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내가 고향땅 K면을 찾은 것은 참으로 오랜만의 일이었다.
일년에 명절날이나 한두번 가볼까 말까한 그런 고향인 탓도 있었다. 그러나 객지 물을 먹은 사람이면 다 그렇듯이 가슴 한구석엔 늘 고향의 텃자리가 고여있었다. 사오년전에 한번 와보고는 처음이었다.
고향 소식이야 전화상으로 혹은 친구들을 통해서 가끔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몇 년만에 와 본 고향은 변화의 조짐이 역력히 보였다.
너무 늦게 잠을 잔 탓일까. 게으름을 옆으로 밀쳐놓고 새로운 도시의 바람을 맞는듯한 인상이었다.
내가 이번에 고향을 찾은 것은 개인적으로도 전과는 좀은 달랐다.
고향에 오기 한달전 고향지기인 이성수가 서울로 나를 불쑥 찾아왔었다. 녀석은 불알 친구로 늦으막에 면서기로 출발해서 아직도 고향을 지키고 있었다.
“야, 헌납 좀 해라. 비석하나 세워주께.”
다짜고짜 녀석은 돈문제를 들고 나왔다.
“산 사람 비석도 세워주나?”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얼마나 긁으러왔는지 궁금했다. 긁히기전에 당연히 고향 발전을 위해 내놓아야 할 터이지만 그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녀석은 친구지간에 구걸이라는 표현은 쓰고 싶지 않다면서 백만원만 희사하라고 했다. 녀석을 말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았다.
고향 K면의 청사를 새로 지어 낙성식을 앞두고 있다는 것, 건물은 국가예산으로 지었지만 건물안의 책걸상, 캐비넷등 집기류는 찬조를 받아 구색을 갖추도록 방침이 정해졌다는 것, 주민들의 참여도를 유발하고 고향 유지들의 뜻을 함께 담아 준공식을 거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 비석에 이름을 새기는 것은 최소한도 백만원이상 기증한 사람에 한해서라는 것, 그리고 준공식후 이름이 새겨진 비석 사진 전후 장면을 찍어 송부해준다는 것이었다. 물론 감사패도 만들어준다는 것이었다.
나는 녀석의 화술에 끌려 백만원을 선뜻 승낙하고 말았다. 어쩌면 비석에 이름 새겨준다는 소리에 넘어간 것인지도 몰랐다. 사업일정 관계로 면청사 준공식에는 참석치를 못할 것 같아 미리 사전에 한번 다녀갈겸해서 내려온 것이었다.
면청사는 깔끔하게 잘 지어져있었다.
내부구조도 대도시의 관공서 못지않게 격조높은 비품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면장실도 중앙부서의 장급이 부러울정도로 고급스런 비품을 갖추고 있었다. 면장의 텁텁한 얼굴이 그런대로 고향의 맛을 느끼게 해주어서 좋았다.
“박사장께서 협조를 많이 해주셔서 우리 K면이 이렇게 좋아졌습니다. 박사장같은 분이 많이 나와야 우리 K면이 발전될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사람은 고향을 버리고는 살 수가 없지요. 잠시 잊을수는 있겠지만 결국엔 고향을 찾게 됩니다. 박사장 고향마을이 육사리라 그랬죠?”
“예 제일 골짝동네지요.”
“요즘이야 골짝동네라고 할 수 없지요. 도로포장 거의 다 됐겠다, 버스 들어가겠다, 뭐 말이 골짝이지요. 서울 부산등 대도시에서도 당일치기로 왔다 갈수 있습니다.”
손정일 면장은 나름대로의 소임을 다하고 있는 것 같았다.
면장실에서 차를 한잔 얻어먹고 점심식사를 하자고 해서 장터쪽 식당으로 내려갔다.
내가 왔다는 소문을 듣고 동네 유지급이 된 불알 친구들이 찾아와 함께 끼어들었다. 이성수는 손면장에게 나를 서울의 사업가로 이미 소개를 시켜놓고 있었고 친구 녀석들은 나를 부러운 시선으로 보는 눈치였다. 내가 백만원을 희사한 것 자체가 그들에게는 경이로운 경외의 대상이었고 나는 나름대로 뭔가 고향에 대한 짐을 다소 벗은 기분도 들었다.
손면장의 인사치렛말이 나왔다.
오늘 박사장이 찬조를 많이 해주셔서 참으로 감사합니다. 청사는 다 지어놓고 비품장만 관계로 걱정을 했습니다만 한숨 돌리게 됐습니다. 박사장같은 사람이 많이 나와야 우리 K면이 날로 발전될겁니다. 백만원이상 기부한 사람이 박사장님이 처음입니다. 무슨 일이든지 첫 스타트가 중요한데 박사장님이 그걸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 이 술자리는 박사장님을 위한 자리인만큼 그리 아시고 마음껏 드십시오. 여러분 술걱정 마시고 실컷 드세요. 박사장을 위하여 건배. 자 박사장 내 술한잔 받으시오.
손면장의 말이 나를 흡족하게 했다.
술좌석에 앉은 사람들도 손면장의 느긋하고도 고마운 말씀에 한결 마음이 누그러졌다. 술맛이 절로 도는 것 같았다. 술이 몇순배 돌아가자 온갖 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야 너 많이 변했구나. 얼굴 틀이 홱 바뀐 것 같애. 생각나니? 옛날 장터 바닥에 가서 막걸리먹고 말이야. 소장수하고 한바탕 싸우던 일 말이야. 고삐가 땅에 떨어져있어서 말이야. 주워갖고 가는데 어디선가 소가 따라왔지. 얼마 못가 소장수한테 얻어터졌지. 새꺄 그건 정훈이 니 얘기잖아. 소장수 돈보따리 걷어찼지. 그래 그때 우리 고기도 많이 잡았다. 천렵이란 말, 요새 젊은 사람들 모를꺼야. 즉석에서 먹어치우곤 그랬는데, 요샌 강물이 오염돼서 그냥은 못먹어. 콩서리, 고구마서리, 감자서리, 수박서리, 그런 낭만이 없어진지 오래야. 다 어디로 갔을까. 그것만 봐도 세월이 많이 흘렀어. 그래 세월은 강물처럼 흘러가는데 우린 무엇을 붙잡았나. 잡은거라곤 쓰레기뿐이야. 농촌을 오염시키는 환경오염. 고향의 냄새는 간곳없고 우리는 무엇을 부여잡고 있는가말이야.
맥주 한박스가 금방 동이 났다.
손면장은 술을 계속 주문했다. 녀석들은 히히덕거리면서 물마시듯 술을 들이켰다. 나는 허리띠를 풀어놓고 오랜만에 고향 땅에서 취하고 싶었다. 그리고 고향의 냄새를 듬뿍 맡고 싶었다. 하지만 술이 거나해져감에 따라 고향의 냄새는 마비되어 갔다.
녀석들이 간간이 내뱉는 말꼬리가 사위어져가고 있었지만 나는 시간관계상 더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손면장과 친구 녀석들은 술을 한잔 더하고 가라고 말을 했지만 그 말에 눌러앉아 있을 형편이 못되었다.
내가 먼저 자리를 일어서자 녀석들도 어쩔수 없다는 듯이 일어섰다.
나는 오줌이 마려워서 화장실로 찾아 들어갔다. 오줌통을 열어놓으니 방광에 찼던 오줌이 홍수처럼 쏟아져나왔다. 참으로 지루한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한참만에 바지춤을 추스르고 밖으로 나갔다. 면장과 녀석들은 저만치 앞서가고 있었다. 나도 녀석들을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식당문을 나섰다.
그때였다. 내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소리가 들린 것은.
“아저씨이, 그냥 가면 어떡해요? 계산하고 가시야지. 우짤라고 그냥 나가요. 나가긴.”
주인 아줌마의 말이 나를 사정없이 때렸다. 나는 엉거주춤 식당문 출입구에 양쪽 다리를 안팎으로 걸친 채 석고처럼 서있었다. 술기운이 확 달아났다.
나는 앞서 나간 사람중에 분명히 계산했을 것인데, 그럴 리가 없는데 하고 물어보려고 하다가 그만두었다. 나의 해골이 들거럭거리며 요동을 하기 시작했다. 머리가 복잡해졌다. 동시에 어떤 알 수 없는 분함같은 것이 치솟아올랐다. 평탄했던 감정이 어긋나면서 가슴속이 갈라지고 있었다. 하나의 상식같은 상황이 자연스럽게 접수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몸둘 바를 몰랐다.
술값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돈 백만원을 희사했다는 자만심의 발로도 아니었다. 돈 백만원이야 엿사먹은 셈치면 되는 것이었다. 녀석들이 나에게 바가지를 씌우려고 했다면 사전에 그런 낌새나 분위기가 전제되었어야 했는데 그런 것은 발견할 수가 없었다.
손면장은 나를 위한 술자리하고 했었다. 그렇다면 내가 나 자신을 위해서 술을 마셨다는 얘기가 된다. 내 돈내고 내 술먹고. 지랄하나 뭐하노. 그렇지않다면 녀석들이 모두 술이 엉망으로 취해 기나갔단 말인가. 그러나 그것도 아니었다. 면장을 포함한 녀석들은 제 신발짝은 전부 찾아 신고 나갔으니까.
나는 계산을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잠시 망설였다. 주산학원에 가서 기초부터 새로 배워야 될 것인지 갑자기 계산하는 방법이 꽉 막혀버린 기분이었다. 녀석들은 나에게 계산법을 가르쳐주고 나간 것일까. 그러나 오랜만에 찾아온 고향의 계산법은 알 길이 없었다. 자꾸만 나의 해골이 비끄적거렸다. 고향의 따뜻한 접대를 은연중 기대하고 있었던 나의 가슴 한구석이 파괴되어가는 심정이었다.
나는 십만원에 가까운, 구만 오천원을 계산하면서 고향으로부터 그리고 또 무엇인가로부터 자꾸만 배반당한 심정이 되어가는 것을 가눌 길이 없었다. 여태껏 살아오면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많이 겪어왔지만 오늘의 이 일은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일에 속했다. 좀 과장한다면 불가사의하다고나 할까.
그날밤 나는 막차편으로 고향을 떠나왔다. 열차간에서 나는 고향의 난해한 일에 얽매인채 이렇게 중얼거렸다.
내 언제 다시 고향에 가보고싶은 날이 있을까 몰라…그래, 내 가슴의 텃자리엔 <고향>이란 말 대신에 <몰라>라는 말이 자리잡게 될지도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