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노인이 마을 뒷산 중턱에 집을 지은 것은 지난 가을이었다.
자식들과의 갈등 때문에 벌써부터 집을 나와 혼자 살기로 마음먹었는데 올 봄에 숨겨논 비자금으로 주거공간을 마련하기로 하였던 것이다.
집은 집인데 좀 특이한 집이었다.
등산로에서 십여미터 안쪽으로 들어간 양지바른 언덕바지에 무덤 형태로 만든 집이었다. 땅은 국가소유로 되어 있어 따지고 보면 불법으로 만든 것이지만 얼핏 보면 무덤 모양이어서 누가 죽어 묘를 쓴 것으로 보였다.
이 작은 무덤 공간을 만드는데 자그마치 5백만원이 들었다.
사지를 뻗어 자리에 누울만큼의 공간, 눈 앞에 바로 내려앉을 것 같은 천장, 나무로 된 장판이 안에서는 제법 깔끔한 모양새를 갖추었다. 둥근 천장에는 반짝이 벽지를 발라 어둠 속에서도 야광색 빛을 발하였다.
그 밖에 두꺼운 이부자리, 머리맡 작은 탁자에 라디오와 책 몇권, 비상전등, 커피 포트, 소형 가스렌지, 라면 몇 개 등이 살림의 전부였다.
무덤 출입구는 굵은 자물쇠로 채워져 주인 이외에는 일체 들어올 수 없게 하였다.
무덤집 앞에는 이미 A노인의 비석을 세워 놓았다. 가로 0.4m, 세로 1m 크기의 비석에 한글로 깨알같이 이렇게 적었다.
- 즐거운 나의 집. 내 평생 살아오면서 가장 훌륭하고 멋진 집을 지었다.
빈손으로 왔다가 어차피 빈손으로 가는 인생. 내가 누울 한평의 땅이면 족하지 않겠는가. 하늘의 인연으로 아내를 만나 자식을 여섯 두었으나 하나는 어려서 병을 앓아 좋은 세상 못보고 갔고 아내도 나보다 먼저 가버렸다.
남은 자식들 틈바구니에서 떠밀린 나는 부평초처럼 떠돌다가 이제야 나의 정착지를 찾았다. 이곳에 누워 보니 편안하기 그지없다. 언제라도 눈 감으면 영원한 잠을 자게 될 것이다. 장례식도 치를 필요없고 누가 와서 울어주지 않아도 된다. 혹여 누가 이곳을 들여다보면 당신도 나와 같이 편안한 잠자리를 마련할 것을 권한다. 특히 죽음을 앞둔 노인들에게 권하고 싶다. 자식들의 짐도 되지 않고 참으로 조용하고 아늑하게 인생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는 곳, 이곳은 정말 즐거운 나의 집이다. 영원한 나의 보금자리이다.
A노인의 하루 일과는 단순하였다.
아침에 눈을 뜨면 누운 채로 기도를 한다. 기도의 대상은 이 산의 신령님이다. 산신령님의 영역안에 있으니까 당연히 예를 표해야 한다는 생각에서이다.
- 이 산을 지배하시는 신령님이시여. 오늘 하루도 무사히 지내게 해주십시오. 산중의 모든 생물이 저마다 활기차게 하루 해를 보낼 수 있게 해주시고 오늘도 산을 찾는 모든 사람들에게 신령님의 영험하신 기운을 불어 넣어주소서. 산불조심기간이 되었습니다. 산불이 일어나지 않도록 신령님께서 각별히 신경을 써주시고 부득이 산불이 났을 경우에 신령님께서 하늘의 비를 요청하시어 즉시 산불을 끄게 할 수 있도록 해주소서. 산불이 나면 저의 집도 위험할 수 있사오니 부디 잘 살펴주옵소서.
A노인이 기도 중에 산불을 얘기하는 것은 이유가 있었다. 지금은 나이가 많아 하지 않지만 전에 산불감시탑에서 감시원으로 한동안 일을 한 전력이 있었다. 그는 더 계속 일하고 싶었지만, 나이도 나이고 그것도 경쟁이 되어 될 수 있으면 나이 적은 사람을 쓰려고 해서 그만 두어야 했다.
소일거리가 떨어지자 A노인의 기력은 더 약해져버렸다. 자식들에게 버림받고 사회의 일자리에도 밀리자 알 수 없는 소외감이 그를 감쌌다. 배척당하고 소멸되어야 할 대상으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A노인은 라면으로 아침을 떼웠다. 라면도 끓여 먹는 것이 아니라 생으로 조금씩 뜯어먹었다. 전에는 라면을 끓여 먹었으나 귀찮기도 하여 간편한 방법을 택했는데 그냥 먹어도 그런대로 맛이 괜찮았다. 아니 오히려 생으로 먹는 것이 맛을 음미할 수 있어 더 좋았다. 천천히, 꼬옥 꼭. 이빨로 씹으면 라면의 고유한 맛이 입속으로 배어들었다.
아침 식사가 끝나면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산 정상을 향해 오른다.
산에 있다고 그가 가장 일찍 산에 오르는 건 아니었다. 벌써 저 앞쪽에 정상을 향해 오르는 사람이 보였다. 새벽에 오르내리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산을 사랑해서인지, 건강을 위해서인지 어쨌든 좋은 일이다. 산과 가까이 한다는 것은.
A노인은 요즘 산 정상에 오르면 전과 다르게 조금씩 숨이 가빠지는 것을 느꼈다. 산을 오르는 것은 누구한테도 지지 않았고, 지고 싶지도 않았는데 왠지 모르게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을 가눌 길이 없었다.
A노인은 지팡이로 오르막길을 가늠하면서 천천히 올라갔다. 발바닥의 무게가 한층 더 무겁게 느껴졌다. 무릎 관절도 약간 시큼거렸다. 정상까지는 아직 30분은 더 남아 있었다.
중간 바위 옆 의자에 앉아 잠시 숨을 가다듬었다. 시내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가슴이 좀 트이는 기분이었다. 저 멀리 변두리엔 아파트 공사가 한창 진행중인지 대형 크레인이 하늘을 가르고 있었다.
아침 등산객이 가끔 스쳐 지나갔다. 혼자 가는 사람, 짝을 지어가는 사람, 어떤 사람은 마라톤 코스처럼 달리면서 올라갔다.
그런데 가는 사람마다 다 정상에 올라가지는 않았다. 중간에 쉬다가 내려가는 사람, 옆길로 빠지는 사람, 정상 너머로 반대편으로 가는 사람 등 다양하였다.
A노인은 정상에 갔다가 다시 되돌아오는 축에 속했다. 오늘은 제시간에 정상을 밟을 것인지 궁금했다. 무덤집에서 출발하면 한시간이면 정상에 오를 수 있는데, 오늘은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한시간 반이 지났을까. A노인은 겨우 산 정상에 도달하였다. 산 정상 막바지 계단을 오르다가 숨이 너무 차 헐떡거리는 것을 한동안 멈추지 않았다. 노인의 얼굴이 하얗게 변할 정도였다. 노인은 가까스로 숨을 진정하고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산 중턱에서 바라보는 것보다 훨씬 더 시야가 넓고 광활한 느낌이었다. 세상을 정복한 순간이었다. 이 맛으로 산 정상을 오르는 것인지도 모른다.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는, 큰 목표에 도달하였다는 성취감, 그래서 다른 일도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 같은 것이 솟아오른다.
오늘따라 하늘은 구름 한점 없이 맑았다. 햇빛은 따사롭고 만사가 형통할 것 같은 날.
그런데 A노인은 갑자기 내려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였다. 아무래도 몸 상태가 이상이 있는 것 같다. 노인은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산을 내려가는 시간은 오르는 시간보다는 적게 걸렸다. 그러나 노인은 그마저도 어렵게 보였다. 숨이 차오르는 속도가 빨라졌다. 노인의 머리는 땀에 젖었지만 금세 말라버렸다. 열기같은 것이 내뿜었다. 노인은 정신없이 내려갔다. 무의식적으로 발길이 닿는대로. 그래도 넘어지지 않고 발을 잘 디뎠다. 올라올때의 시간만큼 노인은 내려가면서 무덤집을 의식하였다.
이윽고, 노인은 자신의 집에 당도하였다.
노인은 비석을 한번 쓰다듬다가 쓰러졌다. 노인은 쓰러진 채로 비석의 글귀에 눈길을 주었다.
A노인은 엉금엉금 기면서 무덤집 속으로 기어 들어갔다.
노인은 무덤 속에 누워 손에 잡히는 것들을 하나씩 더듬어 만져보았다. 라면봉지, 탁자, 라디오, 가스렌지, 책갈피 등. 밖은 대낮이어도 무덤 속은 깜깜하였다. 그러나 무덤 속의 천장은 별빛이 반짝거렸다. 반짝이 별이 노인의 눈을 밝히고 있었다.
노인은 흐릿해지는 의식을 가누며 숨을 헐떡였다. 가슴을 짓누르는 고통이 엄습하였다. 노인이 갑자기 음- 하는 신음을 발했다. 노인의 동공이 커졌다가 작아졌다. 숨소리가 잦아들면서 노인의 눈이 스르르 감겼다.
A노인은 자신이 마련한 작은 무덤 방에서 조용하면서도 쓸쓸하게 생을 마감하였다. 무덤 바깥은 여전히 따뜻한 햇빛이 내려쬐었다.
무덤집 앞 비석 뒤쪽에는 이렇게 쓰여있었다.
- 1935년생 윤영수, 뜬구름같이 살다가 없어지다
그가 죽은 일시는 2010년 11월 30일 오후 1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