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림풍운(棋林風雲)>제29회 LG배 세계기왕전 3번기 결승전 - 변상일 대 커제 3 - 기림청담(棋林淸談)2> 커제가 놓친 기회 - 2020.11.2 - 삼성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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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제는 큰 기사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는 역사에 남는 더 큰 기사가 될 수 있는 순간을 스스로 놓아버렸다.
그는 작아졌고, 평범해졌으며, 자원해서 소인이 되었다.
신진서는 실수의 책임이 크다.
그는 해서는 안 될 실수를 저질렀다.
실수를 하고 난 뒤 처리도 미숙했다.
관계자들도 마차가지였다.
그날 그 상항은 100% 신진서의 실수로 돌리기엔 석연찮은 점이 있었다.
실수의 순간을 반복해서 관계자들은 확인하고, 신중하게 결론을 내렸어야 했다.
신진서도 기기조작의 불편함과 미스 유발 상황에 대해 항의를 함이 옳았다.
화면으로 보면 실수를 하기 쉽도록 기기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초등학교 어린이에게도 사용치 않을 작은 책상과 그 위에 놓인 컴퓨터 본체, 모니터, 마우스 등등은 세계대회의 무대장치로서는 문제가 있었다.
모든 상황과 조건에 대한 심도 깊은 점검이 필요했다.
바둑을 중지, 하루 정도 연기하면서 상황을 정리하고 결론을 내렸어도 좋았다.
더욱이 삼성배는 한국이 주관하는대회가 아닌가.
쫓기듯 서두를 필요도, 이유도 없었다.
나는 주최측의 ’완벽하지 못한 기기의 배치, 설치에 의한 실수 유발‘이 정답이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 모든 진행상의 오류에 대한 책임이 100% 신진서에게로 돌아갔다.
그 결과 신진서는 스스로 용납하기 어려운, 석연찮은 부분이 있었지만, 심리적으로는 거리낄 것이 없었다.
이 미스에 대한 신진서의 인터뷰가 있다.
- 마우스 얘기도 있었고 터치패드 얘기도 있었다. 결승 첫대국은 말이 없는 영상으로만 전해졌다. 선수로서 당시 상황을 되짚어 본다면?
- “마우스 문제는 아니었고, 노트북으로 연결했으니까 터치패드가 있는데, 터치패드 문제만 없었으면 됐다. 마우스 미스일 확률은 없었다. 터치패드에 (선이) 끌린다는 사실을 빨리 알았어야 하는데 실수하고 나서 알게 됐다. 터치패드에 끌려서 버벅대는 순간에 마우스를 흔들었는데 미스가 난 것 같다.
이미 일어난 일이니까 지금은 어쩔 수 없고 선수나 한국기원이 신경 써야 할 것 같다.”
- 당시 이의제기 버튼을 눌러서 어필 할 기회가 있었는데 왜 하지 않았나?
- “일단 충격이기도 했고… 마우스 미스가 결국은 실수인 부분이 있으니까 사실 (이의제기 버튼 누르기를) 할까 말까 고민을 많이 하긴 했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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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러나지 않는 몇 가지 문제가 커제로 넘어갔다.
커제는 승리했다. 그리고 우승했다. 당연한 우승이었다.
그 우승에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크게 자랑스럽지도 않았다.
그날 커제 앞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몇 가지 선택지가 놓여 있었던 것이다.
1안 – 상대의 기기 조작 미스로 인한 실수 확인 재착점 허용
- 1국 무승부(판 무효)로 과감히 상대방의 실수 수용
2안 – 1안 미처리시 2국 스스로 대국 불참
- 1:1상황 유도하여 3국에서 정정당당한 승부
3안 – 집행부가 진행하는 대로 현실의 처리 방식 묵묵히 수용.
커제는 상대의 실수에 편승, 조금은 떳떳치 못하고, 약간은 자랑스럽지 못하게 보일 수도 있었지만, 현실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는, 안전하고 편안한 승리의 길로 갖다. 그날 화면 곳곳에서 읽힌 커제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심히 안타까워 했다.
승리에 대한 의연함을 전제로, 커제는 신진서의 실수를 처리할 수 있는 보다 적극적인 언행을 할 수도 있었다.
그에게 천재일우의 좋은 기회가 찾아왔던 것이다.
커제는 쇼맨 쉽이 매우 탁월한 기사 중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세계 바둑사에 영명을 날릴 수 있는 멋진 기회를 스스로 발로 차버렸다.
이기면 영웅, 져도 대영웅이 될 수 있는 호기를 놓쳐버린 것이다.
커제는 형가(荊苛) 이후 수천년에 걸처 면면히 이어내려온 중국호한들의 호기(豪氣), 협기(俠氣), 정기(精氣)를 깊이 있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수호지의 천괴성(天魁星) 급시우(及時雨) 송강(松江)이 이런 상황에 처했다면, 상대를 위로하고, 도리어 자기가 졌다고 나섰을지도 모른다.
독자에게 졌다는 주장이 황당해 보일 수도 있다.
결코 그렇지 않다.
송강에겐 명백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송강은 상대의 실수를 틈 타 이기는 행위를 극도로 싫어했다.
노지심은 제 2안을 따랐을 가능성이 크다.
그는 사내답게 정정당당하게 싸우길 좋아했으니까
단언하는데 내가 아는 수호(水湖)의 108 영웅, 호한 중 3안을 따를 사람은 단 1명도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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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일치하지는 않지만 유사한 사례가 있다.
박치문의 ’검은 돌 흰 돌‘ - 가혹한 반칙패 규정, 승부 묘미 떨어뜨려(중앙일보 2021. 09. 15)에 소개된 오유진 기사의 사례를 살펴본다.
- 실제 올해 여자리그에서 오유진 7단은 상대의 ’착점 이동‘에 이의제기를 하지 않았고 그대로 진행해 패배했다. 바로 이 대목에서 모든 룰이 지향하는 ‘공정’이라는 단어가 어색한 느낌을 풍기기 시작한다. 오유진은 어필하는 순간 승리할 수 있었지만 그냥 졌다. 그런 승리가 부끄러웠을까.
세상엔 정해진 룰 이상의 숭고한 가치도 존재한다.
오유진은 만인이 동감하는, 규칙 이상의 공정함, 사리에 맞는 의연한 신사도를 추구했다.
나는 이 사례에서 선택권이 오유진에게 있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심판이고, 규칙이고, 나발이고, 뭐고 다 필요가 없는 것이다.
피해 당사자가 괜찮다면 피해 당사자의 판단에 그대로 따르면 되는 것이다.
오유진의 자리에 커제를 대입하면 그의 선택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쉽게 이해된다.
그 뒷맛이 매우 씁쓸하다.
이 사건은 기림 역사에서 대기사의 어리석은, 혹은 미숙한 마우스 미스로 승부가 엇갈린 인터넷 바둑 초창기의 에피소드로 최소 일천 년 간 정도는 회자될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상대의 실수를 포용, 공정한 승부를 요구한 세계기림의 일대 영웅이 출현하는 스마트한 전설은 나오지 못했다.
드라마같은 멋진 사연은 승리에 대한 인간적인 집착으로 사라져버렸지만 이러한 글이라도 남게 된 것은 다행이다.
영웅과 소인(小人)의 갈림길은 여기저기에 산재한다.
바른 판단과 현명한 선택이 역사적인 인물을 만든다.
그런 멋진 선택을 할 수 있는 무대장치가 마련되고, 그 기회가 주어졌지만 고개를 돌리고, 아니 숙이고 외면, 절호의 기회를 놓친 것은 두고두고 생객해도 너무나 아깝다.
커제가 나를 따라 할 필요는 없다.
커제는 내가 아니니까.
나는 그 상황을 목격하면서 그 찰나에 스토리를 결정했다.
- 1국은 신진서 패배,
- 2국은 커제 대국 포기로 1:1 상황
- 3국에서 진검 승부
이 스토리의 결말엔 커제의 승리와 영광과 환희만 있다.
- 3국에서 신진서가 승부를 양보하는 상황도 상상된다.
커제가 상금을 못 받을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커제가 이 참한 스토리를 차버린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스토린 ‘천금의 가치’가 있었다.
커제가 이 스토리를 따랐으면 커제는 중국인들에 의해 109명 째 수호지의 호한이 됐을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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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거다.
바둑 외의 실수로 승부가 결정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 이 부분 '사석의 위치가 승부를 결정하지 않는다'는 커제와 중국의 주장과 억울함, 분노에 대해 어느 정도 인정을 하지만, 이미 규정이 정해져 있고, 이 규정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심판은 판정을 한 것이다. 추후, 규정에 대한 논의를 거쳐 합리적으로 수정을 해야한다.
실수는 부정행위와는 다르다.
부정행위는 손톱만큼도 용납될 수 없다.
그러나 실수는 바로잡아 주는 보완 규정이 필요하다.
축구의 VR 활용이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VR 판독 결과 골이 뒤집히기도 한다.
인터넷 바둑 시대에 신진서가 범한 마우스로 인한 착점 미스같은 실책행위는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규정을 마련하는 게 옳다.
신진서의 하변 착수가 의도적이 아닌, 그 원인이 무엇이든 실수라는 걸 모두가 인지하고 있었다.
실수 교정 후 정상적으로 대국한 뒤, 국후에 실수에 대한 벌칙을 부과하면 된다.
하단 제일선에 놓인 신진서의 검은 돌은 깊이가 보이지 않는 상처였다.
동그란 핏방울이었다.
그 핏방울 위로 한 점, 두 점하는 착점하는 기사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지금생각해도 참담하다.
그 바둑은 고통의 바둑이었을 것이다.
그날 그 고통은 오직 핏방울을 떨어뜨린 신진서만의 몫이었다.
지난 글이지만 이번 사태와 유사한 부분이 있고, 커제의 심리을 읽을 수 있는 부분이 있어 공개한다.
이 일화를 통해 우리가 읽어낼 수 있는 커제가 가진 계산력의 한계와 수위는 명확하다.
그는 오직 승리에 집착하는 기사에 불과할 뿐이다.
커제가 담대한 도량과 인품이 있고, 바둑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혜안과 총기가 넘치던 오청원의 수위에 이른 인물이길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오직, 승리에 대한 집착과 욕망이 그의 모든 생각과 행동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판단의 근거 중 하나가 '커제의 세계대회 9관'에 대한 집착이다.
지나친 정도가 아니라 이미 비정상적인 수준에 이른 것 같다.
지금 커제는 스스로 9관이라는 명찰을 달고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그걸 보고 박수치는 중국인이 많다.
어찌 됐든, 제 3국 흑 159 시점에서 에서 커제가 한 형세판단은 절망적이고, 파멸적이었다.
커제가 그 시점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 변상일의 실수, 착오가 불러올 실착과 패착뿐이었다.
정상적인 진행으로 커제는 도저히 승리할 수가 없었다.
커제는 누구보다도 그러한 사실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고, 그것을 역전시킬 방안을 찾아야만 했다.
그것은 끈적끈적한, 먹어도 먹은 것 같지 않은, 이겨도 이긴 것 같지 않은 ‘칙칙한 뒤끝’을 남길 수 있는 저항, 바로 기권이었다.
- 이날 신통하게도 나는 커제의 기권을 예측했다.
커제가 자신의 ‘규정 위반’이 아닌 ‘심판의 등장 시점을’ 문제 삼은 것은 그의 주장이 문제화, 공론화가 되고, 혼란이 일어나면 재대결의 기회가 올 수도 있을 것이라는 수읽기의 결과였다.
그러한 커제의 의도대로 중국바둑협회와 중국기사들은 판정의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문제를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어느 정도 커제가 성공을 거둔 것이다.
재차 강조하지만, 커제의 ‘규정위반 행위’가 없었으면, ‘제29회 LG배 세계기왕전 결승전 3번기’에서 어떤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