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의 고성산(高城山) 정상에 가면 화강암 종류의 바위가 있다.
언뜻 보면 여러개의 바위를 한데 모은 것 같기도 하고 볼품없는 거대한 수석을 산봉우리에 옮겨 놓은 것 같기도 하다. 한마디로 별 특이한 모양새는 아닌데 자세히 보면 한쪽 바위의 모양이 거북을 닮은 형상을 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생긴 것으로 보이는데 그 형상이 거북의 머리와 몸체를 연상시키기엔 충분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고성산을 오르내리면서도 이 바위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는 것 같다. 그냥 일개 이름없는 바위 정도로 무심코 지나쳐버린 것 같았고 사실 나도 전혀 몰랐으니까.
그런데 이 바위에 대해 간과하지 못할 숨은 비밀이 있다는 것을 바로 며칠 전에 알게 되었다.
그에 앞서 고성산에 대해 간단히 말하면 해발 483m, 산 정상에서 동쪽 양천동으로 50m쯤 내려온 곳과 서쪽 원동마을 뒤 성골에 석축성(石築城)을 쌓은 흔적이 있다. 석축성은 높이 약 2.5m, 길이 50m로 중간엔 끊어져 있다. 금릉지(金陵誌)에는 신라시대에 쌓은 것이라고 적혀 있다. 동쪽의 성 바로 밑에 큰 바위가 있어 그 밑에 사람이 숨을 수 있는 굴이 있는데 초소로 이용되던 곳으로 망적굴(望敵窟)이라고 한다.
한데 정작 산 정상에 있는 바위에 대해서는 고서적 어디에도 일언반구의 언급도 없다. 사연이 있었는데도 기록에 누락되었든지 아니면 구전으로 전해오던 것이 어느 시기에 명맥이 끊겨 사라진 것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런걸 연구하고 알아내는 방법이 최근 많이 소개되고 있다.
이를테면 잃어버린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는 것인데 과학적으로 증명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수 없는 방법이 최면과 꿈이다. 현실적으로 접하면서도 반신반의하는 게 사람의 마음이다. 그러나 어찌하랴. 기록에도 없고 달리 방도가 없다면 우리의 몸 안팎에서 일어나는 유무형의 모든 일들을 귀담아 들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날도 나는 평소와 다름없이 산 정상에 올라와 숨을 가다듬었다. 그날은 전날 마신 술 때문에 속이 불편하고 피곤하였다. 몇군데 나무의자가 있긴 하였지만 바위의 한 모서리에 기대고 앉아 잠시 눈을 감았다. 봄 기운이 감도는 따사로운 산바람이 이내 나를 꿈속으로 몰아넣었다.
꿈속에서 산신을 만났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온몸이 백색으로 뒤덮여 눈부셨고 눈빛은 똑바로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섬광이 일듯 붉게 빛났다.
- 내 너를 기다리고 있었느니라.
- 저, 저를 요?
- 그래.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이 곳을 다녀갔지만 내가 너를 택한 것은 네가 누구보다도 흠이 많았기 때문이다.
산신의 지적에 나는 당혹스러워 몸둘 바를 몰랐다.
- 너는 착한 척, 얌전한 척 하지만 누구보다도 죄가 많다는 것을 알고 있느니라. 물론 너의 심성이 착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심성이 착한 것만큼 반면에 악한 짓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착한 사람이 어쩌면 상식을 뛰어 넘는 죄를 범할 수도 있다. 너는 옛날 크고 작은 수많은 죄를 지었고 지금은 속죄하듯 살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그것이 미흡하게 보인다. 그것이 가장 인간적인 모습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어리석음, 죄를 짓고도 덮기에 급급하고 뉘우칠 줄을 모르는 천박한 행동, 이런 굴레에서 벗어나 보다 나은 단계로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 그래서 너에게 한가지 사명을 주겠다. 너의 죄를 속죄도 할 겸 이 바위에 얽힌 얘기를 사람들에게 전파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이 산을 찾아 나를 경배하도록 하는 것이다. 나는 이 산의 주인이다. 지금까지 주인없는 산처럼 지내왔지만 이제 때가 되어 내가 주인이라는 것을 알려주려는 것이다. 나그네가 지나가는 길에 어떤 집에 들렀을때 주인장 계시냐고 물어보는 것은 당연하다. 주인이 있는 데도 불구하고 제멋대로 집안을 들쑤석거려 놓는 것은 무엄하기 짝이 없다. 마땅히 무단 주거침입죄로 엄히 다스려야 할 것이다.
산신은 재판관처럼 엄숙하게 나를 단죄하듯 다루었다. 나는 주눅이 들어 산신의 말을 경청할 따름이었다.
- 이 바위는 본래 바위가 아니었느니라. 나의 어르신격인 조물주께서 동물을 모아 길들일때 선택받은 것들이지. 산에서 노닐 수 있는 것들을 모두 가져다가 길렀지. 토끼, 노루, 멧돼지, 너구리, 사슴, 산거북 등등. 그걸 내게 맡겨 키워 보라고. 서로 싸우지 말고 자기 영역을 지키면서 평화롭게 살라고 말이야. 그런데 녀석들은 하나같이 말을 듣지 않고 산을 난장판으로 만들었어. 이것을 바로 잡아야겠다고 하루는 녀석들을 이 산 정상에 모이게 했지. 그런데 녀석들을 길들여보겠다고 한 것이 잘못이었어. 도무지 말을 듣지 않는거야. 자기 멋대로 놀고 까부는 거야. 조물주의 은혜는 아예 생각지도 않고 자기만이 잘 낫다고 깝죽대는 꼬락서니라니. 차마 눈뜨고 봐줄 수 없을 정도로 엉망이었어. 그래서 최후의 결단을 내렸어. 마지막으로 녀석들에게 지키기 쉬운 과제를 주어 그 과제를 수행하면 모든 것을 용서해 주기로 하였지. 그건 어떻게 보면 너무 쉬운 것이었어. 매일 아침 저녁 내게로 와서 문안 인사를 드리는 것이야. 다른 곳에서 그들이 무슨 짓을 하든 내가 알바 아니었지만 문안 인사는 최소한도의 예의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한거야. 한데 그것마저도 지켜지지 않았어. 가장 잘 지킨 것이 거북이었어. 거북은 동작이 느려 멀리 나가보지도 못했지만 내게는 꼭 문안 인사를 하였지. 나는 더 이상 다른 녀석들의 행태를 그냥 놔둘수가 없어 그들에게 철퇴를 내렸어. 가족 모두가 모이는 어느 행사때 녀석들을 모조리 돌로 만들어버렸어. 돌로 만들되 거북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형상을 알아보지 못하도록 뭉퉁그려버렸지. 녀석들의 후손들도 그들을 알아보지 못하도록 말이야. 그러나 거북에게는 가장 오래 장수할 수 있는 특권을 주었어.
산신은 분을 삭이지 못하는 듯 숨을 몰아쉬었다.
- 자식같은 녀석들을 단죄한 것은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가슴이 너무 아팠어. 그게 벌써 수천년이 지나갔어. 이제 그들의 죄를 감면해 줄때가 되었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내 맘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조물주의 승낙을 받아야 해. 승낙받기 위해서는 조건이 있어. 아까 잠시 언급했지만 네가 이 바위에 얽힌 사실을 알려 사람들이 찾아와 나와 조물주에게 경배를 하도록 해야 하는 것이야. 너의 말을 믿으려는 사람이 잘 없을거야. 기껏해야 습관적으로 이곳을 오르내리는 사람들 말고는. 그들 중에도 너의 말을 허무맹랑하다고 비웃을지도 몰라. 어려운 일이지. 하지만 사람들이 좋아하는 거 증거라는 거 아닌가. 이 바위가 확실한 증거야. 내가 너의 꿈속에 나타나 말해 준 것도 말이야. 이 사실을 사람들이 믿든 안믿든 너의 노력 여하에 따라 사실이 전파될 수 있을 거야. 나는 너를 믿어. 그래서 너를 선택했지. 이 시간 이후로 나는 너와 함께 할 것이야.
산신은 말을 마치고 구름 속으로 홀연히 사라졌다. 나는 산신을 뒤쫓아 달려가다가 끝도 없는 낭떠러지로 떨어졌다.
꿈을 깨자 낭떠러지의 공포감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하늘은 끝도 없이 깊고 파랬다. 저쪽 한켠으로 흘러가는 흰구름 한조각이 꿈속의 산신이 사라져간 흔적처럼 보여 한동안 그곳을 응시하였다.
정신나간 사람처럼 나는 주위를 멀뚱거렸다. 꿈속의 일을 믿어야 할 것인지 고민에 빠졌다. 꿈 해몽에 관한 책을 읽은 적은 있지만 산신을 본 꿈은 생전 처음이었다. 나는 서둘러 집으로 내려가 꿈 해몽책을 펼쳤다. 산신에 관한 꿈은 길몽이긴 하나 작은 이익보다 큰 이익을 추구하라는 뜻이며 의로운 일을 하라는 미래 지향적인 뜻이 담겨 있다고 적혀 있었다. 부와 명예를 가져다 줄 수도 있지만 몸가짐을 바로 하고 매사에 행동을 조심해야 한다는 경고의 문구도 있었다. 호랑이 등 산짐승 들이 산신으로 변신하여 나타나는 수도 있으니 꿈속의 얘기를 너무 쉽게 믿어서도 안된다는 말도 있었다.
가장 관심을 끈 것은 부와 명예를 가져다 준다는 말이었다. 퍼뜩 머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 로또였다. 매주 사보는 로또야말로 1등 당첨만 되면 부를 가져다 주는 지름길이었다. 농담으로 언젠가 아내에게 빌딩을 사주겠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이것이 현실로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였다. 나는 나도 모르게 흥분해 있다는 것을 느꼈다. 냉정해질 필요가 있었다. 꿈속의 산신의 말을 되새겨 보았다. 분명히 자신의 말을 사람들에게 알리라고 하였다. 로또를 사보라는 얘기는 어디에도 없었다. 갈등이 생겼다. 그러나 곧 정리되었다. 왜냐하면 로또는 지금까지 매주 사보던 것이므로 평소처럼 사보면 될 것이었고 산신의 말을 여하히 실천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였다.
꿈속의 일을 어떻게 그대로 가감없이 잘 전달할 것인가. 자칫 잘못하면 한낱 우스개로 끝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전달하는 기술, 즉 말을 제대로 요령있게 할 줄 알아야 했다. 나같이 말을 더듬거리며 재미없고 무뚝뚝하게 얘기하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하냐고 귀신 신나락까는 소리하냐고 김밥 옆구리 터지는 소리하냐고 하면 말짱 도루묵 신세가 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하였다. 나는 달리 특별하게 말해 줄 상대는 없었다.
자연스럽게 나는 먼저 아내에게 꿈 이야기를 하였다. 아내는 곧이 곧대로 내 얘기를 믿어 주었다. 그리고 고맙게도 주변의 친구들과 산을 찾는 사람들에게 얘기해 주겠다고 하였다. 아내는 이튿날 꿈 얘기를 확인이라도 하려는 듯이 나와 같이 산에 올랐다. 평소에 무심코 지나쳤던 바위를 요모조모 살폈다. 거북과 확실히 닮은 것 같고 꿈 이야기가 마냥 흘려버릴 일 만은 아니라고 아내는 생각하는 듯 했다. 아내의 입담으로 바위에 얽힌 얘기가 재빠르게 사람들에게 전해졌다.
꿈 얘기를 듣고 바위를 보러 오는 사람들이 한둘씩 생겼다. 처음엔 호기심으로 보다가 바위를 쓰다듬어 보기도 하였고 주의깊게 살피기도 하였다. 간혹 어떤 사람들은 바위 앞에서 손을 모아 합장하기도 하였다. 사람들의 입소문은 알게 모르게 퍼져갔다. 그리고 바위와 관련된 다른 소문들도 덩달아 나돌았다. 바위에게 경배를 하고 내려가면 몸이 가벼워진다는 것, 집에 가서도 맘이 편하다는 것, 자손이 귀한 어떤 집에서는 아들을 임신했다는 것, 일을 해도 뭔가 쉽게 풀린다는 것, 자신의 죄를 고백하면 면해진다는 것 등 여러 가지 소문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소문이란 가속도가 붙으면 겉잡을 수 없이 빠르게 퍼져 나가게 마련이다. 고성산 아래 주변에 교회와 절이 몇 개 있는데 그 곳 신자들도 사실을 확인이라도 할 듯이 산을 찾았다. 그들은 절대자를 믿는다는 것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사람들은 종교에 관계없이 바위를 보고 자기 나름대로의 해석을 하고 받아 들였다. 부정적이 아닌 모두가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위를 바라보았다. 무교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심리적인 작용으로 어떤 믿음을 갖고 관심을 가졌다.
고성산에 사람들의 발길이 눈에 띠게 늘어난 것은 당연한 것처럼 보였다. 바위에 대한 소문이 나기 전에는 평일 기준으로 사람들이 오르내리는 모습은 드물었지만 그 이후에는 주말은 말할 것도 없고 평일에도 산을 찾는 사람들의 수가 부쩍 많아졌다. 소문을 듣고 외지에서도 찾아오는 사람이 적지 아니하였다. 자연 고성산 주변 인근이 산을 찾는 사람과 차량들로 제법 북적였다. 이것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산을 찾는 사람들이 계속 늘어난다는 것이었다.
관련 동향을 파악한 시의 관련부서에서 발빠르게 움직였다.
바위에 얽힌 내력, 산을 찾는 사람들의 성향과 인원 증가 상황, 산 인근 주변 환경, 기타 참고사항 등을 세밀하게 조사 분석하였다. 그리고 이 곳을 관광상품화하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침체되어 가는 시의 경제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한 모양이었다.
바위 주변을 성역화하는 한편 등산코스를 정비하고 산아래 도로 주변의 주차시설을 보완토록 하였다. 또한 대외 홍보 및 전담부서를 두고 지속적으로 관리하도록 하였다. 시의 적극적인 대처로 산정상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지게 되었다.
오늘도 고성산 정상에 가면 사람들이 바위 주변을 맴돌며 자신의 소원을 비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전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거북바위를 새롭게 쳐다보며 만져보기도 하고 예를 표한다. 허공 속에서 혹시나 자신을 바라볼 지도 모를 산신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겸허한 맘으로 옷깃을 여민다. 산에 와서 함부로 떠들고 소리치던 사람들, 쓰레기를 별 생각없이 버렸던 이들도 자숙하고 스스로를 되돌아 본다.
무명바위의 자태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언제나 변함없이 억겁의 침묵으로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