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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림풍운(棋林風雲)16> 제27회 삼성화재배 - 난도참장(亂刀斬將)
4강전 신진서 대 김명훈 - 3

5 앞서 많은 중국인들이 리쉬안하오를 지키기 위해 ‘木秀於林 風必摧之(숲 속의 나무가 빼어나면, 바람이 필히 꺽으려 든다.)’라는 말을 내세운다고 했는데, 그 ‘빼어난 나무(리쉬안하오)’를 꺾어 버리려는 ‘사나운 바람’의 선두에 커제가 위치한다. 이 이야기의 발원에 해당할 수 있는 커제와 리쉬안하오의 위기사건(圍棋事件)과 쟁의(爭議)를 살펴본다.
리쉬안하오는 1995년 2월 1일 충칭(重慶)에서 태어났다. 2023년 한국 나이로 29세(만으로는 28세)가 된다. 프로 기사로서는 적지 않은 나이다.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2022년에 들어서면서부터다. 그 이전에는 중국 기원 랭킹 20위 대의 기사로 평온하게 활약해온, 하지만 상당한 실력을 갖춘 기사로 보면 될 것이다. 2022년 들어서면서 사람의 눈을 현란케 하는 리쉬안하오의 눈부신 활약이 펼쳐진다. 2022년 4월 13일 아시안게임 중국 국가대표팀 합숙선발전에서 7전 전승으로 진급에 성공하고, 중국 바둑 54번째 프로 9단이 된다. 4월 19일 선발전 8차전 후, ‘조기 본선 진출자’로 선정되어 중국 바둑팀에 선발된다. 리쉬안하오는 국가 바둑대표팀에 이름을 올린 것을 기점으로 폭발적인 도약을 시작한다. 보라. 4월 29일 취저우(衢州) 난가배(爛柯杯)에서 판팅위를 꺾고 우승한다. 5월 27일 제3회 승주배(嵊州杯) 왕중왕 바둑재패전에서 판팅위를 꺾고 우승한다. 9월 갑조리그 12차 대회까지 12전 11승 1패, 승률 91.66%를 기록한다. 그리고 2022년 12월 19일 춘란배 8강전에서 양딩신을, 21일 4강에서 신진서를 이기고 결승에 진출한다.
신진서를 이긴 것은 리쉬안하오 인생에서 하나의 특별한 정점(頂点)이 되고 있다. 너무나 아름다운 비상에 그만 감탄사를 터뜨리게 만든다. 리쉬안하오가 신진서를 이기자 중국 기림은 리쉬안하오라는 이름의 엄청난 축포가 터진다. 내가 ‘마치 광란(狂亂)에 가까웠다’라고 하면 중국 기림에서는 혹시 지나친 과장이라고 할까? 나는 ‘결코 아닐 것이다’라고 단정한다. 신진서가 불과 한 달 여 사이에 LG배(11/16), 춘란배(12/21) 4강에서 연거푸 탈락한 것은 초메머드급 태풍으로 한국 기림을 강타했지만, 중국 기림은 반대로 열광의 도가니가 되어 환희와 희열의 함성으로 넘쳤다. 중국 기림은 즐거움과 기쁨으로 한껏 달아올랐고, 그 핵심에 리쉬안하오가 우뚝 서 있었다. 골수 애기가들은 기쁨에 못이겨 광란에 가까운 찬양과 칭송의 언행을 보였고, SNS에 그 모든 것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광란의 축포가 작열하는 이 뜨거운 향연에 광풍노도와 같은 눈보라를 흩뿌리며, 단 한 순간에 중국 기림을 꽁꽁 얼어붙게 만든 기사가 있었다. 바로 양딩신이었다. 그동안 리쉬안하오는 치팅 의혹으로 몇 번인가 바늘에 찔렸던 이력이 있었지만 큰 탈 없이 잘 넘겨왔다. 그런데 이날은 양딩신이 내력을 담아 던진 ‘절대영도 – 273.15℃’의 얼음 덩어리에 안면부를 정통으로 가격당하고 말았다. 공정과 정의의 이름으로 양딩신이 정심한 내공을 담아 쏘아낸 냉정, 냉혹한 이 얼음덩어리를 리쉬안하오가 머리통에 맞으면 으깨지거나, 산산히 부서져버릴 뿐, 다른 방법이 없을 것이다. 다만 그것을 이겨낼 ‘진실의 방패’가 리쉬안하오의 양심 속에 자리잡고 있다면 아무런 일도 없이 순순히 넘어갈 것이다. 그런데 이 일은 묘하게 흘러간다.

‘리쉬안하오의 탈각(脫殼)’은 아마도 2022년 초였을 것이다. 2022년 이전 그의 기림 이력은 평범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놀라운 것은 2022년 들어 그가 만들어낸 중국 내 랭킹의 변화다. 수직으로 상승을 하고 있다. 2022년 12월 31일 현재 커제 1위(2,705점(分)), 리쉬안하오 2위(2,699점)인데 커제는 49점이 하락, 2위와의 격차가 6점에 불과하다 리쉬안하오의 초단시간에 이루어진 ‘저돌적인 진격’은 경이롭기 짝이 없다. 이 현상에 대한 중국인들의 성원과 환호는 대단하다. 그래서 현재 리쉬안하오로 인해 제기되고 있는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보지 못하거나, 문제의 심각함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다. 중국 내 여론의 주류를 이루는 반응은 ‘내홍(內訌), 자중지란(自中之亂)’이라는 말이다. 나는 이 말 속에 문제의 핵심이 고스란히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이 말엔 ‘아무 일도 없는데 괜한 말로 양딩신이 중국 기림을 어지럽힌다는 의식’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그 결과 중국 기림 팬들이 커제를 비롯해서 양딩신을 옹호하는 많은 기사들을 비난하는 소리가 증폭되는 기이한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나는 이 문제가 중국 기림의 내홍도, 자중지란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문제의 본질은 세계 기림의 정직함, 진실함, 정의로움, 공정함을 확인하는 것이며, 그것을 구현하고자 하는 의지와 신념에 있는 것이다. 만약 리쉬안하오가 일말의 거짓도 없이, 오직 자신의 열정적인 노력과 극한의 인내를 통해 ‘절예’를 육화(肉化)해서 최고의 바둑 실력을 갖추고, 중국 바둑 최고의 경지에 올랐다면, 중국인을 넘어 세계인 모두가 박수를 치면서 환호할 것이고, 인간승리로 자랑스럽게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면 리쉬안하오는 자신의 치팅과 관련해서 제안, 혹은 요청하는 어떤 검증에 대해서도 피하거나, 주저할 것 없이, 무조건 나서는 정정당당한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다. 리쉬안하오는 7번기든, 20번기든, 30번기든, 굽든, 삶든, 동굴 속이든, 물 속이든 가릴 것도, 따질 것 없이 무조건 자신감 넘치게, 흔쾌히 응하면 된다. 리쉬안하오가 ‘입증’이라는 이름의 공개된 광장으로 나서지 못하고 침묵 속에 숨어버린다면 그것은 뒤가 구린 것이 될 수도 있다. 중국 기원도 문제 해결을 위해 리쉬안하오가 자신감을 갖고 대중 앞에 설 수 있도록 격려해줘야 한다. 그렇게 모든 의혹을 깔끔하게 불식시켜야 한다.

6 커제는 2021년 4월 창기배 16강전에서 리쉬안하오와 대국 후 치팅 의혹을 제기한다. 이 의혹으로 커제는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그 시점만 해도 치팅에 대해 무지하고, 약간은 방임했던 시절이고, 사람들이 조금은 어리숙하고 순진해서 증거의 필요성과 가치를 심각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당시 커제는 자신의 인식, 혹은 감각만 믿고 ‘리쉬안하오의 치팅’을 공개적으로 주장하면 모든 문제가 원만하게 해결될 것으로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커제의 기대는 현실과 상당히 어긋나 있었다. 그 결과, 커제에게 불어닥친 역풍은 강렬하고, 표독했다. 중국기림에서는 ‘중국 바둑의 새로운 절대 영웅’이 출현하길 고대하고 있었다. 때 맞춰 리쉬안하오가 그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커제는 그러한 흐름을 의식하지 못했고, 리쉬안하오에 대해 안일하게 대응했다. 대중(大衆)의 유행, 그리고 시대의 흐름에는 ‘시비(是非-옳고, 그름)’가 크게 작용하지 않는다. 대중의 기호, 선호, 혹은 추종이란 것 자체가 원래 가볍고, 변화가 무쌍한 것이어서 저 꼴리는 대로 흘러가기 마련이다. 방향, 흐름을 결정하는 것은 정의도, 선도, 양심도 아닌 당시의 분위기요, 순간적인 감정이요, 개인적인 선호도일 뿐이다.

커제는 리쉬안하오를 향한 대중의 '굴곡되고, 제 멋대로인 심리'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정의와 불의, 시와 비, 선과 악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 이기기만 하는 '절대적인 초인'을 향한 대중의 갈망을 상식선에서 이해하고, 용납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은 비상식적이고, 몰상식하게 이루어지는 선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스토리 속엔 대중의 '비상식과 몰상식'을 커버할 수 있고, 또 정당화 할 수 있는 '비밀과 음모'가 잠재되어 있을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비밀과 음모의 실체'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나는 역사상 수많은 영역에서 인간이 보인 '초능력'은 대부분이 속임수, 사기였고, 쑈에 불과했다고 단정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오늘, 리쉬안하오의 경우가 사기란 법은 없다. 인류 역사상 유일무이한, 그리고 최초의 경우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리쉬안하오를 통해 ‘노력으로 ‘절예’ 수준의 초능력을 갖게 된 인간 AI’를 목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건 솔직히 엄청난 행운이다. 영화 속의 슈퍼맨이 현실에서 등장하는 것을 목격하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스토리는 상반된 두 가지의 극단 중 하나로 마무리될 가능성이 크다. 그 하나는 ‘절예’를 통해 기사로서 최고의 실력을 갖추고, 전인미답의 성공을 거두면서, 기림 사상 전무후무할 정도로 놀라운 업적을 쌓아올리며 영광과 환희를 만끽하는 멋진 스토리일 것이다. 또 하나는 그 반대로 치팅을 한 사기가 드러나 천인공노할 범죄자로 낙인이 찍혀 기림 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추악한 사기꾼으로 지탄을 받으면서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처절한 비극으로 마무리 되는 스토리일 것이다. 어떤 결과가 됐든, 이 사안은 이미 돌이 킬 수 없는 일방통로로 들어섰고, 이젠 그 끝까지 가볼 수밖에 없는 극한상황이 되고 말았다. 통쾌한 활극이 펼쳐질까? 아니면 소름 끼치는 비극이 전개될까? 이미 판결은 ‘완료’가 됐다. 정답은 나와 있지만, 그 결과가 숨겨진 박진감이 넘치는 생생한 드라마가 지금 막 우리 눈 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중국 바둑은 어려운 길을 선택했고, 리쉬안하오는 위험한 길로 들어섰다. 리쉬안하오가 중국인들이 바라는 대로 세계바둑을 석권하고, 오청원을 뛰어넘는 초절정의 바둑 영웅이 될 수 있을까? 아니면 희대의 사기꾼, 개잡놈으로 시궁창으로 거꾸러져 치욕과 오욕으로 뒤범벅이 되어 악비(岳飛)를 능멸한 송나라의 진회(秦檜)처럼 더러운 가래침을 뒤집어 쓰고 ‘파멸과 죽음’의 길로 들어서게 될까? 근 일천년(一千年) 전 악비의 전우인 한세충이 진회(秦檜)에게 악비의 죄상이 뭐냐고 묻자 진회가 ‘아마 있을지도 모르오(莫須有)’라고 대답했다고 하는데, 지금 중국 기원의 일 처리 방식이 리쉬안하오의 티칭에 대한 물음에 ‘아마 없을지도 모르오(莫須無)’라고 말 하는 것과 같아서 내가 이해를 돕고자 예화로 사족을 붙인다. 그런데 이 사건의 결과는 의외로 빠르게 나올 수도 있다. 기림맹우(棋林盟友)들은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으면 될 것이다. 커제는 이 파란만장한 드라마의 초입에서 문을 삐죽이 열고 고개를 쑤욱 내밀고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재수가 없게도 싸리빗자루에 머리통을 한 방 맞고 뒤로 물러선 꼴이 되고 말았다. 그 전말은 이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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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림풍운(棋林風雲)17> 제27회 삼성화재배 - 난도참장(亂刀斬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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