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토요일 오후였다.
사닥골 이장이 장터 내려오는 길에 던져 준 옻순 보따리로 하여 숙직실엔 온통
시끌벅적거리고 있었다.
방도 따뜻하고 간밤에 적당히 내린 비로 산불순산은 걱정없겠다, 오늘같은 날
은 절로 기분이 좋은 날이었다. 있는 말 없는 말 내뱉아가며 뭔가 분위기를 만들
어보고 싶은게 사람의 심리일까. 마음같아서는 조를 짜서 어디 가까운 유원지라
도 갔으면 싶어도 면서기들의 입장이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토요일, 일요일은 반납한 지 벌써 몇해였던가. 그러고보면 오히려 평일이 더
맘 편한 날일런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더라도 오늘만은 잃어버렸던 토요일 오
후를 찾고 싶어 숙직실에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물론 옻순 때문에 모이게 된 것
이었지만.
면장도 있고 짜리몽땅한 산업계장도 있고 키다리 이명재도 눈을 꿈뻑거리고
있었다. 옻 안타는 사람들의 모임이라고나 할까. 끓는 물속에 옻순을 넣고 한참
만에 꺼내놓으니 기름이 흐르는 듯 보기만해도 입에 군침이 돌 지경이었다. 벌
건 초장을 즉석에서 만들어 턱 찍어 먹는 맛은 가히 일품이다. 맛이 그야말로 기
막히다. 둘이 먹다가 한사람이 죽어도 모르겠다. 혓바닥까지 차츰 녹아내리는 기
분이다. 곁들인 소주 한잔에 모두가 넋나간 사람같이 보인다면 지나친 과장일
까. 맛있는 음식을 앞에 놓고 지껄이는 모습이 모두 행복스러워 보인다. 처음엔
쳐다보지도 않았다는둥, 왕년엔 옻이 올라 애를 먹었다는둥, 위장병엔 직효라는
둥 한마디로 입술과 혀와 소주와 옻순의 합창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그 며칠뒤의 일이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옻순 잔치가 벌어진 나흘째되
는 날이었다. 사무실 안에서 이상한 조짐이 일고 있었다. 문제의 주인공은 민원
실의 정양이었다. 그날은 장날이긴 해도 아직은 사람들이 그다지 찾지 않는 아
침 나절이라 좀은 조용한 편이었는데 유별나게도 정양이 자주 자리를 일어서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잠시 후 나타나서 자리에 앉았는데 좀 앉았는가 싶으면 또
일어나서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듯 이상스런 표정을 짓다가 밖으로 또 사라지
는 것이었다.
옆자리의 최길태가 먼저 그런 낌새를 눈치챘고, 호병계장과 그 뒤쪽에 앉은 부
면장까지도 정양이 들락거리는 눈치를 채고 있었다. 그 눈치라는 것도 뭐 여자
들이니까 매월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방문객(?) 정도이겠지 하고 생각했으나 들
락거리는 횟수가 심상치 않음으로해서 기필코 무슨 사연이 있음이 분명하다고
판단되었다.
그렇다면 무슨 일일까? 몸살 감기? 몸살 감기라면 드러누워야 할 판이다. 정양
의 뱃장쯤이면 당장 이불을 뒤집어 쓰고 누울 것이다.
제일 먼저 궁금히 여기기 시작한 것은 부면장이었다. 소내에 일어나는 직원들
의 동태를 나름대로 파악하는 것도 자신의 임무인만큼 가만히 앉아있는 자신의
시야에 특히 민원을 상대하는 정양의 잦은 움직임이 부면장의 궁금증을 불러 일
으킨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한편으론 자신의 허락도 없이 자리를 자주 비
운다는 사실에 가벼운 불쾌감마저 들었다. 이렇게 정양이 수차례 일어설 무렵,
부면장은 총무계 김석곤을 은밀히 불러 정양의 뒤를 한번 따라가 보라고 지시했
다. 김석곤은 영문을 몰라 돗수높은 안경을 만지작거렸다.
“출장명령부에 달고 나가까예?”
“그기 아이고 지금 빨리 정양을 따라가서 뭐하는고 보고 와.”
“예? 아, 예.”
김석곤은 경황중에 정양의 뒤를 쫓았다. 잠시 뒤에 김석곤이 돌아왔다. 좀 심각
한 표정이었다. 그의 보고에 의하면 지금 정양은 화장실에 들어앉아 있다는 것
이었다. 들어가는 것을 보고 같이 뒤따라 들어갈 수도 없고 해서 자기는 화장실
부근에 잠시 섰다가 되돌아왔다는 것이었다. 정양이 화장실에서 뭘하는지 자기
는 그런 것 따위는 상상이나 관심조차 가질 수 없으며 또 상사의 명령이라고는
하지만 이런 명령에 굳이 따라야 할 의무가 있는건지 모르겠다는 다소의 불평
도 있었다.
한마디로 쪽팔린다는 거였다. 그런데 한가지 덧붙인다면서 하는 말이 정양이
화장실에 들어가기 전에 엉덩이를 몇 번 꿈틀댔다는 것이었다. 한번도 아니고
그것도 몇 번씩이나.
“엉덩이를?”
“예. 처음엔 나 보라고 그러는 줄 알고 놀랐다카이요. 윙크하는 것도 아이고 정
양이 처녀도 아이잖습니까? 시집간 지가 몇 달 됐는데. 그래 엉덩이를 세게 흔들
디마는 화장실로 곧장 들어갔심더.”
이 말을 엿듣고 키다리 이명재가 허리를 꺾더니 갑자기 책상에 엎어지듯 했다.
그리곤 상체를 아래 위로 들먹거렸다.
케켁 케켁.
이명재가 간혹 내는 웃음소리가 오늘따라 유달리 뒤틀려 나왔다. 우스워서 견
딜 수 없다는 식이었다. 케켁, 케에액 케액 켈, 겔겔겔.
면서기 오래하다 보면 웃음소리도 경운기 닮아가는 것일까. 영낙없는 경운기
시동거는 소리였다.
“부 부면장님요. 켈겔……정양이 옻올랐다는기라요 옻.”
“뭣이라? 옻 올랐다고? 정양도 옻 묵을 줄 아는가베. 여자가……나도 못묵는
데.”
“그기 아이고요. 아래께 숙직실에서 면장님하고 몇이 옻순을 먹었능기라요. 묵
은 사람들이 변소간에 가서 볼일 볼거 다 봤잖습니까. 옻에 약한 사람은요 근방
에 가도 오르는데 정양도 변소간에 볼일 보러 갔다가 올랐는 모양입니더.”
그때 마침 정양이 들어오다가 이들이 나누는 대화를 듣고 말았다.
“뭐라꼬예? 옻 올랐다고예? 엄마야 나몰라 나몰라여. 그래 놓고도 말 한마디 안
하고. 나몰라여 이잉.”
“말을 하다이. 옻순 먹었는거까지 일일이 보고해야 되는강.”
이명재가 얼굴에 계속 웃음을 발라가며 시실거렸다.
“옻 오르는 사람도 생각해야지요. 옻 묵은 사람 변소에 들락거린거 사전에 알았
으마 안들어가든지 무슨 수를 썼지. 그것도 모르고 어젯밤에 우리 신랑한테 얼
마나 혼났다고예.”
“혼이 나다이? 우쨌길래?”
부면장과 이명재가 동시에 물었다. 사무실내 다른 직원들도 이 대목에 이르자
들고 있던 볼펜도 놓고 말았다. 일손을 멈추고 정양의 다음 말을 기대하는 눈치
였다. 정양은 말을 그냥 무심코 내뱉다가 답변하기 어려운 말을 토해 놓았다고
뒤늦게 깨달은 모양이었다.
“뭐 그런 것까지 물어예. 아무것도 아니라예.”
“허허 참. 정양이 먼저 말을 꺼내었으이 묻는기제. 밤중에 정양 신방에서 일어
난 일을 대체 누가 알끼라.”
정양은 얼굴을 붉히며 자기 자리로 도망쳤다. 직원들은 다소 실망하는 기색이
었다. 그 해답을 얻어내지 못한 부면장의 무능력을 탓하는 것 같기도 했다. 따라
서 그 해답은 각자의 상상에 맡기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해답의
실마리에 다소 도움을 준 것은 역시 이명재의 눈이었다. 이명재의 눈은 큰 키 때
문에 눈알이 더욱 크게 보였고 얼핏보면 등대 위에 박힌 서치라이트처럼 사무
실 안을 두루 비추었다. 이명재는 그 눈으로 자기 책상 위를 비추면서 웅얼거렸
다.
“나도요 처음에 옻 묵고 항문이 근질거려서 미치겠데요. 이거는 마 일어서도 그
렇고 앉으마 더하다카이요. 항문에 손을 한번 대놓으마 벌집을 쑤셔놓은 듯 엉
덩이에 불이 난다카이요. 펄쩍 펄쩍 뛰겠대요. 정양이 신랑한테 혼났다카는 것
도 무리는 아이제. 아직 신혼이제 또 한밤중에 그것도 달콤한 잠자리에서 정양
이 갑자기 엉덩이를 뒤흔들고 뒤틀고 해보이소. 어느 신랑이 의심 안하겠능교.
내라도 당장 의심하겠구마는.”
이명재의 눈은 밤 항구의 불빛처럼 꿈뻑댔다. 그러나 그는 왠일인지 비맞은 사
람처럼 계속 중얼거렸다.
“죄인은 바로 나라카이. 옻순 좀 꺾어오라 캤는 것도 내고, 사람들 불러 모은 것
도 내고, 정양을 변소간에 들락거리게 한 것도 내고, 민원인들에게 피해를 준 것
도 내고, 그 중에서도 마 정양 신랑한테 제일 미안하구만. 내 언제 한번 찾아가
서 빌 참이라요. 오밤중에 얼마나 놀랬겠어. 같은 남자로서 동정이 가구만. 동정
이…….
사실 그날 오후에 하늘이 찌푸려지더니 이명재의 말에 동조라도 하듯 비가 내
렸다.
강우량은 영점 오밀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