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는 일년에 아홉 번의 제사를 지낸다.
명절 제사를 포함하면 열한번인데 한달에 평균 한번 정도 지내는 셈이다. 집안의 장손이라 이것저것 떠안아 온 것이 이렇게 짐이 될 줄 몰랐다. 그렇다고 재산을 넉넉히 물려받은 것도 아니고 다른 형제들보다 책임감만 잔뜩 짊어진 것이었다.
형제들이 보태주는 제사 비용은 예전같지 않아 울며 겨자 먹기로 H의 부담만 더해갔다. 아내의 불만도 예사롭지 않았다. 아이들 교육비 등 기타 생활비는 늘어만 가는데 제사 비용이 그에 못지 않게 들어가 H의 봉급으로는 늘 적자를 면치 못하였다. 마이너스 통장 잔액을 조금이라도 줄여 보려고 하지만 줄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나기만 했다. 금리가 인상되어 이자 부담도 만만치 않았다. 아내의 불만은 당연한 것이었고 매사에 낙이 없어졌다.
어떤 특단의 대책이 없이는 가계를 정상화시키기에는 까마득하였다.
H가 제사에 대해 골몰하면서 지내던 중 어느날 친구와의 술좌석에서 들려오는 구원의 목소리가 있었다.
- 오늘 우리집 제삿날인데 말이야. 술은 그만하고 일찍 가봐야겠어.
- 야, 자네 제사 그거 간편하게 해버려. 뭘 그리 복잡하게 하나? 나도 제사가 많은데 말이야. 한번에, 한몫에 지내뿌리. 그러면 간단한데 뭘 그리 신경을 쓰고
그래. 요즘은 휴대폰으로도 지낸다고 하더라. 돈 안들고 조상님께 욕안먹고, 제
사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야 되는거라고. 알간?
친구의 말은 H의 귓전을 때렸다. 돈안들고 제사를 지낼 수 있다니. H는 그날 자신이 계산한 술값은 아깝지 않았다. 제사를 가장 효율적으로 지낼 수 있는 방법을 알아냈기 때문이었다.
친구는 제사를 일년에 딱 세 번으로 줄였다고 하였다. 설, 추석에는 어차피 지내야 하고 나머지 제사는 한날 한시로 통합하였다는 것이다. 친구도 일년에 일곱, 여덟 번은 제사를 지냈는데 묘안을 생각해냈다. 제사란 일년에 한번 돌아가신 분의 넋을 기리는 것이므로 제날짜에 맞춰 지내는 것이 더없이 좋기는 하지
만, 요즘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에 거기에 맞추기가 여간 쉬운 일이 아니어서 결
단을 내어 집안 사람들과 여러 차례 협의하에 결정하였다고 한다. 그렇게 정하고 나니 마음이 홀가분하고 제사 비용도 훨씬 덜 들어간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앞으로 그보다 더 간편한 휴대폰 제사로 바꿀 생각이라고.
H는 아내와 의논을 하였다. 아내는 대찬성이었다. 명절 제사는 어쩔수 없지만 기제사는 한번으로 통일하자고 하였다. 그리고 이왕이면 기제사도 휴대폰으로 간단하게 하자고 하였다.
형제들을 불러 의견을 물었다. 형제들은 처음에는 의아하게 쳐다보더니 자신들의 제사 비용충당도 덜게 되면서 제사를 모실 수 있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선뜻 결정을 못내렸다. 기제사를 한번에 통합해서 지내는 것과 휴대폰으로 지내는 것과의 의견이 엇갈렸다. 기제사와 휴대폰 제사의 난상토론 끝에 휴대폰 제사로 낙착되었다. 휴대폰 제사를 지내되, 날짜는 통합하지 말고 제날짜에 지내기로 하였다.
휴대폰 제사는 모통신사에서 고객서비스 차원에서 개발해서 시험단계에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제사 정보를 입력하면 제삿날 며칠전에 휴대폰으로 미리 알려준다. 제사 당일날에 휴대폰으로 조상을 기리는 문자가 뜨고 자식들이 조상을 생각하는 마음을 담은 영상도 볼 수 있다. 돌아가신 분의 초상화가 나타나고 생전의 모습을 생각하게 하는 시간을 갖는다. 휴대폰을 보면서 묵념을 올리고 고인을 추모한다.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지 않아도 각자의 휴대폰으로 열람하고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돈들이지 않고 고인의 기일을 생각하고 추모할 수 있는 것이다.
아내는 만족스러운 표정이었다. 제사때마다 사전준비에서 끝날때까지 신경쓰는 것을 생각하면 끔찍한 일이었다. 돈 안들고 제사 모실 수 있고 얼마나 좋은 일이냐. 이 기발한 생각을 한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었다.
휴대폰 제사를 하기로 결정을 한 후, 열흘쯤 지나 H의 아버지 기일이 닥쳤다. 삼일전에 알림 문자를 보내왔고, 당일에도 H의 휴대폰에 아버지의 기일 메시지가 도착하였다.
- 댁의 아버님 영혼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생전의 모습을 그리며 애틋한 마음을 달래봅니다. 지금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다같이 옷깃을 여미고 아버님의 영원한 천상복락을 기원합시다.
종교란에 기독교라고 입력을 한 때문이었는지 이어서 찬송가가 울렸다. 요즘은 왠지 목탁소리가 듣고 싶었는데, 어쩔수 없는 일이었다.
휴대폰 속의 제사는 시작기도, 찬송가, 성경구절 읽기, 고인의 생전 모습보기, 묵상, 마침기도, 찬송가 등으로 진행되었다. 제사 시간은 10분 내외였다. 통신요금은 많아봤자 일, 이천원이 될 것이었다. 단돈 몇천원에 조상의 제사를 이처럼 간편하게 지낼수 있다는 사실에 경이로울 따름이었다.
그런데 제사가 끝나고 휴대폰을 닫으려 할 즈음, 한통의 전화가 날아왔다.
- 야, 이노무 자식아.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그래 제사를 이 따위로 지내나? 내가 먹으면 얼매나 처먹겠다고 과일 하나 못사놓냐? 고기 반찬한다고 내가 그걸 정말 먹냐? 냄새만 맡고 갈긴데. 결국 너거들 입에 다 들어 가잖냐. 이놈아 며느리 질좀 들이라.
H는 깜짝 놀랐다. 분명 돌아가신 아버지의 말씀이었다. H는 당황하면서 다급하게 휴대폰 키를 눌렀다.
- 아, 여보세요? 아버지, 아버지세요?
휴대폰 속에서 두런거리는 듯한 소음이 잠시 침묵에 빠지는가 싶더니
- …그래 나다. 니 애비다. 내가 이 하늘 위에서 니 하는 짓거리 다 보고 있는기라. 정신차리거라. 니도 머잖아 죽으면 내 한테로 올꺼 아이가.
틀림없는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H는 흥분에 휩싸였다. H의 아내도 옆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두사람의 대화를 엿듣고 있었다.
아버지가 계신 곳은 다름 아닌 모통신사가 지구 궤도에 띄워놓은 인공위성이었다. 아버지의 말에 의하면 인공위성에 들어온 지는 얼마되지 않았다. 아버지
뿐만아니라 많은 영혼이 그 곳에 들어앉았다. 수년간 우주 공간을 쉴 곳도 없이
떠돌다가 마침 들어올 기회가 생겨 입주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통신사의 운용능력이 미치지 않는 위성의 자투리 부분에 벌집보다 무수히 작은 점같은 방들이 있는데 우주공간에 떠도는 영혼의 노숙자들을 위해 하느님께서 특별히 안주할 곳을 허락해 준것이라고 한다.
- 나도 살았을 때 잘한 것은 별로 없다마는, 제사만은 정성되게 지냈는기라. 다른건 다 봐주겠는데 휴대폰 제사는 보기가 좀 그렇다. 니하고 통하는기 제사때 뿐아이가. 그러이 알아서 잘해 보거라. 밤도 깊었는데 나도 그만 쉴란다. 그라고 니가 들어올 자리 내가 비아놨다. 빨리 오고 싶으마 빨리 오고, 더 있다 올라마 더 있다 오고. 맘대로 해라. 늦게 오마 자리가 있을란가 몰라. 시내에는 미분양 아파트가 그리 많다는데 여기는 서로 들어올라고 생 야단이다. 그만 끊자.
아버지의 음성은 생전의 목소리와 별반 다를게 없이 생생하게 들렸다. 휴대폰을 점검하였으나 이상하게도 전화번호는 기록되지 않았다. 통신사에 전화를 했으나 그런 서비스는 하지 않으며 확인도 불가능하다고 하였다. 귀신이 곡할 노
릇이었다. H와 그의 아내는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정신이 멍한 상태였다.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밖에 나가서 얘기하면 정신나간 놈이라고 할 것이고. 동생들에게도 그런 전화가 왔는지 확인해 보았으나 그들에게는 오지 않았다고 한다. 어쩌면 장남인 그에게 아버지가 특별히 내리는 메시지는 아니었던가. H와 그의 아내만이 들은 이 사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지.
H는 이튿날 그가 다니던 교회의 목사를 찾아가 자초지종을 얘기하였다. 목사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H가 마귀에 홀린지도 모르니 진정제를 사먹고 휴식을 취할 것을 권고하였다. H는 자신의 말을 믿어주지 않는 목사를 저주하였다. 하늘
로 올라가는 사다리가 있다면 당장 올라가 위성을 살펴보고 싶었다.
세상에는 불가사의한 일이 적지 않게 일어난다. H가 직접 들은 아버지의 음성. 정말 내 귀로 들었는데. 어떻게 알아듣도록 설명할 방법이 없다. 사람들에게 설명할 방법이. 설명보다는 증거가 필요하였다.
H는 별수없이 다음 차례로 다가오는 어머니의 제삿날을 기다려보기로 하였다. 녹음장치와 기타 필요한 부대 장비를 갖추고 만반의 준비를 하였다.
죽은 영혼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오기를 간절히 고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