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콩은 영화속의 거대한 고릴라를 지칭하는 것으로 킹콩의 순진한 사랑이 인
간을 감동시킨다는 내용이다. 여러편의 영화로 제작되어 관객들의 많은 호응을
받았다. 홍콩은 중국 광동성 남부에 있는 섬으로 된 항구도시. 1840년 발생한 영국
과의 아편전쟁에서 패한 청국이 1842년 맺은 난징(南京)조약에 의해 영국령이 되
었다가 1997년 중국에 반환되었다.
두 낱말을 언급한 것은 다음 이야기에 약간의 도움이 될 것 같아서다.
K시에 요즘 심심찮게 흔히 먹는 짜장면이 세간의 화젯거리가 된 것이 있다.
짜장면은 순수한 우리 말이 아니라 중국어 자장면(Zhajiangmian-炸醬麵)에서
나온 것으로 고기와 채소를 넣어 볶아 중국 된장에 비빈 국수를 말한다.
이 짜장면을 둘러싸고 두 식당간에 싸움아닌 싸움으로 번지고 있는 것이었다.
두 식당의 이름은 킹콩반점과 홍콩반점. 반점(飯店)이란 중국 음식을 파는 식당
을 일컫는데 두 식당은 중국 음식을 전문으로 취급한다는 문구를 내걸고 있었다.
그런데 두 식당이 바로 도로를 사이에 두고 가깝게 마주하고 있었다.
두 식당의 주 메뉴는 짜장면이었다.
짜장면의 맛이 나름대로 독특하여 많은 손님들이 식당을 찾았는데 마주하는 위
치에 있는 관계로 매일 손님이 들락거리는 것을 눈여겨보게 되었고 손님을 끌기
위한 경쟁을 본의 아니게 하게 되었다.
원래 식당 이름이 지금과 같은 것은 아니었다. 홍콩반점이 먼저 간판을 걸고 시
작하였고, 맞은편에 있던 반점은 그 뒤에 홍콩과 어감이 비슷한 킹콩반점으로 이
름을 바꾸었다. 손님을 더 끌기 위해 ‘원조 홍콩반점’으로 상호 등록신청을 했으나
상호 앞에 원조, 고조 등의 말이 붙는 것은 곤란하다고 해서 이름이 유사한 킹콩
으로 바꾼 것이었다.
상호가 유사하게 된 이후로 손님 유치경쟁은 더욱 심해졌다. 손님들 중에도 어
느 식당에 갈 것인지 망설이는 경우가 많았다. 음식 맛과 분위기도 비슷하고 주인
에 대한 안면도 서로 아는 처지여서 난감할 때가 적지 아니하였다.
매출면에 있어서는 홍콩이 앞서는 것 같고 킹콩도 그에 못지 않게 추격하는 양
상을 띠고 있었다. 두 식당은 손님을 끌기 위한 기법을 나름대로 개발하고 있었다.
손님에 대한 친절은 물론 서비스, 가격인하, 종업원의 옷차림, 실내 인테리어 변
화, 시내 전구역 신속배달 등 갖가지 기법을 동원하였다. 오트바이로 배달할 때에
는 신나는 트롯트 유행 음악을 틀며 흥을 돋구었고 식당 깃발을 휘날리며 시내를
질주하였다.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의 치열한 경쟁으로 두 식당은 매일 긴장의
연속이었다. 아마도 이런 추세라면 우리 식당 문화도 한층 높아질 것은 자명한 일
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킹콩쪽에서 새로운 반격을 시작하고 있었다.
아침 일찍부터 식당 간판을 큼지막한 천막으로 둘러치고 하루종일 그 안에서
무슨 작업을 하는가 싶더니 오후 늦게 천막을 걷어낸 모습은 가관이었다. 거대한
킹콩 그림과 함께 킹콩이 짜장면을 들고 먹고 있지 않은가. 킹콩은 입맛을 다시며
짜장면 그릇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눈웃음을 지으며 흥에 겨운 모습이었다. 킹콩
과 짜장면의 색깔이 비슷한 것도 호감이 갔고 누구나 간판을 보면 웃음을 유발시
키는 효과가 있었다. 손님을 유인하는 기발한 발상이었다. 또 손님들에게 간판 그
림을 축소시켜 만든 휴대폰 악세사리를 선물로 주기도 하였다.
간판 덕분에 사실 손님들이 킹콩쪽으로 쏠리기 시작했다. 당연히 매출액이 늘어
나 홍콩을 위협하고 있었다. 홍콩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대로 앉아있을 수
만은 없었다. 뭔가를 보여줘야 하는 데…. 마땅히 떠오르는 묘안이 없었다. 홍콩은
몇날며칠 머리를 쥐어짰다. 장사 해먹기가 이렇게 힘들어서야 원.
며칠이 지나 하루 일을 마치고 새벽 2시가 지나 피로를 풀겸 소주를 한잔 하는
순간, 갑자기 혜성같이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그래, 그거야. 왜 그 생각을 못했을까?
홍콩쪽에서도 이튿날부터 비밀리에 작업에 들어갔다. 기존의 간판 앞에 천막을
두르고 작업자 이외엔 출입을 통제하였다.
하루종일 걸려 작업을 하고 해가 질 무렵 일을 마무리했다. 천막을 걷는 순간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긴장을 하고 바라보았다.
석양의 노을을 받으면서 나타난 것은 옛날의 유명한 영화배우였던 박노식의
‘홍콩의 왼손잡이’였다. 마도로스 복장을 하고 담배 파이프를 입에 물고 해양선 뱃
머리에서 바다를 향해 서있는 모습은 정말 멋진 광경이었다. 그리고 연이어 미리
준비한 듯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 차라리 만나지나 않았더라면
행복이 무엇인지 몰랐을 것을
야속히 나를 두고 떠나갈바엔
어이해 내 마음에 그리움을 남겨서
밤마다 울게 하나 왼손잡이 사나이
- 어차피 맺지못할 사랑이라면
순정을 주고받지 않았을 것을
아무리 뉘우쳐도 잊으려해도
지울수 없는 얼굴 잊지못할 그 얼굴
밤마다 불러보는 왼손잡이 사나이
1965년에 제작된 ‘홍콩의 왼손잡이’ 영화주제가는 이미자가 불러 크게 히트한
노래이다. 이 노래가 흘러나오자 길가던 사람들도 잠시 발길을 멈추고 경청하는
듯 했다. 특히 중년배의 사람들이 이 음악에 빠져 스스로 홍콩식당 문을 열었다.
물결이 출렁이듯 손님들이 이제는 홍콩쪽으로 몰렸다.
킹콩쪽에서는 그에 대항하기 위해 킹콩이 가슴을 두드리며 포효하는 소리를 녹
음해서 내보냈다. 손님들은 즐거운 고민에 휩싸였다.
양 식당의 음식 맛과 친절도와 서비스는 엇비슷하였기 때문에 음식 외적인 면
이 손님의 선택을 좌우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서 두 식당의 이름이 대외적으로 알려지게 되어 타지에서 일부러 찾
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요즘 인터넷의 발달로 식당 이름과 사진 등이 순식간에 퍼져나간 때문이었다.
- 킹콩과 홍콩의 왼손잡이의 대결. 매일 끝없는 혈투를 벌이다.
- 짜장면의 깊고 그윽한 맛, K시 역옆에 오면 맛볼수 있습니다.
- 먹을거리, 볼거리 다 채워드립니다. 와 보시면 알아요.
소제목을 띄워놓고, 자신이 식당을 찾게 된 경위, 먹어본 소감, 식당 외적인 분
위기 등을 나름대로 적어놓고 있었다.
서울의 모 TV방송사에서 <세상에는 별일이>라는 프로그램 제작 관계자가 찾
은 것은 어스름한 저녁 해질녘이었다. 방송사에서는 양쪽에 다 사전에 전화를 걸
어 취재를 요청하였고, 양 식당은 당연히 환영해마지 않았다.
취재 소문이 이미 퍼져 구경하러 나온 사람, 얼굴이라도 화면에 한번 비쳐볼량
으로 식당에서 미리 대기하고 앉은 사람, 멋모르고 입술에 시커먼 짜장을 묻혀가
며 먹는 사람, 그 외 지나가다가 기웃거리는 사람들로 식당 안팎을 채우고 있었다.
방송사에서 찍은 내용은, 식당 간판, 노래, 북적거리는 식당안 분위기, 짜장면
먹는 모습과 표정, 손님이 망설이다 선택한 식당문을 들어가는 장면, 양식당 주인
의 각오와 다짐, 그리고 앞으로 다같이 잘해 보자는 외침 등이었다.
며칠뒤 방송이 나가자 모두들 환호성을 올렸다.
양 식당은 방송취재 기념 현수막과 대형사진을 만들어 내외벽에 걸어놓았다.
방송의 위력은 대단하였다. 방송이 나간 후로, 이튿날부터 관광버스까지 집앞
에 당도하여 단체손님까지 오게 되었다. 도로 교통에 지장이 가자 경찰까지 배치
되어 교통정리를 할 정도였다.
짜장면 싸움으로 시작된 두 식당의 치열한 경쟁이 관광명소로 탈바꿈하고 있었
다. 시에서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두 식당을 모범식당으로 지정하고 식당 주변의
환경개선, 기타 이벤트사업을 발굴하여 지속적으로 지원하기로 결정하였다.
오늘도 그 곳에 가면 보고 싶은 광경이 연출되고 있다.
킹콩이 가슴을 두드리며 짜장면을 맛있게 먹고 입술을 닦고 있는 모습과, 홍콩
의 왼손잡이가 이미자의 노래를 배경으로 마로로스 복장에 파이프를 입에 물고 바
다의 수평선을 바라보는 모습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