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름을 바꾸고자 생각한 것은 오래 전부터의 일이었다. 그것은 내 본래의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은 탓도 있지만, 내 몸 안팎에 끈끈하게 늘어붙어 있는 나약하고 우유부단한 운명이라는 껍질을 홀홀 벗어던지고 싶은 욕망때문이기도 했다. 내 몸속 어딘가에는 항상 반역적이고 혁명적인 기질이 내포되어 있었던 것 같다. 기존의 질서, 체제, 그런 종류의 낱말은 나로 하여금 부딪혀 파괴시켜야하는 존재로 여겨져온 것도 사실이다. 내가 인생을 지금껏 거꾸로 살아온 것처럼, 나의 인생관도 그렇게 이미 반대로 각인되어 있었던 모양이다.
내가 이름을 바꾸고자 했을때는 물론 어떤 이름으로 할 것인가 하는 것이 고민거리였다. 요즘은 우리의 순수한 한글 이름을 짓는 사람도 많다고 하지만, 그때만 해도 그런 경향은 거의 없었고, 오로지 내 스스로 작명가가 되어보고자 했다.
며칠간의 고뇌 끝에 이름을 <충격적 소문>으로 하기로 결정했다. 결정을 하고 나자, 이름을 개명하는 절차를 밟아야 했다. 알아본 즉, 법원의 판사의 결정으로 이름을 바꿀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절차를 밟는 과정의 서류등의 조건이 여간 복잡한 게 아니었다. 이름을 바꾸면 사람의 운명을 바꾸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에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라는 짐작은 하였지만 실제로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때 처음 나는 법관의 존재가 경외의 대상으로 비쳐졌다. 한때는 포기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밀고 나가기로 하였다. 이름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성까지 바꾸어야 했으므로 실무자와 판사의 엄청난 저항에도 불구하고 나는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다.
결국 나중에는 담당판사도 손을 들고 말았다. 나는 그가 시키는대로 <충격적 소문>이라는 이름으로 내가 아는 사람에게 수십통의 편지를 띄웠다. 그리고 <충격적 소문>이라는 이름으로 편지를 쓰고 불러줄 것을 당부했다. 원래 내 이름인 <개새끼>는 지금 이 순간부터 잊어줄 것도 아울러 부탁했다.
몇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인위적으로 편지가 오고가고 하는 사이에, 나의 이름은 <충격적 소문>으로 바뀌어갔다. 아니 이제 나는 충격적 소문이었다. <충격적>이라는 성씨를 창시하였고, 이름은 <소문>으로 호적에 올라있다. 면 호적사무 담당자가 호적을 만들면서, 세상에 별 희안한 놈이 다 있다는동, 머리가 돌아도 한참 돌았다는동, 이 바쁜데 이름까지 길게 만들어 남 귀찮게 만든다는동 불평을 많이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러나 어쩔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충격적 소문>으로 바뀐 이후, 세상은 참으로 많이 바뀌었다. 요즘은 하루하루가 달라져간다. 정보화사회, 컴퓨터를 모르면 살아남기 힘든 세상이 되었다. 그리고 자고 나면 또다른 충격적인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다. 그런 뉴스를 들을때마다 나는 곤혹스러운 지경에 빠진다. 발전적인 충격은 나를 즐겁게 하지만, 퇴보적인 충돌은 나를 회의로 몰아 넣는다. 모든 충격은 변화를 가져오고, 그 변화속에서 어떤 발전적인 것을 찾고자 하는 것이 나의 본래 의도였다. 그런데 발전보다 퇴행적인 조짐이 심화되는 듯해서 걱정스럽기 짝이 없다.
성철 스님은 사창가의 창녀들에게도 불성은 있으며, 그들로부터도 불성을 배워야한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우리를 충격으로 몰아넣는 일들에서 우리는 발전적인 것을 찾아야함에도 우리는 그러한 노력을 너무나 소홀히 하고 있다는 사실에 또다른 충격을 받는다.
그래서 나는 요즘 또다시 이름을 바꾸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부닥친다. 이름을 바꾼다면 또 어떤 이름으로 할 것인가, 이름을 바꾼다면 법적으로 그것이 가능할 것인가, 호적사무 담당자의 불만을 무마할 방법은 없을 것인가, 목표를 제대로 달성하지 못하고 또다른 목표를 제시한다는 비난을 받지는 않을 것인가 하는 등등의 생각이 떠올랐다.
그런데 이번에는 자연스럽게 떠오른 것이 <보신탕>이었다. 내가 보신탕을 먹기때문이아니라 이름이 <개새끼>에서 <충격적 소문>으로 바뀌었다면, 그 다음은 탕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당연한 순서가 아니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사람이 바르게 살려면 질서를 지켜야 한다. 그래서 나는 이 질서(혹은 순서)를 지키기위하여 내가 그동안 몇 마리의 개를 희생시킨 댓가로 내가 스스로 <보신탕>이 되기로 작정했다. 그리고 주위 사람들에게 홍보를 했는데, 홍보를 하자마자 사람들은 나를 진짜 보신탕으로 알고 나를 먹어버렸다. 법원에 개명 절차를 밟을 것도 없이 나의 존재가 사라져버린 것이었다. 이름(혹은 명예)이 허망한 것임이 드러났다.
나는 결국 성철 스님과는 판이하게 한그릇의 탕으로 변해 뭇사람들의 뱃속으로 들어간 것이었다. 그리고 새롭게, 새로움을 위하여, 새로운 밑거름을 뿌리기위하여 몇 개의 뼈다귀가 식탁위에 남겨졌다.
어제 술에 엉망이 된 속을 풀기 위하여 보신탕 집을 찾아간 아침 9시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