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댁의 손자 결혼식에 참석할 사람들이 동네 입구로 모여들었다.
미리 대기한 버스가 사람들을 한사람씩 두꺼비 입 벌리듯이 넙죽넙죽 받아넣었다. 버스에 탄 사람들은 대부분 늙은 노인네들이었다. 노인 중에서도 할아버지가 몇분 보이고 나머지는 할머니였다. 이 시골 마을에서 젊은이를 찾아보기가 오래되었지만, 그래도 모양새가 늙은이들만 초청한 것같이 보여 결혼식장 분위기가 다소 어색해지지나 않을까 염려되었다.
나도 오랜만에 나들이를 하는 터라 기분이 적지 않게 설레었다. 칠십을 훨씬 넘은 나이지만 아직 거동에는 별 지장이 없었으므로 초청하는 데는 거의 빠지지 않고 있었다. 들리는 말로는 영산댁의 손자는 객지에 나가 돈을 제법 많이 번 것으로 소문이 나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오늘 결혼식은 일반 예식장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무슨 호텔에서 한다는 것이었다.
버스는 사십분정도 지나 시내 어느 호텔 마당으로 들어섰다.
호텔중에서도 일류급에 속한다고 하였다. 식장은 3층에 있었다. 화려한 제복을 입은 젊은 남녀가 입구마다 서서 친절히 안내를 하였다. 시골 노인네가 들어가기에는 너무 격차가 있어 오히려 부담스러울 지경이었다. 휘황찬란한 조명등이 눈부시게 빛을 발하여 여기가 바로 별천지로 연상시킬 정도였다. 식이 끝나고 식사하는 곳으로 안내되었다. 이곳 저곳 칸칸마다 넓은 방이 있어 수십명씩 배정이 되었다. 둥그런 식탁이 방마다 자리를 잡고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식탁에는 온갖 음식들이 진기한 색깔의 옷을 입고 형형색색 조화를 이루고있었다. 숟가락 하나도 금빛깔로 반짝여 아름답고 화려한 궁전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앉은 자리마다 삼각형 모양의 붉은 고깔같은 것이 놓여있었다. 보는 것들마다 신기해서 먹을 생각은커녕 어리벙벙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이 고깔같은 것이 무엇에 쓰는 것인가 궁금하였다. 식탁 위에서 가장 뚜렷하게 색깔을 나타내고 있어 이런 곳에 와서 잘못 행동하면 오해를 받을 소지가 없잖아 있었기 때문에 조심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늙은 노인네들이 주책 바가지니, 늙으면 할 수 없다느니 하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그랬다.
한데 맞은편 구석에서 용철이네 할멈이 행동을 개시하기 시작했다. 용철이네 할멈은 제법 입담도 있고 재간꾼으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에 할멈의 행동은 의심받을 여지가 없었다. 용철할멈은 빨간 천으로 된 삼각 기둥모양을 요모조모 살펴보더니 별것 아닌 듯이 두손으로 잡고 머리에다가 얹는 것이었다. 보나마나 이런 자리에서는 마땅히 알아서 처신을 해야지 그냥 가만히 앉아있으면 바보 취급을 받게 된다는 것이었다. 용철할멈의 머리 위에 얹힌 것은 누가 봐도 잘 어울리는 고깔 모자였다. 빨간 고깔모자. 하얀 백발위에 얹힌 모양이 마치 흰 눈위를 달리는 산타크로스 할아버지를 연상시켰다. 용철할멈이 하는 모양을 보고 노인들이 하나 둘씩 같이 따라 움직였다. 식탁위에 있던 빨간 보자기가 늙은 노인들의 머리위에서 춤을 추기 시작한 것이었다.
나도 따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모르면 배워야 한다지 않는가. 내가 빨간 보자기를 잡고 머리로 올리려 할 즈음 호텔보이가 들어왔다. 이 기묘한 광경을 보고 그는 눈을 휘둥그레 떴다. 할머니들은 일제히 머리를 돌려 호텔 보이를 쳐다보았다. 할머니들의 머리위에 얹힌 빨간 고깔모자가 일순 흔들리며 춤을 추었다.
“할머니, 그렇게 하는 게 아니에요. 이렇게, 이렇게 하는 거예요.”
호텔보이가 황급히 용철할멈의 머리 위에 얹힌 고깔모자를 내려 시범을 보였다. 의자에 앉아 무릎위에 삼각 모양으로 말려진 보자기를 풀어 사뿐히 얹어놓았다.
“이렇게 해갖구요. 음식을 먹고 흘릴 것을 방지하기 위해 사용하는 거예요. 머리에 얹은 것 전부 내려주세요. 누가 보면 웃어요.”
실제로 한쪽 구석에서 킥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용철할멈의 얼굴은 이미 자신감이 사라져 말이 없었다. 그려, 모르면 배워야 해. 모르면서 아는 체 하는 법이 아니지. 늙으면 다 쓸모없는 거야. 자조섞인 말투가 여기저기서 새어나왔다.
그러나 할머니들의 기발한 행동은 예식이 끝난 뒤, 동화속에 나오는 아름다운 옛날 이야기처럼 남겨져 호텔의 전설로 오래오래 전파되었다.
…옛날 이상한 호텔속에 들어간 할머니들이 있었다. 그들은 빨간 고깔모자를 쓰고, 마치 어린 아이와 같이 호텔보이를 무릎에 앉혀 귀여운 재롱을 보고 박장대소하며 키들거렸다. 그러나 고깔모자가 부드러운 장밋빛 스카프로 변해 할머니들의 목을 누르고 웃음소리를 멈추게하였다. 할머니들이 하나 둘씩 힘없이 쓰러졌다. 빨간 마술에 걸린 할머니들은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한곳에 쓰러져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났다. 빨간 장미 한송이, 장밋빛 스카프가 되어 호텔안을 너울너울 떠돌았다. 마침내, 호텔은 온통 빨간 색상으로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