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면에 지역종합서비스센터가 설치되고 난 뒤, 주민들의 이용도가 부쩍 늘었다. 말 그대로 지역주민을 위해서 모든 편의를 제공하겠다는 뜻이 담겨있기 때문에 주민이 찾아가면 딱 맘에 들도록 해야 하는 것이었다.
요즘 흔히 말하는 고객이 만족할 정도가 아니라 고객이 감동할 정도로 서비스를 베풀어야 할 입장에 있는 것이다. 그동안 복지부동이니 무사안일이니 하는 구태의연한 타성에 젖은, 경직된 공무원사회에서는 참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부문이 아닐수 없을 것이었다. 그러나 어쨌든 변화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대의 흐름이라고나 할까. 어떻게 잘 적응하느냐 하는 것이 문제일 터였다.
내가 K면에 종합서비스센터가 설치되었다는 얘기를 들은 것은 동네 이장의 마을 앰프방송을 통해서였다. 처음에는 대수롭잖게 여기고 그냥 지나쳤는데 오늘 문득 궁금한 것이 생각나서 면사무소에 전화를 걸었다.
“…저어 수고하십니다. 제가 말이죠 노총각인데요. 종합서비스를 한다고 하는데, 결혼 상대자도 알선해주는지 모르겠네요?”
“네, 물론입니다. 그런데요. 그건 전화 신청은 곤란하고 직접 나오셔서 신청을 하셔야겠는데요. 왜냐하면요. 신상명세서는 우리가 뽑을 수 있지만, 중요한 건 얼굴을 우리가 직접 대면해 보고 자료를 입력시켜야 하거든요. 네, 시간있으면 한번 나와 주세요.”
면직원은 친절하게 안내해주었다. 민선자치시대로 접어든지 어언 십년이 넘었는데, 뭔가 조금씩 달라지는 모양이었다. 면직원의 전화응대도 전에 없이 싹싹한 것 같고 어쩌면 노총각 신세도 면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튿날 나는 면사무소에 나가 결혼상담 안내담당자를 찾았다. 어제 전화속의 목소리처럼 사람좋게 보이는 젊은이가 웃음을 띠며 맞아주었다.
나는 소정의 신청서 양식에 기재를 하고, 머리칼을 좀 다듬고 면에 비치된 즉석 칼라 현상겸용 카메라로 얼굴 사진을 찍었다. 담당자는 잠시 의자에 앉아 대기하고 있으라면서 자신의 컴퓨터 앞에 앉았다.
얼마후 나를 부르더니 적격자가 나타났는데 한번 만나볼 의향이 있느냐고 물었다. 대전에 있는 여잔데, 마침 연락이 닿아 나만 좋다고 하면 연결을 시켜 주겠다는 것이었다.
담당자가 건네준 자료를 훑어보았다. 학력은 나와 같은 중졸이고, 직업은 회사원이라고 적혀있었고, 사진도 찍혀 있었으나 사진만으로 여자의 얼굴 모습을 확실하게 가늠할 수 없었다.
나는 그 여자를 직접 볼 수 없겠느냐고 했더니, 요금이 좀 비싸긴 하지만 그것도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왕 내친 김에 1만 5천원을 주고 여자를 직접 보기로 했다. 담당자는 좀 기다려야 한다면서, 차나 한잔 들고 계시라고 커피를 뽑아주었다.
담당자는 민원실 한쪽 구석에 자리잡은, 설치된 지 얼마되지 않은 듯한 「팩스전송실」이라고 비교적 깨끗하게 쓰인 팻말이 붙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팩스전송실」밑에 『통제구역』이라고 빨간 글씨가 적혀있었다. 전송실은 투명한 유리로 설치되어 있어서, 밖에서 봐도 안쪽의 모습이 훤하게 보였다.
나는 커피를 마시면서 곁눈질로 전송실의 모습을 유심히 훔쳐보았다. 담당자는 무슨 기기를 만지면서 안쪽에 설치된 컴퓨텨 화면과 무슨 얘기를 나누었다.
한 이십분쯤 지났을까. 담당자는 벌떡 일어서더니 철판으로 만든 둥근 박스 모양의 출입구를 열었다. 하얀 증기같은 것이 나는가 싶더니 사람이 나오는 것이 보였다.
멀리서 봐도 여자였는데, 거울을 보고 머리와 옷 매무새를 가다듬는 것이었다. 나는 속으로 세상 참 좋아졌어, 대전에서 벌씨로 사람까지 보내주다니. 오래 살고 볼 이라고 생각했다.
담당자는 잠시 후에 여자를 데리고 나왔다. 민원실 안쪽에 마련된 탁자에 두사람이 마주 앉았다. 담당자는 좋은 얘기 나누라면서 안쪽으로 들어가버렸다.
나는 조금은 당황하면서 무슨 말을 꺼낼 것인가 전전긍긍했다. 오는데 불편한 점은 없었는가 물었더니, 숨이 막힐 뻔 했으며 코가 약간 일그러졌는데 보기가 어떤지 모르겠다고 했다.
나는 괜찮다고 말하고, 직접 이곳으로 부른 것을 양해해달라고 말했다. 여자는 팩스로 사람을 보낼때는 전송료를 인하하고 문제점을 보완하여 신속 정확하고 몸체를 거의 훼손하지 않는 방법으로 전송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자는 자기의 할 말을 다하는 듯 했지만, 대도시의 나쁜 환경에는 물들지 않은 듯 순수하게 보였다. 말 주변이 없는 내가 더 이상 여자를 앞에 둘 이유가 없었다.
나는 여자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담당자가 빙긋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나는 중고 승용차에 여자를 태웠다. 여자는 이미 나의 맘을 읽은 것 같았다. 엑셀레이타를 밟으며 여자의 몸에 지그시 기대었다.
여자는 나를 접수했고 그날 나는 마침내 노총각 신세를 면하는 실습을 무사히 마쳤다. 세계속의 한국인의 한사람임을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그리고 첨단 기기인 팩스와 순수한 인간이 나눈 사랑의 자리이기도 했다.
내 사랑 팩스! 팩스로 온 여자, 나의 영원한 사랑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