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모처럼 동창회 체육대회에 참석한 것은 친구 녀석의 강권에 가까운 권유때문이었다.
동창회 모임에 참석한다는 것은 내겐 결단이 필요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바쁘다는 핑계로 매년 미루어왔던 아내와의 봄꽃놀이 약속을 올해는 기어코 지키기로 했던 것을 또다시 이행하지 못할 처지였기에.
회비도 별로 내 본 적도 없는데 동창회에 얼굴을 내밀기가 쑥스럽기도 하고 영 맘이 내키지 않았지만 어쩔수 없이 참석하였던 것이다. 친구는 회비 부담은 갖지 말고 참석하는 데 의의가 있으니 가벼운 맘으로 오면 된다고 하였다. 하지만 별수 없이 나도 회비 5만원을 내었다. 회비는 일반회비가 5만원, 특별회비는 10만원이상이었다. 몇몇 잘 나가는 회원은 몇백만원씩 내기도 한단다. 동창회 발전을 위한 기부금이라고 하였다. 학교 다닐 때 공부는 별로였던 녀석들이 사업으로 성공하여 동창회에 금의환향한 것이었다.
K고의 동창회 체육대회는 졸업생 25기가 주관하였다.
오전 10시부터 시작하여 각종 경기가 진행되었다. 달리기, 줄다리기, 배구, 족구, 축구 등 다양하게 펼쳐졌다.
그런데 그날 체육대회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경기내용이 아니었다. 누가 회비를 얼마나 내었느냐가 신경이 좀 쓰이긴 했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다름 아닌 사회자의 투박한 말이었다.
- 오늘 날씨도 좋은데, 정말 좋은데 다른 데 야유회라도 갔으면 정말 좋을긴데 이 좁은 운동장에 모이가 먼지 폴폴 일으키미 딩구는기 진짜 안쓰럽네요. 옛날 학교 다닐때 정말로 먼지 많이 먹었지요. 자 다같이 힘냅시다. 파이팅 한번 하고요.
사회자는 경기 진행 중간중간에 멘트를 넣어가며 대회를 차질없이 치루려는 것 같았다. 마이크를 몇 번 잡아 본 듯 한데도 아직 능숙하지는 못해 보였다. 처음 시작할 때에는 정중하게 경어를 쓰다가 경기기 무르익어 가자 조금씩 말투가 거칠어졌다.
경기 진행이 자기의 의도대로 되지 않아서인지 신경질적인 어투가 섞여나왔다.
- 담당 책임자들 빨리 진행시키세요. 말 안들으마 쥐박아뿌리. 이래 뒤죽박죽해갖고 장사 해묵겠나? 저쪽 달리기 선수들 빨랑빨랑 나와요. 벌씨로 입에 뭘 쑤시넣고 그래가 달리기 하겠어요? 몇발자국 안가서 다 튀나오겠구마는. 처묵으러 왔는지 운동하러 왔는지 분간을 못하겠네.
반말인지 욕설인지 모를 사회자의 멘트에 모두들 귀를 곤두세웠다. 분위기가 이상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일단 마이크를 잡은 사회자의 말을 듣지 않을 수 없었다.
점심 시간이 따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어서 참석자들은 각자 알아서 먹을 것을 챙겨야 했다. 경기 진행 역시 점심시간 없이 계속되었다. 사회자도 알아서 챙겨 먹어야 했고 한정된 시간내에 대회를 마치려면 강행군을 해야 할 것이었다. 경기 종목마다 승부가 날때에 일희일비가 일어났다. 박수가 나오고 만세도 불렀다. 군댓말로 ×통수는 불어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간다는 말이 있지만 오늘 대회는 사회자가 막말을 해도 잘 돌아가지 않고 있었다.
25기생 사회자는 동창회에서는 50대 초반에 속한 상위 선배권에 속하였다. 그보다 더 연로한 선배들이 있지만 오늘 동창회원 중에는 후배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이유때문이었을까. 사회자는 자신의 불만을 거침없이 토해내고 있었다.
- 대충 먹고 경기부터 합시다. 경기 끝내고 얼마든지 먹을 수 있잖소. 저쪽 족구 경기 빨리 하지. 시간도 많이 지났는데 내 말 안들리나? 귀가 먹었나? 마이크 소리가 이래 큰데 귓구멍이 안막히고야 이럴수 있나? 빨랑빨랑 나오라고!
이제는 경기 진행보다 사회자가 다음엔 무슨 멘트가 나올까 그것이 궁금할 지경이었다.
- 말발이 이래 안먹히가 어디 사회 해먹겠어? 집에 가서는 마누라 한테는 꼼짝도 못하민서 여기서는 뭐 잘났다고 말을 안듣나 이말이야. 개중에는 집사람하고 같이 온 사람도 있는 모양인데 내 말 거짓말인가 물어보라고. 집에서 마누라 눈치 보고 빌빌대민서 여기서는 꼴난 자존심 때문에 못움직이겠다 이 말인가?
사회자는 스스로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 어이, 저쪽 소나무 밑에 그 쪽은 뭐하는 기라. 얼굴 벌개갖고 벌씨로 술취했는가베. 여기 술 처묵으러 왔나? 신성한 동창회에 술이나 처묵고 말이야. 하라 카는 경기는 안하고 이노무 새끼들 버러장머리 하고는. 참말로 같잖구마는. 빨랑빨랑 안할끼라?
황당하게 흘러나오는 사회자의 말에 참석자들은 조금씩 동작이 달라지는 모양새였다. 사회자는 그것을 간파했는지 더욱 자신감있게 말하였다.
- 그렇지요. 우리는 선진 대한민국의 성인입니다. K고의 자랑스런 동문들입니다. 우리 선후배 여러분들이 질서를 잘 지켜야 대한민국이 잘 되는 겁니다. 내가 욕을 하고 싶어서 한 것이 아니고요. 어디까지나 질서를 지켜주셔야 경기가 빨리 진행이 되고 오늘 행사가 제 시간에 끝나는 겁니다. 그 점을 충분히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어이, 그런데 저쪽 강당 옆에 있는 사람들, 내 말 안들리나? 빨랑빨랑 움직이라꼬. 아까도 말했다시피 집에서 마누라시키는대로 하듯이 하마 아무 문제가 없다 카이. 제때 경기하도록 동작 좀 빨리 하라꼬. 일찍 끝내고 가야 할거 아이라. 밤새도록 여기 있을끼라? 내 말이 꼽게 들리나? 꼽게 들리마 여기 와서 내 대신 사회보라꼬. 사회 보는거 전세 낸 것도 아이께. 얼마든지 보라꼬. 누가 보든지간에 오늘 행사는 마무리지어야 될거라. …진짜로 말 안듣네. 내 말이 같잖게 들리나? 욕을 안할라캐도 욕이 저절로 나오네.
마이크 소리가 왕왕거리는 사이로 참석자중의 누가 한마디하였다.
- 그 나물에 그 밥이네. 저거 욕쟁이 담임선생한테 푸지게 얻어 맞디만 그 욕 그대로 배워가 여기서 써먹네. 졸업한지 수십년이 지났는데 옛날 그때로 되돌아간 것 같구만. 그 욕쟁이 선생 얼마전에 죽었다미? 나이가 팔십도 훨씬 넘었을기라. 욕 잘하마 오래 산다 카디만 오래 살라꼬 저 지랄삥 하는강? 아휴 귀가 간지러워서 더 못들어주겠네 씨팔.
그렇게 말하는 그도 역시 한 반에서 공부한 친구였다. 담임 선생의 영향이 골고루 미친 모양이었다.
옆에서 또 누가 거들었다.
- 우리 학교 다닐 때 욕은 욕도 아이라. 달콤한 사탕같았제. 그 소리 한번씩 들으마 속이 후련하고 체했던기 다 내려갔제. 근데 요새 애들 욕하는 거 들어봤나? 겁나서 못듣겠더라. 가슴이 섬찟해. 이새끼 저새끼는 보통이고, ×새끼야 , 칼로 푹 쑤시뿔라, 그런 말도 자기 친구들 뿐아이고 집에 와서 부모들 한테도 막 한다 아이가. 그런말 들으마 먹은기 소화되겠나? 한 일주일은 소화도 안될끼라. 똥으로 옳게 되나오지도 않으이 골치 아픈거 아이라. 우리나라 교육이 우째 되가는지 정말 한심해. 아이들한테 손도 못대구로 하이. 요새 아들은 어디서 못된 것만 배워갖고 속을 썩이는지 진짜 무슨 근본적인 대책이 있어야돼. 근본적인 대책이….
어느덧 경기가 종료되고 시상하는 일만 남았다. 그런데 막판에는 모양새가 더욱 어지러웠다.
예상대로 사회자의 독설이 쏟아져 나왔다.
- 참말로 같잖아여. 줄 설 줄도 모르나? 그 쪽 몇기생들이야? 축 처져갖고 그래가 아는 우예 만들었노? 언가이 처묵고 빨리 줄이나 서라꼬. 가다가 음주운전 걸리마 줄초상난다. 줄초상. 아예 운전대 놓고 대리운전 부르든지, 택시 타고 가든지 하라꼬. 누구 원망하지 말고. 거 요새 좋은 말 많더라. 음주 전에 운전생각, 음주 후에 가족 생각. 아빠의 음주운전 엄마의 평생눈물. 술을 처먹어도 좀 옳게 먹어야지. 저래 헬레레해가 지 마누라 눈물 바가지로 받을거 아이가. 꼴에 존심은 있어 갖고 동창회에 얼굴 내밀고 왔다고 할거 아이라. 동창회에 왔으마 왔는기지 우짜란 말이고. 달리기 하나 제대로 못해가 개혓바닥같이 캑캑거리민서. 평소 운동 좀 하라꼬. 운동해서 남주나. 다 자기 건강 챙기고 벽에 똥칠하민서까지 오래 살라 카는거 아이가. 사람은 무조건 오래 살아야돼. 오래 살라카마 동창회에 빠짐없이 나오고, 달리기 연습도 하고 해서 개혓바닥 내밀 듯이 달리지 말고 좀 제대로 달리라꼬. 그래야 체육대회다운 대회가 되지.
사회자의 황당한 독설 때문에 시상은 하는둥 마는둥 하고 끝이 났다. 오후에는 황사 현상이 일어나 하늘이 부옇게 변하였다. 동창회 개최 이래 오늘처럼 욕을 얻어 먹기는 처음이었다. 아마도 이상 기후현상의 영향은 아니었을까.
부연 모래 먼지가 독설과 범벅이 되어 사람들의 온 몸에 자욱이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