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성이란 구호는 군부대에서 통상적으로 외치는 것으로 알았고, 내가 군대시절 입에 달고 다니던 말이었다.
그런데 얼마전 이 충성이란 구호 하나로 나는 위기의 순간을 용케 넘긴 일이 있었다. 그것도 나의 어린 2세 덕분이었다. 녀석이 요즘 모 TV에 나오는 무슨 <신고합니다>라는 프로를 보고, 충성이란 말을 배워 수시로 제 또래들과 어울려 써먹는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것이 자신의 아버지인 나를 구출해 주리라고는 생각도 못했을 것이었다. 나도 전혀 생각도 못한 일이었는데 어찌 다섯 살 먹은 꼬마가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을 것인가. 그러나 어쨌든 그것은 사실이었고 나는 나의 아들 녀석 때문에 밥줄을 다시 잇게 된 셈이었다.
그날도 나는 한달에 각종 모임이 너무 많은 것을 푸념하면서, 공직자 가족 특별정신교육을 받고 다른 분들과 어울려 저녁겸 반주겸 먹은 술이 화근이었다. 교육의 효과는 간데 없고 술까지 마셔댔으니 술을 누가 만들었는지 따지고 들어봤자 이미 술은 몸속으로 들어간 뒤라 자제 능력을 발휘해보아도 그게 잘 안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요즘의 정해진 코스대로 노래방까지 간 것이었다. 오랜만에 동료 가족들과 함께 자리를 했다. 집안에 갇혀있다가 참으로 오랜만에 나온 집사람들이 소주잔을 겁나게 들이켰고 2차로 노래방으로 직행했던 것이다. 이미 1차에서 열명이 소주 스무병을 깠는데 그 중 대부분이 집사람들이 처분한 것이었다. 오히려 남자들이 두려울정도로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마셔대는 여자들을 만류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노래방에서는 이미 노래의 고개를 넘어 남편들에 대한 불만 토로의 장으로 변했고, 그곳에서 잘못 건드리면 육체적으로 중량감에 차이가 있는 집사람들에게 얻어터질 우려가 있어 곧이곧대로 들어주는 수밖에 달리 도리가 없었다.
요즘 남자가 얻어터지는 것은 IMF체제로 들어선 후로는 크게 희귀한 뉴스가 못될 것이었지만 자기집 안방에서야 얻어터지는 것은 남들이 보지 않으니까 괜찮다하더라도 노래방에서 그것도 동료 직원들 보는 앞에서 얻어터지는 일은 절대 조심해야 할 일이었다.
노래방을 뒤로하고 집으로 향하는 차를 몰면서 취기중에도 일말의 불안감이 일었다.
음주운전. 이것 때문에 주변 동료들이 징계를 당하는 꼴을 몇 번 보았는데도 왜 나는 겁도 없이 차를 몰고 있는가. 중간중간 경찰 제복을 입은 사람이 눈에 띌때마다 불안감을 감출수가 없었다. 아들 녀석은 아직 잘 생각도 않고 창밖을 내다보며 호기심을 놓치지 않고 있었다.
시내에서 외곽지대로 빠져나오는 데는 이십분의 시간이 걸렸다.
시내를 빠져나와 이제는 안심이다 하고 속력을 내며 달리는데 저멀리 100미터 전방에서 빨간 등을 흔드는 모습이 보였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아내는 옆자리에서 졸고 있었다.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운명의 시간이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술기운이 확 달아나고 있었다. 예상대로 내 차를 세웠다. 심장의 박동소리가 더욱 치열해졌다.
아, 어떻게 할 것인가. 젊은 경찰이 다가왔다. 의경인 듯 싶었다. 차창을 내리고 서로 얼굴이 마주쳤다. 내 얼굴은 취기와 함께 맹렬히 달아올랐다. 혈관속의 피가 끓어오르며 머리를 관통했다. 빈혈증세처럼 머리가 핑 돌았다. 경찰이 내게 손을 올려 경례를 하였다.
그때였다. 바로 내 뒤에서 장난치듯이 놀던 아들녀석이 갑자기 소리친 것이었다.
“충성!”
내가 황급히 뒤를 돌아보니 녀석은 경찰에게 답례를 하듯이 역시 손을 올려 경례를 하고 있었다. 차창밖의 경찰이 움찔 놀라는 기색이었다. 그리고 연이어 잔잔한 미소가 일었다. 싱긋 웃는 모양이 기분이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그때 아들녀석이 또 한번 “충성!”하고 소리쳤다. 이번에는 경찰이 되받으며 답례를 했다.
“하하, 그녀석 맹랑하군. 그래 좋아. 너희 아빠 술을 하신 것 같은데. 너 때문에 무사통과야. 아저씨, 오늘 아들 덕분에 살아난 줄 아쇼. 앞으로 음주운전 하면 절대 안됩니다. 차 조심해서 몰고 가세요.”
경찰의 말을 들은둥 마는둥 하고 나는 신속하게 그곳을 빠져나왔다.
식은땀이 등허리를 타고 흘러내렸다.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교차되었다. 아들녀석의 덕을 톡톡히 보았다고 자랑을 해야 할 것인지, 아니면 내가 <신고합니다>프로 애청자가 되어야 할 것인지. 녀석이 아버지의 위기상황을 간파하여 본능적으로 행동을 한 것은 아닌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어쨌거나 분명한 것은 중징계를 당할 위기의 상황을 아들이 구해주었다는 것, 그리고 나라에 충성하고자 하는 그 구호가 아들이 아버지를 구하는 효성의 발로로 대체시켰다는 사실이었다.
지금도 나는 그때 그 순간, 빨간 등이 용광로에서 녹아내리는 쇳물처럼 내 가슴을 파고 들어와 짓이기는 고통을 잊을 수가 없다. 가슴이 조여들며 그래 다시는 음주운전을 하지 않겠다고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듯이, 아들녀석의 충성소리를 밤마다 꿈속에서 듣곤 한다.
이 세상의 모든 주당들에게도 술에 대한 충성이 아니라 가정과 가족을 위한 충성스러운 가장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소리로 들어주었으면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