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근래 ‘친구가 뭐지’라고 계속 되내어졌다. 아버지 친구분들이 내게 보여주신 말씀과 모습이 머릿속에 맴돌아서이다.

두어 달 전 부친상(父親喪)에 7～8명의 아버지 고등학교 동기분들이 오셨다. 조금 후 접객실에서 인사를 드리며 동석했는데 그 중 한 분이 내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자네에게 야속하다. 세상에 아버지 친구라고는 우리밖에 없는데, 병원 있을 때나 상을 당해도 우리에게 어찌 연락 한 번 안해 줬느냐.”

적잖이 놀랐고 동시에 무척이나 미안했다. 그분들과는 아무 연결고리가 없었고 연락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아니, 사실을 말하자면 그 생각을 전혀 못한 건 아니었다. 병원에 계실 때 아버지 책상을 챙겨보던 중 친구분들의 연락처를 보았다. 얼핏 연락드려야 하나 했지만 별 고민 없이 ‘에이… 하면 뭐하겠어’하며 가벼이 넘어갔다. 세금 문제로 상담 차 한 번 뵌 분도 있었지만 혹여나 전화 오면 ‘그때 말하면 되지’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다. 그러다 별세하셨으니 더더군다나 그분들을 만날 일조차 없으리라 여겨 연락드린다는 건 생각 밖의 일이었다.

그런데 어찌 알아 오셨고 더더욱 그런 말씀까지 듣게 되니 무척이나 죄스럽고 송구스러웠다. 생각이 짧았다.

발인 날, ‘가는 친구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보겠다’며 한 분이 또 오셨다. 죄책감과 미안함, 그리고 고마움이 진하게 느껴졌다.

어느 정도 날이 지나서 그분들을 떠올렸다. 당연히 ‘친구’라는 존재까지 자연스레 연결되었다. 친구….

그분들은 ‘세상에 친구라고는 우리밖에 없다’라고 하셨다. 한 사람의 부재(不在)에 그나마 잠시일망정 아쉽고 씁쓸하며 잘 가시라 인사할 이들이 친구밖에 더 있겠느냐는 말씀 같았다.

고등학생 청춘들이 세상에 나아 가 나름대로의 삶을 영위하셨을 게다. 세파에 지친 힘든 시기도, 함께 축하해서 마땅한 즐거운 순간도 있었을 거다. 위로와 기쁨을 늘 함께 할 수야 없었겠지만, 마음이라도 같이 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게 조금은 버팀목이 되지 않았을까. 나이 들어 세상 버려도 한 인생의 죽음을 진심으로 애도하는 이가 또 ‘친구’라는 얘기 아니었을까. 친구의 소중함과 고마움이 새삼스레 되뇌어졌다.

문상 답례와 연락 못 드렸던 마음의 빚을 갚을 요량으로 저녁을 모시겠다고 했다. 그러지 않아도 된다 하셨지만, 10여 명이 모인 월례 정모--매월 모임을 한다 하셨다-- 때 찾아뵀더니 그래도 고마워하셨다. 별스러울 거 없는 아버지에 대한 얘기며, 모임에 안 나오면 ‘무슨 일이 생겼나’라는 걱정이 앞선다느니 이런저런 그분들의 대화를 듣다 자리를 끝냈다.

그 모임을 보며 우리는 어떤가 싶었다. 그에 비하면 우린 거의 30년 연배 차가 있는 젊은 축이다. 아직도 사회 각층에서 활동하느라 정모 때 참석 못한 친구도 많다. 물론 다 모일 수 없고, 모인다 해서 무작정 ‘친구’라 하기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살다 보면 친구의 존재가 삶을 보다 풍성하게 하거나 즐겁게 해 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런 친구가 되기 위한 제 1의 요소는 어쨌든 자주 얼굴 보는데 있다. 그래야 할 이야기도 있기 마련이다.

우리 나이 80에는 월 모임을 할 수 있는 친구들이 얼마나 될까. 삶의 원동력이기도 한 친구를 ‘더욱 소중히 해야 한다’고 가르쳐주신 거 같은 아버지 친구분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