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자 M은 오늘도 먹을거리를 생각하고 있었다.
하루 한끼 먹는 것으로 일관하여 왔으나 뱃속의 허전함은 달랠 길이 없었다. 사업실패, 아내가출, 가족해체, 알콜중독으로 이어져 떠돌아다닌지 어언 2년이 넘었다. 그에게 남아있는 것이라곤 다 망가져버린 몸뚱아리 뿐. 그 몸을 지탱할 먹을거리를 챙기는 일이었다.
동료 노숙자 Y가 채근을 하였다.
- 밥 얻어 먹으러 가자. K성당에서 오늘 밥주는 날이잖아.
M은 Y와 함께 피곤한 다리를 움직였다. 무릎 관절이 시원찮아 오래 걷는 것은 무리였다. K성당에서는 매주 두 번씩 점심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었다. 노숙자 M과 Y는 일찌감치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직 배식 시간이 되지 않았지만 밥 냄새
를 맡는 것만으로도 시장끼를 다소 줄일 수 있었다.
오늘은 주임 신부가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일하고 있었다. 오늘의 메뉴는 볶음밥이었다. 배식 시간이 다가오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식당안 의자가 순식간에 메워졌다. 미처 들어오지 못한 사람은 식당 밖에서 줄을 서서 기다렸다.
배식하기 전 주임 신부의 간단한 강론이 있었다.
- 반갑습니다. 많이 시장하시죠? 오늘은 맛있는 볶음밥을 준비했습니다. 중국집에서 먹는 것보다 맛이 덜할지는 모르지만 정성껏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볶음밥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쌀밥에 당근, 쇠고기, 감자 따위를 잘게 썰어 넣고 기름에 볶아 만든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이 들어있는 음식입니다. 볶음밥이 중국에서 유래되었다는 말이 있습니다만 성경하고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성경에 4복음이 있는데, 복음은 ‘복된 소식’이라는 뜻이고 볶음밥이 바로 이 4복음에서 유래되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어원을 분석해봐도 ‘복음’이 ‘볶음’으로 변용되었다는 것을 알수 있지요. 4복음이 마태오, 마르코, 루카, 요한복음인데 이 네가지 복음을 효과적으로 세상에 알리는 방법으로 볶음밥을 개발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혼자만 알고 있지 말고 모두에게 골고루 전파하여 모두가 복된 소식을 듣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볶음밥에 여러 가지 재료가 들어있듯이 4복음에는 하느님의 중요한 말씀이 거의 다 들어있습니다. 볶음밥을 먹으면서 복음을 들을 수 있는 체험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복음은 바로 하느님의 볶음밥입니다. 많이들 드시고 힘내세요.
배식이 시작되었다. 자원봉사자들의 손길이 바빠졌다. 주임 신부도 볶음밥을 담아주었다. 삽시간에 식당 안이 소란스러워졌다. 밥 먹으러 온 사람들은 사실 복음엔 관심이 없고 볶음밥에만 관심이 있었다.
갖가지 행색의 사람들이 식당을 채우고 있었으나 정작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의 모습은 그리 많지 않아 보였다. 급식을 처음 시작할때만 해도 대부분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찾아왔으나, 지금은 염체불고하고 집안이 넉넉한 사람들도 찾아와 밥을 타먹는 바람에 효과는 반감되었다. 거동이 불편한 사람에게는 직접 배달해주는 경우도 있지만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았다.
사람들이 몰리는 이유는 식당에서 사먹는 것보다 음식이 맛이 있고 양도 많이 준다는 것과 친절하게 대해 준다는 것이었다. 거기에다가 공짜니까.
그런데 세상에는 공짜가 없는 법이다. 어쩌면 공짜로 먹는 것이 가장 부담스러운 것일지 모른다. 그런 부담을 느끼지 않았다면 양심 결핍자이거나 이방인에 속할 것이다.
오늘 볶음밥을 먹은 사람들 중 가장 부담을 느낀 사람은 M과 Y였다. 그들은 볶음밥을 먹으면서 이상한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식당안의 소란스러움 속에서도 그 소리는 또렷하게 들렸다.
-…가서 나누어 먹어라. 혼자만 먹지 말고. 너보다 더 못먹고 지친 사람들이 있다. 가서 내 말을 전하고 그들과 함께 하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을 것이다….
M과 Y는 서로에게 물어 확인해 보았다.
- 그래, 나도 들었어. 분명 그건 하느님의 목소리였어.
두사람은 입술에 묻은 밥풀을 닦아내며 흥분에 휩싸였다.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손을 잡고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무엇에 홀린 것 같았다.
그들이 찾아간 곳은 역주변의 밑바닥 인생들이 노닥거리는 곳이었다. 외지에서 흘러들어온 노숙자, 알콜중독자, 몸을 파는 창녀, 쪽방 안에 외롭게 갇혀 지
내는 병든 노인들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행색도 아랑곳하지 않고 하느님의 명령대로 움직였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복음을 전하였고 그들을 만나는 사람들은 자신과 동료처럼 보이는 그들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주었다.
두사람의 옷은 남루해 보였지만 얼굴이 예사롭지 않게 빛이 났고 알 수 없는 힘이 뿜어져 나왔다.
그런데 두사람이 우연히 중국집에 들어가게 되었다.
초라한 행색을 본 주인이 그들을 쫓아내려고 하였다. 그러나 안쪽에서 풍겨오는 볶음밥 냄새가 그들을 붙들어 매었다. 두사람은 물러서지 않고 입구쪽에 선 채로 주인에게 자신들의 사명을 설명하였다.
- 우리는 오히려 당신을 돕고자 이렇게 찾아왔소이다. 당신은 지금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르오. 당신이 볶음밥을 판다는 것 자체가 복받을 일이라오. 그것은 바로 하느님의 복음을 전하는 일이오. 우리는 얼마전에 성당에서 주는 볶음밥을 먹고 하느님의 음성을 들었소.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우리는 똑똑하게 들었다오. 당신은 당신이 하는 일에 대하여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오. 지금까지는 몰랐지만 이제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당당한 일꾼이 되어 손님들을 맞이해야 할 것이오.
주인은 난데없이 하느님을 들먹거리는 것에 의아하게 여겼다. 형편없는 행색을 한 주제에 감히 하느님을 입에 올리다니. 그러나 그들의 말에는 알 수 없는 위엄이 깃들어 있었다. 주인은 생업에 쫓겨 종교 같은 것엔 관심도 없었는데 자기가 하는 일이 범상치 않다는 말에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지금까지 수천 그릇의 볶음밥을 팔았는데 그것이 복받을 일이라니. 하느님의 볶음밥을 팔았다니. 내 손으로 요리해서 내가 팔았는데 어째서 하느님이 판 것이란 말인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 이해가 안될 법도 할 것이오. 우리도 처음엔 이해가 안되었으니까. 그러나 볶음밥이 분명히 하느님의 복음과 관계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오. 당신의 사업이 이렇게 번창해진 건 어쩌면 하느님이 알게 모르게 당신을 도운때문일 것이오. 당신이 원했던 원치 않았던간에 당신은 하느님의 복음사업에 동참해 왔고
오늘도 볶음밥을 팔고 있지 않소?
M과 Y는 영업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 서둘러 나오려고 하는데, 갑자기 주인이 볶음밥을 대접하고 싶다며 두사람을 의자에 앉혔다.
두사람은 식당 입구에 앉아 주인이 요리해 준 볶음밥을 먹었다. 색다른 맛이었다. K성당의 것과는 또다른 맛이었고 주인의 솜씨가 돋보였다. 성당의 것이
정성이 깃들인 것이라면 이번에 먹은 것은 맛깔스럽다고나 할까.
두사람은 주인에게 맛있게 잘 먹었다는 답례를 하고 식당을 나왔다. 배고픔은 이제 그들과는 상관이 없어 보였고 두사람은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이상한 일이었다. 성당에서의 볶음밥 사건 이후로 하루종일 돌아다녀도 그들은 먹을거리를 걱정하지 않고 하루를 마감할 수 있었다. 그들은 마치 탁발승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양식을 챙기듯 그들 자신도 모르게 먹을 것이 생겨 배고픔을 잊었다.
그런데 그들에게 들려오는 또 하나의 기쁜 소식이 있었다.
중국집 식당 주인이 역주변의 불우한 사람들에게 점심을 무료로 제공하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식당 주인은 M과 Y가 다녀간 후로 이상하게도 손님들이 늘어나 수입이 훨씬 많아져 기분이 좋아 음식을 나누어 주기로 하였다. 주위 사람들은 구두쇠로 소문난 그가 공짜로 음식을 제공한다는 사실에 처음엔 믿지 않았으나 그의 진심어린 선행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식당 주인이 무료로 점심을 제공하는 날은 중복을 피하기 위해 성당 급식일과는 다른 평일을 택하였다. 메뉴는 볶음밥으로 했으나 뒤에 편의상 짜장면도 추가하였다. 복음의 의미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므로 굳이 볶음밥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식당 주인의 얼굴 표정도 어느새 전과는 딴판으로 변해있었다.
과묵하고 무뚝뚝한 표정은 사라지고, 입가에 미소가 번지고 무언가 기분이 좋은 듯한 밝은 얼굴이었다. 전에는 영업상 형식적인 친절을 가장하기도 하였지만 지금은 자연스럽게 우러나오고 있었다.
실제로 자신이 남에게 베푼다는 사실에 저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역주변에, 내가 사는 이웃에 이렇게 형편이 딱한 사람들이 적지 않게 숨어있을 줄은 미처 몰랐다. 주인은 그동안 돈만 버느라고 정신이 없었다는 사실에 심히 자책하였다.
M과 Y는 식당 한쪽에서 점심을 먹으며 주인의 변화된 모습에 기뻐하였다. 볶음밥 속의 진리를 찾아낸 두사람은 오늘도 역주변을 맴돌며 복음을 전파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