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말을 하지 않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이다.
첫째, 말을 잘 할 줄을 몰라서이다. 두 번째는 말을 하지 않으면, 무얼 잘 몰라도 아는 것처럼 보일 수 있을 것이고, 세 번째는 얌전하고 점잖게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이유는 사실 내가 아는 게 별로 없기 때문이다. 아는 게 없으니 입이 잘 열려지지 않고, 입이 열려지지 않으니 말은 자연히 할 수 없게 마련인 것이다. 실제로 나는 입에 먹을 것이 들어가는 시간 이외에는 입이 열려있는 시간이 거의 없다. 그러니까 나의 주위는 침묵으로 일관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재미가 없는 것은 당연하지만, 내가 침묵을 지키는 이유는 너무 많은 말들, 너무 큰 소음들이 세상에 난무하는데에도 이유가 있다.
사람들은 왜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일까. 누가 남의 허물을 얘기하면 즐거움까지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남이 잘 되는 것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속성을 지닌 인간 내면의 더러운 악령이 그것을 부추기고 있다. 남의 말을 함부로 한다는 것은 공해를 유발하는 원인이 된다. 그것도 가장 근본적이고 치유하기 어려운 공해다. 일단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침묵속으로 들어간다는 뜻이다. 침묵은 모든 것을 창조하는 원천이며, 태고적부터 아니 맨처음부터 존재하는 것이었다. 침묵속에서 세계가 창조되었고, 지금도 우리 주위를 거대한 산맥처럼 감싸고 있다. 우리는 침묵을 근간으로 하여 말을 할 수 있으며, 말을 함으로서 침묵의 집을 짓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말을 건성으로 지껄이면서, 우리가 밟고 호흡하며 살아가는 침묵의 덩어리에 훼손을 가하고 있다. 함부로 내뱉는 말은 침묵에 손상을 주고 우리 자신을 위태롭게 만드는 것이다. 또 함부로 말을 하면 양기가 술술 빠져나가는 요인이 된다고도 한다. 그러나 너무 또 입을 다물고 있으면 화가 난 표정으로 보일 수 있으므로, 입을 닫는 듯 마는 듯 미소를 머금은 표정을 짓는 것이 중요하다. 말은 상대방과 하는 것이므로 되도록 밝고 즐거운 감정을 제공해야 할 터이다. 그러나 세상이 너무 요란하고 시끄러우므로 그에 동조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 안타까운 일이다. 그것도 함부로 내뱉는, 자제할 줄 모르는 마구잡이로 쏟아놓는 쓰레기같은 말들이 우리 주위에 산적해 있어 숨이 막힐 지경이다.
이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말의 쓰레기를 줄이고 우리 주위를 깨끗한 침묵의 세계로 만들 수 있을까. 태초의 그 원시적인, 풋풋한 풀내음이 나는 침묵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나는 그동안 관심을 가져 온 이 분야에 대하여 며칠전 우연히 한가지 자연 식이요법같은 것을 개발해냈다.
먼저 고무로 된 플라스틱 통을 준비했다. 그리고 아침 일찍 일어나서 목욕을 한 뒤, 플라스틱 통에 입에서 나오는대로 침을 뱉었다. 입을 우물거려가며, 아래 위 이빨을 마주쳐가며 혹은 혓바닥을 꿈틀대가며 침을 만들어 밖으로 배출해냈다. 한시간 두시간, 시간이 갈수록 침은 플라스틱 통에 모아졌다. 하루종일 모은 침의 분량은 두되는 될 성 싶었다. 그것을 끓인 뒤, 채로 걸렀다. 혹시나 다른 이물질이 있나 해서였다. 그리고 색깔을 내기 위하여 인체에 해롭지않은 색소를 구해 섞었다. 통상적으로 먹는 묵의 색깔처럼 자주빛의 먹음직스런 묵이 되었다.
그것을 가장 함부로 말을 잘 내뱉는 K씨에게 먹어보라고 권했다. 물론 도토리 묵이라고 말은 했지만. 그런데 신통하게도 그 묵을 먹고 난 K씨는 말을 함부로 내뱉지 않았다. 아니, 그는 며칠후부터 이상하게도 말을 거의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 가족들과 주위 사람들도 그가 좀 이상해졌다는 말을 하는 것이었다.
나는 한편으로 쾌재를 불렀지만, 한편으로는 불안해졌다. 왜냐하면 나의 연구목적은 달성되었다하더라도 한사람을 사회의 이상한 낙오자로 만들지나 않았는지 하는 우려때문이었다. 그런데 K씨가 얼마전 병원에 갔다 온 뒤로는 다시 말을 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나한테 묵을 얻어먹은 뒤부터 속이 미싱거리고, 무얼 먹으면 올라오는 것같아서 말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병원 의사말로는 정밀검사를 해본 결과, 내부적으로 별다른 이상을 발견할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자기가 좋아하는 술을 더욱 많이 먹게되었고, 따라서 쓸데없는 말도 전보다 더 많이 뱃속에서 나오더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 소리를 듣고 낙담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의 노력은 일시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만든 침묵은 한낱 하늘에서 떨어지는 순간의 별똥같은 것이었다. 말의 공해는 더욱 커져가고 침묵은 자신의 존재를 잃어가고 있다. 침묵함으로서만이 말의 효용성을 더욱 빛낼 수 있을터인데. 우리는 오늘도 남의 말을 남의 약점을 함부로 얘기하고 있지는 않은가. 주위에 흩어져 있는 침묵의 조각을 찾아보자. 함부로 던진 말의 돌멩이로 침묵은 그렇게 유린당해 왔다. 단순히 입을 닫는 것만으로 깨어진 침묵은 복구되어지지 않는다. 묵상하는 심정으로, 명상하는 마음으로 오늘, 지금 이 순간부터 침묵의 여정에 동참하자. 태초의 침묵, 우리가 태어나기 이전의 침묵으로 다시 돌아가보자. 이 밤이 새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