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에서 내가 보는 업무는 새로운 예금제도를 개발하는 일이다. 은행의 가장 중요한 일은 물론 적극적으로 예금을 보다 많이 유치하는 일이다. 직원들에게 목표를 할당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방법을 구사해 보지만, 통장 예금의 내용을 획기적으로 혁신하여 예금을 유치하는 길 밖에 없다. 그러면 자연히 고객들의 자금이 굴러 들어오게 되어있는 것이다.
나는 궁리 끝에 한가지 묘안을 찾아냈다. 통장에 저축을 한 상태로 죽었을 경우에 죽은 뒤의 모든 것을 처리해주고 또한 사람들간에 논란거리가 되고 있는 사후세계까지 파악을 해서 철저한 사후 봉사를 해드리면 어떨까 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의 저축은 살아있을 동안만 위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만약 죽은 뒤의 문제까지 해결해주는 예금통장이 개발된다면 엄청난 금액을 유치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통장이 가능할까. 나는 착안은 했지만 막상 구체적인 내용까지는 잘 떠오르지 않았다. 그러나 시작이 반이라고 통장의 제목부터 우선 정하기로 했다.
이름하여 ‘부활통장’. 그렇게 정하여 놓고 보니 그럴 듯 했다. 내용은 바늘 가는데 실 가듯이 연이어 떠올랐다.
죽은 뒤에 부고장을 내는 것부터 시작하여, 장례식, 삼우, 매년 기일마다 간단한 예식을 올려주고 가족들의 생일이나 경조사시에 고인의 이름으로 축전이나 조문 전보를 띄우면 죽어서도 살아있는 효과를 낼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죽은 당사자에 대한 서비스였다. 예금은 죽은 사람의 몫이므로 실질적으로 죽은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해야 하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나는 절망감을 느꼈다. 명절날 무덤 주위를 다듬어 준다든지, 옛날처럼 여막을 짓고 밤을 새워 지켜준다든지 하는 것은 실질적이 아니라 형식적인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었다. 죽음의 문턱을, 인간의 시계에서 보이지 않는 세계로 넘어간 사람에게 어떻게 사후 봉사를 할 것인가. 그것이 관철되지 않는다면 고객은 거부반응을 일으킬 것이다.
나는 잠시 쇼펜하우어가 죽음의 비밀을 알기 위하여 자살을 시도한 사람의 경우에 대한 평을 한 것이 생각났다.
어떤 사람이 죽음의 저쪽 세계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하여 자살을 했다고 하자. 그러나 그것은 실패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죽음의 해답을 얻기전에 이미 그는 죽음의 저쪽으로 건너가버리기 때문이라고. 그러므로 모든 자살행위는 실패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다른 방법은 없는 것일까. 생각 끝에 결국 종교에 의지할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고 많은 종교 중에서도 그래도 세계 대다수 사람들이 믿고 따르는 예수에 대한 것을 연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그는 세계 4대 성인중의 한사람으로 꼽히고 있으며 네사람 중에서도 죽음에서 부활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그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도 그가 살았을때의 선한 일이나 기적을 행한 일때문이 아니라 죽음에서 되살아나 부활했다는 그 사실, 그것이 한낱 평범한 사람의 일시적인 부활이 아니라 어떤 영원한 상태로 이천년이 되도록 지금까지 연결되어 왔다는 사실을 믿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우주 만물을 창조한 하느님의 아들로서 죄악에 물든 인간세계를 구원하기 위해서 왔다고 설파하였다. 그의 말은 권위가 있었고 그의 모든 행적은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것들이었다. 인간의 가장 궁극적인 걸림돌인 죽음의 문제를 오직 그만이 해결해 낸 것이었다.
죽음에서 부활하여 살아난 예수가 만약 은행원으로 근무하였다면 그 은행은 엄청난 저축실적을 기록했을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부활통장’을 만들기 위해서 예수의 행적을 고객에게 홍보한다면 특정 종교를 두둔한다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창구를 즐겨 찾는 고객들중 어쩌다가 모습을 보이지 않게 되어 뒤에 그의 죽음을 알게 될 때 나는 충격과 슬픔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어쩌면 은행 창구에 잠시 얼굴을 내비쳤다가 사라지는 현상과 같은 것이 아닐까.
칠팔십년이라는 거대한 인생의 창구에서 기껏해야 휴지 조각처럼 사라질 지폐 뭉치에 맘을 빼앗기다가 혹은 복권 몇장에 인생의 요행을 걸며 숨을 할딱거리다가 어느날 갑자기 찾아오는 죽음의 사신 앞에 두말 없이 손을 내밀어야 한다. 나는 결국 실질적인 ‘부활통장’을 만들 수 없음을 자인하고, 다만 분실된 통장과 난이 다 채워진 예금통장을 새로 만드는 것으로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이름뿐인 ‘부활통장’은 고객을 속이는 결과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은, 미래는 무한한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음을 믿고 또 그것은 고객에게서 찾아내야 한다고 믿고 나는 창구로 나가 고객에게 밝은 미소를 던졌다. 밝은 미소는 어두움을 몰아내고 죽음의 그림자를 몰아내는 특효약임을 아는 까닭에.
통장이여, 죽음이여, 인생의 모든 걸림돌이여, 그리고 우리 은행의 고객이여. 나의, 우리 은행의 밝은 미소에 모든 것을 맡기십시오. 그러면 당신의 모든 것이 새롭게 태어날 것입니다. 당신의 절망과 어두움과 그리고 당신의 죽음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