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방은 국어사전에는 아직 등록된 말이 아니다.
짐작으로 입맞춤을 하는 방 쯤으로 생각되는 데, 어느 인터넷 백과사전에는 키스를 판매하는 업소로 소개하고 있다. 삼십분동안 키스를 하는 데 4-5만원을 내야 한다고 한다. 보통 사람들의 하루 일당에 해당한다. 2, 3년 전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키스방은 제도권에 편입되지 않아 불법, 변태 영업을 하면서 온갖 잡음을 일으키고 있다. 단속이 심해지자 뽀뽀방으로 둔갑하는 곳도 있단다. 업주들의 기발한 변신술이다.
나는 처음 키스방이란 말을 들었을 때 좀 신선한 느낌을 받았던 게 사실이었다. 입술로 이루어지는 애정표현, 서양인들의 개방적인 입술 문화 같은 건전한 쪽으로 생각을 하였다. 그러나 실상은 정반대의 상황으로 가고 있었다.
삼십분동안이나 남의 입술을 빨아대면 그 입술이 온전할 리가 있겠는가. 입술이 부르트고 피멍이 들 것이었다. 집사람하고도 단 몇 분 동안, 아니 단 몇 십초라도 한 적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기억이 가물거리는 데 삼십분이라는 시간은 참으로 지루하고 긴 시간일 것이었다. 혈기왕성한 청춘의 피가 끓어 오르는 사람이야 순간에 지나지 않을지 모르지만.
집사람의 입술은 쳐다보기 싫을 때가 있다. 사사건건 남편의 하는 일에 간섭하는 말과 잔소리가 그 입술에서 나오기 때문이었다. 어떤 때는 바늘로 입술을 꿰매고 싶을 정도이니까. 내 입술은 어떠한가. 그와 딴판으로 거의 닫혀져 있다. 하루에 입이 열리는 시간은 밥 먹을때와 간혹 간식거리가 들어갈 때 뿐. 특별하게 열리는 경우는 치과에 가서 이빨 치료할 때이다. 다른 아픈 것은 몰라도 이빨 아픈 거는 도저히 못참으니까 할 수 없이 입을 여는 것이다.
그러므로 키스를 하기 위해 입을 연다는 것은 내겐 엄두도 못낼 일이다. 입술도 함부로 움직이지 못한다. 마지 못해 웃을 일이 있어 입술을 움직이면 집사람이 미리 알아채고 경고를 준다. 당신, 입 조심. 벌로 실룩거리지 마. 꼴보기 싫어. 웃을라마 웃고 말라마 말아. 웃는 것도 아이고 우는 것도 아이고. 한번만 더 실룩거리마 주디를 콱!
상황이 이러하니 입술을 놀릴 생각은 아예 할 수가 없다. 잘못하면 입술 자체가 어디로 돌아갈지 모른다. 요즘은 집사람과 냉전 상태에 있으니 더욱 그렇다. 그런데 이 냉전은 오래 가면 모두가 불행해진다. 가정이 파탄날 수도 있다.
가정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필요하면 굳게 닫혀있던 내 입술도 열어야 한다.
방법을 찾던 중, 묘안을 생각해 내었다. 묘안은 바로 키스방을 벤치마킹하는 것이었다. 거실 한쪽에 칸막이를 설치하고 중간 칸막이 벽면에 입술 모양의 구멍을 뚫어 입술만 보일 수 있도록 하였다. 양쪽에서 얼굴을 칸막이에 대면 입술이 어느 한쪽으로 나오게 되어 있어 자연히 입술이 닿게 되어 있다. 집사람은 처음에 궁금증을 유발하면서 무슨 짓거리를 하는가 싶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다가 내가 칸막이를 완공하자 피식 웃고 말았다. 나는 웃지 않았고 가정의 평화를 지키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내놓은 것임을 알려주기 위해 행동에 들어갔다.
나는 저녁을 먹고 난 뒤 즐겨보던 TV드라마를 외면하고 칸막이 안에 들어가 앉았다. 칸막이에 얼굴을 대고 눈을 감았다. 갑갑하기는 했지만 입술이 바깥으로 트여 있어 조금은 나았다. 반대편에서 보면 시퍼런 입모양이 어두운 조명으로 더욱 시퍼렇게 보였다.
눈을 감은 채, 잠시 명상에 잠겼다.
나는 왜 이렇게 앉아 있는가. 스스로 좁은 공간을 만들어 자신을 되돌아 볼 기회를 가진 것이 옳은 일인가. 지금까지 무엇을 위해, 아니 가정을 위해, 아내를 위해, 가족을 위해 어떻게 해 왔던가. 쓸모없는 똥고집에 사로잡혀 가정의 평화는 뒷전으로 물러나게 하지 않았던가. 침묵 아닌 침묵으로, 침묵을 위한 침묵으로 아내와의 대화를 단절시키지 않았던가. 남북대화도 정말 어렵다는데 아내와의 대화는 그보다 더 어렵구나. 한번 틀어진 마음의 상처를 어떻게 보듬어 대화의 숨통을 트이게 할 것인가. 그것은 내 입술을 아무런 조건없이 여는 것이다. 상대방이 먼저 굽혀 오기를 바라면 안된다. 내가 먼저 모든 것을 던져 순교자의 심정으로 이 가정을 구해야 한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깜박 잠이 들었던 것 같았는데 내 입술에 이상한 반응이 있었다. 학원에서 돌아온 딸 아이가 소근거렸다.
- 아빠, 입술이 너무 새파래. 그대로 있어 내가 빨간 립스틱을 발라 줄게.
아내의 입술이 닿으리라고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대신 딸 아이의 세심한 생각이 고마웠다.
립스틱을 칠한 내 얼굴을 보고 딸은 깔깔거렸다. 삐에로 같애. 아빠의 입술이 불타고 있어. 정말 멋지다 우리 아빠.
거실의 소란스러움에 아내가 얼굴을 내밀었다.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입을 삐죽였다. 그러다가 자기도 모르게 우스웠던지 눈웃음을 지었다. 그것을 기화로 아내와의 냉전이 수그러들었다. 결과적으로 키스방을 인용한 것이 효과를 거둔 셈이었다. 이것을 소재로 모 언론매체에 부부의 냉전 해소라는 제목으로 기고를 한 것이 게재되었는데 그것을 보고 키스방을 벤치마킹하겠다고 나선 곳이 있었다.
한곳은 모 가정법원이었다. 이혼을 방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겠다는 것이었다. 협의이혼인 경우 3개월의 숙려기간을 두는데 그동안 서로 마음이 변하면 다시 합칠 수가 있다. 그 방법의 하나로 법원 내에 부부만의 키스방을 만들어 상대방의 입술만을 바라보게 하여 서로의 감정을 조절한다는 의도였다. 꼴보기 싫은 얼굴 말고 입술만 바라보면 서로가 그 입 때문에 마음의 상처를 준 것을 깨닫을 수 있다. 저 놈의 입, 저 웬수같은 입. 그러다가 자신의 입을 생각한다. 맛있는 것만을 찾았던 반면 온갖 추악한 것들도 함께 들락거렸던 입, 두 입술이 포개어진 첫날밤, 그 달콤한 앵두같은 입술. 아니 김천은 자두가 유명하니까 자두같은 입술이었다. 그것만 생각하면 지금 이 순간, 이혼 따위가 무슨 개뼉다구같은 것이란 말인가. 사람의 마음은 순간순간 변하기 마련이다. 순간의 포인트를 잘 잡으면 이혼을 방지할 수 있다.
이혼 신청자들의 반응은 처음엔 시큰둥하였으나 조금씩 긍정적으로 변해가고 있다고 하였다.
법원 다음으로 시도한 곳은 모 병원이었다.
비뇨기과의 한 전문의가 시험을 자청하였다. 발기부전 환자의 치료 목적으로 이용한다는 것이었다. 병원의 지원을 받아 진료실 한켠에 키스방과 같은 작은 공간을 만들었다. 그런데 환자를 맞이할 상대가 문제였다. 고심 끝에 신분 비밀보장과 오직 입술만을 제공하고 얼굴 부위와 기타 다른 신체 부위는 절대 노출시키지 않는다는 단서를 달았다. 보수는 일일 대기료 기본 2만원에 환자 1명당 3천원의 수당을 주기로 하였다.
비뇨기과는 원래 부끄럽다는 인식이 있어 다른 과보다는 환자 내방객이 많지 않아 환자를 많이 받을 확률은 낮은 편이었다.
가장 중증이라고 생각되는 환자를 선택하여 시험해 보기로 하였다. 마침 사십대로 보이는 중년 사내가 방문하였다. 그는 부부관계의 심각성을 깨닫고 용기를 내어 찾아왔다고 하였다. 진단 결과 특수치료가 필요한 것으로 판단되어 키스방을 적용해 보기로 하였다. 요령을 설명하고 비밀 칸막이에 들어가 입술을 접촉해 보도록 하였다. 몇분 후 사내는 흡족한 표정으로 나왔다. 치료효과가 의외로 성공적이었다. 사내는 언제 다시 올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의사는 간단한 약을 처방해 주면서 스트레스를 너무 받으면 그럴수 있으니 오지 않아도 될 것 같다고 얘기하였다.
이 특수치료법을 홍보를 하지도 않았는데 입소문을 타고 환자들이 찾아와 다른 과에서 신기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담당 의사의 주가도 당연히 올라갔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은 문제가 발생하였다. 처음 치료했던 사내가 어떻게 알았는지 자기와 입술을 같이 한 상대방을 알아내고 의사를 찾아와 항의를 한 것이었다.
- 선생님도 너무 하십니다. 칠십이 넘은 노인네를 갖다 놓고 치료를 하면 되겠습니까? 내가 아무리 환자라고 해도 그건 너무 한거 아닙니까?
사내는 사실 치료 이후 아내보다 병원에서의 입술 치료가 인상적이어서 이왕이면 그 여자와 밀회라도 해볼까 해서 수소문해 보았는데 늙은 할머니라는 것을 알고는 더욱 실망하였다는 것이다.
의사는 난감하였다. 치료도우미의 비밀이 공개된 것도 그렇고 사내의 황당한 태도가 그랬다. 치료도우미는 나이와 관계없이 입술만 보고 선발한 것이었다. 칠십이 넘은 할머니의 경우 입술만은 젊은이 못지 않은 김천의 자두빛 같은 매력적인 빛을 발산하고 있었던 것이다.
의사는 단호하게 말했다.
- 치료의 목적은 이미 달성했습니다. 선생의 건강도 전보다 더 나아졌고요, 아내와의 부부관계는 선생의 마음먹기에 달려있습니다. 누구를 탓할 것이 아닙니다. 자꾸 이러시면 경찰을 부르겠습니다.
경찰을 부르겠다는 말에 사내는 태도를 누그러뜨리고 변명아닌 넋두리를 하면서 병원을 빠져나갔다.
의사는 쓴 웃음을 지으며 다음 환자를 맞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