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부 아저씨는 경찰에서 훈방조치 되었다. 회사도 청소부 아저씨에게 아무런 질책이나 경고를 하지 않았다. 현균은 아저씨의 일로 다시 혼란스러워졌다.
“내가 골프장에서 헛된 희망을 기대하고 있는 것일까?”
주점에 앉은 그는 대작을 해주고 있는 연지에게 하소연 하듯이 말했다.
“아저씨에게 아무 잘못도 없었는데 고객이 시비를 벌인 것에 마음이 많이 상했구나.”
“너는 나보다 캐디 경험이 많으니까 조언 부탁해.”
그렇지만 연지는 그에게 자신이 보아온 현실을 사실대로 말해줄 수 없었다. 늘 입버릇처럼 골프장을 정의롭고 평등한 곳으로 말하고 있는 그가 받을 충격이 너무나 뻔했다.
“골프장이 워낙 다양한 사람들이 오는 곳이야. 그리고 사람은 같은 현상을 보더라도 자신의 현실을 투영해서 받아들이지. 우리 아빠는 식당에서 일해. 그런데 같은 쌀로 같은 기계를 이용해서 같은 사람이 밥을 해서 손님들에게 내주는데도 사람들은 밥이 잘됐느니 잘못됐느니, 깔깔하다느니 질다느니 푸념을 한 대. 어떤 손님이 지난밤에 술을 마셨거나 숙면을 못했다고 하자. 그 사람의 입맛이 전날과 같겠어? 그런 사람도 자신의 입맛이 달라진 걸 인정하지 않고 밥맛을 탓한대. 쌀을 바꿨냐는 둥 밥솥을 바꿔야 한다는 둥.”
“아저씨에게 갑질을 한 고객도 그럴지 모르니 마음에 담아 두지마라는 뜻이네.”
“모든 사람들이 같은 생각으로 살지는 않으니까. 그리고 같은 사람일지라도 처한 상황에 따라 생각도 행동도 다르게 나오는 거 잘 알잖아.”
“너 오늘 멋있어 보인다.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서 늘 그렇게 대범한 거야?”
“여자가 대범하다는 말 칭찬으로 안 들린다.”
조금 서운한 듯 그녀가 말했다. 사실 연지는 그가 너무 동료로만 대하는 것이 마음에 안 들었다. 너무 들이대도 불편하지만, 마치 자신에게 매력이 없다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너도 초식남이냐.”
“갑자기 무슨 말이야.”
“네가 나를 너무 편하게 생각하고 전혀 여자로 안 봐서 서운해서 그런다. 내가 여자로서 그렇게 무미건조한가?”
“너 매력 있어. 다만, 내가 세상을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는 게 문제지.”
“그럼 오늘 너 초식남인지 확인 해볼까?”
“같이 자자는 말이냐?”
당황한 그가 말했다. 그런 그가 오히려 그녀를 자극했다.
“못할 것도 없지.”
“내가 보기에는 너도 그런 거 별로 관심 없어 보이는데.”
“그렇기는 하지만 네가 달아나니 덤비고 싶은 생각이 든다.”
“괜히 쓸데없는 생각 말고 술이나 마셔라.”
두 사람은 피식 웃으며 잔을 부딪쳤다.
다시 만나서 식사를 하자는 그에게 그러자고 약속을 하고 집에 들어온 그녀는 잠들어 있는 딸 민주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너랑 같이 행복하게 살려면 엄마가 일을 해야 해.”
“엄마, 걱정 마. 나 혼자서도 잘할 수 있어.”
대견하게 말하는 딸이 오히려 그녀를 슬프게 했다. 이혼을 하면서 양육비를 보내기로 약속했던 전 남편은 약속을 6개월만 지켰다. 돈이 없어서 못 보낸다는 대답에 그녀는 욕조차 나오지 않았다.
‘원래 무능하고 자신밖에 모르는 인간이었지. 그걸 구제할 수 있다고, 프로 골퍼로 만들어 낼 거라고 자신하던 내가 내 발등을 찍은 거야.’
구제불능인 사람인 것을 엄마가 그렇게 말릴 때 알아들었어야 했다. 의외로 많은 여자들이 모성 본능으로 남자를 만나지만, 그녀는 자신은 그들과 다르다고 자신했었다. 돌이켜보면 자신이야말로 대표적인 케이스에 속했다.
엄마와 형제들은 그녀의 형편을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아버지가 물려준 재산이 있어 넉넉하게 지내는 엄마나 의사인 오빠나 시집 잘 간 언니나 그들은 하나같이 그녀를 외면했다.
“우리가 그렇게 말릴 때는 지 혼자 잘났다고 고집 부리고 결혼 했잖아. 너는 고생 좀 해봐야 정신을 차려.”
“알았어, 엄마. 그리고 언니나 오빠도 나 혼자 죽이든 밥이든 할 테니 잔소리 집어 치워.”
그렇게 가족들과는 담을 쌓았다. 그 분풀이를 하느라 그녀는 더 엇나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일도 일을 나가야 하지.’
그녀는 서둘러 잠자리에 들었다.
“마사장! 결과를 보고해야지.”
아침부터 마성의 전화가 불이 났다.
“전화로는 다 이야기 못해. 내가 점심 살 테니 모두 모여.”
행복하게 단잠을 자고 난 그는 아침이 몹시 행복했다. 저절로 콧노래마저 나오고 베란다에 있는 화초들마저 더욱 사랑스러웠다. 더구나 다시 만날 약속까지 한 생각이 나자 그는 양 주먹을 쥐고 번갈아가며 양 쪽 가슴을 두드렸다. 그러고도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희열을 주체하기 힘들어 그는 거실에 있는 싸이클에 올라 앉아 숨이 턱에 닿을 때까지 페달을 밟아댔다.
거실 바닥에 벌렁 드러누운 그는 어제 밤에 있었던 일을 다시 되살려 보았다.
‘꿈같은 일이야.’
너무 생생해서 오히려 현실감이 떨어지자 그는 잠시 살짝 불안한 마음도 들었다. 그렇지만 온 몸에 남아 있는 그녀의 감촉이 되살아나자 절로 웃음이 나왔다.
‘아직 정애씨의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하지만 어떠한 일이 있어도 나는 그녀를 내 여자로 만든다. 마성 파이팅!’
간단한 아침을 마친 그는 주말농장 사장들과 약속한 장소로 향했다.
“다들 벌써 나와 있었네.”
“그럼! 궁금해서 집에 있을 수가 있어야지.”
“마사장 얼굴이 핼쓱해. 많이 시달린 눈치야.”
다들 한마디씩 건넸다. 그렇지만 싱글벙글 하는 마성이 얼굴이 그들의 궁금증에 일찌감치 대답을 보내고 있었다.
“그만 웃고 말을 좀 하세요.”
그들의 재촉에 그는 다시 한 번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원 사람! 원래 이렇게 푼수 같은 면이 있었나.”
그들이 보기에 마성은 완벽한 인간이었다. 인문계로 학업을 마친 그가 사이버상에서 주말농장을 구현한 것도 놀라웠지만, 사업수완 역시 감탄을 금할 수 없이 완벽했다.
“마사장의 제안은 주말농장 사업주들에게는 희망사항을 해결해주는 완벽한 것이었어.”
나중에 친밀해지자 그들이 고백한 말이었다. 그는 수도권의 농장주들에게 분양받은 고객들이 자주 농장을 찾도록 함과 동시에 부대매출을 올릴 기회를 창출해 주었다. 또한 분양을 받고 작물 재배를 중도에 게으르게 하더라도 농장주들이 그들의 작물을 관리해 주면 마성의 회사에서 관리비를 지불해 주고 있었다. 그야말로 농장주들은 꿩 먹고 알 먹고였다.
“완벽한 밤이었어.”
그의 서두에 그들은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다 여러분들의 도움 덕입니다.”
그들은 클럽하우스에서 짧은 시간에 작전을 세웠다. 전반 홀에 저질 골퍼로 행동하며 그녀를 곤경에 빠트린 후, 마사장의 데이트 요청을 그녀가 승낙하면 후반 홀에는 완벽하게 완벽한 매너 골퍼로 변신하는 것이었다.
“나는 어제 밤에 나의 로망을 실현했고 완벽하게 내가 찾던 대상임을 확인했네. 그리고 다음 저녁 약속도 받았고,”
“퍼터 하나가 아니라 골프채 세트가 망가졌어도 하나도 아깝지 않았겠어.”
“그보다 더 한 것도 전혀 아깝지 않지.”
“그런데 마사장 정말로 대단해. 어떻게 그 여자를 한눈에 파악했지. 우리는 까막눈이야.”
“내 간절함이 통한 겁니다!”
“인정하네. 오늘 점심은 마사장이 크게 쏘시게.”
네 사람은 유쾌하게 웃으며 축하를 주고받았다.
두 사람은 일주일 넘게 시간이 흐른 뒤에 다시 만났다. 서로의 마음을 정리하고 확인할 시간이 필요하기도 했지만 정애가 하우스캐디로 일하고 있어 주중에 쉬어야 하는 탓도 있었다. 그렇지만 두 사람은 하루에도 열 번 넘게 톡을 주고받았다. 그러는 과정에 서로에 대한 정보와 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민지도 같이 만났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운 마음에 마성이 말했다.
“저도 아직 적응이 덜됐어요. 다음에 데리고 나올게요.”
“갑작스럽게 내가 나타나면 애가 어리둥절할 수도 있겠지요. 정애씨 말이 맞아요. 다음에 보면 되지요.”
둘은 한결 다정하고 가까워진 모습이었다. 하룻밤은 그렇게 의미가 대단한 것이다. 더구나 그동안 서로는 마음을 확인해 두었었다.
“낮에 만나니 또 새롭네요.”
“점심 먹고 어디 드라이브라도 다녀올까요?”
“그렇게 해요.”
“강화도 멀지 않고 낮에는 차도 막히지 않아요. 너무 멀지 않죠.”
“민지랑 저녁 먹을 시간까지만 집에 들어가면 전 괜찮아요.”
포근한 미소가 두 사람 사이를 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