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으로 와서 머무르다 인연이 될라 했는지 덴버에 머물러 살게 된지 벌써 8년째가 되었다.
뉴욕,뉴저지 대도시에 살다가 덴버에 정착하니 솔직히 심심하다고 할까? 특히 바둑을 맘껏 두지
못하는게 매우 아쉬웠다.
그런데 마켓게시판에 게시된 바둑동우회모임을 보았을 때 그 반가움이란것이 말로 다 표현을
못할 지경이었다. 비록 매주 토요일 오후 짧은 시간이지만 바둑을 둘 수 있다는 기쁨을 누릴수 있
어서 너무나 좋았다.
박 선생을 처음 만난것이 그곳이었다. 지금 오로에서 활동하시는 풍진객 사범님도 그때 처음
뵈었다. 소수였지만 풍진객 사범님의 심도있는 강의는 매우 인상깊었다. 한인들 뿐 아니라 기력
은 약하지만 열성적인 파란눈의 미국인들의 모습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어딘가 어색하게 어
울리지 못하시는 연세가 어느정도 되신 박선생도 그곳에서 보았다. 그는 대뜸 내게 얼마나 기력이
되는지 바둑을 한번 두어보자 하신다.
" 2급정도 둡니다" "그러면 4점을 놓아봐" 헉! 미국땅에서 날 4점을 접겠다고 할 사람이 있지 않
을텐데.... 내가 2급이라고 말은 했지만 내심 1급을 놓고 싶은 사람인데 날 4점을 접겠다고? 설마
이 촌구석에 초고수가 숨어있었단 말인가? 설마..... 안 내키는 치수였지만 4점을 놓고 바둑을
두었다.
몇수 두어감에 따라 영 안되는 치수임을 감지 할 수 있었다. 처음 나타난 젊은이에게 멋지게 한
수 가르쳐 주고자 했던 의도와는 달리 바둑이 영 이상하게 되어 가는 것을 보고 울그락불그락 박선
생의 표정은 일그려졌다. 드디어 무리에 무리를 거듭하던 백돌이 모조리 몰살당하는 지경에 도달
하자
" 에끼 이사람아! 치수를 이렇게 속이면 되겠어? 젊은 사람이 맘을 똑바로 써야해"
어이쿠 이게 무슨 시추에이션인가 싶었다. 잠시후 알게 되었지만 이곳 덴버의 급수
는 American Go Association의 급수제에 따른 것이기때문에 기원급수하고는 상당한 차이가 있음
을 몰랐던 것이었다. 박선생은 AGA의 급수에 의하면 4단을 인정받고 있었기 떄문에 2급은 4점
이상을 깔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나의 정치수를 찾기까지는 1년이상을 두어나가야 했다.
그날 풍진객사범님과의 대국에서 4점을 놓고 진것은 잊을 수가 없었다. 이후 선치수로 올라
간 것은 솔직히 뭐라할까 실력이 그만큼 늘은 것이 아니라 텃세에 눌린 탓이었다.
아무튼 나는 바로 AGA 급수로 6단에 올라갔고 박선생은 내게 2점을 깔고 두어야 했다.
박선생은 약간 괘팍한 성격때문에 그 모임에서 따돌림은 받는 처지였다. 그래도 순순히
외톨이 박선생을 만날때마다 깍듯이 대해서인지 나를 좋게 봐준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어느때부
턴가 인사치례로 들었지만 저녁이나 한번 같이 먹자고 볼 때마다 얘기를 하곤 했다.
그러던 어느날 오랜만에 그 모임에 나타난 내게 " 미스터유 도대체 왜 그래? 저녁한번 내가 산
다는데 그렇게 시간이 없어?" 그렇다. 몇달동안을 볼때마다 그 소리를 들었는데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데 계속 거절하는 것도 예의가 아닌것 같았다.
" 좋습니다. 어디로 갈까요?" 하고 따라 나셨다. 당시 하숙집에 오늘 저녁먹고 좀 늦을 거라 전
화를 하고 근처의 일식집으로 갔다. 들어가 자리에 앉자 " 미스터유, 우동 좋아해? 이집 우동 괜
찮게 해. " "예? 예.예...." 우물쭈물 그러고 있는데 바로 우동 2그릇을 시켜버린다.
바둑이 어쩌고 저쩌고 우동을 먹는동안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동을 먹고는 일어선다.
그러고는"저녁한번 먹는거지 왜 그렇게 빼긴 빼? 젊은 사람이" 그러고는 헤어졌다.
고개를 갸우뚱 ??? 몇달동안을 볼때마다 저녁을 먹자고 먹자고 해서 먹었는데 왜 이리 석연치
가 않은지.....
출장이 끝나 뉴저지로 돌아가 결혼도 하고 다시 덴버로 이사를 온후 우연히 박선생을 마켓에서
만났다. 그 사이에 토요바둑모임이 흐지부지해지고 박선생은 은퇴를 하고나니 소일거리도 없고
바둑두는 낙도 없어지니 나를 만나니 바둑두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던 것이다. 하루가 멀다하고 바
둑한번 두자고 전화가 온다.
먹고사는 일이 급한지라 도저히 짬을 낼 수가 없다고 거절하였으나 매번 전화올 때마다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 박선생이 자칭 별장이라고 하는 정부 노인아파트에 가서 바둑을 두자하여 배부른
장금엄마를 데리고 바둑을 두러갔다. " 짜장면 내기야 . 열심히 둬."
2 대 1, 예의상 1판을 져드리고 내기는 이겼다.
내기와 관계없이 짜장면값을 내가 내고자 했으나 극구 박선생이 내겠다고 고집한다.
자금성... 중국집에 들어가 음식들을 시켰다. 짬뽕 2개 간짜장 곱배기. 배가 남산만큼 부른
장금엄마는 뭐가 그리 댕기는지 간짜장곱배기를 먹겠다고 한다. 박선생의 표정이 약간 일그러지
는 것을 왜 그때 눈치를 채지 못했는지. 음식을 다 먹고 계산서를 받아들더니 매우 불쾌한 표정을
짓는다. 분위기가 좀 그래서 "저어~ 돈이 많이 나왔어요? 제가 계산을 할게요."
"아냐. 내가 계산한다고. 한다고 했쟎아!" ........
식당을 나와 담배를 태우면서도 박선생은 화가 많이 나 있었다.
"사람이 그러면 못써! 곱배기는 왜 시켜 먹어 가지고"
곱배기만 먹지 않았어도 이렇게 야단 맞지 않았을텐데....
(짜장면값이 좀 비싸긴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