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는 온가족(어머니와 나 , 애, 애엄마)을 대동하고 라스베가스를 다녀 왔다. 미 국경일인 4th July를 피해 출발하였는데 우리가 라스베가스에 있는 동안 라스베가스의 날씨는 줄곧 기록적인 살인 더위(115F)였다. 차의 에어콘을 가장 크게 틀어나도 뜨거운 바람만 나오는 느낌이었다.
사실 이번 여행은 라스베가스에 최근 많은 한인들이 유입되고 있다는 얘기를 들어 살기가 어떤가하고 살펴보는게 주목적이었다. 그러나 도착해 차에서 내리는 순간 그 계획은 전면 취소되었다. 숨이 턱 막혀오는 뜨거운 열을 우리는 견뎌낼 자신이 없었다.
이왕 라스베가스에 온 김에 우리는 조금만 놀아 볼 요량으로 노름을 하게 되었는데 역시나 적지 않게 작살내고 말았다. 애가 무슨 죄가 있냐만은 어머니와 애엄마가 번갈아 가며 애를 포대기에 업고 번갈아 가며 머쉰을 두둘겨 댔다. 2박 3일동안 MGM(라스베가스에서 제일 큰 카지노)에서 애를 포대기로 업고 이리저리 머쉰주위를 돌며 기웃거리는 모습이라.... 머쉰은 아무리 아무리 먹어도 먹어도 배고프다고 하니 넣고 또 넣고 계속 집어다 넣는다. 이따금씩 조그마한 걸 토해내면 신이 나서 좋아하지만 잠시뿐이다.
라스베가스는 사막의 한 중앙에 그것도 주위에 아무것도 없는 외딴 도시이다. 그런 도시를 세계적인 도시로 만들어 주는 것이 카지노 노름판이다. 노름꾼은 물론 관광객들뿐 아니라 비지니스차 방문한 사람들, 심지어 종교인들까지 라스베가스에 와서 노름에 손 안대는 이가 드믈 정도다. 목사님들 모임에 하필이면 라스베가스냐고요 . 그 사람들로 인해 라스베가스는 살이 찌고 지금도 대형 카지노들이 계속 들어 서고 있다.
내가 라스베가스에 와 본게 10번 정도 되는 것같다. 오다 가다 들린게 그 정도된다.
한번은 장금엄마를 만나 얼마 안되어 라스베가스에 순전 노름의 목적으로 갈 때가 있었다. 나와 장금엄마, 그리고 '턱' 이렇게 우리 3명은 신이나서 라스베가스로 차를 끌고 출발했다. 오후 늦게 출발하였는데 로키산맥의 두개의 높은 고개를 넘고 이윽고 그 유명한 스키장들이 즐비한 길을 따라 지나가다보면 또 꼬불꼬불 그랜드 캐논으로 흘러들어간다는 콜로라도 강을 따라 가게 된다. 콜로라도를 벗어나는데만 5시간 가까이 걸리는데 유타주에 들어서고는 턱이 운전을 하였다.
턱이 길어 턱이라고 부른게 아니라 턱이 없어 그렇게 불렀다. 턱은 통신일을 하면서 같이 돌아다녔는데 나보다 2살이 많았지만 말을 트면서 친구처럼 지내던 사이였다. 그와는 애증이 많았다. 이전에 약간의 오해때문에 우리는 가까운 곳에 살면서도 서로 연락을 끊은채 보지 않고 지내던 사이였는데 그가 조그마한 비지니스를 하면서 도움을 청해 기꺼이 도와 주면서 다시 만나고 어울리게 되었던 것이다.
그와 내가 어울리다보면 종종 사고가 난다. 오랜만에 만나 반갑다고 술을 마구 퍼마신게 화근이 되어 턱이 음주운전에 걸리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콜로라도에서 운전을 할 수 없게 되었는데 콜로라도를 벗어나자마자 자기가 운전을 하겠다고 하여 운전대를 넘겨 준것이다. 그가 운전하고 10분이 지났을까? 퍽 하는 불빛이 터지더니 이윽고 번쩍번쩍 뒤에서 폴리스가 따라붙는다.
스피드위반이다. 워닝에 끝났지만 채 10분만에 스피드티켓을 끊을 뻔했다.
그러나 우린 다시 조잘대면서 깔깔대면서 웃고 떠들고 라스베가스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밤이 깊고 몹시도 어두운 길을 달리고 있었다. 나는 뒷자리에 앉아 떠들고 있었는데 갑자기 바로 앞쪽에 뭔가 "떡"하고 서 있는게 아닌가 ? 너무나 갑작스러워서 단지 앗! 하는 외마디 소리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냥 박았다. 달리 할 방법이 없었다. 이게 사고구나! 차가 어찌 되는 건가? 아니, 죽는게 아닌가? 크게 다치는 게 아닌가?
짧은 순간에 이러한 생각들이 떠올랐다.
차는 비실비실 길 옆쪽으로 멈춰 섰다.
모두를 살펴보았다. 얼핏 보기에 다들 무사했다. 운전석앞에 앞 유리가 깊이 들어 와 있었지만 다행히 턱도 장금엄마도 나도 크게 다친데가 없었다. 본네트위로 뜨거운 김이 치 솟았고 연기가 마구 올라 왔다.
나는 사고직전 표정없이 나를 보던 엘크의 눈을 보았다.
Elk다. 사슴종류중 가장 크다는 아메리카 엘크. 나는 보았다 말만한 엘크. 대개 하이웨이에서 엘크와 부딪히면 중상내지 사망이라 한다.
내 차는 작살이 났다. 당시에 가장 튼튼하다던 그랜드체로키. 내가 지금껏 타고 다녔던 차중에서 가장 애착이 갔던 나의 애마는 사고의 순간에도 우리를 지켜주었다.
사고지점은 정말로 외진 곳이다. 휴대폰은 오래전부터 통신불능이다. 이따금씩 대형 트레일러만 씽하니 지나가고 우리를 구조해 줄 무언가에 연락할 방법이 없었다. 몇시간의 노력끝에 지나가는 차를 세울 수 있었는데 그조차 한명만이 겨우 누워서 갈 수 있는 공간밖에 없어 턱이 30마일 밖의 서비스 시설에 가서 토잉카를 끌고 와 차와 우리는 구조 되었다.
다음날 사고 보고서를 쓰기 위해 경찰이 왔다. 그 경찰은 우리를 기억했다. 자기가 어제 우리 차를 세웠다고...? ? ? 스피드 단속에 걸린 곳과 이곳은 자그마치 3시간 거리. 나중 안 일이지만 유타주 하이웨이를 관할하는 Patrol이 8명밖에 안된다고 하니 어제 그 경찰이 또 이곳에 온건 그리 우연이 아니다.
우리는 기념으로 경찰관과 사진을 찍었다. 차는 폐차되고 턱은 바디에 껴 있던 엘크의 살점과 가죽을 떼어내며 간직하겠다고 한다. 일단 사고처리는 다 되었다.
졸지에 차는 없어지고 장금엄마의 엄지발가락의 발톱이 벗겨지는 중상(?)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다시 라스베가스를 향해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