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면에 근무하는 김서기는 오늘 작정을 하고 골짝동네 S리의 공영감을 찾아갔다.
공영감이 재작년도 세금을 아직까지 내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동안 독촉장도 발
부하고 서너번이나 찾아가 봤으나 돈이 없다는 이유로 번번이 빈손으로 돌아온 것
이었다. 체납처분하면 끝날 일이지만 인정상 그렇게 야멸차게 처리하는 것을 유보
해 온 터였다. 진짜 돈이 없어 안내는 것인지, 일부러 배짱을 부려보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오늘은 어떤 일이 있어도 결말을 보고야 말겠다고 다짐을 했다.
골짝 음달에는 아직도 눈이 녹지 않은 채 쌓여있었고, 오늘따라 날씨는 몹시 추웠
다. 길이 나빠 오트바이를 버려두고 터벅터벅 걸어 S리에 도착했다.
마침 공영감이 집에 있었다.
“김서기 오는가? 그런데 아직 돈이 없네.”
“아이 어른도 너무 하십니다. 그마이 찾아오고 독촉했으마 딴데 빌리서라도 주겠
네요.”
“빌릴 데도 없네.”
“그라마 딴기라도 가져가야 되겠심다. 아무거라도 천상.”
“돈 될만한기 있어야지. 찾아보고 있으마 가져가던동.”
“소라도 끌고 가겠심다.”
“소를?”
공영감은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할 수 없지. 내 재산목록 1혼데. 알아서 하게.”
공영감이 의외로 쉽게 응하는 눈치였다. 김서기는 후퇴할 수 없었다. 이놈의 영감
태기를 한번 혼내줘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소를 잡혀 놓고는 당장 돈을 가져오
지 아니하고는 배겨내지를 못할 것이라고.
김서기는 세금쟁이 한 후로 난생 처음 소 고삐를 잡고 어슬렁어슬렁 면으로 귀청
했다.
면직원들이 둘러서서 박장대소했다. 잘 끌고왔다는 사람과, 너무했다는 사람도 있
었다.
그런데 막상 소 매놓을 자리가 마땅찮았다. 양수기 창고 한구석에 매놓았더니 산
업계장이 노발대발했다. 양수기에 똥칠할 일 있나, 세상 살다 별 희안한 꼬라지 다
본데이, 양수기 창고를 소 외양간 만들라카나 당장 내가라는 것이었다.
하는 수 없이 면사무소 뒤 야산 밑에 끌어다 놓았는데, 문제는 소죽을 끓여주는
것이었다. 소죽도 안주고 굶겨 놓으면 일이 복잡해질 것이 분명했다.
김서기는 소를 끌고 온 순간부터 골머리를 계속 앓았다. 그날 퇴근도 할 수 없었
다. 밤중에 소고삐가 풀려 어디로 뛰쳐 도망가는 날에는 세금 오륙만원 받으려다
가 몇백만원 도로 물어주어야 할 판이다.
이집 저집 가서 소 사료를 얻어와 소에게 먹였으나 잠이 제대로 올 리 없었다. 사
무실을 들락거리며 꼬박 밤을 새웠다.
소는 똥을 한바가지나 싸놓았고, 김서기의 애타는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눈을
껌벅대기만 했다.
김서기는 날이 밝아오자마자, 소 고삐를 잡고 S리로 향했다.
공영감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빙긋이 웃었다.
“세금 제하고 왔는가. 난 하룻밤 편하게 지냈내. 소죽 끓이기가 얼매나 귀찮은지
원.”
능글맞은 공영감의 계략에 결국 김서기가 넘어간 셈이었다.
소를 돌려주고 돌아오는 김서기의 발걸음이 소의 무게만큼이나 무거워보였지만
마음은 한결 가벼웠다.
김서기의 뒤로 봄날의 아침 햇빛이 하얗게 부서지며 아직 얼음이 녹지 않은 땅위
에 잘게 내려앉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