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공구 면장은 무슨 아이디어 개발이라든가 공무원 창안제도에 대해서 남다른 관심을 갖고 있었다.
직원들에게도 탐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늘 강조해 오던 터였다. 그러나 사공구 면장이 지금까지 별다른 실적을 올린 적은 없었다.
업무적인 일의 추진에는 항상 중위권을 유지해 왔지만 특별하게 뛰어나다는 평은 들어 본 적이 없었다. 면부의 일이라는 것이 중위권 정도만 유지하면 오히려 그것이 일 잘하는 것으로 인식되어져 있었다. 너무 잘하면 도리어 부담이 되고, 너무 또 못하면 이리 터지고 저리 터지고 두드려 맞다가 볼일 다 볼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위권을 단골로 맴도는 Y면장을 언젠가 사석에서 오랜만에 만났었는데, 정말 어디 불려가서 얻어터졌는지, Y면장의 볼때기가 누렇게 부풀어 있는 것을 보고 사공구 면장은 자기는 결코 하위권 면장은 되지 않겠노라고 다짐했을 정도였다. 뭔가를 보여줘야겠다는 야심을 갖고 지내온 셈이었다.
그런 기회를 우연하게도 사공구 면장은 포착을 했다. 포착했다기보다는 발견이라고 해야 옳을지 모르겠다.
달포 전부터 직원들이 전화를 받을 때 무조건 ‘감사합니다’를 앞에 붙이고 있었다. 친절봉사 행정의 구현이라는 목적하에 전 직원들에게 권장토록 되어 있었던 것이다.
사실 친절이라는 것은 스스로 맘속에서 우러나오는 것이 진정한 친절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렇게 윗쪽에서 자극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도 있었다. 습관적으로 반복시켜 몸에 배이도록 해 보자는 의도일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이 잘 시행이 되지 않았다. 군청에서 수시로, 밤낮없이 전화를 걸어 확인을 하고 친절도를 점검한다는 정보도 얻어들었다. 매월 평가를 해서 시상도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오늘 아침 무엇인가를 보여줘야겠다고 고심해 오던 사공구 면장의 머리를 강타한 것이 있었다. 구하면 얻을 것이요, 두드리면 열릴 것이라고 했던가.
사공구 면장은 출근하자마자 직원회의를 소집했다.
직원회의야 하루 건너 매일 하다시피 하는 것이어서 직원들은 별다른 표정없이 회의실로 모여들었다. 평소와 달리 이른 감이 있어서 직원들이 조금 의아하게 생각했을 뿐.
“오늘 여러분들을 부른 건 다른기 아입니다. 전화받는 것에 대해 얘기를 하고자 합니다. 잘 받고는 있습니다만 내가 듣기에도 불쾌하게 들릴 때가 한두번이 아이라. 다같은 말이라도 상냥하게 받으면 얼마나 좋을까.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꼭 붙이라캐도 붙이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뒷구석에서 불만하는 사람이 있어요. 공무원이 이래가 되겠어? 위에서 하라카면 하는기지 웬 말이 그리 많은지 모르겠어.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이왕 전화받는 거 좋게 받으마 오죽 좋겠는가. ‘감사합니다’카는 것도 건성으로 하는 것 같애. 이래서는 하나마나야. 좀 잘할 수 없나? 그래서 오늘부터는 ‘감사합니다’라는 말 앞에 ‘하이고’를 꼭 넣도록. 그러니까 전화를 받을 때 반드시 ‘하이고 감사합니다’라고 하기 바랍니다. ‘하이고’라는 말은 순수한 우리말이고 가슴에서 느끼는 감정이 그대로 담겨 있어서 듣기에도 부드럽고 상당히 좋아요. 그러니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말하는 김에 한마디 덧붙이는 것 뿐입니다. 내 말을 명령이라고 생각하고 따라주기 바랍니다. 나를 면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따라줄 것이고 따라주지 않는 사람은 나를 면장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하겠습니다. 이상.”
회의실을 나오자 직원들의 표정은 각양각색으로 변해갔다. 과연 그대로 실천이 될 것인가 라는 문제보다 사공구 면장의 기발한 착상에 모두들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또 누가 먼저 ‘하이고’라는 말을 꺼낼 것인가에 대해서 서로의 눈치를 살피는 기색이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도 아직은 낯설은 판국에 ‘하이고’라는 말은 연극배우가 아니고서는 흉내를 내기가 힘드는 일임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면부에서 못할 일이 어디 있겠는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것이 면행정의 가공할 힘이었다. 무엇이든지 밀어붙이면 가능한 일로 돌변하는 것이었다. 역시 이 문제도 예외는 아니었다.
직원회의가 끝난 뒤 채 삼분도 안되어서 ‘하이고’라는 말 소리가 튀어나왔다.
면서기로 들어온 지 두달도 안된 총무계 직원인 조말순의 입에서였다. 이름부터가 여자이름 같아서 특이하다고 생각되었는데 행정전화를 받아들고 그 소리를 단연코 뱉아낸 것이었다.
“하이고 감사합니다. 총무계 조말순입니다.”
들뜬 사무실 분위기 속에서도 직원들은 이 소리를 들었다. 귀들이 간질거렸다. 조말순은 정말로 감사한 듯이 말했다. 조말순의 소리는 실내 공기를 싸말아 가며 직원들 개개인의 귓속으로 한참동안 내려앉았다.
처음 테이프를 끊는 것이 어렵다고들 하는데 면서기 초년병이 물꼬를 낸 셈이었다. 그로부터 ‘하이고’라는 말이 연이어 터지기 시작했다. 등초본을 떼러 온 민원인들이 우습다는 표정이었다. 못보던 걸 본다는 의아한 표정을 짓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사공구 면장의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았다. 직원들이 전화통을 들고 ‘하이고’를 연발할 때마다 속으로 길길거렸다. 웃음을 안으로 자제하는 것이었다. 당장에라도 밖으로 발산하고 싶었지만 체면상 참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사공구 면장 자신도 말하지 않으면 안되는 전화가 왔다. 직원들에게 하라고 시키기만 했지 막상 자기 책상 위의 전화벨이 울리자 조금은 떨렸다. 하지만 어쩔수 없는 일이었다. 수화기를 집어들었다.
“하이고! 감사합니다. 면장입니다.”
‘하이고’라는 말이 너무 강하게 나와서 면장실 밖에까지 들릴 정도였다.
그런데 전화기 속에서 잘 못알아 들은 모양이었다.
“뭐요? 뭐라 캤소?……뭐라 캤느냐카이.”
“‘감사합니다…’라고 캤는데요. 누구십니까?”
“나 이명섭이요. 아이 그런데 그 앞에 뭐라 캤능교?”
카농(카톨릭농민회)회장이었다. 사공구 면장은 속이 뜨끔했다. 골치 아픈 사람이었다.
“하이고라 캤는데….”
“하이고요? 참말로 쭈굴시립구마는. 늙어가민서. 듣기에 되게 거북하네요 예? 뭐 그리 분답시럽게 캐샀소? 친절도 좋지마는 하이고 소리는 좀 뺏으마 싶으네요. 하이고가 뭔교 하이고가. 차라리 아이고라 카지.”
전화가 끊겼다. 한방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허탈감도 느꼈다. 녀석은 자기 용건은 말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끊어버렸다. 괘씸하고 분한 마음이 일었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전화를 했을까. 녀석은 면행정에 대해 사사건건 비판적으로 대해 왔으니까 어디서 벌써 ‘하이고’라는 말을 주워 듣고 전화질을 했는지 몰랐다.
어쨌거나 사공구 면장은 관내 기관장과의 전화 통화중에도 ‘하이고’를 앞세웠다. 기관장들간에도 ‘하이고’에 대해 의견이 분분했다. 좋다는 쪽과 왠지 어울리지 않는다는 쪽 반반이었다. 한달에 한번씩 갖는 기관장끼리의 친목 모임에서도 하이고가 화젯거리였다.
“면에서 하이고를 붙이면 우리 공장에서도 권장을 시켜야 되겠구마는. 진짜 면직원들 훈련 잘 시키 놨어. 전화 걸 때마다 뭐가 그리 감사한지 하이고를 붙이가미 받는 걸 보이 눈물이 날 지경이라카이 눈물.”
“아니 난 말이지 솔직히 말하면 과잉 친절로밖에 안보인다 카이. 영 나는 맘에 안들어. 그 소리만 들으마 속이 미싱거리고 먹었던 기 도로 올라온다 카이 올라와.”
사공구 면장은 반 놀림감이 되버렸다. 자신의 기발한 착상이 우스개로 전락되어 간다는 사실에 서글픔을 느꼈다. 녀석들이 뭘 알기나 한가. 나의 원대한 뜻을. 직원 너댓 데리고 있는 녀석들이 기관장이랍시고 우쭐대는 꼬락서니라니 젠장. 그래 내가 농담 한마디 한 걸로 치자. 농담 한번.
며칠 뒤였다. 아침 인사라도 하듯이 전화통이 울었다. 울린 것이 아니라 전화통이 몸부림을 치며 우는 것으로 보였다. 사공구 면장은 습관적으로 잽싸게 전화기를 잡아 들었다.
“하이고 감사합니다. 면장입니다.”
“전화 한번 기똥차게 받구만. 나 군순데 면장이 하이고를 시작했다며? 사실인가?”
“아! 예, 그렇심다만.”
“그라마 됐어. 오늘부터 하이고 소리 중지하도록. 착상은 좋은데 그 말썽나지 않도록 해야지. 시키지도 않은 일을 괜히 해서 왜 그 야단이야. 공문도 안읽어 보나? 감사합니다라는 말만 하라고 했지 쓸데없이 하이고는 왜 붙여?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말썽나마 헛거야 헛거. 면장 하루이틀 해봤나. 오밤중에 집에까지 전화가 다 안오나. 하이고 소리 듣기 싫다고 말이야. 뭐라 그기. 누구 집에 초상났나? 하이고 하이고 캐샀쿠로. 오늘부터 당장 중지해 중지.”
전화가 끊어졌다.
사공구 면장은 알 수 없는 수렁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일이 꼬여도 단단히 꼬인 모양이었다. 스스로 꼬이게 만든 껍질 속에서 사공구 면장은 숨을 헐떡거렸다. 누구 말마따나 아직은 촛불을 켤 때가 아닌가. 아니면 아예 촛불을 켤 수가 없는 것인가.
사공구 면장의 시야로 갑자기 차가운 어둠이 밀려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