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되면 새로운 마음 가짐으로 첫 출발을 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다.
올해는 신묘년 토끼해라고 하여 토끼와 같이 모든 소망이 풀쩍 뛰어 이루어지길 기원한다. 토끼가 잠에 빠져 뒤처지는 일만 없다면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런데 새해 벽두부터 나는 이상한 말을 들었다.
K역 옆의 육교에서였다. 작년 12월초에 하늘길이라는 팻말을 붙여 새롭게 문화공간을 꾸며 분위기를 쇄신하여 환영을 받았는데, 해가 바뀌자 이 곳에서 이상한 말을 듣게 된 것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말이 아니라 소리였다.
하늘길에 들어서면 전에 없던 맑은 동물 울음과 새소리가 들려온다. 자연의 정취를 자아내는 색다른 분위기여서 육교를 지나는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해주었는데 어제 저녁 역쪽에 볼일이 있어 지나는 중에 역시 맑은 새소리가 귀를 즐겁게 해주었다.
한데 그날 그 시각 내게 들린 소리는 새소리가 아니라 사람의 말처럼 들렸다.
나는 깜짝 놀랐다. 주위에 사람이 있었다면 고함을 쳤을지도 모른다. 강추위때문인지 사람의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나는 내 귓가를 때리는 새소리, 아니 새의 말을 듣지 않을 수 없었다.
- 아저씨, 내 말 허투루 듣지 마세요. 그동안 말한마디 안하고, 찍소리 안하고 지내 왔는데요. 이제는 말안하고는 안되겠어요. 사람들은 해가 바뀔때마다 열두가지 동물 이름을 갖다 붙여 금년은 무슨해라고 부르는데 그거 많이 잘못된 거 아닙니까? 이 세상에 동물이 그 열두가지 뿐입니까? 그것도 거의 육지에 기어다니는 동물만 골라서 써먹는데 바다와 하늘에는 동물이 없습니까? 하늘을 나는 새만 해도 수천 수만종에 이르는데 열두가지 동물들이 독점하는 건 정말 눈뜨고 못봐주겠어요.
요즘 공정사회를 부르짖는데요, 이게 공정사횝니까? 십이지간을 어느 씨브럴자식이 만든 건지 모르겠는데요. 이거부터 바로 고쳐야지요. 저거들끼리 다 해 처먹는거 아닙니까? 독점의 피해는 결국 모두에게 되돌아 가는 겁니다.
보세요. 구제역으로 온 나라가 난리잖아요. 소, 돼지가 백만마리도 훨씬 넘게 매장되고 우리 새들도 AI 때문에 본의아니게 죽어가고 있어요. 이때까지 달력에 얼굴 한번 내밀지도 못하고 달력 밖에서 이름없이 지내왔는데 이제는 말해야겠다는 생각에 아저씨한테 말하는 거예요.
새소리는 말로 변형되어 거칠게 쏟아져 나왔다. 나는 가던 걸음을 멈추고 위쪽을 응시하였다. 천장에 달린 스피커에서 새소리와 함께 배경 음악이 흘러나왔다.
이 엄동설한에 새소리가 더욱 차갑게 느껴졌지만 분노섞인 열기는 그것을 녹이고도 남았다.
- 그럼 제가 도와드릴 일이라도 있습니까?
내가 얼떨결에 반문하자 새소리는 더욱 요란하게 재잘대었다.
- 아니, 제 말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족해요. 저희들의 억울한 처지를 호소하는 것이니까요. 다른 사람들에게 홍보를 해서 새해에는 우리들 새해가 들어갈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달라는 겁니다.
요즘 듣자하니 개헌을 하자고 들먹거리든데 십이지간도 개혁 대상에 올라야 됩니다. 또 지금 K시는 혁신도시 건설이 한창인데 다른 곳보다 앞서 가는 혁신도시 K시에서 우리의 소망인 십이지간을 혁신할 수 있는 물꼬를 터주면 고맙고요.
제 말이 틀립니까? 맞지요? 맞습니다. 맞고요. 그래도 누가 뭐라해도 K시에 와서 혁신도시 기공식을 한 대통령이 우리의 처지를 잘 헤아렸을건데, 그때 우리가 십이지간 혁신을 부탁하지 못한 것 정말 안타깝게 생각해요. 그때는요 오늘처럼 이런 소통의 자리가 없어서요. 그린로드가 생겨서 우리의 숨통이 좀 트인 겁니다.
마침 맞은편에서 오던 행인이 내가 우뚝 서서 스피커를 쳐다보는 것을 힐끔거리며 지나갔다. 그에게는 새소리가 새소리로만 들리는 모양이었다.
나는 내 귀가 이상이 있다고 생각지는 않았다. 귀창이 좀 많은 편이긴 하지만 수시로 귀청소를 하므로 이명현상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귓구멍을 새끼 손가락으로 후볐다.
새소리는 자기 말을 강제로 주입시키기라도 하듯이 귓속으로 파고들었다.
- 옛날에는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고 했지만, 지금은 하늘을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하는 거예요. 전쟁에서도 하늘의 제공권을 압도해야만 승리를 기약할 수 있어요. 육지에서 아무리 대포를 쏘아대도 공중에서 대규모 폭격을 가하면 그대로 박살나는 겁니다. 연평도 포격때도 공군력으로 즉각 초토화시켰다면 적들은 주눅이 들어 꼼짝 못했을텐데 아쉬웠어요. 안그렇습니까?
새소리는 종달새였는데 다른 새들을 대변하여 말하고 있었다. 잠시도 쉴 틈을 주지 않았다. 이런 달변은 일부러 듣기에도 쉽지 않은 것이었다.
- 저의 하소연이 먹혀 들어갈지 모르겠어요. 아저씨같은 분이 앞장서서 저희 약자들을 위해 힘을 써주신다면 저희들은 용기를 얻을 겁니다. 연약하고 힘없는 새라고 업신여기지 마시고 저희들의 한맺힌 사연을 귀담아 들어주시고 십이지간의 독점 횡포를 막아 주세요.
우리도 얼마든지 사람들의 운과 행복을 빌어줄 수 있으며 그것을 증명해 줄 겁니다. 새띠해에 태어난 사람은 누구보다 빠르게 자기의 앞길을 질주해 나갈 것이며 육상에서 잘 보이지 않는 것들을 공중에서 즉시 파악하여 모든 정보를 알려줄 것입니다. 높이 나르는 새가 더 멀리 볼 수 있다는 말 있잖습니까? 그것은 사실이예요. 우리는 인간의 근시안적인 안목을 보다 더 높고 더 넓게 안내해 드릴 것입니다.
육교 위 틈새로 살을 에는 듯이 파고드는 추위가 더욱 기승을 부리는 것 같았다.
종달새는 다른 원군들을 불러 모았는지 다른 새소리들도 들렸다.
- 그리고 우리는 누구보다 강한 애국자 노릇을 할 겁니다. 온몸을 던져 이 나라를 지켜낼 것입니다.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줄 것입니다. 북한의 무모한 도발 계획을 우리가 사전에 탐지해 내어 그들에게 본때를 보여줄 겁니다. 우리의 존재를 인정해 준다면 자폭 특공대를 조직하여 국가를 위해 목숨 바칠 각오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강한 발톱과 수천 킬로를 빠르게 날 수 있는 비장의 날개를 갖고 있습니다. 저희 새들 중에 특공대를 선발하여 발톱에 강력한 미니 폭탄을 장착하여 소리없이 쳐들어가 적의 진지를 초토화시킬 것입니다. 물론 폭탄을 안은 새는 영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겠지요. 우리의 존재를 각인시키고 십이지간의 혁신이 이루어진다면 못할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막강한 새떼의 위력을 보여 줄 것입니다.
나는 어느새 새소리에 설득당하고 있었다.
새해 벽두에 나는 왜 육교 위를 올라왔던가. 육교 너머 구수한 막걸리 집을 찾아 한 살 더 먹은 인생의 의미를 관조하려 하지 않았던가. 아니면 육교 위를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면서 찰나처럼 스쳐가는 인연의 끈을 세월의 강가에 담그려하지 않았던가.
목적을 잃어버리고 갑자기 굳어버린 석고처럼 서서 육교 위에서 끝없이 재잘대는 새소리에 나도 모르게 가담하고 있었다.
- 그래, 자네 말도 일리가 있어. 수천년동안 십이지지간의 동물만이 달력을 점령해 왔다는 것은 뭔가 잘못되었어. 그 누구도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지. 왜 그랬을까. 독점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거나, 묵인했거나 둘중에 하나겠지.
수천년동안 타성처럼 이어져 온 거대한 벽을 허물기에는 너무나 역부족인 것 같애. 하지만, 이의를 제기했다는 것만으로도 큰 진전이라고 봐야 되겠지. 그런데 새머리는 머리가 좋지 않다고들 했는데 그 말은 틀린 것 같군.
하기사 해외뉴스에 보면 까마귀가 막대기를 이용해 개미굴 속의 개미를 꺼내어 먹는 것을 보면 영장류와 같은 지능을 가진 새도 있는 모양이야. 어쨌든 자네같은 혁신적인 사상을 가진 새가 있다면야 새의 앞날은 희망적일 게야. 확답은 못하지만 자네 의견을 가까운 사람들한테 이야기해 볼게.
나의 답변에 신이 났는지 새소리는 더욱 재잘대었다.
육교 저쪽에서 갑자기 사람들이 몰려오는 것이 보였다. 아마도 열차가 도착해서 육교를 건너는 사람들인 모양이었다. 사람들의 발길이 많아지자 갑자기 새소리는 말로 들리지 아니하고 그냥 새소리로만 들렸다. 아무리 말로 바꾸어 들으려고 해도 되지 않았다.
종전의 새소리만이 육교 안을 울리고 있었다. 대화가 단절되긴 했지만 새에게 약속한 새띠해가 들어가게 노력하겠다는 말은 취소할 수가 없었다.
얼마나 억울했으면 참았던 울분을 내게 호소하였을까. 새의 억울한 사연을 어떻게 풀어줄 수 있을까. 방송의 위력을 기대해 볼까. ‘사람사는 세상’ ‘라디오 신문고’ 같은 곳에 제보를 해볼까.
여러 가지의 상념이 머리 속에서 명멸했다.
강추위가 얼굴을 차갑게 훑고 지나갔다. 발길을 옮기는 내 귓가에 새소리가 조금씩 멀어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