원내에 들어온 일반 사람은 없었고요. 산정상 너머에서 그 시간대에 들어올 아무런 이유가 없다고 봅니다. 지금 밝히는 얘기입니다만 그 뒤에도 한번더 본 적이 있습니다.

  - 그 뒤에도 봤다고요?

  - 얘기한들 사람들이 믿어주지 않을 것 같아서 말 안한 것 뿐입니다. 아마도 죽은 영혼이 일정한 날 일정한 시간에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다만 제가 발견을 다 못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인터뷰는 일단 여기에서 멈췄다. PD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순찰 직원이 지어내거나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헛것을 봤을 수도 있겠지만 자기는 분명히 보았다고 했다. PD는 묘지 주변 몇 곳에 특수 적외선 카메라를 설치해 보기로 하였다. 며칠뒤 확인해 보니 아무런 이상이 감지되지 않았다. 철수를 할까 고려하다가 좀 더 살펴보기로 하였다.

 

  그 뒤 보름쯤 지난 어느 날, 녹화된 카메라를 점검하던 중 이상한 현상이 화면에 포착되었다. 온 신경이 곤두세워졌다. 무덤 주변에서 뭔가 일렁이는 것이 보였다. 아메바의 율동처럼 흐느적이며 움직이다가 바둑판 앞에서 정지하였다. 틀림없는 사람의 형상이었다. 윤곽은 사람인데 내용물은 그냥 부우연 안개같은 것이었다. 바둑판 앞에 앉아 묵상을 하는지 한동안 움직임이 없었다. 그러다가 잠시후 바둑통을 열고 바둑알을 판위에 놓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PD는 시간이 정지된 듯이 화면을 뚫어지듯 바라보았다. 잠시후 바둑을 두던 사내는 홀연히 자신의 무덤 속으로 사라졌다. 사내가 바둑을 둔 시간은 5분 정도였다. 화면을 재생해 보니 소요된 시간이 정확히 4분 52초였다. 한판의 바둑치고는 초속기에 해당하였다. PD는 흥분에 떨었다. 이것은 대특종이 아닐 수 없었다. 이 화면에 찍힌 사실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아니 설명이 아니라 카메라에 고스란히 그 장면이 담겨 있지 않은가.

  극도의 보안 속에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로 하였다. 적외선 연구로 세계 학계에 명성이 나 있는 A씨에게 자문을 구하였다. A씨도 몹시 놀라는 눈치였다. 적외선은 피사체로서의 어떤 물질을 연구하고 구명하기 위한 것인데 이런 일은 전혀 믿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과학적으로 설명이 안된다는 것이었다. 간혹 영화에서 죽은 사람의 영혼이 빠져나가는 장면을 볼 수 있는 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화면 캡처로 제작한 것에 불과한 것이었다. 가상의 일이 실제로 일어난 것이니 일대 사건이 아닐 수 없다고 하였다. 이 사실 자체는 과학적으로 풀기 어렵지만 화면 속 주인공의 모습은 유추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하여 그에게 실체를 밝혀줄 것을 의뢰하였다. 


 며칠 뒤 과연 짐작대로 화면 속의 사내는 무덤 속에 묻힌 K로 판명되었다. 살아있을 때의 그의 몸매와 얼굴의 형상 등이 그것과 거의 유사한 것으로 드러난 것이었다.
 

 

  내가 아는 사실은 여기까지였다. 방송국에서 특종으로 보도를 왜 안했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바람결에 들리는 말은 PD가 특종을 만들기 위해서 카메라를 조작했다는 것, 그것이 뒤늦게 발견되어 내부적으로 없던 것으로 처리했다는 것, 미신과 과학과의 위험한 파장을 염려해서 윗선에서 방송을 보류시켰다는 것 등등. 확인할 수 없는 말들이 떠돌았는데 나는 더 이상 추적하는 것을 중단하기로 하였다. 왜냐하면 그쪽으로만 시간을 빼앗기기엔 생활에 너무 쫓긴 탓도 있고 정신적으로 지쳐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위로가 되는 것은 지금도 P시립공원에 가면 K의 묘가 있고 그 앞에 바둑판이 있고 바둑돌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K가 어느날 무덤에서 나와 바둑을 두었고 그가 바둑을 두는 것을 직접 봤다는 순찰 직원이 있기 때문이었다. 믿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사람이 사람을, 사람이 하는 얘기를 믿는 것이 아니던가. 사람들은 내 얘기를 믿어줄 것인가. 이 얘기가 콩트로 끝나고 말 것인가. 그것은 이 얘기를 듣는 사람들의 자유일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바둑을 열렬히 사랑했던 K가 죽음을 뛰어 넘어 이승에서 풀지 못한, 한판의 바둑이라도 더 두고 가지 못한 한을 자신의 묘 앞에서 오늘도 한판의 바둑을 구상하고 있을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K는 죽음으로서 생을 마감한 것이 아니라 바둑을 통하여 새롭게 살아나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는 것이었다.

 

  지금 그의 무덤에는 가을 낙엽이 뒹굴고 있지만 봄이 되면 새싹이 돋아나듯이 그는 다시 살아나와 바둑판 앞에 앉아 홀로 수담을 나누는 장면이 떠올랐다. 언제 내가 직접 그런 모습을, 그 순간을 볼 기회가 있을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다만 오늘도 나는 한판의 바둑을 두면서 K의 경우처럼 나도 죽어서 그렇게 무덤을 넘나들며 바둑을 계속 둘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내가 죽더라도 바둑은 계속 두어질 것이고 바둑에 대한 미련은 끝까지 끝내 버리지 못할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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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권미나 |  2013-12-06 오전 9:39:49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허..  
철권미나 아름다운 세계여요..^^*
따라울기 |  2013-12-07 오전 10:03:14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내 몸을 빌려줄 용의도 있는데....  
팔공선달 |  2013-12-11 오후 12:05:22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올만에 오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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