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참말로 일을 할라카이 일을 할 수 있어야지요. 자고나마 없어지고 자고나마 없어지고 하이 참말 희안한 일 아인교. 우예 일할 수 있도록 조치 좀 해주이소.”
면소재지 마을 보도블록 공사를 하다가 울화가 치민 김경수가 면장실로 찾아와 하소연하듯 하는 말이었다.
“공사를 나도 오만데서 다 해봤지만요. 이런 데는 생전 처음입니다. 블록이 왜 자꾸 없어지는지 알다가도 모을 일이라요. 당최 이해를 할 수가 있어야지. 블록에 꿀 발린 것도 아이고, 삶아 물 수도 없을낀데 이해가 안가요, 나는 이해가.”
“몇장쯤 없어졌소?”
“한 이백장쯤 될낍니다.”
“이백장이나?”
조철규 면장은 내심 놀랐다.
며칠전에 보도블록이 몇장 없어졌다는 말을 지나가는 말로 들은 적은 있었지만 그땐 대수롭잖게 생각했었는데 이백장씩이나 없어졌다는 말은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졌다. 자신이 관리하는 지역내에서 이런 불미스런 일이 발생했다는 사실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면장 자신의 책임일 수도 있었다. 곧 조치를 취하겠으니 가서 일 준비나 하고 있으라고 타일러서 김경수를 내보냈다.
조철규 면장은 이 일을 어떻게 빨리 수습할 것인가를 생각했다. 누가 외부에서 알기전에 조속히 해결을 지어야 할 문제였다. 악독하기로 소문난 M신문의 지방 주재기자인 송영갑에게 알려지기라도 하면 큰 낭패일 것이었다.
조철규 면장은 백성수 총무계장을 불렀다. 우선 동네 이장에게 연락해서 앰프방송으로 보도블록 가져간 사람은 자진해서 늦어도 오후 한시까지 제자리에 갖다 놓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약속 시간까지 제자리에 갖다 놓으면 일체의 책임을 묻지 않을 것이고 그렇잖으면 적발될 시에 고발 조치하겠다는 말도 덧붙이라고 했다.
이장이 마침 집에 있었던지 곧 이어 앰프방송 소리가 흘러나왔다.
“……동민 여러분에게 알립니다. 동민 여러분에게 알립니다. 도로가에서 공사용으로 갖다 놓은 보도블록을 가지고 간 사람은 이 방송을 듣는 즉시 제자리에 갖다 놓아주시기 바랍니다. 보도블록이 없어서 공사를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동네 공사를 위해서 갖다 놓은 자재를 함부로 가져가서는 절대 안되겠습니다. 늦어도 오후 한시까지는 모두 제자리에 갖다 놓아주시기 바랍니다. 시간내에 갖다 놓으면 모든 것을 불문에 붙이겠다고하며 만약 그때까지 갖다 놓지 않으면 면에서 고발 조치하겠다고 하오니 이 방송을 듣는 즉시 이행해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알려드립니다…….”
이장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긴박감을 띠고 있었다. 도로변 상가 주민들이 이장의 다급한 방송을 듣고 내심 두려운 감을 느끼고는 있을 터이지만, 그러나 막상 백주 대낮에 자기가 가져간 블록을 들고 자진해서 선뜻 갖고 나올 사람이 별로 없을 것이었다.
모두가 밤을 이용해서 자기딴엔 아무도 모르게 가져간 것으로 되어 있는데 방송으로 느닷없이 자백하라고 하니 모두들 화들짝 놀라 몸을 사리고 있을 것은 뻔한 이치였다. 목을 깊숙이 틀어박고 누가 먼저 갖고 나올 것인가 하고 서로가 그렇게 집 안팎을 들락거리며 눈치를 살피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내가 훔쳐갔소, 내가 도둑놈이오, 내가 죽일놈이오 하고 그런 양심을 갖고 들고 나올 사람이 이 바야리 동네에 과연 몇 명이나 되겠는가 하는 것도 의문이었다.
그리고 그 보도블록이라는 것이 이 시골 구석 도로변 상가 주민들에게 갑자기 무슨 희귀한 귀중품처럼 보인 것이 탈이라면 탈이었다. 반듯한 네모진 각에 꽃무늬 장식이 예쁘게 그려져있었고 불그스름한 색깔까지 띠고 있어서 그런 걸 도로변 바닥에 무작정 깔기에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몰랐다. 그렇게 귀하게 보이는 것들을 공사를 하기 위해 도로변 중간중간에 수십장씩 쌓아 놓고 있어서 한두장쯤 가져간들 무슨 큰 잘못이 있을까 하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야밤중에 누군가가 먼저 블록 한 장을 가져갔는데 주변 상가 주민들이 어떻게 그걸 알고 너도나도 한 장씩 가져가기 시작한 것이었다. 처음엔 주위를 살펴가며 눈치를 봐가면서 가져가다가 나중엔 자기 것인양 서로 힐끔거리며 자기 집으로 운반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왕지사 가지고 간 바에야 깊숙이 감추어 놓고 그대로 눙쳐보자는 심산들을 하고 있었다.
예상했던대로 오후 한시가 지났으나 한사람도 갖고 나오는 사람이 없었다.
조철규 면장은 직원회의를 긴급 소집했다. 출장간 직원들도 전부 불러들였다. 면장의 표정이 사납게 굳어있어서 직원들은 다소 긴장감을 느꼈다.
“바야리 담당 최대봉이, 니는 동네 나가마 그런 것도 좀 안살피고 뭐하노? 보도블록이 없어져가 일을 못한다 안카나 일을. 등신같이 그런 것도 하나 예방못하고 뭐하는기라. 술한잔 묵으라카마 그저 좋아갖고 헬레레하이 이런 일이 안생기나. 일하러 다니는기가 술묵으러 다니는기가. 분간을 못하겠어. 골짝 동네도 아이고 면사무소 바로 옆동네 맡기 놓으이 그 지랄이가. 매일처럼 나가면서 그런 것도 안보고 뭘 보노? 이 무슨 창피고, 면장 얼굴에 똥칠하는 거 아이가. 업자가 어떻게 생각하겠어, 우리 면에는 도둑놈만 산다 안카겠어? 어쨌든 일은 벌어진기고 전 직원이 지금 당장 나가. 나가서 집집마다 들어가 뒤지. 한집도 빼놓지 말고 싹 뒤지. 뒤지갖고 블록 나오는 집 명단을 작성해. 본때를 보여줄끼라. 그마이 방송하고 사정했으마 갖고 나올 것이지 무슨 뱃장으로 안갖고 나오는지 모르겠어. 누구 뱃장이 센가 내 한번 볼끼라. 식급시킬 참이끼네. 이 무슨 되도 안한 짓들이라. 가져가긴 지랄할라꼬 가져가나? 가져가서 누구 말마따나 삶아 물라캤는가. 소화 자알 되겠다 참말로. 이빨부터 왕창 안내리앉으마 다행이구로. 더 긴소리할 것 없고 지금 당장 다들 나가. 면에 경운기도 동원해. 가서 오늘 중으로 다 회수조치해 회수조치.”
조철규 면장의 강력한 지시에 따라 직원들은 경운기를 앞세우고 장터쪽으로 내려갔다. 마치 탱크를 앞세우고 전쟁터로 가는 보병들 같았다.
상가 주민들은 이미 방송도 들었고 면직원들이 떼지어 내려오는 낌새를 알고 가져간 보도블록의 안전도를 점검하는 축들도 있었다.
직원들은 분산되어 집집마다 찾아 들어갔다. 마당구석, 뒷간, 부엌, 마루 밑을 샅샅이 살폈다.
잠시 뒤 여기저기서 직원들의 손에 블록이 한 장씩 들려져나왔다.
대문간 뒤에 숨겨놓은 사람, 장독 받침대로 고여놓은 사람, 화장실 안에 모셔 놓은 사람, 요강 밑에 두장씩이나 포개놓은 사람, 선인장 화분 받침대로 만들어놓은 사람, 안방 냉장고 받침대로 쓰고 있는 사람 등등 보도블록은 다용도로 활용되고 있었다.
집주인의 표정도 가지각색이었다.
씨익 웃으며 머리를 긁적거리는 사람, 못본 체 고개를 돌리는 사람, 그러 한두장 좀 쓰마 안되는가 이럴 때 인심 한번 쓰지 하고 아쉽다는 듯이 입맛 다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른 곳으로 급히 숨기려다가 들킨 사람도 있었다.
가져간 것이 한 장이 대부분이었지만 다섯장씩이나 숨겨놓은 간 큰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도대체 왜 가져갔느냐고 물으면 다른 사람 다 가져가는데 나만 안가져가면 손해를 볼 것 같아서 가져갔다는 것이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대답이었다.
직원들이 날이 저물때까지 수색하여 찾은 보도블록은 경운기로 두차가 넘었다. 직원들은 그것을 무슨 전쟁 노획물처럼 경운기에 싣고 면사무소 마당에다 옮겨놓았다. 백오십장이 조금 못되었다. 나머지 오십여 장은 어디에 쳐박혀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반나절만에 그만큼이라도 찾은 것은 큰 성과였다.
김경수는 이만하면 작업에는 지장이 없겠다고 생각되었다. 나머지는 뒷날 다시 찾아보기로 했다. 모자라는 것은 정 안되면 다시 주문을 해야 되겠지만 조철규 면장은 자신의 체면은 어느 정도 만회한 것으로 생각했다. 주민들의 행위는 괘씸하긴 하나, 본질적으로 나쁜 의식을 갖고 한 것이 아니고 단순한 호기심의 충동으로 벌어진 일이어서 크게 문제삼지 않기로 했다.
나머지 보도블록은 뒤에 계속 찾아보았으나 끝내 찾아낼 수가 없었다. 그것은 어쩌면 양심의 가책을 받고도 끝까지 어두운 굴레속에 안주하고자 고집을 부리는 자의 손 끝에 붙잡혀있든가, 아니면 아예 무감각한 상태로 땅속 깊숙이 파묻혀있든가, 천장 밑이나 골 깉은 다락방 깊숙이 숨어있을런지도 모을 일이었다. 그것은 또 민생치안 차원에서 꼭 찾아 해결을 봐야 할 일이었으나 면의 종합행정 업무의 성격상 그 일에만 매달릴 수 없는 형편이었다. 또다른 골치아픈 일들이 자꾸만 생겨 조철규 면장은 그쪽으로 또 신경을 써야 했다.
결국 보도블록 오십여장의 행방은 면사무소 바로 옆동네에서 도시 어린이의 유괴 납치사건 모양으로 그렇게 어느날 홀연히 실종되어 미궁에 빠지고 만 셈이 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