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마는 가난한 시골에서 태어났다. 많은 형제들을 뒷바라지 하시던 아버지는 그가 학업을 마치기도 전에 큰 병을 얻었고 제대로 된 치료 한 번을 받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는 학업을 마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에 사로잡혔다.
“엄마, 투병하시던 아버지가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심각한 얼굴로 불쑥 말하는 아들을 엄마는 웬 뜬금없는 말인가 싶어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병으로 죽어 가시면서 당신이 교통사고라고 당하기를 바라셨다며. 보상을 받아 남은 자식들 편하게 살아가라고. 자식들은 당신의 병을 치료받게 해줄 능력이 없고, 집안에 돈도 없으니 뒤늦게 신에게 매달리느라 안 나가던 교회까지 나가 애타게 하느님을 찾기만 하셨어. 살아보려고, 살려달라고.”
“느이 아버지는 평생 고생만 죽도록 하시다 죽었지.”
원마는 결심했다.
“나는 돈을 많이 벌 거야.”
그 가진 것 하나 없던 젊은이에게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다.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IT 산업이 우후죽순 발전하고 수많은 젊은이들은 그 신천지를 향해 내달았다. 그도 그 중에 하나였다.
“나는 사이버상에서 작물을 재배하는 특허를 출원했어요.”
호텔 로비로 자리를 옮긴 뒤 그는 말을 시작했다. 그는 힘겨웠던 사업 초기 시절을 이겨낸 이야기와 갑자기 회원들이 폭증하고 입소문이 나면서 수도권에 있는 수천 평의 주말농장을 가진 농장주들이 사업에 합류한 이야기를 했다.
“아까 같이 골프를 친 사람들이 제가 사업 초기에 도움을 많이 받은 농장주들입니다.”
“회원들이 많은가 봐요.”
“유료회원만 만 명이 넘죠.”
“연회비를 보통 얼마나 받아요.”
“보통 20만원씩 내요.”
정애는 속으로 계산을 해봤다.
“그럼 일 년에 2억씩 들어오네요.”
“아니죠. 20억입니다.”
“그렇게나 많이요? 연회비만 그 정도면 다른 매출까지 합치면.”
“남들이 들으면 정애씨가 국세청 직원이나 회계사인줄 알겠어요.”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진지하게 물어봤네요.”
“아닙니다. 저에 대한 관심이겠지요. 초기의 어려움을 견디고 회사는 이제는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어요. 그 덕에 이렇게 정애씨도 알게 됐잖아요.”
“특히 요즘에는 여가 시간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사업이 점점 번창하시겠어요.”
“그렇게 되기를 기원해주세요. 그래야 제가 정애씨에게 자주 식사를 대접 할 수 있거든요.”
“그럼 꼭 그렇게 돼야 하겠는데요.”
두 사람은 마주보며 유쾌한 웃음을 나눴다.
“정애씨 오늘밤을 같이 보내고 싶습니다.”
얼굴에 미소가 채 가시지도 않은 채 그가 조심스럽게, 그러나 간곡하게 말했다.
“저도 오늘밤은 외롭게 혼자 있고 싶지 않아요.”
그녀도 얼굴에 미소를 남긴 채 말했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두 사람은 뜨겁고 진한 키스를 나눴다. 길게 이어진 애무로 이미 몸과 마음은 흥건해졌다. 원마는 조급해지는 마음을 억누르려 애쓰고 있었다.
‘이번에는 정말 확실한 것 같아. 아니 확실했으면 좋겠어.’
분명히 불과 몇 분 뒤에는 알 수 있을 일이었다. 하지만 그동안의 계속된 실패가 불안감을 자꾸 키웠다.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까지 왔고 혹여 이번에도 실패한다 해도, 오늘 밤은 맘껏 즐겨보는 것이 상책이라며 그는 애써 자신을 다독였다.
정애는 이 남자의 냄새가 좋았다. 그녀에게는 이것이 가장 중요했다. 그다음에 이어지는 섹스는 테크닉만 좋다면 대부분의 약점들은 상쇄된다고 믿었다.
‘더구나 이 사람은 재력이 뒷받침 된다는 거지.’
마음이 편안해지자 그들은 활활 타올랐다. 두 사람은 이미 클럽하우스에서 몸을 씻고 난 뒤였다. 몸을 휘감아 오며 지펴지는 불길에 이끌리기만 하면 되었다.
방 가운데 선채로 두 사람은 서로를 탐닉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원마는 그녀의 귓불을 살며시 물고 혀로 살살 핥았다. 그녀의 다리가 잠시 접혔다. 흥분으로 인해 힘이 풀린 것이다. 그는 그녀가 신음을 자제하려고 애쓰는 것을 알았다. 그렇지만 다리의 힘이 풀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던 것이다. 왼팔을 등으로 돌려 그녀를 힘주어 안은 그는 오른 팔로 그녀의 왼 가슴을 애무했다. 입술과 귀를 번갈아 가며 애무를 받고, 가슴의 유두가 공략 당하자 그녀는 드디어 신음을 내뱉고 말았다. 이미 그녀의 눈동자는 초점을 잃고 있었다.
“아, 나 무너지는 거 같아. 아니 허공으로 떠오르는 거 같아.”
“캐디오빠 조금 더 서둘러줘요.”
현균은 캐디 일을 하게 되면서 여자들의 생리 현상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다. 그녀들은 생리적인 현상을 참는 일에 몹시 서툴렀다. 5번 홀로 향하는 카트 안에서 여자 고객이 신음 소리를 흘리고 있었다.
“얘 캐디오빠 당황한다. 소리가 너무 야하잖아.”
카트 안이 네 여자들의 박장대소로 인해 시끌시끌해졌다. 최대한 가속 페달을 밟으며 그는 슬그머니 웃음이 떠올랐다. 그녀들이 일부러 자신을 놀리고 있었지만 그는 짐짓 모른 체 했다.
“그늘집에 다 왔습니다.”
후다닥 뛰어가는 고객을 바라보며 다른 세명의 여자들은 또 까르르 웃어댔다. 현균도 남자 화장실로 향했다. 그런데 갑자기 여자 화장실에서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악! 당신 뭐야. 변태야?”
그와 동시에 여자 화장실에서 남자 청소원이 밖으로 나왔다.
“아저씨 안녕하세요!”
”아! 현균씨.“
“무슨 일이세요.”
인사치례 겸 묻고 있었지만 그는 이미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상상이 되었다. 잠시 후 생리현상을 해결한 여자 골퍼가 밖으로 나왔다.
“얘들아, 이 남자 빨리 경찰에 신고해. 변태 현행범이야. 화장실 옆 칸에 숨어서 내게 성폭력을 저질렀어,”
“고객님, 이분은 그늘집을 청소하시는 분이세요. 복장과 가지고 있는 도구들을 보세요.”
“이 사람이 청소하는 체하면서 화장실 옆 칸에서 나를 훔쳐봤다고. 현균씨는 내가 지금 거짓말을 하며 한갓 청소부에게 트집을 잡고 있다는 거야?”
“그런 뜻은 아닙니다.”
현균은 당황해서 말꼬리를 흐렸다.
“얘, 화 좀 누그러트려봐. 정말 청소부 맞잖아.”
“너희들이 안하면 그럼 내가 신고하지 뭐.”
동료들이 서둘러 그녀를 말렸지만 막무가내였다.
“경찰이죠. 여기 골프장인데 성 추행범을 잡았어요. 빨리 출동해주세요.”
곧이어 도착한 경찰은 청소부에게 수갑을 채운 뒤 경찰차에 태웠다.
“신고한 분도 차에 타세요. 그리고 일행 분들도 파출소로 오세요. 참고인 진술이 필요합니다.”
“이게 뭐니. 골프도 망치고.”
“니들은 지금 이 마당에 골프가 중요해. 내가 성추행을 당했다고.”
아직도 분이 덜 풀린 듯 그녀는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출동한 경찰들도 기가 막힌다는 듯이 웃음기 있는 얼굴로 현균을 바라보고 출발했다.
현균은 얼른 경기 팀에 조금 전 있었던 일을 보고하고, 홀 아웃 한다고 말했다.
“알았어. 클럽하우스로 와서 고객 불만보고서 작성해.”
운수 사나운 날이었다. 회사는 매출이 사라졌고 그는 수입이 사라졌다. 이 마당에 캐디피를 달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그를 당황스럽게 만드는 것은 오늘 돈을 벌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나는 골프장이 세상에서 가장 평등하고 기본이 살아있어 룰이 존중되는 곳이라고 믿고 있다. 그런데 왜 이런 일이 자꾸 생기고 있을까.’
그는 청소 아저씨가 손님을 훔쳐보지 않았다고 믿었다. 그렇다면 그 여자는 왜 그런 억지를 부리는 것일까. 혼란스러운 그는 숙소로 향했다. 어디든 나가서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